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디에고키아라
“야, 너는…”
어김없이 경찰서에서 나오던 디에고를 붙잡는 목소리가 있었다. 집을 나온 후에는 들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제일 자주 듣는 목소리였다. 빠르게 달려오더니 한심하다는 눈으로 보던 키아라가 주머니 속에서 연고에 면봉, 반창고까지 자연스레 꺼내 들었다. 디에고도 이젠 익숙해져 자연스럽게 상처가 난 곳을 내밀었다. 그냥 익숙했다.
키아라가 경찰서 앞에서 밤새 대기하는 일은 생각보다 흔했다. 선배들한테 제대로 찍힌 덕분에 경찰서 주변을 맴돌며 밤을 새우는 일은 정기자 타이틀을 달고도 계속 이어졌다. 그냥 한 번 굽히면 되는데 그걸 못 굽혀서, '안 잘린 게 다행이지' 같은 소리나 하고 있다. 안 잘리면 뭐해, 오래 버티질 못할 텐데.
하여간 키아라는 경찰서라면 진저리가 날 정도로 오가고, 그건 디에고라고 다를 게 없었다. 자경단 일을 하다 경찰서에 오는 게 하루이틀이 아니다. 사귀는 연인도 경찰이고, 친구도 경찰이고… 그러다 디에고 하그리브스가 발견했던 거다. 물론 추운 날에 개고생하고 있는 형제에게 해줄 거라곤 없고, 무시하는 대신에 비웃고 갔다. '내가 씨발 저새끼 언젠가 꼭 기사 내서 인생 망친다.' 다태운 담배 끝을 디에고 얼굴이라 생각하고 한참을 짓밟았다.
그래서 처음 디에고가 커피를 내밀 때, 키아라는 진지하게 이 형제가 미쳤나 생각했다. 생각만 하지 않고 말로도 했다.
“드디어 미쳤네.”
그 말에 디에고는 팍 얼굴을 찌푸렸으나 이내 ‘니가 뭐 그렇지’ 같은 태도로 키아라의 옆에 기대섰다. 날이 추우니 커피는 받아서, 씹어 넘겼다. 뭔 커피를 그렇게 마시냐고 할 수도 있지만 자주 본 모습이다. 같이 살 때도, 그러니까 독립하기 전에도, 쟤는 뭐든 꼭 씹어삼켰다.
“그래서 왜, 뭐 때문인데.”
같이 대기하던 후배를 다른 데 가 있으라 하고, 키아라가 무심히 물었다. 갈색 눈이 뭔 생각인지 빙빙 돌리지 말고 제대로 말하라는 듯 디에고를 노려봤다. 아니지, 노려본 건 아니다. 그 눈은 항상 그랬으니까 평소와 똑같지만 조금 더 매섭게 봤을 뿐이다. 괜히 후배들이 깨지기 싫은 선배 1위로 부장도 아닌 키아라를 고르는 게 아니다. 디에고는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오히려 디에고는 키아라가 저렇게 쳐다볼 때마다 더 속을 뒤집곤 했다.
“믿을만한 기자 한 놈만 소개해줘.”
“경찰서를 그렇게 들락날락하면서, 아는 기자 하나 없어?”
“하나같이 겁쟁이야. 그딴 정신으로 무슨 기자를 한다고.”
‘백수인 놈이 할 소린 아닌데.’ 으르렁거리는 디에고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번엔 말하지 않고 참았다. 겁먹고 돌아갈 만한 게 뭘까. 흥미가 동할 수 밖에 없다. 디에고가 커피라도 주면서 비위를 맞추려 한 것처럼, 키아라도 말을 아꼈다. 남은 커피를 전부 비운 후 키아라는 디에고에게 조금 더 가까이 붙었다.
“뭔 일인지 먼저 말해봐.”
들을 사람은 없지만, 키아라는 목소리를 낮췄다.
“너한테?”
“그럼 여기 달리 있어?”
“내가 뭘 믿고.”
“너희한테 칠 년을 무시당하고, 상사가 삼 년째 갈구지만 아직 배신 안 한 걸로 충분하지.”
노골적으로 바냐를 겨냥해 빈정거리는 말이었다. 디에고도 그 정도는 알아챌 수 있었다. 키아라와 눈을 마주하고 있는가 싶더니, 이내 목소리를 낮추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꽤 괜찮은 정보였다. 언젠가 저자식 인생을 망칠 거라고 결심했던 일을 키아라가 잠시 보류하기로 결심할 만큼. 그래, 그냥 괜찮은 게 아니라 정말로 대체 자경단 활동을 어떻게 하길래 그런 걸 주워온 건지 의심해봐야 할 정도였다. 운이 좋으면 승진까지도 생각할 수 있었지만… 빌어먹을 놈들. 너무 위험한 선까지 가는 일은 또 아닌데 자기가 견제하던 놈을 쫓아낼 수는 있을 정도라서… 뺏겼다. 첫 보도는 내가 했는데. 개자식들. 뺏었으면 좆같이 구는 거라도 그만두든가.
