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텔님 커미션
도쿄 하네다 공항 내부를 바쁘게 가로지르는 발걸음은 아네타이 준의 것이었다. 통유리창 밖으로 뵈는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다. 이것으로 경찰청 업무와도 잠시간은 안녕인 것이다. 그러니까, 요컨대 여름 휴가였다. 기체에 오른 아네타이는 이코노미 좌석에 몸을 기댄다. 둥실 떠오르는 비행기 안에서 아네타이는 잠시 회상에 젖는다.
*
아네타이 군. 차분한 어조가 귓전에 스친다. 아마네 히이나. 단정한 교복, 가슴팍 명찰에 적힌 이름이 눈에 든다. 아마네는 잠시간 뜸을 들인 끝에 도로 입을 열었다.
나, 전학을 가게 되었어.
어디로?
마쓰야마 말이야.
아, 그렇구나. 아네타이는 짧은 답변을 돌려 주었다. 그 뒤로는 무슨 대화가 오갔더라? 아마 그게 끝이었겠지. 아마네와 아네타이의 관계는 딱 그 정도로 정리되었다.
이후 아마네는 모든 아이들에게 자신의 전학 소식을 알렸다. 주말을 보낸 뒤부터는 정말로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아네타이는 자꾸만 그 빈 자리를 돌아보던 기억이 난다. 아마네를 위해 반 아이들이 준비한 롤링 페이퍼에 적을 말을 한참 고민하던 기억도, 끝내 잘 가라고 써 넣었던 기억도. 다만 제대로 된 인사라도 한 마디 건넬 것을 그랬다. 마음 한 켠 왠지 모를 쓴 물이 들었다.
*
아네타이는 구겼던 몸을 일으켰다. 도착했을 즈음엔 머리 꼭대기에 다다른 여름 햇살이 무더운 게, 벌써 점심을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마쓰야마의 파도가 부서져 내리는 바닷가, 제법 무르익은 여름 공기가 아른거린다. 바닷가 간이역도, 심지어는 줄지어 선 낡은 표지판들마저에도 낭만이 있었다.
그대로 바닷가를 걷자면 멀찍이 조그마한 여관이 모습을 보였다. 아네타이는 걸음을 재촉한다. 여름 휴가 장소를 구태여 마쓰야마로 고른 이유였다. 그야... ...
어서 오세요.
분명 알고 있는 목소리. 고갤 찬찬히 든 아네타이는 상대와 눈을 마주했다. 여관 카운터에 선 여자. 한 점 여름 바다를 연상케하는 말간 눈동자와 머리칼을 가진... ...
아마네.
아네타이가 중얼거렸다. 제 이름이 들려 오자, 여자도 잠시간 상대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작은 탄성.
앗... ... 아네타이 군. 맞지? 오랜만이야. 전학 간 뒤로는 연락 한 통 주고받질 못 했네.
아마네는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잠시 답할 말을 고르듯 제 뒷목을 쓸어내린 아네타이가 입을 열었다.
뭐... ... 그렇네.
아네타이는 어쩐 일이야? 여기까지.
여름 휴가 삼아서. 나도 네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여기 묵을 수 있지?
아네타이가 거짓을 달싹였다. 그야 우연을 가장했을 뿐이니까. 그것을 영 모르는 아마네는 반색을 표했다. 깊이 사귄 친구는 아니었지만서도 아네타이가 좋은 사람이란 것을 아마네는 진작 알았다. 중학교 때에, 전학을 고하기 전부터도. 뭣보다도 간만에 마주한 동창이 아닌가. 가벼이 회포를 풀던 것도 잠시, 아마네는 아네타이의 방을 안내했다. 이 층, 넓지 않은 전통식 다다미방. 관리는 족히 잘 되어 있었다. 쉬고 있어, 아마네가 물러간다.
아네타이는 방에 앉아 짐을 풀었다. 짐이라고 해 봤자 옷 꾸러미 정도가 전부였지만. 줄곧 묻고 싶었던 아마네의 안부 하며 미처 고하지 못 했던 인사에 대한 미련—아네타이는 이것을 미련이라고 정의하고 싶지 않았지만—이 괸다. 어째 후련하기까지 했다.
*
유카타로 환복한 아네타이는 슬슬 저물어 가는 초저녁 하늘을 물끄럼 바라보고 있었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아마네가 방 안으로 저녁상을 날랐다.
저녁이야.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어.
응, 무미건조한 대답. 아마네가 도로 방문을 닫아 나선다. 아네타이는 제법 푸짐한 반찬 중에서도 낫토를 골랐다. 잘게 썬 파를 곁들인 낫토를 밥 위로 얹어 휘저었다. 외에도 생선 구이나 절임류 반찬들이 오른 저녁상. 아네타이는 단출하게 식사를 마쳤다. 이 다음에는 바닷가로 나갈 셈이었다. 도시의 불빛이 새어들지 않는 창밖은 그새 어둑하다.
일 층으로 내려간 아네타이는 카운터에 기대어 선 아마네에게 짧은 인사를 건넸다. 어디 가려고? 아마네의 물음에는 바다라고 답했다.
그럼 같이 가도 돼?
*
모래사장에 발자국이 두 줄 남는다. 파도가 밀려드는 파란 바다, 불빛 없이 깜깜한 하늘에 총총 박힌 별... ... 분명 도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풍경. 아네타이는 잠시 감상에 잠겼다.
타닥, 하고 타는 소리. 고갤 돌린 아네타이의 시선에 불꽃이 걸린다. 선향불꽃. 막대기 끝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빠르게 흩어진다. 아마네는 불꽃이 타고 남은 막대기를 툭툭 털었다.
예쁘지? 여관에서 가지고 나왔어.
그렇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쪼그리고 앉아 다음 막대에 불을 붙였다. 문득 여름의 정취가 어렸다. 파도가 발끝을 적신다. 아네타이는 마쓰야마가 아주 낭만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마네의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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