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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없음)

흔한 옛날이야기를 하나 하자.

어떤 풋내기 마법사들이 있었다. 마법사가 된 경위는 아무래도 좋지만, 어쨌든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곳에 마법사로서 존재했다. 우리들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생각까지는 안 했지만, 적어도 배움의 끝에 갖게 된 힘이 조금 더 스스로와, 나아가 세상을 위해 유용하리라고 생각했다.
봄 꽃처럼, 혹은 씨앗의 깍지처럼 시간이 지나면 쉬이 시들어 떨어질 풋내나는 착각이었다. 떨어진 자리가 아주 작게, 주사 흉터 자국처럼 아물고 그 뒤에 자연스레 다음 단계의 치기어린 야심이 자리할.

우리들의 낙화는 공교롭게도 꽤나 요란했다.
거대한 폭발과, 전 세계에 꽃가루처럼 뿌려지는 재액. 더이상의 유출을 막기 위해 주춧돌 아래에 갇힌 동포들. 풋내나는 착각은 자연스레 시들어, 풋내나는 시절의 일기장처럼 몰래 시간과 망각의 뒤에 버려지기 전에 터지는 바람에 커다란 흉터로 남았다. 아마 우리 외에도 깍지를 벗지 못한, 혹은 벗었을 터인 수많은 마법사들이 비슷한 상흔을 입었을 터였다.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지만.

수많은 상흔의 형태 중, 우리가 입은 것은 화상이었다.
마치 왼쪽과 오른쪽의 갈비뼈를 반 나누어 하나의 새를 가두는 새장으로 쓴 것처럼, 우리는 각각 심장에 불로 된 새를 품은 채, 같은 것을 꿈꾸었다.
마법이, 우리가 가진 힘이 결국 세계에 해밖에 되지 않는다면. 그럼에도 이 세계에는 이미 마법으로 살아있는 것이 너무도 많아 제거할 수 없다면―
어떤 if의 실험을 하자고.

신비를 농담 삼고, 박멸해야 할 미개이며 밝혀야 할 미명 삼은 된 어떤 도시는 그런 연유로 태어났다. 그것이 기어코 패배하고, 두 풋내기 마법사의 갈비뼈를 새장 삼아 살던 새가 저 하늘로 날아가기까지 지난한 여정이 있었지만, 그것을 굳이 여기에 밝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 시도는 그 이상 없을 정도로 망해버렸으니까. 덤으로, 개중 한 명은 악의 보스라면 흔히들 할 법한 멋진 자폭 시도도 실패하고 바닥에 꼴사납게 처박히고 말았다.

…그러니까 뭔가 있어보이도록 간지나게 풀어쓰긴 했지만, 요약하자면, 하려던 거 다 박살났는데도 못 죽고 지금까지도 꼴사납게 살아있다는 이야기다. 나도, 지금부터 만나고자 하는, 이 이야기를 시작한 계기 되는 내 옛 친구도.

“―설명은 여기까지입니다.”

온화한 목소리에 내 의식은 다시 현실로 부상했다. 눈앞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형상의 사이클롭스가 하나, 온화한 얼굴로 눈을 깜박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가려지지 않은 쪽의 눈을 깜박일 때마다 보이는 푸른색만이 그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미안, 안 듣고 있었어. 라고 하면 저 온화한 미소가 조금은 일그러지려나. 그런, 묘하게 비뚤어진 생각이 들어 나는 헛기침을 했다. 새하얀 엽귀는 그런 내 속 따위는 모른다는 듯 여전히 엷은 미소와 함께 나를 안내했다.

“끝까지 설명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앞을 걷는 흰 뒷모습에 대고 그리 말하자 온화한 웃음이 되돌아왔다.

“소용없는 일인데, 라고요?”

“필요 없잖아, 보안 규정 같은 거. 다른 녀석에게도 마찬가지만 지금부터 만나려는 녀석에게는 더더욱.”