“담배도 적당히 해라.”
그걸 물어왔던 디에고는 결과에 만족스러웠는지, 또 커피를 사 왔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웃고 있는 게 은근히 거슬렸다. 키아라의 발밑에 쌓인 꽁초들을 보고 한 소리 하는 거에, 키아라는 너나 잘하라고 받아치며 커피를 받았다. 담배에 커피에 회식과 밤샘으로 가득 찬 하루다. 갑자기 죽어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아카데미 시절보다 힘든가 생각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일단 총알에 맞을 일은 없으니까.
“오늘은 뭐때문에 잡혔어?”
“잡힌 게 아니라…”
“어, 그래. 유치장까지 간 걸 또 유도라가 봐줬겠지.”
들고 있던 담배를 디에고 입에 물리고 키아라는 커피 뚜껑을 열어서 빨대 없이 삼켰다.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던 디에고는 저도 모르게 빨았다가 곧장 캑캑거리며 담배를 바닥에 떨궜고, 아직 길쭉한데 저렇게 버려지는 게 아까워 키아라의 시선이 자꾸만 그곳으로 향했다. 그거 하나 제대로 못 물고 있냐고 핀잔하고 싶지만, 근처에 아는 기자들도 있는데 싸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키아라는 다른 질문이나 던졌다.
“근데 이건 어디서 샀어?”
컵을 빙글빙글 돌려보지만 딱히 상표가 안 보인다. 저번에도 생각했지만, 입에 달짝지근한 맛이 남는 게 좋다. 심지어 저번보다 더 맛있어진 것 같다.
“경찰서에 있는 커피 타온 건데.”
“그 봉지커피?”
“왜, 이상해?”
화내려던 건 잊었는지, 디에고는 키아라가 들고 있는 커피를 한 모금 넘겨봤다. 괜찮은데? 이상한 걸 모르겠단 듯 디에고가 중얼거렸다.
“너도 재주가 하나 있긴 하구나…”
사격선수를 하지 않는 이상 저러다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취소다. 대체 경찰서를 얼마나 왔다갔다 했길래 이렇게 잘 타는 거지. 유도라가 이런 놈이랑 사귀었던 이유에 이것도 포함되는 게 아닐까. 충분히 가능성 있다.
디에고가 다시 커피 뚜껑을 덮자, 키아라는 낚아채듯 다시 가져갔다. 그리고 그 순간 디에고가 움찔거린 걸 놓치지 않았다. 아직 그 정도로 둔해지진 않았다.
“뭐야, 어디 다쳤어?”
“내가 다치는 거 봤어?”
“멍청아, 너 거짓말 더럽게 못해.”
디에고의 손목을 잡아채서 소매를 걷으니 곧장 상처가 드러난다. 칼로 가볍게 베인 정도긴 한데, 꽤 길게 베여서 키아라가 절로 미간을 좁혔다. 다행인지 아닌지 피는 더 안 나는데 이걸 이따위로 방치한다고?
“넌 감염으로 안 뒤진 게 기적이다.”
“이런 작은 상처까지 언제 다… 아악!”
“작은 상처에 엄살은.”
팔을 꽉 잡자마자 소리 지르는 모습에 키아라가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다. 멍청한 놈.
“이런 흉터를 하나 더 만들고 싶지?“
디에고의 오른쪽 귀 위로 길게 난 흉터를 키아라의 손가락이 눌렀다.
“케일럽!”
키아라의 부름에 멀리 떨어져 있던 갈색머리 남자가 급히 달려왔다.
“서, 선배, 왜…”
“저번에 준 카드 있지?”
“네, 네, 아직 있죠.”
“물이랑 연고, 반창고 좀 사와.”
주머니 속을 뒤적이며 녹색 카드를 찾아 꺼낸 케일럽이 어디 다쳤나 급히 고개를 들었다가, 키아라 옆에 서 있는 디에고를 보고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디에고의 손목에 그려진 문신을 보고 한번 눈을 굴렸지만 입으로 꺼내진 않고 재빨리 사라졌다.
“야.”
“왜.”
“너… 후배 괴롭히냐.”
이해할 수 없는 질문에 고개를 돌려 디에고를 봤는데 아무리 봐도 진심인 눈치에 키아라는 할 말을 잃었다. 멍청한 새끼. 다시 한번 상처를 꽉 눌러서, 디에고 입에서 다시 신음이 나왔다.
