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XIV 글 : OC

기억하는 자의 이야기 Ⅰ

시스티아 Sjstia

愛狀 by 민

https://youtu.be/LlwbAtGqzmA?si=u2FEw9H32xAxXJA6


' …. '

─꿈의 이야기다.

기억하는 자의 이야기Ⅰ

하얀 저택과 검은 정원을 보았다. 잿빛의 하늘이 보인다.

잿빛 하늘 아래 흑백의 대조는 이제는 익숙했다. '변함없이' 저택 부지의 입구에서 검은 정원을 가로지르는 돌길을 따라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돌길을 걸으며 올려다 본 거대한 하얀 저택, 그것의 배경으로 보이는 잿빛의 하늘을 함께 본다. 명암의 대비와 잿빛의 경계선을 보고 있자면 등줄기부터 피어오르는 섬뜩한 감각이 있다. 그렇지만 '올 때마다' 이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저 감일 뿐이지만 이 장소는 결코 나와 별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그런 강한 확신이 있었기에.

' …여전하군. '

그리고 여전히 문은 열리지 않았다.

찬란히 빛났어야 할 것은 무광의 하얀색으로. 다채롭게 빛났어야 할 것은 무광의 검은색으로. 그 모두를 품거나 품지 못할 것은 무광의 회색으로.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아직 살아있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문 옆의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나가는 길은 알 수 없었다. 저택의 입구에서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풍경은 사라졌었다. 아득하니 검은 바닥만이 존재했었다.

…사실, 바닥이라고 단정짓지도 못했다. 그것은 질척하고도 끈덕진 배경이었다. 그렇기에 몇 번 더 가본 후, 여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자신은 '잠들기'를 기다렸을 뿐이다. 이곳을 빠져나간 방법은 약간의 기력 회복을 위해 얕게나마 잠들었던 때였으니까. 몇 번 수면을 취하고 나서는 버티는 일은 없었다. 이곳에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하나만을 바랐다.

이 섬뜩하고도 낯설지 않으며, 그리움 가득한 세상을 나갈 수만 있다면.


" …! ─라─! 세틀라스! "

낯설고도 낯익은 이름이 들려와 퍼뜩 눈을 떴다. 이상하게 뿌연 시야에 몇 번 눈을 깜박이니 앞에 있는 이의 얼굴─이…

" 다행이다… 정신 제대로 붙들고 있어, 세틀라스. 또 정신 잃으면 된통 쥐어박을 거라고! "

" 네가, 왜─ 윽…! "

이미 세상에 없어야 할 '첫 친구'를 보고 손을 뻗으려다 돌연 밀려들어 오는 고통에 고개를 숙였다. 고통으로 움직인 손이 어디로 향했는지 이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꿈은, 그러니까, 네가─

─고통이 오히려 정신을 잡고 있게 해주었지만 호흡을 고르게 하는 것은 엄연히 스스로의 몫이었다. 이를 악다물고 호흡을 고르려 겨우 숨을 뱉어냈다. 이 상처는 쉽게 낫지 않아. 환술사의 도움으로도 간신히 나았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 주변에 아직 마물들이 진을 치고 있어. "

…그래, 네가 떠나버리지.

일어서는 친구를 향해 손을 겨우 뻗어 옷자락을 붙잡았다.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을 겨우 삼켜가며 말을 뱉어냈다.

" 가, 지…마. "

" 가까이에 있는 놈들만 멀리 떨쳐내고 올 테니까 상처 지혈이나 해. …붙잡을 정도의 기력이 있는 걸 보니 조금 안심되네. "

" 가, 지, 말라고…! "

" 정신 잃지 마, 세틀라스. 아직 적진이니까. "

나더러 너를 두 번 묻으라는 거야…?

활을 고쳐 쥐고 은신처를 빠져나가는 뒷모습의 옷자락은 이미 손 안에서 빠져 나간 뒤다. 손 안에서 빠져나가는 옷자락을 더 단단히 쥐질 못했다. 더 이상 눈 앞에 투영되지 않는 마지막 뒷모습과 새로이 투영되는 피투성이의 네 모습이 있다. 이것이 반복인지 기회인지, 알 수는 없다.

네가 이토록 이르게 별바다로 돌아갈 이유는 없었어.

" 으, 아. 하윽…! "

무기에 감아둔 낡은 붕대를 풀어 상처를 압박했다. 절로 나오는 비명을 최대한 억누르며 호흡을 골랐다. 다행히 근처의 마물들에게 발각되지 않은 듯 했다. ─아니, 그럴 신경조차 없었을 것이다.

…소란스러운 소리. 사이사이 들리는 친구의 고성. 점차 멀어지는 거친 호흡소리와 마물들의 소리. 머지않아 다가온 침묵. 그제야 알았다.

이것은 기회가 아니다. 반복이다.

" 크, 윽… 후, 욱… 후윽…. "

무기를 지지대 삼아 겨우 몸을 일으켰다. 기억에 남아 있던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고통이 의식을 유지해주는 것과는 별개로 몸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아 걷기가 힘들었다.

' 거의, 다 왔어. '

겨우 도착해가는 장소. 이 숲길만 꺾으면 보일 것이다. ─보인다. 말이 나오질 않았다. 속으로는 친구의 이름을 외치는데 소리로는 뱉어지지 않았다. 그저 비틀거리는 걸음만 바삐 움직여 피투성이로 쓰러진 친구에게 향했다. 숨은 붙어있다. ─알고 있다.

이것은 기회가 아니다. 반복이다.

