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는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사실 아무 생각 없을 뿐이지만

초창기 때부터, 그러니까 그녀가 이제 막 인류 최후의 마스터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을 때부터 함께 해왔던 서번트들이라면 그녀가 꽤 눈치를 본다거나, 소심하다거나 하는 성정을 먼저 이야기 하겠지만-1.5부 시점의 이들부터는 의문을 표하겠지만-오래도록 함께 해왔던 이들이나 최근에 소환된 이들이나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하나였다. 마스터의 신뢰는 도대체 왜 특정부분에서만 기능하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 정도.

"…믿기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지만."

"무거운 감정은 싫다고 했던 거랑 관련 있는 거 아냐?"

"그런 것 치곤…."

마슷따 고해합니다, 하고 보더 내 방송에서 알코올 향과 함께 떠들었던 내용을 떠올리던 이들은 그건 아닐 거라 어깨를 으쓱했다.

그랬으면 헥토르나 지크프리트부터 당장 피하고 다녔을 거다.


키요히메는 잠시 부채를 펼친 채 얼굴을 가리고 제 기억을 되짚었다. 유독 마스터는 성애적인 감정에 민감했다. 평소의 눈치없음이나 무지 혹은 무관심, 모른 척 따위는 한켠으로 밀어내버리고 똑바로 시선을 맞춰올 정도로. 그녀에게 안친을 빗대어 사랑을 속삭이면 그것은 곧잘 웃으면서 넘기는 이라, 언젠가 한 번은 직접적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 마냥 넘기지만은 않겠지, 싶어서. 웃으면서 또 안친이랑 헷갈렸구나? 하고, 그것을 흘려보내지는 않을 것 같아서.

"마스터는 조금, 결여되어있죠. 그런 부분이."

돌아왔던 반응은 어땠더라-하고 시간을 들일 것도 없이 바로 떠올리는 게 가능했다.

「그렇구나.」

함께했던 시간이나 인연 등을 전부 처음으로 되돌린 것처럼, 별다른 감정 없이 그저 그리기만 한 듯한 미소가 아직도 선명하다. 그렇구나, 로 끝나는 것이, 너는 나를 사랑하는구나-라고 단순한 감상만으로만 받아들인 이의 그 반응이. 햇살을 담지 못한 노을빛 눈동자가 눈꺼풀 안쪽으로 전부 숨겨지니 그렇게나 사람이 차가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 혹은 제가 변온동물에 가까운 것이라, 그 순간은 그녀로부터 햇빛 한자락조차 보지 못해 그리 느꼈던 것일까.

「하지만 사랑보다는 좋아가 맞는 거 아닐까.」

곧바로 표정이 되돌아오면서 그런 말을 내뱉긴 했지만, 글쎄. 아마 그 미소 쪽이 조금 더 고백에 대한 본심이 아니었을까.

부채 안쪽에서 표정을 수습한 그녀는 느리게 부채를 접으며 고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도 어찌 고백할지, 매번 고민이네요."


"마스터는 사랑같은 거 안 믿는 편이외까?"

"갑자기 뭔 주제야?"

눈 위에는 쿨팩을 얹어둔 채 늘어진 이가 입만 움직여 의문을 표했다. 옆에서 함께 원고를 검토하던 수영복 영기의 잔느 얼터 또한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으로 티치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안데르센과 셰익스피어가 반응해버린 시점에서 이미 해당 주제는 쉬이 마무리 지어질 일이 없을 것임을 그 자리의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보라, 작성하던 원고에서 떨어져나온 시선이 흥미거리를 찾아서 번쩍거리는 모습을.

"졸자 갑자기 어떤 이야기 들은 게 떠올라서 말입죠."

그제서야 눈 위에 얹어져있던 쿨팩을 들어올린 마스터가 눈만 굴려 그를 바라보았다.

"마슷따 뒷담한 건 마슷따 없는 곳에서 하는 게 매너입니다-, 마슷따 상처받아."

"마스터는 솔직히 신뢰나 호감 같은 거 곧잘 졸자들한테 주는 거 인지 하곤 있죠?"

"어어, 뭐 그런가봐."

"서번트들이 주는 신뢰도 곧잘 받고는 있고."

"어휴, 감사하게 받지 그거. 아, 참고로 티치가 줬던 비장의 사진집 올해도 잘 보관해놨어."

딱, 손가락을 튕기며 하는 말에 안데르센이 잠시 썩은 표정을 지어보였다-가도 잔느 얼터의 손이 그의 어깨에 올라감과 더불어 가로로 내젓는 고갯짓에 동화의 아버지라는 이명을 가진 서번트는 혀만 차고 말았다. 셰익스피어는 옆에서 거지같은 심정에 대한 묘사를 적어내고 있었으니, 잠시 잔느 얼터는 미간을 찌푸렸다. 마감 시즌이라 그런가, 죄다 제정신이 아닌 건 확실하다는 결론이 그녀의 속에서 내린 결론이었다.

"서번트들이 주는 호감도 잘 받고는 있는데."

"때때로 절도 하면서 받지."

"애정은 영 아니라 이거외까?"

"엥? 애정? 그것도 감사히 받고 있는데."

가늘어진 해적의 시선과 더불어 다소 미묘해진 분위기의 정적이 내려앉자 도리어 그녀가 억울한 듯 뒤로 몸을 젖히며 무언가를 말하려다가도 무게중심을 잃고 의자에서 굴러떨어져, 악 소리와 함께 요란한 소리가 그들 사이를 장식했다.

"마스터, 살아있어?"

"어억…."

"잘 살아있군요."

"아냐…… 나… 나, 어깨, 피오, 피오한테…."

"가지가지 하는 것까지 완벽하군. 이번주 마감은 글렀다, 어이! 마스터부터 의무실로 옮겨!"

허이고야. 악명을 떨쳤던 해적은 확인하던 원고를 내려두고 몸을 일으켜 마스터의 부축을 돕기로 했다. 하던 질문은 나중으로 미뤄야 할 것 같으니, 다음 번에 물어보면 될 터다. 애정을 받는 것에 대해 받고 있다고 말을 한 시점에서 본인은 딱히 껄끄러워한다거나 다른 생각은 없어 보였던 듯 하니, 그렇다면 걸리는 건 무엇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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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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