달 뒷면의 호수에 만들어진 감옥은 무수한 원형으로 된 간수와 엽귀들에게 단단히 감시당하고 있어, 탈옥은 꿈도 꿀 수 없는 곳이라 했다. 하지만 만일 이곳이 감옥이 아니고, 간수 따위는 하나도 없는 평원이라 해도 그런 건 오늘 만날 이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않을 터였다.

“틀린 말은 아니군요.”

아니나다를까, 흰 엽귀는 조용히 내 말을 긍정했다. 그리 말하는 모습이 흔들림이 없어 공연히 심통이 났다. 무언가 천박한 농담으로 저 얼굴을 일그러트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한없이 그리 바라면서도, 나는 어째선지 그게 절대 이뤄지지 않을 바람임을 동시에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안전규정의 설명은 해야 하는 일이었고, 어쩐지 당신에겐 필요한 것 같았으니까요.”

“뭐, 죄수 데리고 튀면 안 된다는 규정 설명?”

“아니요, 시간이.”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나는 눈을 깜박였다.

“…시간, 나한테?”

“네, 당신에게.”

전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대는 모양이 우스웠는지, 그는 가볍게 웃음짓고는 고개를 저었다.

“단순한 오지랖입니다. 면회도 성묘도 장례도 어떤 의미에선 바깥에 살아있는 이를 위한 것일 테니까.”

“꼭 일반적인 인간의 교도소라도 찾아온 것처럼 말하는데, 간수 나리.”

“그런 걸 구하고 온 것 아닌가요? 불 꺼진 불사조의 새장 씨.”

“…….”

역시 전향한 서적경이 옛 동료를 찾는다면 정보가 미리 전해지는 게 당연하겠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런 자리에서 엽귀에게 전직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몸이 굳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제 몸의 위기를 본능적으로 느껴서인지, 아니면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을 들킨 이로서의 타당한 반응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 반응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적의는 보이지 않았다.

“너무 그렇게 죽일 듯이 노려보지 말아 주세요. 최근 들어 대법전에서 세우고 계신 공적을 인정받은 건 사실이니까. 원탁의 추천서도 받으셨고.”

거기까지 말하곤, 흰 엽귀는 입을 다물었다가 잠시 후 망설이듯 다시 입을 열었다.

“만일 이번의 ‘명상’이 효과를 본다면 그건 제게도 어느 정도…고무적인 결과일 것도 같거든요.”

“뭔데. 불사조랑 사이좋은 지인이라도 있어?”

“…그 부분은 상상에 맡길게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냐고 일소당할 줄 알았던 농담에 의외로 진지한 반응이 돌아욌다. 어째 되도 않는 면회 신청이 통과가 되더라. 나는 내심 악담을 퍼부으며 더는 돌아보지 않는 흰 엽귀를 따라 걸었다. 검고 긴 미로에서 흰 그림자는 그것만으로도 빛을 내는 듯 보여, 거기에 집중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주변의 미로도, 때때로 으스스한 소리와 함께 옆을 스쳐지나는 유령 같은 간수들의 형체도 그리 신경쓰이지 않게 되었다.

“당신 사서지?”

질문은 충동적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들어볼까요.”

어째서, 어째서냐니. 나는 거기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굳이 따지자면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서였지만 예언과는 담쌓은 전직 분서관이 그리 말해봤자 웃기는 소리밖엔 되지 않을 것이다. 머리를 한참 짜내다 엮어낸 건 마찬가지로 말도 안 되는 한마디였지만.

“…당신 따라가면 길은 잃을 것 같지 않아서?”

“~….”

그 말을 하며 어쩐지 나는 어떤 도서관을 탈출하던 때 눈앞에 나부끼던 붉은 머리카락과, 새카만 미궁 속에 들리던 주홍빛의 등불을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 그리 우스웠던지, 흰 엽귀는 잠시 실소했고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흰 불같은 그림자를 따라 걷다 보니 목적지까지는 금방이었다.

