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성녀는 개종하기로 했습니다

쫓겨난 성녀는 개종하기로 했습니다 21화

돌아온 성녀 07

*본 작품은 어한오 팀의 오리지널 창작 작품입니다. 무단 도용 및 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본 작품은 포스타입, 글리프에서 동시 연재 중에 있습니다.


돌아온 성녀 07


루블, 보쓰, 히즈

***

둘만 남겨둔 채 방 밖에서 안절부절 기다리고 있는 아트레우스는, 불안한지 복도를 이리저리 배회했다. 그런 아트레우스 옆에서 그레이스는 비교적 침착하게 상황을 곱씹고 있었다.

“에버렛 씨는 알고 계셨습니까? 보스의 저런······, 상태를?”

아트레우스는 튀어나오려는 험한 말을 주워 삼키며 물었다. 그의 예상보다도 상황이 심각했다. 보스의 행동은 약간의 관심 수준이 아닌, 완전히 푹 빠진 사내의 것이었다.

“분명 에버렛 씨는 전에 저택에 보스 대신 왔던 저에게 말씀하셨죠. 잘 모르지만 의심은 하고 있다고. 더군다나 저더러 걱정할 필요 없다고도 하셨었고요.”

그레이스는 싸늘한 말투로 맞받아쳤다.

“그래. 그리고 넌 보스의 의중을 알 수도 없거니와 알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지. 그러니 지금 말이 선을 넘었다는 것도 스스로 잘 알고 있겠구나.”

아트레우스는 꽉 쥔 주먹을 파르르 떨었다. 성녀에 대한 적대감으로 어둠의 힘이 올라오려 했다. 그는 의식적으로 몸에 힘을 빼고 심호흡을 했다. 그레이스의 말은 틀린 것 하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을 그대로 두고 싶진 않았다.

“······에버렛 씨는 저 여자에 대한 건 걱정하지 말라고도 하셨습니다. 그건 기억하십니까?”

그는 숫제 으르렁거렸다. 그 반응에 그레이스도 더는 온건한 태도를 유지하지 않았다.

“말을 조심하거라. 여기는 아우레티카다. 늘 신중한 태도로 한 발 뒤에서 관찰해오던 네가 이 무슨 짓이냐? 몹시 실망스럽구나.”

“저는 개인적인 은원도, 대의도 상관없었습니다. 전 보스의 안위를 걱정해서 하는 말입니다, 스승님.”

아트레우스에게서 오랜만에 듣는 스승님이라는 호칭은 그레이스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가 이리도 절박하게 저를 부르는 걸 듣는 것이 대체 몇 년 만인지.

“나 또한 너와 같다. 내가 성녀에게 넘어가기라도 했다는 듯이 구는구나. 확실히 헬레니온 님의 마음은 나도 걱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저 보고만 계십니까? 여자, 그것도 적국의 원수 때문에 보스의 앞길이 막힐 수도 있는 일이 아닙니까.”

아트레우스는 결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높낮이가 평탄한 그의 어조는 조곤조곤했으나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가볍지 않았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지만 그레이스는 이해했다. 아트레우스는 헬레니온 님이 직접 거두고, 그녀가 훈련시킨 다. 헬레니온 님에게 충성이 가장 깊은 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레이스는 그가 반쯤 미치기 직전이라는 것을 눈치채고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을 이었다.

“원래는 혼자만 간직하려 했거늘. 네가 이리도 강경하니 어쩔 수 없구나.”

그레이스는 자신이 품어오던 계획을 그에 손에 천천히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마데아는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에 눌려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껏 신전과 전장만 오가며 그녀의 작은 새장 안에서 살아가던 그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갑작스러운 충격이었다. 

헬레니온은 그녀의 상태를 빠르게 알아채고는 아마데아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녀가 앉은 의자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을 낮추었다. 그의 체온에 아마데아의 눈에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허억, 헉······.”

공황에서 빠져나와 겨우 숨을 내뱉는 아마데아를 향해 헬레니온이 그녀의 한 쪽 손을 들어 그대로 손등 위에 키스했다. 더없이 정중한 태도였다. 그의 작은 행동에 크게 위로받았다. 그 때문에 더더욱, 그녀는 울고 싶어졌다.

탁.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손을 매몰차게 쳐낸 뒤였다. 놀라는 헬레니온의 표정에 그녀의 마음이 아려왔다. 

아니야. 이러려던 게 아닌데······. 아마데아는 변명을 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방을 나섰다. 그녀가 나간 방에선 혼자 남겨진 헬레니온만이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시각, 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트레우스와 그레이스는 계획의 공유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집중하던 찰나에 열린 문에 두 사람이 흠칫했다. 그러나 아마데아는 수상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지금은 제 감정을 다스리기도 벅찼다. 아마데아는 무작정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이로니!”

제 가명을 들은 그레이스의 몸이 빠르게 도약했다. 지금 헬레니온의 능력으로 노인의 모습이 된 그레이스는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재빠른 동작으로 아마데아의 앞을 가로막았다.

“디아나! 진정하십시오. 어딜 가시는 겁니까!”

아마데아는 갑자기 앞에 나타난 그레이스를 향해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바로 그때였다.

“스승님! 피하십시오!”

봉인된 줄로만 알았던 빛의 힘이 폭발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섬광은 그대로 그레이스를 덮쳤다. 피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해, 그레이스가 어둠의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미 눈앞에 닥친 빛을 막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레이스는 다가올 고통을 예감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그녀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트레우스. 너······.”

다시 눈을 떴을 때, 아트레우스의 등이 보였다. 그리고 곧 피로 물들어가는 옷과 서서히 쓰러져가는 그가 눈에 들어왔다. 쓰러진 아트레우스의 앞에는 제가 한 짓을 깨달았는지 새하얗게 질린 예로케리가 하나 서 있었다.

“아······, 아아············.”

아마데아는 도저히 아트레우스를 처절한 몰골로 만든 장본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제가 피해자인 양 가증스럽게도 몸을 떨어댔다. 그레이스의 눈빛이 싸늘하게 얼어붙어 갔다.

“아니다. 아니야. 내가, 나는, 그러려던 게······ 그럴 의도는 없었다. 믿어다오! 결코 고의는······.”

아트레우스의 상태를 내려다 본 아마데아는 짧게 힉, 소리를 내며 그대로 굳었다. 극심하게 나는 피비린내에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급하게 틀어막은 입 위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패닉에 빠진 아마데아의 곁으로 헬레니온이 다가왔다. 그의 신뢰마저 잃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아마데아는 입을 열어 변명하고 싶었으나 손을 치울 수가 없었다. 

그의 다가오는 발소리가 선명해질 수록 아마데아의 얼굴에선 핏기가 사라져갔다. 이제 제 편은 아무도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레이스는 더는 그녀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을 것이다. 헬레니온마저 더 이상 그녀를 그렇게 숭배하듯이 보지 않을 것이다. 

잠깐 새에 몰아친 극심한 심적 고문에, 결국 아마데아의 의식이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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