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어?
디에고키아라
그러니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몇 있다. 처음 임무를 나갔던 날이나, 장례식, 그 집에서 뛰쳐나오던 날 같은 거 말이다. 정말 우습게도 그런 걸 되짚으면 키아라가 있었다.
저택을 나오는 내내 키아라는 옆에 붙어 재잘거렸다. 걔답지 않았다. 어디 가서 살 거냐고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생각보다 집값은 비싸고 거리는 살기 힘들다고 떠드는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우울에 잠겨 입을 다물던 놈은 어디 가고. 날이 서 있지도 않고, 무언가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 즐거웠을 거다. 그렇게 싫던 놈이 집을 나가니 좋았겠지. 디에고는 제멋대로 그렇게 정의했다.
“왜, 내가 나가니까 아쉬운가 봐?”
노골적으로 빈정대는 말에 키아라는 잠시 말하던 걸 멈췄다.
“…무슨 미친 소리야.”
훤히 열린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머리를 헝클었다. 색이 옅은 붉은 머리가 엉망이 되고, 그 장면마저 디에고에겐 익숙하다. 작게 찌푸린 미간마저 그때와 같다.
“나는 조의금 못 준다는 소리를 한 거야, 멍청아.”
키아라는 손에 들린 캔을 조금 세게 쥐며, 한심하다는 눈으로 디에고를 봤다.
‘재수없는 놈.’ 잠깐 떠오르려 했던 기억이 디에고 안에서 다시 지워졌다. 그래, 너는 그 저택에서 평생 살든가.
떠나는 문 앞에서 걔는 또 이탈리아어로 뭐라 중얼거린다. 언어를 하나 없앨 수 있다면, 디에고는 고민하지 않고 이탈리아어를 고를 거다. 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다시는 못 하게 말이다. 하지만 욕일게 뻔해 디에고는 중지나 올려주고 뒤도 안 돌아봤다.
“그런 말 했던 거 기억나?”
“내가 그랬어?”
“어, 그랬어.”
키아라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눈을 위로 굴렸다. 내가 그런 소리를 했다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했던 게 기억은 난다. 안 날 리가 없지. 그 저택에서 있었던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왜, 이제 와서 또 그걸로 삐졌어?”
이내 어쩌라는 듯이 다시 평소의 날 선 목소리로 돌아와 키아라가 물었다.
“아니, 그냥 넌 어지간히 내가 다치는 걸 싫어한다 싶…아악! 아프다고!”
디에고의 대답에 키아라는 디에고의 옆구리를 찔렀다. 검붉은 피멍이 자리잡은 걸 알고 한 짓이다.
아까 키아라한테서 커피 좀 타달라고 붙잡혔을 때 걸렸는데, 길 한복판에서 남의 상의를 걷는 것에 화내지도 못할 만큼 싸늘한 시선이 돌아왔었다. 그런 시선으론 그만 보면 안 돼? 디에고의 말에 키아라는 한숨을 쉬며 또다시 후배를 불러 멍연고 좀 사오라고 시켰다. 그 연고는 지금 디에고의 주머니 속에 강제로 들어갔다. 대가라기엔 뭐하지만 손을 씻고 나오면서, 경찰서에서 커피도 하나 탔고 그건 지금 키아라의 손에 들려있었다.
디에고도 키아라도 이렇게 대화할 일이 생길 거라곤 생각하지도 않았다. 저택을 나와서 절대 마주치기 싫은 상대로 꼽았던 사람 둘이서 이러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서에 온갖 친구가 다 있는 자경단과 경찰서 앞에서 대기하는 게 일상인 기자니까, 어찌보면 마주치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키아라가 알게 되면 분명 비웃겠지만, 디에고는 지금 이런 관계가 싫지는 않았다.
“내가 다칠 때마다 울어놓고.”
“네가 다칠 때마다 옆에 있던 나도 다쳤던 건 기억 안 나지?”
흉터 보여줘? 당장이라도 옷을 벗을 기세에 디에고는 한번을 쉽게 안넘어간다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걷어 올린 소매 틈으로 문신이 있는 자리에 붙여놓은 반창고가 보였다.
열다섯 즈음, 사건이 하나 있었다. 파이브가 사라진 후고, 벤이 죽기 전에. 그렇게 큰 사건은 아니었으나, 키아라 하그리브스가 형제들에게 입을 다물어버리기엔 충분한 사건. 디에고는 키아라가 갑자기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걔는 처음부터 이 곳에 있던 게 아니니까, 이 저택을 나가도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디에고는 걔가 왜 엄브렐러 아카데미에 왔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고, 버티는 이유는 더더욱 알 수 없었으며, 입을 다문 후에도 자신에겐 평범하게 말을 거는 이유도 몰랐다. 그랬던 키아라가 지금은 자신이 엄브렐러 아카데미에 있었다는 흔적을 감추려 한다. 그 능력까지도 전부.
“넌 이상한 거에만 눈치가 빨라.”