위치로 치자면 망각의 호수 가장 바닥일까. 호수라 해도 달 표면에 물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에 영영 타는 불을 가두기에는 역부족이겠지만, 도착한 방에는 이렇다 할 안전장치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천장이 뻥 뚫린 사각형의 벽만이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을 감시하듯 둘러싸고 있을 뿐이었다.

감옥이라기보다는, 아마도 전시관이다.

눈앞에 얼어있는 옛 친구는 웃지도 울지도 않은 채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는 자세 그대로 얼어 있었다. 한때는 타는 불꽃처럼 길게 나부끼던 붉은 머리가 푸르스름하고 투명한 결정 사이에 굳어버린 모습에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럼, 이야기 나누세요.”

이쪽으로 뻗은 얼음상의 손끝을 응시하며, 나는 그 말에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간절한 표정으로 그가 손을 뻗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지 않을까. 대파괴의 그 난장판에서부터, 둘이 갈라지던 그 순간에까지 그는 나를 향해 손을 뻗은 적은 없었다. 내 한 손을 잡아 끌고 가는 일은 있었어도, 그렇게 나아가는 얼굴을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는 걸 깨닫자, 어쩐지 기묘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 손끝을 만져보려다 결국 그 대신 그 앞의 바닥에 주저앉았다. 옛 친구였던 조각상의 손끝과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시선을 주려다,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오랜만이야. 그 도시가 무너지곤 처음이지?”

당연한 얘기지만 대답은 없었다. 있었다면 비상 사태다. 그 안에서만의 일이긴 하지만, 수백 년을 걸쳐 키워 온 자식 같은 이경이 무너지는 순간에 멈춰버린 분서관이 눈을 뜨다니, 무슨 일을 낼지 누가 안단 말인가. 적어도 그를 이 꼴로 만든 내 입장에서는 절대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반대 입장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같은 말은 하지 마. 시간과 자원 낭비잖아. 나도 되게 그렇게 생각하거든. 네가 살아서 여기 있고, 사고조차 하지 않고 그 시간 그대로에 묶여있는 게 나였으면 참 좋았겠다고.”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째선지 그, 혹은 그것에게 말 걸기를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이야기 나누세요, 라는 간수의 말을 충실히 이행이라도 하듯이.

“…내가 한동안 생각을 해봤는데 말야. 아무래도 우린 자식 농사를 잘못 지은 게 맞긴 한 것 같아.”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깨어있는 그의 앞에서 했다간, 마지막 몇 년동안 계속해서 그랬던 것처럼 대판 싸우고 말았을 이야기를 여상히 던지는 것이 어쩐지 퍽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의 마지막은 대부분 그런 대화로 점철되어 있었기에 그리 이상할 건 없을지도 몰랐다. 도시의 진행 방향에 대해 계속해서 논쟁하고, 대판 싸우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헤어진 뒤 사흘도 안 지나 다시,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비밀 회담을 가지곤 했다. 그, 마법도 신비도 전부 흙냄새 나는 땅 밑에 묻어버리고, 그 위에 포석을 깔아 이성과 논리와 구둣발로 밟고 다니곤 하던 도시는 그런 식으로 돌아갔다. 그게 수백 년 이어졌고, 언젠가의 ‘다시 안 볼 것처럼’이 진짜가 되었다. 그뿐이었다.

“실험은 실패했어.”

이미 예전에 난 결론을 새삼 입에 담았다. 보통은 이 말을 입에 담고 나면 눈앞의 그가 눈을 빛내며 아직 이 시도가 완벽히 실패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한 가설을 몇 개고 집어들고 토론의 난장으로 뛰어들곤 했지만, 이제는 반박도 무엇도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한참을 달린 뒤처럼 목구멍 안쪽이 뻐근했다. 마치 맞지도 않는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혹은, 마소를 호흡해야 한다는 것을 억지로 되새기는 무균실의 환자처럼.