그게 몇 번을 더 이어졌다. 봉지커피를 가지고 몇 번을 시도해봤지만 그 맛이 나지 않아서, 키아라는 다음번 디에고를 마주쳤을 때 그를 붙잡았다. 야, 커피 좀 타줘. 그 말에 웃던 디에고가 정말 재수 없긴 했으나, 맛있는 커피를 위해 그 정도는 참아야 했다. 그리고 그 날도 디에고는 옷에 감춰져 있었을 뿐, 다친 곳이 있었고 어김없이 말하지 않았다가 걸렸다. 옆구리 쪽에 든 멍을 보고 차갑게 식은 키아라의 시선은 디에고 안의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것 순위 상위권에 들었다.
그러니 엄브렐러 아카데미 얘기가 다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바냐 하그리브스의 자서전으로 잠시 시끄러웠던 걸 생각하면서 괴상한 소문도 하나 같이 퍼졌다. 엄브렐러 아카데미에서 사귀냐는 얘기가 꾸준히 나왔던 건 넘버 원과 쓰리인데, 어쩌면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진짜는 그 둘이 아니라…
“너도 머리 다쳤지?”
디에고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그 시선은 지금 케일럽에게 닿았다.
“아, 아니, 선배, 그게…”
“그래, 뭐, 말해줬으니 고맙다.”
어디서 찌라시를 내기 전에 알아챈 게 어디냐. 다 망한 히어로들이 뭘 하고 사는지 알고 싶어 하는 놈이 몇이나 되냐 싶지만, 앨리슨이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보니 생각보다 자주 있었다. 같은 세대인 놈들은 그냥 궁금해 했고. 당장 눈앞의 케일럽이 그 대표적인 같은 세대였다. 처음 만났을 때 흥분해서 자기가 팬이었다고 하는 꼴에 견디지 못해 기어이 들고 있던 책을 던지고 자리를 피했었는데. 이 빌어먹을 문신을 지우고 성도 하루빨리 갈아엎고 싶다는 충동이 다시 들었다.
“더 할 말 있어?”
말을 건네고도 케일럽은 사라지지 않고 우물쭈물하는가 싶더니 물었다.
“…정말 사귀는 사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이 물었다면 좋아하는 상대에게 연인이 있는 거 같아 묻는 대사였을지 모르지만, 케일럽의 집에서 그 미친 수집품을 본 키아라는 뭔 의미인지 알았다. 근처 모두가 키아라의 성질을 알아서 안 묻던 걸 케일럽이 물었다. 티 내지 않으려 하지만, 시선이 박히고 있다.
“왜 그딴 생각을 했는데?”
“그게… 보통은 동생과 그정도로 가깝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전… 두 분이 아카데미에 있으실 때도……… 갈수록 목소리가 작게 줄어들었다. 정말로 그런 소문이 퍼졌던 이유라곤 별거 아닌 추측 뿐이라서. 케일럽도 빈약하단 걸 알고 있다. 키아라의 입에서 욕이 나와도 조용히 들어야만 했다. 평소 반박했냐 하면 그건 또 아니고.
그런데 케일럽과 근처의 예상과 다르게 키아라는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가방 속을 뒤적였다. 아, 뭐로 때리려는 건가. 단 한 번도 후배를 때린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케일럽은 그런 생각을 했다. 키아라가 알았다면 뒤집혔을 일이지만, 뒤에서조차 선배의 욕을 못하는 이 심약한 후배는 저런 질문은 안 한다.
“나랑 디에고가 왜 그렇게 보였는지는 알겠는데, 완전히 틀렸어.”
왜 그렇게 보였긴. 연인은 아니어도 짝사랑은 맞으니 그렇게 보였겠지. 고작 하루이틀이 아니라 십 년은 넘게 묵은 짝사랑. 말해봤자 좋은 대답이 올 리 없는 걸 첫만남부터 알아챈 쓸모라고는 없는 짝사랑. 거기에 증오가 쌓였고. 이딴 감정이 뭐라고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지. 다시 만난 탓에 불이 지펴져 티났던 모양이다. 끊으려고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는 담배가 다시 당겼다.
키아라는 가방 속에서 꺼낸 하얀 종이를 케일럽에게 건넸다.
“아직 초안이지만, 청첩장.”
그게 디에고 하그리브스와 사귀냐는 얘기에 대한 긍정인 줄 알고 케일럽은 놀란 눈으로 얇은 종이를 넘겼다. 그러나 적혀있는 건 그 이름이 아니었다. 숨기는 걸 못하는 후배가 노골적으로 실망감을 드러냈다. 평소라면 감추려는 노력이라도 할 텐데. 어쩐지 어느 날부턴 말 안해도 자리를 피해 주더니, 이유가 이런 거였다니.
“어떤 미친 놈이 형제랑 결혼하냐.”
그러니까. 어떤 미친 놈이 형제랑 결혼하는 그딴 생각을 했는지 몰라. 정말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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