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하나 니노

해결: 파란(完)

모든 사건들은 언제나 순서를 지닌다. 중요도에 따라 결정되는 사건들. 일방향으로 흐르는 축 위에 세워진 일련의 이야기들. 사분음표의 길이가 팔분음표의 길이보다 길어질 수 없는 것처럼, 혹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않는 것처럼 이미 정해진 당연하고 분명한 명제들. 그리하여 쟈하나 마리에의 삶은 언제나 쟈하나 니노의 삶보다 앞선다. 그들의 관계가 비단 수직적으로 구성된 관계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순서는 언제나 중요도에 따라 결정되는 법인데, 쟈하나 니노에게 있어 자신의 삶이란 대개 어찌 되어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쟈하나 마리에에게 있어 삶이란 비가역적이고 추상적이고 아름다운 개념이다. 허투로 낭비할 수 없는. 그러니 언제나 쟈하나 마리에의 삶은 다른 어떤 개념보다 늘 우선한다. 해가 동에서 서로 뜨고 지는 것처럼, 바닷물이 지상에 닿을 때에 흰 포말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부서지는 것들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가 저지른 최초의 잘못은 그 파멸에서 가치를 찾으려 했다는 데에 있다. 그건 일종의 단말마 같은 것이지, 결코 영구한 개념이 되지 못한다. 그걸 알지 못했나? 그렇지는 않지만. 방법이 없었을 뿐이다. 역경과 고난이 없는 삶에서 건질 것은 오로지 그 뿐이었기 때문이다.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신파와 불행에 대해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는…….

 

 





Q1.
여전히 음악을 하고 싶은가.

A1.

질문을 들은 쟈하나는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인다. 시선이 헛돌듯 먼 곳을 향한다. 도대체 어디를 보고 있는건지. 그의 시선이란 이따금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구석이 있다. 그리고 생각이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성질이 있고. 그래서 여태 의도적으로 깊게 고민하는 일을 피해왔다. 제게 이득이 될 게 하나도 없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그 섬에 대해 떠올려야만 한다. 버리듯 도망치고 온 것들에 대해서도 함께. 여전히 자책하게 되는 이유는 그 날의 그 선택이 최선이 아님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인걸까.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 때는 너무 어렸잖아. 생각하며 다리를 꼰다. 생각을 그만하는 법에 대해 배울 때가 된 것 같은데. 그런 건 도대체 어디에서 가르쳐 주는거지. 그런 걸 배우지 못 한 사람들은 죄 이렇게 어마어마한 생각에 휩쓸리듯 살아가는건가. 그건 좀 비효율적이지 않나……. 삶이라는 게 늘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기계장치 같은 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습관이라서. 말장난 같은데, 이건. 손이 괜히 비어있는 기분이 들어 괜히 제 팔을 쓸어내렸다가, 다시 얌전히 다리에 얹어둔다. 산만하죠, 습관이라서. 죄송해요. 익숙하게 누군가에게 사과하려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가 다시 고개를 기울인다. 반대 방향으로. 살면서 단 한 번도 음악을 좋아해 본 적은 없다. 아마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아마 그건 당신이었겠지. 나는 그 때 어렸잖아요. 그러니 시야가 좁을 수 밖에 없었던 거예요. 변명같은 회한을 다시금 뇌리에 새긴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인정한다. 내 세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고. 파랑과 빨강을 오래 직면하면 눈이 시리게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기 훨씬 이전부터 나의 삶은 오로지 당신이었다고. 이미 당신은 알고 있겠지만. 당신의 손으로 만들었으니 당연히 자신의 소유물이라 생각하지 않았겠나. 그 점에 이견은 없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다면 이 모든 事故는 누구의 책임인가. 따지고 보자면 그 역시 당신에게 있을 것이다. 타인의 삶을 쥐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이 필요한데, 그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은 당신이었으므로. 그러니 언제나 음악은 제 2의 목표였다. 제 1의 목표는…….

무릎 위에 얹혀있던 손이 제 목으로 향한다. 습관처럼. 조르는 것과 쓸어내리는 것은 언제나 구분하기 힘들다. 습관처럼, 목을, 쓸어내리면서……. 습관처럼 웃는다. 익숙한 모양새로. 단언할 수 있다. 음악을 좋아한 적은 없고, 하고 싶다 생각한 적은 더더욱 없다. 나는 그저 당신이 보기에 좋은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당신이 내게 습관처럼 말했던 일을 그대로 행했을 뿐이다. 착한, 아이가, 되려고……. 

늘 그렇듯 잘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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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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