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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보 전진을 위한 이 보 후퇴
그럭저럭 괜찮은 결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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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일 보 전진을 위한 이 보 후퇴
삶은 어느 순간부터 과거의 무한한 답습을 통해 이어진다. 그닥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 사실이나 그 기저에는 분명 어떤 모티브가 된 것들이 존재한다. 가령 동화. 가령 로맨스 소설. 이 삭막한 도시에도 그런 것이 실재하나요? 알 게 뭐지. 제가 겪어보지 못 한 것 0.1%의 진실 담아 쓰면 그게 소설이고 전설이다. 모든 이야기는 구전되는 성질을 지닌다. 가치판단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작가의 의도 같은 건 언제나 왜곡되고 변형되어 본질따윈 읽는 이에게 절대 닿지 못한다. 그림 그리며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을텐데도 언제나 한 발 늦다. 근본적으로 느린 인간이다. 삶을 이야기로 전락시키지 않겠다 다짐하며 기꺼이 기름에 불 붙였는데, 이게 웬걸? 타고 있던 건 결국 종이 쪼가리다. 삶은 일종의 이야기다. 입에서 입으로 전달된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본질과 의도는 흐려지고 발화자의 변덕에 따라 마음껏 뒤틀릴 수 있다는 점도. 삶은 결국 이야기다. 당신과 나는 등장인물에 불과하다. 그게 우리의 한계다. 그러나 삶과 이야기의 유일한 차이점. 책은 끝나도 삶은 이어진다. 아니? 사실 그조차 오해다. 책은 덮으면 그만, 삶은 꺼버리면 그만. 같이 죽을까, 물리적으로? 진심으로 그러고 싶다. 그렇지만 이미 약속한 뒤다. 빼앗지 않겠다고. 네게 온전한 상태로 주겠다고. 제 신체의 소유권이 제 것이 아니라니. 어떤 넌센스다. 조악한 농담이다. 아니, 난 몰랐지. 생사여탈권 타인에게 쥐여준다는 게 이런 의미일 줄은. 빼앗기만 했지 빼앗기는 입장에 서 본 적 없으니 그런 간단한 것 이해하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역지사지는 고차원의 공감이다. 그런 거 할 수 있었으면 좀 더 인간답게 살았을 것이다. 그제야 깨닫는다. 후회가 막심하다. 아니, 정확히는 감당할 수 없다.
자, 다시 원점으로 회귀한다. 태초의 형태라기엔 좀 그렇고, 태초보다는 한참 이후의 시점으로. 당연한 얘기다. 인류문명의 근원은 겪어본 적 없는 기억이다. 그런데 왜 거기로 갈 수 있다고 믿었지? 아니, 말했잖아. 그건 그냥 희망사항이었다. 포장지였다는 얘기다. 입 밖으로 내며 드디어 인지했듯 그냥 죽을 생각이었다. 혼자 죽기 무서워서 집단 자살 유도했다는 얘기다. 그간의 행적 생각하면 자살보다는 타살에 근접하긴 한데, 그런 거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하고 영악한 인간은 못 된다. 가장 처음으로 돌아간다. 같이 죽어보자는 얘기는 말하는 인간 본인에게도 예외 없이 해당되는 것이다. 다시 태어난다기엔 어폐가 있다. 그렇게 무구한 인간은 되지 못한다. 삶과 사랑과 사람. 어감이 비슷한 단어 세 개가 모여도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 누구와의 연관성? 아, 그야 당연히………….
01110011 01101111 01110011
다시 진짜 제목을 붙이자면, 그래.
罷繼.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책은 덮어버리면 그만, 삶은 꺼버리면 그만.
그렇지만 '이것'의 소유자는 자신이 아니다.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아, 그래. 그럼 나도 너 같은 건 필요 없어………….
되다만 귀신 같은 거 말야………. 그럼 차라리 전부 부숴버릴까?
pw: 1999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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