흰 공간에 울리는 목소리가 생소했다. 이 말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너이기를 바랐다. 진심으로.

이제 너는 절대로 알 수 없겠지만.

“제549회의 실험을 통해, 완벽히 다른 환경에서의 인위적인 신비 요소 배제로는 마법의 자연발생 및 전파를 막을 수 없었음을 실험의 마지막까지 관찰하였음. 예상할 수 있는 실험 실패 요인에 대해서는…동봉한 보고서에 갈무리해두었으니, 여건이 된다면 확인하도록 해.”

나는 툭, 소책자 하나를 그의 뻗은 손 앞에 두었다. 형태를 잡아 만들어두니 생각했던 것보다 두터웠다. 원탁에도 제출하지 않은 ‘지금까지’였다. 어차피 누군가 보고 회수할 터였고, 내용은 옛 친구보다도 감시하던 간수의 손에 먼저 들어가겠으나-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걸 적는 것도, 내가 아니라 네 쪽이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기록은 기록자의 주관을 반영하는 것이라, 내가 살아남아 기록을 남긴다면 그건 필연적으로 우리가 세상에 패배했다는 소리일 테니.

“네 공동연구자이자, 그 도시의 공동대표로서. 적어도, 우리가 하던 방식으로 마법을 세상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리고 이 실험을 완전히 종료한다.”

선언을 입밖으로 내어보았자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눈앞의, 친애하던 친구가 눈을 떠 내 멱살을 잡지도 않았고, 세상이 끝나지도 않았으며 다음의 1초는 여지없이 찾아왔다. 누군가의 세계가 부서져도 놀라울 정도로, 세상은 돌아가던 대로 돌아가곤 했다. 잘 알고 있었다. 눈물로 시간을 멈추어 재앙을 유예하려 했던 이에게 어떤 재앙이 찾아왔는지도, 세상에는 어떤 재앙이 실시간으로 내리고 있는지도 싫을 정도로 확인했다.

그럼에도 굳이 이곳에 찾아와 선언한 건, 그러지 않으면 제 안에 어떤 마침표가 찍히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다음 연구 과제는 아직 못 정했어. …정확히 말하면, 뭘 연구해야 할지를 연구하는 중이랄까. 다만, 확실한 건.”

앞에 던져둔 책을 바라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아마 간수에게도 들릴 말은 여차하면 나도 이 감옥에 가둘 만큼 불온한 것이었지만, 뭐. 알 바인가.

“…마법사도 대법전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거?”

그것만은 그 도서관이 무너지던 날부터 변함없는 일념이었다. 여전히 푸른 돌처럼 식어버린 손끝을 바라보다, 나는 천천히 그 위에 손을 얹었다.
언젠가 무너지던 도서관에서 그가 내 손을 잡고 달렸듯이.

“먼저 가서 연구하고 있을게.”

언젠가는 네 속에 있는 불꽃이 자리를 잡고,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할 때까지. 아마도 아주아주 오랫동안, 먼저.

나는 차게 식은 손끝에 체온이 옮아 따스해질 때까지 한참을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

흔한 옛날 이야기를 하자.

어떤 풋내기 마법사들이 있었다. 마법사가 된 경위는 아무래도 좋지만, 어쨌든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곳에 마음이 부서진 마법사로서 존재했다.

무너진 도서관에서, 비명과 절규와 절망이 가득한 그 곳에서, 그 풋내기 마법사들은 서로의 손을 잡았고, 부서진 마음을 서로가 있다는 것으로 이었다. 누군가는 구해야 할 이가 있다는 생각에 주저앉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고 뛰어갔으며, 누군가는 앞에서 이끌어주는 이가 있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그 등을 따라갔다.

원래는 부서져야 했을 두 목숨은 그렇게 마법처럼, 가장 마법이 부정당하는 그 한가운데에서 이어졌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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