산들바람은 유하며,

셋: 하늬바람

평화의 초원에서 서로, 또 서로 가다 보면 순환의 산맥이 나온다네. 온세 요르툼, 자유 도시 오셀로, 기술의 군집체, 소문이 도달하는 곳. 등에 봇짐을 바리바리 짊어진 보부상이 이곳으로 발걸음할 적이면 진기한 물건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팔아대어서, 무릇 아크사버그 마을의 아이라면 그곳에 대한 환상을 품기 마련이지. 보부상이 파는 서사시의 출처가 어디 서쪽 뿐인가? 북의 사크라 테라에서부터 남의 마레 세레니타티스까지—모든 풍문은 바람을 타고 온세 요르툼에 모여 이곳에 흘러들어오곤 하였다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하늬바람은 희극과 비극을 속삭이는 바람이요, 바깥 세상과의 창구와도 같았어. 서에서 부는 바람. 상쾌하고도 바싹 마른 바람이여…….








오늘의 목동은 춤을 추고 있지도, 창을 휘두르고 있지도 아니하다. 외려 가만히 앉아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는데—밀짚모자가 드리운 자그마한 그늘 아래 팔락이며 넘어가는 책장에 깊이 빠진 성싶지. 어찌나 자주 그 책을 여닫았는지 마을의 필사가가 고심해 한 자 한 자 옮겨 적었을 글씨는 빛이 바랜 지 오래요, 책 엮는 이가 정성스레 묶었을 책등은 나달나달해진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린 청년의 몰입만큼은 그 무엇으로도 깨뜨릴 수 없었다. 이미 수없이 읽어내린 활자임에도 문장을 더듬고 이야기를 그려낸다.


서사시는 사크라 테라에서 시작한다. 글자는 세계수의 위대함과 어머니 대지의 위대함을, 인간이 내딛지 못한 땅이 어찌나 순수한지를 노래했다. 그러나 이야기꾼마저도 그가 보거나 듣지 못한 최초의 대지를 자세히 묘사할 수는 없었던 모양인지 풍문은 군데군데가 비어 있었다.


긴 시간 내내 인간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가장 순수했던 바람은 마레 세레니타티스에 도달한다. 풍요로운 바다의 파도가 일고 뱃사람들이 돛을 한가득 펼치면, 사람들은 해안에 위치한 거대한 수호룡을 찬미했다. 무역도시 베른에서는 짠 소금내가 났다. 어부의 그물에 한가득 잡힌 물고기의 비린내가 그 뒤를 따랐다. 샤르칸에 바치는 찬가와 그 모든 바다의 냄새는 거친 바람에 몸을 실었다.


바람은 이내 서로 향했다. 산맥의 계곡 틈새로 미끄러진 뒤 드워프의, 인간의, 엘프의 틈바구니를 내달린다. 대장장이의 모루 위에 얹힌 시뻘건 쇳덩이를 식혔고, 시약병을 든 마법사의 뺨을 간질였다. 풍문과 이야기를 한가득 담은 채 골목 사이로 휘몰아쳤다. 이야기꾼은 다시금 도시의 양면에 대해 노래한다. 인간과 모든 이종족을 통틀어 사람은 아름다운 동시에 추악하다. 그들은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동시에 깊이 껴안으며, 고성을 높이는 동시에 노래한다. 그것이 필멸자의 생. 어리석고도 지혜로운 삶이여…….


그리고, 이야기는 프라툼 아분단티아에서 끝을 맺었다. 목동은 서책의 묘사 없이도 그곳의 풍경을 생생히 그려낼 수 있었다. 서쪽에서 온 바람이 어떻게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지, 양과 토끼가 뛰노는 초원 위로 지는 노을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유목하는 이들의 힘찬 말발굽 소리와, 맹수부터 가축,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의 젖줄이 되는 시냇물을 눈 감고도 노래할 수 있었다.


양치기는 책을 덮는다. 그가 낡아 페이지가 바스라지는 책을 한 번 더 정독한 것은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아마 이 정도면 나이 지긋한 엘프의 아름다운 서사시에 보답할 정도는 되겠지. 그는 그의 삶을 나눌 것이고, 보답으로 제가 모르는 삶을 나누어 받을 것이다.


자아, 지금까지는 끊이지 않는 춤을 보여 주었다. 오늘 이 청년은 춤 대신 노래를 선보이려 한다.


한 편의 이야기, 소박하고도 솔직한 서사시. 제가 나고 자라고 환상을 품은 모든 곳에 대한 노래.


부디 당신께서 즐거이 들어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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