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작
과육을 크게 베어물었다. 끈적할 정도로 단물이 흐른다. 속살이 무르게 익은 제철 복숭아... ...
달으냐?
묻는 녀석—이하 룸메이트—의 목소리엔 대꾸조차 않았다. 얄미운 새끼. 입속말을 중얼인 나는 마지막 복숭아 한 알로 손을 뻗었다. 곧내 제지당했지만. 나는 내 손목을 붙잡은 녀석에게로 시선을 굴렸다. 개털 마냥 뻗친 탈색모를 대충 올려 묶은 꼴, 사나운 인상, 꼬질한 상태 그대로 주워 입은 옷가지... ... 추레하다. 나는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하여간에 게을러선. 괜한 시비를 붙이고 싶었다.
윤다영, 세수라도 좀 하면 안 돼?
내가 쏘아붙이자 룸메이트 다영은 그제야 붙든 손을 놓았다. 네 알 바냐? 어쩌라고. 하는 듯 치켜뜬 눈을 했다. 잠시간 시선이 맞닿는다. 기싸움, 뭐 그런 거. 다영의 눈에선 아주 레이저가 나왔다. 결국 먼저 항복 선언을 한 건 내 쪽이었다. 이번 역시 그랬다. 나는 저 녀석한테 이기는 법이 없었다.
싸움의 시작은 늘 사소하다. 이를테면 오늘 아침도. 사건의 발단은 내가 휴대전화 알람을 오전 8시로 설정해 둔 것에서부터였다. 나는 원체 일찍이 일어나 버릇 하는 사람이니까. 게다가 오늘은 아침부터 마감해야 할 원고도 있었다고. 그런데 늦잠쟁이 다영에겐 이른 시각 알람 소리가 영 거슬렸나 보지. 내가 눈을 떴을 땐 오전 10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었다. 범인은 뻔하지! 휴대전화가 안 울렸을 리는 없으니, 다영이 또 알람을 꺼 버린 게 분명했다.
나는 분노했다. 속 좋게 퍼질러 자는 다영의 엉덩이를 걷어차 깨웠다. 그 다음부터의 내용도 뻔했다. 언쟁이 오갔고, 다영이 이놈의 집구석 내가 나가겠다! 고 소릴 질러댔고, 진짜로 문을 박차고 나섰고... ...
물론 다영은 한 시간도 안 되어서 복귀했다. 아주 당당하게 납셨다. 손에는 묵직한 봉다리를 들고. 잘 익은 복숭아 다섯 알이었다. 나는 익숙하게 복숭아를 꺼냈다. 뽀득뽀득 헹군 복숭아를 식탁에 내려놓고 으적으적 씹는 동안에도, 우리는 말 한 마디 주고받지 않았다. 우리의 화해 방식 비스무리한 것이었다. 화를 견디지 못 해 먼저 집 밖을 나선 사람—주로 다영이었다.—이 먹을 것 사 오기. 낯간지런 사과 없이도 함께 달달구리를 나눠 먹으면서 감정을 삭히는 일.
*
야! 너만 나가 살 줄 아냐? 나도 나가 살 거야, 두고 봐.
내가 앙칼지게 소리쳤다. 부러 목소리를 쩌렁쩌렁 높였다. 오늘 역시 다퉜다. 별것도 아니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뭣 땜에 싸웠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하지만 그날 역시 먼저 집을 나선 건 다영이었다. 제 분에 못 이겨서. 그리고, 그리고... ...
사십 분 정도 지났나?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낯선 번호였다. 대수롭잖게 받아든 전화, 수화기 너머 남자의 목소리.
여보세요? 윤다영 씨 관계자 분 되십니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
병원까지는 무슨 정신으로 갔더라. 뛰었나? 택시를 탔었나? 아무튼 정신없이 도착한 병원 응급실 대기석에서 한참이고 숨을 골랐던 기억이 난다.
교통사고랬다. 정확히는 뺑소니였다. 단전에서부터 치미는 감정들에 울음이 터져나왔다. 우리가 싸우지 않았더라면. 내가 네게 소리치지 않았더라면.
*
수술 후 의식을 되찾을 때까지 중환자실에 있는댔다, 다영이는. 크게 다쳐 의식을 회복하지 못 하는 채라고. 그러면서 얼굴 한 번 못 보게 하는 탓에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가는 길엔 복숭아를 다섯 알 봉다리에 담았다. 오도카니 식탁에 앉아 먹는 복숭아는 영 달지가 않았다. 당도 최고 복숭아라며. 순 구라네. 다영이한테도 먹여야 하는데... ... 화해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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