키아라는 안쓰럽다는 듯 작게 소리 내 웃었다.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는다. 바뀔 감정도 없다. 키아라를 다시 만났을 때 제일 놀란 게 있다면, 정말 이상할 정도로 수수한 차림이었다. 장식이라곤 하나도 붙어있지 않은 옷. 저택에 있을 당시엔 항상 온갖 반짝거리는 장신구 사이에 있던 애라서, 취향이 바뀌었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키아라 하그리브스의 능력은 반복되는 것에서 나온다. 적어도 자신의 의지로는 흔들리는 것을 만들고 싶지 않은 거였다. 반복되는 것은 감정을 불러온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나갔지만, 디에고는 잠깐 다시 저택 근처를 어슬렁거린 적이 있다. 그냥 잠깐 어릴 때의 꿈이 다시 찾아와서, 계속 머릿속을 헤집는 바람에. 그 손을 잡고 도망치는 꿈을 꾼 적이 있다고 하면 키아라는 아마 안 믿을 거다. 자신이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키아라도 저택을 나갔다는 말을 전해 들을 때의 기분이 아쉬움이었는지 안도감이었는지 모른다.
디에고는 저택에서 자신이 괜히 키아라에게 신경이 쓰였던 게, 키아라의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하지만, 그러면 뭐였지 그건. 자신만 따르는 개를 챙기는 것과 같은 감정은 결코 아니다. 디에고는 괜히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이대로 잊어버리는 게 좋은 생각이다.
소문을 전해 들었을 때, 디에고는 절로 찡그렸다. 안 찡그릴 이유가 없었다. 경찰과 기자는 친한 관계가 많다. 떠들기 좋아하는 기자들 사이에서 작게 얘기가 나왔다길래, 진짜인 줄 알았다고 한다. 어떤 미친 놈이 형제랑 사귀냐. 물론 그 형제들 중 그런 사이가 아예 없었다고는 말 못하지만, 어쨌든 디에고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소문 들었어?”
“너랑 내가 사귄다는 거?”
예상외로 그걸 먼저 꺼낸 건 키아라였다. 성가신 시선들이 콕콕 박히고 있다. 키아라가 태우는 담배냄새도 만만찮게 마음에 안 들었다. 한동안 끊는가 싶더니 역시 안 되겠다며 다시 피우기 시작했고, 이전보다 훨씬 독했다.
“이유가 뭔지도 알아?”
키아라가 디에고의 귀 가까이에 대고 키득거리며 속삭였다. 너랑 나랑 너무 가까워서 그렇게 생각했다더라, 디디에. 웃기지 않아? 디에고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고작 그런 이유로? 그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우리가 그렇게 친해 보였나?
“어떻게 나랑 널 엮을 생각을 하지?”
“내가 너무 완벽하니까.”
“이번 주에 병원 안 갔지?”
“갔다 왔거든.”
신경질을 내는가 싶더니 키아라는 다시 조용해졌다. 담장에 기대 담배만 계속 빨았다.
“그 소문 시작이 누구인지 알려줄까?”
담배를 끝까지 다 태우고 키아라가 말했다. 디에고가 말해보란 듯 고개를 까딱하자, 키아라는 디에고가 오자마자 자리를 피했던 갈색머리 남자를 가리켰다. 디에고도 기억하는 얼굴이다. 디에고가 다친 걸 알아챌 때마다 키아라가 약국 좀 다녀오라고 시키던 그 후배다. 키아라 앞에서 말을 더듬는 모습에 키아라가 괴롭히는 건가 생각까지 했던 남자. 생긴 건 순박하게 생겼는데, 사람은 역시 겉모습이 다가 아니다.
“쟤가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엄청난 팬이야.”
“어?”
뒤이은 말은 예상과 조금 달랐다. 디에고는 저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냈다.
“내가 라인이라곤 하나도 못 탄 거 뻔히 알면서도 내 밑에서 저러는 게 고작 그런 이유 때문이라니까? 쟤네 집에 우리 관련된 물건으로만 채워진 방도 있어.”
기분이 이상했다. 맛없는 무언가를 억지로 삼킨 것 같다. 분명 좋아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디에고가 저런 반응을 보이니 키아라까지 덩달아 가라앉았다. 바닥으로 시선을 떨어트린 디에고가 가만히 칼을 만지작거리는 게 뭔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이제 내가 결혼하는 것도 알게 되어서, 더는 그런 말 없을 거야.”
“그래…잠깐, 뭐라고?”
건성으로 대답하던 디에고가 키아라를 쳐다보며 물었다. 갈색 눈이 당황으로 가득 찼다.
“그럴 일 없을 거라고.”
“그거 말고.”
“결혼한다고.”
키아라는 태연했다. 이렇게 툭 던지듯 할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놀랄 말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디에고도 갑자기 들어서 놀랐던 건지, 이내 다시 평소처럼 물었다.
“어떤 미친 놈이 너랑 결혼해?”
이 자식이 진짜. 키아라가 걷어차려는 걸 디에고는 가볍게 피하며 물러섰다. 뭘 그렇게 흥분하냐는 듯 디에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랫입술을 꽉 깨무는 키아라의 모습이 낯익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헤집는데 바람까지 분다. 낯익은 장면이다. 처음도 끝도 이렇다. 대충 넘겼던 생각이 갑자기 다시 떠오른다. 그게 키아라의 능력으로 따라온 동정심도, 잘 따르는 개에 대한 애정도 아니면…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디에고는 다시 생각을 그만두고, 슬쩍 웃으며 키아라 가까이 붙었다. 그래서 누군데, 사진은 있어? 키아라가 코트 주머니 속을 뒤적이며 지갑을 꺼내드는 걸 디에고는 가만히 기다렸다.
- 카테고리
- #기타
해당 포스트는 댓글이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