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의
내천빙_서배희, 강혜성
“배희야, 날 봐야지. 어딜 보는 거야?”
“지랄 났군.”
강혜성의 짧은 한마디였다.
강혜성은 그리웠던 친우와의 짧은 만남을 한 곳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그이가 잘 지내고 있었는지, 또 가는 길에 위험이 생기진 않을지. 얼굴을 보고 나니 그런 마음에 차마 발길을 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물러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인물이 등장했다.
그건 자신의 모습을 한 혈마신교의 교주, 부영이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으나, 때가 아니었기에 강혜성은 그저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에게 부영이 아직도 한서한과 서배희를 곁에 온전히 남겨둔 것이 의외라 느껴졌지만, 어떤 형태든 그들이 살아있음에 안도 하던 강혜성이었다.
아니, 그건 착각인가?
그런 안일한 생각은 나타난 부영이 서배희를 대하는 태도에 금방 집어넣기로 했다.
“배희야, 날 봐야지.”
강혜성은 그 목소리에 헛웃음이 나왔다.
“저 미친놈이… 지금 날 흉내 내는 거야?”
강혜성은 입을 다물고 감정을 정리하며 뒤도는 서배희의 모습을 보았다.
부영의 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능숙한 게 한두 번도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강혜성은 속이 뒤틀리는 기분을 느꼈다.
억압된 상태로 몇 번이고 저 찢어 죽일 녀석에게 농락당하고 있었을 둘을 생각하니 밀려오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부영이 계속해서 기분 나쁜 얼굴로 서배희를 불렀다.
제 얼굴과 버릇을 흉내 내는 그의 모습은 가히 모독이었다.
“응? 어딜 보는 거야.”
“지랄 났군.”
강혜성은 참다못해 화에 받친 한마디를 뱉었다.
그의 몸이 한발짝 내딛으려 할 때 다른 목소리가 그를 멈춰 세웠다.
“혜성.”
“! …아저씨…”
남연이었다.
풀 숲 사이로 조용히 나타난 그는 방금 전의 강혜성의 기색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강혜성에게 배려해 아는 체 하지 않아 주었다.
“어딜갔나 했더니 이런 곳에 있었나. 서배희를 만나는 건 다음으로 미뤄도 좋다고 했을 텐데.”
“전 괜찮아요. 꽤 움직일 만 하고.”
“아직 회복이 덜 되었다. 산적이라도 만나면 곤란하다.”
“산적 정도야 거뜬하죠.”
남연은 강혜성을 보았다.
이전과 전혀 다른 외관을 한 어딘지 모를 먼 곳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동자를 보았다. 남연은 그 시선의 끝자락에 그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인물이 있음을 짐작했다.
“이미 몸을 움직여봤군.”
“......”
강혜성은 침묵으로 답했다.
남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스스로를 잘 챙기는가 싶다가도 주변에 누군가 있다 하면 저는 뒷전인 게 항상 마음 한 쪽에 걸렸다.
그의 정의와 헌신을 나쁘다 할 자격은 그에게 없었으나, 그렇게 놔두고 지켜본 결과가 지금의 상태다.
세뇌에 당한 동료들은 그에게 칼을 겨누었고 그런 동료에게 같이 칼을 겨눌 수 없었던 강혜성은 결국 누구도 구하지 못하고 끝을 맞이했다.
기적이 닿아 숨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으나, 그마저도 적진에 있을 제 동료가 안쓰럽고 미안해 억지로 몸을 움직이던 것을 겨우 붙잡아 둔 것이 지금이었다.
저리 애써 얻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해지는 남연이었으나.
의문은 금방 집어넣었다. 저렇게 사람들을 구하는 흔히 훗날 영웅이라 불리는 자들의 행보는 이해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니라.
남연은 동료의 얼굴을 보고도 이곳에서 인내하는 지금의 상태로도 충분히 장하다는 판단을 내려주었다.
“어때. 서배희를 보니 갈피가 잡히나?”
“...네. 계획을 좀 더 과격하게 수정해야겠어요.”
들려오는 강혜성의 목소리는 제법 차갑고 딱딱했다.
“도무지 곱게 두고 싶지 않네요. 백한이를 먼저 만나죠.”
뒤돌아서 남연과 눈을 마주친 강혜성의 얼굴엔 강한 결심과 각오가 담겨있었다. 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를 존중하였다.
“연통을 넣겠다.”
“청화람을 이용해보죠.”
항상 뒤에서 지키길 고집하던 이가 앞으로 자리를 옮기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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