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성녀는 개종하기로 했습니다

쫓겨난 성녀는 개종하기로 했습니다 22화

돌아온 성녀 08

*본 작품은 어한오 팀의 오리지널 창작 작품입니다. 무단 도용 및 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본 작품은 포스타입, 글리프에서 동시 연재 중에 있습니다.


돌아온 성녀 07


루블, 보쓰, 히즈

***

의식을 잃은 아마데아의 곁에 그레이스가 착잡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아까의 광경을 곱씹으며 무심코 초조해지려는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아트레우스는 괜찮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신성력의 폭발로 인해 피를 좀 쏟았을 뿐, 몸은 멀쩡할 것이다. 헬레니온의 힘이란 단순히 보이는 겉모습만 바꾸는 게 아니었다.

때마침 달칵, 문이 열리며 헬레니온이 들어왔다.

“그레이스. 아트레우스는 무사합니다.”

들어오자마자 그레이스가 가장 기다렸을 소식부터 전했다. 그 말에 그레이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그럼 그녀를 부탁합니다. 저는 안드레아스 후작이 무슨 말을 할지 만나보려 합니다.”

“잠시.”

그레이스가 자리를 비우려는 그를 불러세웠다. 헬레니온은 그레이스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이 갔다. 잠시 뒤로 돈 채로 감정을 갈무리한 그는 곧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돌아섰다.

“길게 얘기할 시간은 없습니다. 빨리 끝내주시죠.”

“······지금으로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디아나의 앞으로의 처우에 관한 얘기입니다.”

헬레니온은 마른세수라도 하고 싶었으나 그의 예리한 스승 앞에서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했다. 그레이스의 심각한 표정은 그가 회피할 시도조차 못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한 번은 담판을 지어야 했던 일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분명 신성력을 전부 봉인했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같은 일이 또 다시 일어난다면 곤란합니다. 앞으로의 대처방안을 생각해두신 게 있으신지요.”

아마데아의 신성력은 분명히 그가 봉인했었다. 그러나 그때 아트레우스를 덮친 힘은 신성력이었다. 그레이스는 콕 집어서 어찌 된 일이냐고 물어오는 것이었다.

헬레니온은 생각해 둔 바는 있으나 그게 그녀의 처우와 관련된 일은 아니었다. 이번 사건은 확실한 확인이었다. 그의 이론이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아트레우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의 몸에서 강대한 신성력이 뿜어져 나와 아트레우스를 덮친 순간 약간의 희열이 일었었다. 

그러나 그레이스에게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대체로 그녀는 그의 편이지만 아녹스의 체계는 완전한 복종이란 없었다. 수하라고는 하나 그레이스 또한 자발적으로 판단해 들고 언제든지 들고 일어날 수 있는 곳이 아녹스였다.

그러니 설득해야 했다. 그레이스에게 다 털어놓을 수 없으니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녀를 설득해내야 했다. 그는 아트레우스에게 말했던 비밀을 털어놓기로 했다.

“그레이스. 아니, 이로니. 그녀의 처우는 변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알아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레이스는 아마데아의 처우에 변화가 없다는 말에 실망했으나 이내 이어진 헬레니온의 말에 집중했다.

“일단······ 수장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이곳, 아우레티카에서요.”

그의 말에 그레이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찌 수장께서······. 그래서 직접 걸음 하시기로 하신 것입니까.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디아나의 처우에 대한 화제와 이것이 무슨 연관인지 모르겠군요.”

헬레니온은 잠시 고민하듯 턱을 쓸다가 말했다.

“수장이 현재 나타난 가짜 성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디아나를 데려온 것은 그 확인을 위해서입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아직까지 수장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거짓말이었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으로서.

“하아······. 대체 수장께선 무슨 짓을 하고 다니시는 건지······.”

다행히도 그레이스는 거짓말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수장이라면 그런 기행을 하고도 남을 인물이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무슨 수를 쓰신 것인지, 아니, 그게 중요하진 않겠군요. 일단은 수장과 접촉해 목적을 알아내는 것이 우선이겠습니다. 안드레아스 후작과의 만남은 이 일과 연관이 있겠군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빠져나갈 기회였다. 헬레니온은 냉큼 떠나겠노라 말했다.

“그러니 제가 없어도 그녀의 처우는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다만 신성력의 방출이 다시 드러나면 곤란하니 외출은 자제시켜 주십시오.”

헬레니온은 대충은 납득시킨 그레이스를 두고 방을 나섰다. 닫힌 문을 응시하던 그레이스는 잠시 그대로 서 있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그녀의 수장이나 상급자나, 하나같이 속셈을 알 수 없는 자들 뿐이었다.

‘가짜 성자의 확인에 성녀가 정녕 필요하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어째서 그 말이 변명으로 들리는 것일까요. 어째서 그저 성녀가 이곳에 돌아오고 싶어 했기에 데려왔다고 생각되는 것일까요.’

그레이스는 한숨을 내쉬며 아마데아를 살폈다. 가만히 누워있는 그녀의 눈꺼풀이 살짝이지만 바르르 떨리는 것을 목격했다. 

‘깨어있던 건가? 언제부터?’

그레이스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혼자 있게 해줘야겠다고 결론 내리고는 아트레우스를 보기 위해 방을 나섰다. 그녀가 나간 이후 혼자 남게 되자 아마데아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

아마데아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정리하느라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나를 몰아내고 나의 자리를 꿰어 찬 가짜 놈이······ 아녹스의 수장이라는 말인가?’

혼란으로 떨리던 그녀의 눈동자에 확연한 증오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디모네 놈들에게 농락당한 것일지 모르겠다.

이불을 쥐고 있던 손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소리라도 내지르고 싶지만 그랬다간 그레이스든 누구든 나타나 그녀를 제지할 것이 뻔했다.

떨림은 곧 전이되어 온 몸으로 번졌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속았다. 배신당했다. 농락당했다. 애초에 저들은 진짜 성녀인 그녀를 노리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저절로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까는 소리치고 싶었으나 이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헬레니온 또한 나에게 거짓을 말했단 말인가?’

심장이 쥐어뜯기 듯 아파지기 시작했다. 눈물이 후드득 쏟아져 내렸다. 어딘가 망가진 것처럼 뚝뚝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아플 것이 분명한데도 머리는 멋대로 과거를 회상했다.

헬레니온 일행이 그녀를 구해주던 순간, 그레이스와 대치하던 순간, 그녀에게 교육받고 어느 정도는 인정받았다고 뿌듯해하던 순간······.

그리고 이후에 떠오른 건 차가운 기억들 뿐이었다. 그레이스가 마차에서 그녀를 외면했던 순간, 아트레우스가 그레이스 대신 신성력을 맞고 쓰러지던 순간, 그 찰나에 보이던 온기 한 점 없던 그녀의 눈빛. 차마 확인하지 못했으나 헬레니온조차 아마데아를 그리 볼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

“아······. 아아······.”

분명 누군가의 이름을 울부짖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입은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저 상처 입은 짐승처럼 뜻 모를 말만 중얼거리는 정도에 그쳤다.

두 무릎을 양 팔로 감싼 자세로 옹송그리고 있던 아마데아는 잠시 뒤 고개를 들었다. 그 눈에는 결연한 빛이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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