그것을 알고 있어도… 하지 못했던,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닌 구하려는 행동을 취했다. 피투성이의 몸을 둘러메고 한 걸음씩 발을 옮겼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숨소리가 아직은 살아있다고 연신 알렸다. 고통은 커진다. 상처는 터졌다. 마물들이 꼬이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여길 정도로 피 냄새가 짙었다. 나의 것과 네 것으로.

" …세틀라스…. "

" …. "

" 야… 부르잖, 아…. "

" 입, 다물어. "

" 하하… 내가 말하겠다는데… 네가 왜…? "

" 장, 난… 아니니까. "

" 나도 장난, 아니니까… 바보같은 비에라야…. "

걸음을 멈췄다. 등 뒤로 늘어져 있을 친구의 목소리가 거친 호흡과 섞여 조금 뒤에 들려왔다.

" …나는, 태양으로 돌아갈 시간인 것 같다. "

내가 그 말에 어떤 말을 해야 했는지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알 수 없다.

" 그러니까… 네가, 누구보다 유명한… 모험가가 되면, 책으로 나오지 않겠어…? 사람이란, 그러…니까. 영웅의 이야기가 쓰이듯… "

" …. "

" ……누군가가, 네 모험을 써, 주겠지. 네가 쓸 수도… 있을 거고… 분명히. "

" …. "

" 그 책에, 네 모험의 시작의 시기였던 때에… 내 이름이 실렸으면, 좋겠어. 위대한, 모험가의 모험에… 한, 순간이나마… 함께 한, 가장… 친했던 친구, 로. "

" ……. "

" …말, 좀 해봐…. "


과거형이 아니다. 네 이름이 담긴 말을 만들어 내 이름으로 삼았다. 너는 아직도 가장 친한 친구다. 앞으로도 분명히. 내가 별바다로 돌아갔을 때 네가 남아있을지는… 아니, 너라면 분명히 기다려줄 거라 생각하고 있다. 내가 답하지 못한 대답을 듣기 위해 너는 분명히 남아있을 거다.

─이 날의 또렷한 기억은 여기까지. 드문드문 기억나는 부분은 있었다. 숨이 멎은, 친구의 식어가는 몸을 친구의 부러진 활과 함께 어딘가에 제 손으로 묻는 장면. 비석을 제 손으로 겨우 만들어 세우던 장면. 어떻게 야영지로 돌아와 환술사에게 치료를 받던 천막의 천장. 깊은 밤, 가방을 챙기는 내 손. 마지막은 스승의 딸을 찾아내 멀리서 지켜보는 것.

꿈은 깨어나게 되어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분명히.

눈을 뜬다. 근래 들어 익숙해진 천장이다. 침대에서 내려와 커다란 창문을 열었다. 발코니에 나가 햇볕이 내리쬐는 샬레이안의 아침을 본다. 북해의 선선한 바람과 함께 맞는 따뜻한 햇볕은 꽤 좋은 조합이었다.

" 시스티아! "

아래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시선을 내렸다. 손을 흔드는 그라하와 그 곁에 서서 이쪽을 보며 가볍게 웃고 있는 에스티니앙이 있다. 살짝 손을 들어 인사하려는데 그들에게서 조금 뒤로 떨어진 곳에서 오는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산크레드와 위리앙제가 야슈톨라와 이야기를 하며 오다 내게 손을 들어보인다. 살짝 들었던 손을 조금 더 들어 가볍게 흔들었다.

" 알피노, 알리제. 어서 와. "

" 좋은 아침일세, 두 사람. "

" 좋은 아침! "

자신들의 집이 있는 방향에서 오던 알피노와 알리제가 그라하와 에스티니앙과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있던 휴게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들렸다. 누구인지 확인을 요하기도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시스티아, 일어났어? 다들 슬슬 모이는 것 같은데 의뢰의 이야기를 할까 해. 대회의실로 내려와줄래? "

" 곧 준비해서 내려갈게. "

쿠루루의 말에 대답하고 다시 밖으로, 아래로 시선을 주었다. 어느새 산크레드들도 합류해 모여있는 모두가 있었다. 이쪽을 올려다보던 알리제가 환하게 웃으며 외쳤다.

" 당신도 얼른 내려와! 지각이 될 지도 몰라! "

" 금방 갈게! "

급히 옷매무새를 정리해 활을 등에 메곤 휴게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대회의실로 가기 위해 돌아서던 와중, 시선의 가장자리에서 꿈의 장소가 어슴푸레 스쳐 지나간 것도 같았다. 그와 동시에 '가족'들의 얼굴들도. '가족'들에게 의식을 집중하니 꿈의 장소는 금방 떨쳐졌다. 잠시 멈추었던 발걸음을 재차 옮겼다.

제법 많은 횟수로 꿈의 장소를 방문했다. 그러나 '첫 친구'의 반복만큼은 처음이었다. 이것이 뭘 의미하는 것인지 '사실'을 알 수는 없었다. 다만 나는 그날을 기억하고, 그 친구를 기억했으며, 그 친구와의 약속을 여전히 지키고 있었다. 이미 지켜졌음에도 계속. 의도하지 않았어도 영웅으로, 제법 알려졌으니 태양이 되어 보고 있을 친구도 기뻐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의, 그리고 너의 이름이 에오르제아에 알려졌다. 또한 네가 걱정했을 부분이었을, 네가 아닌 다른 동료들도 생겼다. 분명히 기뻐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아.

혼자를 택했던 내게 다가와 숨어버린 감정을 되찾아준 너라면 분명히, 내 행복을 바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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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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