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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마일>카일

트리거/소재 주의: 감금, 고문, 신체훼손, 폭력, 국가폭력 등에 대한 자세한 언급/묘사, 소극적 인종차별의 언급

종전 이전, 8월 19일(전쟁 2일차)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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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빨리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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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피를 토하고, 바닥을 기며, 통증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다. 비로소 피해자의 모습이다. 에스마일 시프는 당신을 내려다본다. 손에서 지팡이를 놓지 않은 채, 흑과 백의 천에 당신의 붉은 피가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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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 뜬금없는 사실 하나.

근대 즈음 접어들어서부터, 고문은 대체로 무의미하다는 것을 아는가? 물론 당신이 정보를 얻고 싶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공포를 조장하고 복종을 유도하거나, 분열이나 변절을 유발하거나, 분노나 가학심을 해갈하는 등 다른 사유라면 충분히 유의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가 당신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든, 실제로 대부분의 고문은 신음 한 번 없이 꿋꿋하게 동지들을 지키며 장면이 끝나면 신기하게 후유증 하나 없이 멀쩡하게 총을 쏘고 오토바이를 타는 백인 남성(주인공)의 모습과는 다른 경우가 많고, 반대로 유능하고 냉혹한 엘리트 국가기관 요원(다시 백인 남성 주인공)이 담배를 피우며 어쩐지 자주 히잡을 쓴 테러리스트, 범죄자 잔당을 거꾸로 달아 두고 심문하는 모습과는 더더욱 다르다.

왜냐하면, 고문에서 얼마만큼의 정보를 뽑아내는가는 심문자의 심문 능력과 피심문자의 의지력 사이의 대격돌이 아니다. (…레질리먼시가 이용될 경우는 우선 제하고 생각하자. 대부분의 인간이 머글이기에, 대부분의 역사는 머글의 역사이므로.) 그것은 거의 대부분 운이다. 사람의 뇌는 생각보다 약해서 외상성 충격이 가해지면 정말로 아는 정보도 망각하기 쉽고, 순전히 의도치 않게 불완전하거나 완전히 틀린 정보를 말하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인체의 복잡함과, 의학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안전한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조직과 집단이라면 보통 고문처럼 극단적인 방식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단순한 사실 또한, 의도치 않은 고문치사가 빈번하게 하는 사유이다. 또한 고문을 해야 한다는 것은 그 정보를 당장 교차검증할 수 없다는 것이고, 해당 정보에 오류가 있더라도 우선은 확인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영화와 소설이 가르쳐주지 않는, 고문이 실제로는 “그렇게” 통하지 않는 사유는 무궁무진하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은 공부하거나 겪어보지 않았으니 그 논리에서 특별한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 뿐, 우주에서는 지구에서처럼 소리가 날 수 없으나 대부분의 사람은 우주로 나가 본 적 없듯이 그렇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않았다. 과거 중세, 혹은 근대 조금 이전 시점까지만 해도 현대의 “중앙 조직”과 “과학적 수사”라는 것은 전무에 가까웠다.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 따위의 개념도 현재와는 달랐으니, 그래서 지나간 자리에 무고한 시신이 즐비하더라도, 이따금 순전히 우연에 의해 “확실하게” 범인을 잡아 죄를 자백하게 하고 사건을 종결시킨다면 그것은 그 행위를 계속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트롤리의 바퀴 자국을 보지 말고 그것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라.)

이 거시와 미시가 교차하며, 고대와 현대가 교차하는 작은 지식 조각의 요지는, 법과 윤리와 도덕이 상대적인지 절대적인지는 논쟁의 대상이 되더라도, 현실에서 그 모습이 늘 한결같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고문이 불법이 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주제와 아주 큰 상관은 없는 사실이지만, 1999년 9월까지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장 마지막으로 고문이 합법인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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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두운 지하실에서, 다시. 에스마일 시프는 카일 클라크를 내려다본다. 그는 인권 보고서와 논문과 역사책에서 이런 사실을 배우지 않았다. 실제로 겪어서 알고 있다. 고문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안다. 무엇을 초래하며 무엇을 상징하는지 살가죽 안쪽과 바깥쪽에까지 새겨져 알고 있다. 만일 그가 정말로 클라크에게서 진실을 알고 싶다면, 설령 대단히 직관적으로 보이더라도, 그가 그것을 대답할 때까지 주문을 쏘는 것은 방법이 아니다. 다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불안하다. 전쟁이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처럼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고, 그는 그 저택 응접실에 있던 이들 열셋 중 하나를 잃었고 하나는 본인이며 아홉을 죽였기에 후보는 몇 남지 않았고(그가 아는 한 둘, 실제로는 셋. 그는 의식하지 못하는 채 네버랜드에 갇혀 있으며 환청처럼 거짓된 시계소리를 듣는다), 이대로는 그 섬광의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진정으로 복수하지 못한 채 그가 먼저 전사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는 그것이 가장 두렵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복수를 원하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의 복수는 상대의 죽음에서 끝나야 했다. 누르는, 어쨌든, 단숨에, 빠르게 죽었으니까. 더 나쁜 경우는 많았으니까. 기사단원을 돕다가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발각되거나, 심지어는 그와 가족이라는 것이 발각되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지는 모든 일이 끝난 뒤에도 오래 그의 악몽의 소재였으므로… 그것이 그의 최소한의 위안이었다. 누르는 사실상 민간인에 가까웠고 어렸으며 그가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던 가족이었고, 그 죽음은 실제로 그에게 가장 큰 고통을 초래했지만 그것은 동시에 다른 죽음, 예를 들어 아이작 윈필드와 댄 브라이언트의 잔인한 죽음과 그 자신이 겪은 지난한 고통과는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신념이나 이상과는 상관없는 잔인한 행위였다고.

그리하여 그는, 죽음을 먹는 자들의 끔찍한 고통 같은 것을 원해서는 안 되며, 가장 자비롭게, 인도적으로, 프러드에게서 가장 효과가 빠르고 시신에조차 흠이 없게 할 약을 구했다. 그는 이를 나름의 선으로 삼았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피를 흘린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그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이유는 있을진대, 그는 다만 핑계 있는 무덤 또 하나가 될 것이, 그것이 가장 두려워져서, 그는 지팡이를 다시 들지 않는다. 다만 머리를 손에 묻고, 다시 들 때쯤엔 눈은 거의 당신만큼이나 충혈되어 있다. 뼈가 드러나게 야윈 발목에, 족쇄가 자리했던 흉터 위에 조롱하듯 버석한 입술이 와닿는다. 그는 힘주어 그것을 빼내지만 감촉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말한다.

“…젠장, xx, 카일, 제발. 웃지 마세요. 그만,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당신은 모르잖아요. 고통이 당신에게 무의미하다는 건 알겠습니다. 알겠다고요… ….

그럼 만약에, 제가 당신의 두 눈을 전부 뽑는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귀도 멀게 하고, 몸에 마비 주문을 쏘면, 그럼 영원히 당신은 그 조용한 권태 속에 갇히겠죠.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 저는 당신을 알아요. 당신을 어떻게 고칠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부서트릴지 정도는 안다고요. 이제는 이야기해 주실 겁니까? 제발, 젠장, 말하라고요, 크루, 크루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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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린드버그가 에스마일에게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 애썼을 때보다도, 세실에게 애원했을 때보다도, 그 자신이 쓰러진 채 수많은 이들에게 빌었을 때보다도 지금 그의 혓바닥이 길다. 걸려 있는 게 그의 목숨이 아닌데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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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의 목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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