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은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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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날이 영 추웠던 탓이었을까, 당부하는 여자의 양 뺨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무어라 입속말을 중얼인 상대는 단지 손을 흔들며 기체에 오르는 것이었다. 여자는 한참을, 아주 한참을, 그 자리에 오도카니 서 비행기를 떠나 보냈다. 기체가 둥실 오르는 동안에도 아주 자리를 뜰 줄 몰랐다. 계기로, 뇌리에 박힌 그 여자 뒷모습을 나
스치는 칼바람에 코끝이 아린 겨울을 났던 것도 같다. * 꿈을 꾸었다. 함박눈이 내리는 꿈. 소복소복 쌓이기 시작한 눈송이가 어느새 내 키 만큼이 되는 꿈. 봄 햇살에 언제라도 녹아내릴지언정. 근래 들어 잦은 꿈이었다. 괜히 마음 한 켠이 저려 오는 꿈. 더불어, 종종 가타무라의 꿈을 꾸기도 했다. 다만 아직까지도 한 번을 꾸지 못 한 네 꿈은 언
* 아와 류스이는 좋은 사람이다. 동시에 좋은 형사이다. 정의로우며, 신념을 관철할 줄 아는 강인한 사람. 경찰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 또한 뚜렷할 것 없이 대략 이랬다. 단순하게, 사람을 돕고 싶어서. 서너 살 유년 시절 적부터 장래희망을 묻는 용지에는 빠짐없이 경찰관이라고 적어 내곤 했다. 별 탈 없는 삶이었다. 바라던 경찰이 된 이래로
언제부터였더라. 시마 카즈미는 기억을 되짚어 본다. 그러니까, 대략에 오 일 전부터... ... * 귓전을 맴도는 희미한 파도 소리는 금방이라도 시마를 집어삼킬 듯 밀려들었다가도 도로 몸을 무르는 것이었다. 파도 소리는 멀어지며 입안에 비릿한 짠맛을 물린다. 시마 카즈미는 눈을 내리감았다. 무시하려 들면 더욱이 떨쳐낼 수 없도록 달라붙어 온다. 끈
그새 몰려든 먹구름이 여름 장맛비를 토해낸다. 툭, 투둑... ... 바닥을 향해 곤두박치는 빗방울. '낙원고등학교' 촬영지는 소낙비를 동반했다. 가뜩이나 야외 현장, 예고 없는 소나기... ... 너나 할 것 없이 서둘러 비를 피하기 바빴을 참이다. 촬영 철수로 스태프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한유원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 혼자 오도카니 섰다. 점차 굵어지
과육을 크게 베어물었다. 끈적할 정도로 단물이 흐른다. 속살이 무르게 익은 제철 복숭아... ... 달으냐? 묻는 녀석—이하 룸메이트—의 목소리엔 대꾸조차 않았다. 얄미운 새끼. 입속말을 중얼인 나는 마지막 복숭아 한 알로 손을 뻗었다. 곧내 제지당했지만. 나는 내 손목을 붙잡은 녀석에게로 시선을 굴렸다. 개털 마냥 뻗친 탈색모를 대충 올려 묶은
도쿄 하네다 공항 내부를 바쁘게 가로지르는 발걸음은 아네타이 준의 것이었다. 통유리창 밖으로 뵈는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다. 이것으로 경찰청 업무와도 잠시간은 안녕인 것이다. 그러니까, 요컨대 여름 휴가였다. 기체에 오른 아네타이는 이코노미 좌석에 몸을 기댄다. 둥실 떠오르는 비행기 안에서 아네타이는 잠시 회상에 젖는다. * 아네타이 군. 차분한 어조가
여름 햇살이 강하게 내리쪼였다. 구승우가 종일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이유였다. 눈 한 짝을 덮은 솜 쪼가리 안으로 짓무른 살갗. 목전이 어질했다.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다. 구승우는 닳은 슬리퍼 바닥을 질질 끌며 걸었다. 나뭇잎 사이 숨어 우는 매미 소리가 유난히 거슬렸기에, 블루투스 이어폰—중국산 가품이었다.—을 꺼내 꽂았다. 귀에 익은 노래가
구년묵이 선풍기가 털털 돌아간다. 일말의 냉기조차 잃은 녀석은 더이상 선풍기라고 명명하기도 뭣 했다. 공부 겸한 부업으로 겨우 모은 푼돈, 그것 쥐고 가서 산 중고 에어컨. 그 싯누런 놈이 수명을 다한 건 객년이었고. 남민준, 민준아. 더워 뒈지겠다니까. 듣고는 있냐? 쉰 소리가 귓전을 긁는다. 장판지를 발라 둔 방바닥에 벌러덩 나뒹구는 룸메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