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내달리는 바람이여
나는 오래도록 헤매고 있었다. 아주 지독하게.
모험에는 목적이 필수불가결하므로, 나의 여행은 예컨대 방랑이었다. 목표 따위 없었으며 이루고 싶은 것을 구태여 꼽자면 도망 뿐. 발 닿는 대로 그저 떠돌고, 내키는 대로 싸웠으며, 이 모든 것은 나의 의무를 위한 일이라며 자위했다.
의무, 그래. 그 빌어먹을 의무! 그것 하나가 나를 살게 했지. 나의 손에 인류의 운명이 달려 있다. 그러므로 나는 쉼없이 싸워야 한다. 어리고 어리석었던 이에게 어찌나 달콤한 소리인가? 무기 겨눌 적과 그 이유를 세상이 정해 주었다. 그러므로 나는 쉼없이 싸워야 한다…….
그렇게 나는 오래도록 헤매고 있었다.
알레이 에버그린은 과거의 당신을 기억한다. 당신은 다정했고 현명했다. (적어도 어린 양치기의 기준으로는 그랬다.) 이윽고 수 년이 지난 뒤 재회한 당신에게서는 저와 비슷한 냄새가 났다. 과거의 기억을 붙들고 사는 이의 향.
그래서, 아마 그것 때문에, 당신을 붙들고 그리 성을 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아, 꿈! 어찌나 달콤한 단어인지. 그러나 그것을 잃은 채 내내 헤매던 이에게는 더불어 열등감의 기원이었다. 고작 그런 달콤한 환상 없이도 자신은 아주 잘 살고 있다 믿었다. 그런 것 없이도 사람은, 그리고 용은 살아갈 수 있으며, 헛된 목표를 좇으며 불태우는 삶이야말로 덧없는 것이라고…….
제 주변에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기나 하라고…….
그건 과거의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겠지, 멍청한 알레이.
꿈은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거든, 그것은 끝내 허탈감으로 변모하고 만다. 운이 좋지 않다면 기대는 단순히 깨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날카로운 조각이 되고, 이윽고 스스로를 찌르는 가시가 된다. 한때 제가 세상을 구할 수 있다 믿었듯이, 그리고 그 믿음이 산산히 부서져 죄책감이 되었듯이, 그리고 그 죄책감에 쫓겨 도망쳤듯이……. 아마 용기사는 그것이 두려웠으리라.
그러나 알레이 에버그린이 기억하는 것은 또 있다. 당신과 나누었던 약속. 오갔던 상냥한 대화. 서로를 향한 신뢰와, 다정 따위의 친애. ‘알게 된 것’을 나누자는 명목으로 공유했던 삶의 조각.
그리고 답과 꿈을 찾아 떠돌았던 스스로의 시간. 잠시나마 찾아왔던 평화는 용기사가 저 자신을 내몰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것을 들었으며 그렇게 오래도록 생각했다.
삶은 미지의 연속이므로 제아무리 고민했다 해도 ‘명징한 결론’ 따위는 없다. 아마 그는 수 년을 더 떠돌고 고뇌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평생 그리해야 할지도 모르나, 그는 이제 안다. 그토록 헤맨 만큼 그의 땅이었다. 내내 방랑할지언정 목표가 있는 한 그것은 모험이 될 테다. 그리고 그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멋지게 살아가는 것. 언젠가 끝이 다가온다면,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그것 뿐이다. 목숨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숭고함도 삶을 불태우고자 하는 절박함도 아니다. 그러나 부끄러워할 필요 있는가. 어디 모두가 고귀한 영웅이 될 필요 있는가. 어디 사명이 삶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자격 있는가. 그러므로 소박한 꿈이 각자의 서사시를 쓰지 못할 이유 어디에 있는가. 그저 제가 오르고자 하는 고지에 내도록, 내도록 달려간다면…….
그렇기에 알레이 에버그린은 이제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다.
그는 그저 쉼없이 내달리는 바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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