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스 현환물 3
새로이 간 학교는 마치 상자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리에스가 고급 세단에서 내리자 시선이 집중되었다. 일부러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내렸으나 학생들의 시선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리에스는 이제 공식적으로 위탁가정에서 지내는 고아이지만 그 가정이 성이며 그의 공식적인 후견인이 황제라는 것에 있어서 오는 괴리감이 있었다. 그는 등굣길을 차분한 걸음으로 걸았다. 다리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이 좋았다. 바람이 불 때에 그의 얇고 가는 백발도 바람에 휘날려 헝클어졌다. 손으로 대충 정리 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야 나았다.
“쟤가 걔야, 태상황….”
“그냥 쪼끄만 애 같은데, 귀엽다.”
—같이 예상을 했던 말이나 평균보다 작은 키를 갖고 있는 자로서 전생부터 익숙이었던 귀엽다거나 하는 딱히 와닿지도 않는 외모칭찬을 들으며 입학식장으로 향하였다. 입학식장에는 부모와 함꼐 온 아이들이 초등학교때 처럼 많을 것이라 예상이었으나 명문학교라서인지 다들 부모님이 바빠서인가 부모들의 부재가 눈에 띄었다. 여기서는 고아인- 황제 대리인만을 입학식장에 대리고 온 자신이 오히려 눈에 띄는 꼴이 된 것 같았다.
저번에 미리 이야기를 들었던- 1학년 1반 줄에 리에스는 먼저 서있었다.
“안녕, 너 진짜 예쁘다.”
“안녕, 넌 …멋지네.”
키가 크고 깡마른 체형의 더티블론드를 가진 학생이 말을 걸었다. 어딜 보아도 시골 촌놈같은 인상이라 할 수 있었다. 그 탓인지 어릴적에 가끔 엄마몰래 나가서 가끔 동년배의 아이들이 놀던 것을 구경하곤 했던 것이 생각이 나서 친근감이 들어 말이 편하게 나왔다.
“치마 입었네, 벌써 정한거야? 아니면 치마가 편한가?”
“이미 정한거야. 나는 여자 되려고.”
치마의 끝을 만지작거리었다. 14살 정도가 되면 성을 일찍이 정하는 것이 이상한 것도 아닌데 어째선지 쑥스럽다는 기분이었다. 학생의 명찰에 시선이 바로 닿았다.
“메이유….”
“응, 메이유. 멋지지 내 이름.”
그 애는 우쭐대듯이 말했다. 시력이 안 좋은지 눈을 약간 찌푸리며 리에스의 가슴께— 달려있는 명찰을 보았다.
“네 이름도 예뻐, 살랑살랑해.”
“살랑살랑…?”
“응, 살랑살랑.”
리에스, 리에스 이름을 반복해서 말하는 그의 속내를 몰랐다. 앞으로도 알려하지 않을 것이다. 리에스의 학대로 인한 후유증— 정서 불안의 특징 중 하나가 사람을 흑과 백으로만 나눈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모든 사람을, 자신을 포함하야 단순한 이유로 흑에 두었는데 메이유에 경우에는 잠시 백에 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집안끼리의 싸움이 어쩌고 저쩌고 해도 어차피 중학생들 아니야. 하는 생각으로.
입학식 내내 시선이 느껴질거라는 시종의 말의 다르게 의외로 다들 제 입학식에 집중이었다. 막 배운 교가를 뜨문뜨문 따라부르고 긴장감으로 인한 추위에 몸을 움찔거리는 것이 영락 없는 중학생이었다. 정작 리에스를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은 리에스 본인이라는 생각이었다.
입학식을 마치고는 교실로 이동을 했다. 1학년 1반— 잘 지내봅시다. 하는 형식적인 말을 하는 안경이 잘 어울리는 중년기에 접어들고있는 여성교사는 리에스와 눈이 마주치고는 학교에서는 부모님이나 권력, 신분 같은 것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신분제가 사실상 폐지되고 작위가 형식적으로 남아있는 나라에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그가 태상황 신분인 리에스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 티가 보통 나는 것이 아니었다. 메이유도 누가 귀족 신분을 가진 애라도 있나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자리배치는 우선 대충 학생들을 일렬로 세워둔 후 대강 키를 재어본 후에 키 순서대로 칠판에 가깝게 배치를 하고 눈이 나쁘다거나 하는 학생을 조절하는 등의 방식이었다. 리에스는 불만이었다.
