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바람은 유하며,

넷: 된바람

참으로 길고도 고된 날이었다. 알레이 에버그린은 바닥에 드러누운 채 창을 쥐고는 한 번 몸을 뒤집었다. 적당히 서늘한 사크라 테라의 바람이 잔뜩 달아오른 뺨을 식혔다. 그대로 눈을 감았고, 두방망이치는 심장이 찬찬히 진정할 때까지 깊고도 긴 숨으로 호흡했다.


청년은 딱 잠에 빠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본디 규칙적인 삶이 일상이었으므로 아직 수마에 빠지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으나, 오늘 하루는 유독 다사다난하지 않았는가. 마음에 남은 한 줄기 양심에 스르르 감기려던 눈을 가물가물히 끔벅거렸다마는 잠의 마수는 한낱 인간이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피피이, 나 지금 자면 안 되는데…….”


미약한 반항으로 그의 길동무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그 옆을 지키는 아기 양도 다를 것은 없었다. 저도 졸리다는 뜻인지 희미한 울음소리를 낸 복슬거리는 털뭉치가 붉은 머리칼 청년의 옆구리로 기어들어간다. 그러고 보니 이 양도 내내 양치기와 함께 요정을 뒤쫓지 않았는가. 늘어져라 하품을 한 뒤 눈을 감고 몸을 마는 모습을 보면, 무한한 체력이라는 어린 것들도 결국 한계는 있나 보다.


춤을 추는 내내 빙그르르 돌 수 없듯, 삶이고 춤이고 모두 언젠가는 휴식이 필요한 법이지. 돌이켜 보면 에버그린의 영지에서 소박한 발걸음을 뗀 이후부터 내내 앞으로 향하기만 한 여정이었다. 최초의 대지에 도착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이 그에게는 달콤한 나태로 느껴질 정도로 바지런히도 발걸음을 옮겼으니, 지금이야말로 쉴 때가 아닐까.


“정말, 자면 안 되는데…….”


그리고 그것이 알레이의 마지막 말이었다. 보드라운 풀밭 위 붉은 머리칼이 늘어지고, 입을 살짝 벌린 채 고르게 호흡하는 청년은 깊은 잠에 빠진다. 한 품에는 창을, 다른 품에는 양을 껴안은 채였다.


북에서 부는 바람을 된바람이라 부르렷다. 그러나 이 대지의 북쪽은 영원한 안온함이 그 상징이었으므로, 겨울에 부는 냉풍과는 그 성질이 달랐다. 늘어진 적발을 흩뜨리는 된바람은 상냥하고 다정하다. 이윽고 바람이 제 뺨을 간질이는 감각에 미약한 잠꼬대를 하는 이 주위로 이제는 익숙해진 세계수의 생명들이 모인다…….


함께 춤을 추는 것이나, 함께 무武의 묘리를 나누는 것이나, 함께 노래하는 것으로 참 많고도 많은 것을 배운 요 며칠이었지. 하지만 함께 잠에 드는 것도, 뭐……, 나쁘지 않은 추억이 되겠다.


부디 좋은 꿈 꾸길, 최초의 대지에서 호흡하는 모든 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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