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내천빙_서배희, 강혜성
강혜성은 결심했었다. 절대 이들에게, 다른 이들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로.
다만 그 생각은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보라빛 머리칼의 사내와 신교도의 사이를 갈라선 강혜성이었다.
신교의 교도는 강혜성의 기세를 어림잡더니 가능성이 없다 판단하여 자리에서 물러났다.
“괜찮으십니까?”
강혜성은 등 뒤의 사내에게 물었다.
쓰고 있는 검은 멱리가 바람에 흩날린다. 얇은 삼을 사이로 얼핏 보인 그의 눈은 복잡하게 꼬인 듯 하면서도 텅 비어 보였다.
그는 강혜성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
가슴 한쪽이 아렸다.
강혜성은 또 실수를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서로를 믿고 역경을 헤쳐 나온 이들이었기에 다시금 아무것도 알리지 않고 혼자 이고 감에. 이에 소중한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이 지독한 죄책감에 빠지게 했다.
“배희야.”
강혜성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를 내었다.
“배희야, 왜 그렇게 넋을 놓고 있어.”
그 말에 서배희는 드디어 미동을 보였다.
흠칫 몸을 떤 그는 강혜성에게로 시선을 맞추었다.
강혜성은 날리는 멱리 사이로 자신의 현재 상태를 본 서배희가 어떻게 반응을 보일지 긴장했으나 특별히 돌아온 반응은 없었다.
대신.
대신에 참 서글픈 하소연이 들려왔다.
“내가… 내가 걜 떠민 거야.”
지독한 자책감에 빠진 목소리였다.
젖어가는 소리는 점점 일렁이다 물방울이 되어 떨어졌다.
“서한이 힘든 것도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강혜성 앞의 그는 떨어지는 것들과 함께 자리에 주저앉아 소리 냈다. 그 소리는 강혜성의 가슴을 날카롭게 찌르는 것만 같았다.
강혜성은 알고 있다.
자신이 숨을 놓기 전의 순간마저 그들은 저를 위하고 있었음을. 그래서 확신을 담아 답해줄 수 있었다.
“네 탓 아니야.”
“아니...”
“아니야, 배희야. 네 탓 아니야.”
강혜성은 그가 자책을 더 내뱉기 전에 다시 한번 더 확신을 담아 주었다.
이건 그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강혜성은 그렇게 생각한다.
이혼대법의 준비 과정 탓에 육신과 혼이 뒤바뀌고 생사의 문턱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을 때. 강혜성은 더 힘을 내서 그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던 것이 조금 후회 되었다.
이렇게 서로에게 괴로움만 남길 일이었다면 자신이 조금만 더 해내었으면 되었을 텐데.
하는 그런 마음이 들었다.
강혜성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와 푸념은 의미가 없었다.
“난 괜찮아.”
그 말에 서배희가 눈물을 삼키고 강혜성을 보았다.
검게 가려진 멱리에 시선이 제대로 닿았을지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둘은 잠깐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 강혜성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언제고 있었듯이.
다정한 말을 건네주었다.
“난 괜찮아. 이번에도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언제나 몇 가지씩의 비밀을 두고 있어야 이들을 지킬 수 있다는 점이 언제고 강혜성을 괴롭힌다.
그럼에도 강혜성은 웃었다.
“걱정하지 마. 약속은 절대 잊지 않아.”
강한 바람에 흩날리는 멱리 사이로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하지만 그럼에도 강인해서 언제고 돌아오는 미소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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