보육원에서 나오고, 약으로 안정이 되면서 부작용의 일종인 것인지 그동안의 수면부족이 이제서 조금씩 나타나는 것인지 그는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잠에 써야했다. 주말에 교양을 배워야 하는 시간에 강도가 강한 특훈을 하면 했지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첫 날— 입학식을 한 날 부터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영 좋지는 않겠으나 수업시간에 졸지 못한다는 것에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게다가 시력도 좋은 편이 아니라서 교탁 앞 바로 앞자리, 교사를 올라다보며 방긋 웃었다. 그는 교사를 흑색 지대에 바로 두었다. 겨우 자신을 교탁 바로 앞 자리에 두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바로 옆자리 앉은 아이가 “안녕—.” 하며 해사하게 웃었다. 강아지 같이 생긴 악성곱슬 당근색 머리에 주근깨. 그 애도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도 왠지 마음에 안들었다. 그냥 싫었다. 그리고 3시간 후에 그 기분은 그저 배가 고파서였음을 알게되었다.
그는 입학식 후 근 며칠간 리에스에게 게속 다가왔다. 마음을 풀어놓으려 작정이었다. 듣기로는 그 아이의 집안도 꽤 이름이 있는 한 때에 왕배를 만든 적도 있던 가문이라고 하였다. 생긴것과 다르게 계획적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부분은 마음에 들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하고 명찰을 빤히 보면—
“또 잊은거야? 구키라니깐!” 하며 성을 내는 듯한 투로 말하였다.
“미안해, 이름을 잘 못외워서.”
“정말, 전생에 황제였다며. 진짜인 거 맞아? 그 많은 신하들 어떻게 외웠는데? 옛날에는 맨날 옷도 갈아입고 명찰도 없었다며.”
리에스는 급식에 나온 음료수를 한 입 마셨다. 정말 맞다니깐— 이야기를 하며 등을 한 대 치러가는 그 모습이 자신이 생각을해도 영락없는 평범한 14살 아이같았다.전생에 동경했던 삶, 노인의 정신으로 이러는 것은 조금 따끔거림이 느껴지기는 하였으나 몸이 어려졌기에 마음도 어려진건지 그렇게까지 아플 것이라고는 없었다.
“이놈, 황실모욕죄로 체포해주마!”
리에스는 구키와 메이유 이 둘과 주로 다녔다. 세명의 웃음소리가 복도에 퍼지었다. 도서관 앞을 토도도 달려나갔다. 꺄꺄— 하는 소리도 내었던 것 같다. 복도에선 달리면 안된다고 써붙여진 교칙은 지키는 이가 없었다. 14살이라는 것이 여간 얌전하고 친구도 없는 것이 아니면 걸음이 늘 빨라지는 것이 어릴 때이고 아무리 예의범절을 배우더라도 동년배 아이들과 같이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풀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조용히 좀 하지.”
도서실 문이 열렸다. 뚱뚱하고 키가 메이유보다도 큰— 거구의 남학생이 문을 열었다. 명찰색을 보니 한 학년 위의 성별을 정한 선배였다. 그는 남성을 택하였는지 낮은 목소리가 울리었다. 리에스의 심장이 쾅쾅 뛰었다. 외로울 때, 고적할 때 이따금씩이 아닌 거의 매일 밤 생각을 했던 그이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안경을 고쳐썼다. 그랬지, 전생에서도 그랬다. 리에스가 보는 앞에서도 하인이 독서를 방해하면 이따금씩 저리 싫은 티를 숨기지 못하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처음 본 그 순간 같이 기적같았다. 정략결혼을 하려던 그 때의 그 순간 꿈을 꾸는 듯한 그 두 눈동자를— 미화 된 기억이나 그때 처럼 통한 것일는지 모른다.
그를 사로잡았던 그의 생각, 그의 사랑, 그의 의지… 얼굴이 같았다. ‘린드안’ 이름이 같았다. 본가명과 부가명도 같을까.
“아, 죄… 죄송… 죄송미안이에요, 선배….”
얼굴이 붉어진다. 세삼스레 말이 헛돈다. 너의 말들로 그 때에 자신이 버티었다고 말을 하고 싶었다. 그게 누구라도 너의 자리를 대신할 수가 없었다고. 그는 객관적으로 주관적으로 보든 추남이었다. 그럼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웠다.
“야, 너 왜 그래…?”
“뭔데, 뭐야?”
넋을 놓고있는 리에스를 얼굴을 보고 둘이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둘의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여전히 몽롱하였다. 또 한번 다시 사랑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아, 어떡하지. 나 너무 솔직하다.
그 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채 전생의 남편의 얼굴을 그렸다. 전생과 이름도 성도 외모도 같았다. 어째서 잘 안 알려지긴 했지만 역사의 기록된 자의 배우자의 이름을 딴 이름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이 이번 생에서 리에스와 비슷한 영 좋지 못한 부모를 만난 것으로 생각을 하면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면 전생에 날서있던 자신을 그가 감싸주었던 것처럼 그가 이번에 그를 사랑으로 감싸주면 될 것이다. 오랜만에 망상에 빠져 하루를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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