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4박 5일 후쿠오카/유후인 여행기(1)

제가 딱히 4박이라는 숫자에 뭐 집착이 있는 건 아니고 아무튼 아니고

하루에 다 쓸 수 있을 것 같진 않으니 침착하게 숫자를 붙이고 시작합시다.

여기 올리는 포스팅만 보는 사람들 눈에는 오지게 해외여행 많이 다니고 일 년에도 몇 번씩 물 건너가는 사람으로 보일 테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어쩌다 보니 타이밍이 그렇게… 그랬을 뿐… 코로나 여파도 있겠지만 나도 작년까지 마지막 해외여행은 평범하게 2019년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그랬을 뿐…

어쨌든 시작은 평범하게 작년 11월의 일이었다. 한참 다른 이야기를 하던 중 C양(크루즈 여행 당시 이름 다 닳음)에게 이런 제안이 왔다.

C양 : 엔화 싼데 일본 가실 생각 없으신가요

나 : 좀 혹하긴 하는군요 언제쯤을 생각하시는 거죠

C양은 2월 말을 불렀고, 오사카/교토든 큐슈든 안 가 본 곳을 가자고 했다. 그러나 내가 안 가 본 곳을 가려면 홋카이도(사실 오키나와도 있겠으나 이때는 생각을 못 했다)였기 때문에(…) 2월 말에는 눈 때문에 고립될까 봐 패스. 나는 쇼핑이 좋으면 오사카고 쉬고 싶으면 큐슈라고 다시 물었고, 한참 갈팡질팡하던 우리는 가이세키 요리를 먹기 위해 큐슈로 가기로 했다. 마침 나는 2019년에 갔던 료칸에 다시 가고 싶었기 때문에 얼렁뚱땅 숙소도 확정되었다. 그런데 막상 날짜를 확정하려고 보니 이삿날이 걸리는 것이 아닌가…(당시 2월 이사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 그래서 4월로 날짜도 이동했다. 어쩐지 일본에 간다는 것 빼고는 모든 것이 바뀐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

료칸은 당일에 바로 예약을 질렀다. 나흘 후 C양은 비행기표를 잡아왔다. 음? 나는 원래 료칸 가는 2박 3일 여행을 생각했는데 어쩐지 앞에 2박이 더 붙었다. 가는 김에 후쿠오카 구경도 좀 하게 1~2박 정도 더 하자는 얘기는 그 사이 있었는데 그게 2박으로 확정된 모양이었다. 다시 일주일 후 C양은 후쿠오카에서 묵을 호텔도 잡아왔다. 음, 이제 유후인(료칸이 거기 있다) 가는 기차표만 잡으면 여행 계획은 끝나는군. 나는 기차표를 잡으려고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한 달 전에 오라는 메시지만 받고 쫓겨났다. 한 달 전이 되기까지는 아직도 4개월 가까운 시간이 남아 있었다. 실로 아득히 먼… 훗날이었다…

문제의 기차표를 잡으려다 벌어진 일은…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더불어 내가 많은 오해와 뻘짓을 한 탓에 전혀 명당을 잡아오지 못 했던 것도… 나중에 다시 적을 예정… 다른 분들은 이럴 거면 그냥 사전예약으로 자리를 확보합시다… 어쨌든 이것도 나중에 다음 기회에 다시 더 적어보기로.

어쨌든 3월 중에 기차표 예약도 끝났다. 그러나 이걸로 계획도 다 끝났다… 라고 생각한 것은 나뿐이었다. C양은 계획을 차근차근 세우고 있었고… 내 주위에서도 이런 종류의 질문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가면 어디 가실 거예요?”

“뭐 드실 예정이세요?”

“쇼핑은 어떤 거 사실 건가요?”

음… 보통은 이런 걸 다 생각하고 가는 건가?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말 나온 김에 추천을 좀 받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추천받은 고깃집은 예약이 개빡센 데다가 - 비공개 인스타에 팔로 신청을 한 후에 수락을 받은 후 특정 일자를 불러서 예약을 해야 한다고 - 나는 인스타를 안 했고, C양도 안 했고, 다른 사람이 대신 걸어 준 인스타 팔로 신청은 여행 이미 끝난 이 시점까지도 수락이 안 됐다. 그러고 나니 뭐가 없어졌다. 음, 간 김에 초밥이나 모츠나베 정도나 좀 먹어보지 뭐. 음식은 그 정도로 머릿속에서 정리를 했다. 그리고 간 김에 뭐 사 올 것이… 주위 사람들에게 수소문을 했다. 혹시 면세 필요하신 분 계십니까? 뭐 사다 드릴 것이 있나요? 공교롭게도 이 즈음해서 해외로 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면세품을 부탁하는 사람조차 없었다(나는 아싸다). 결과적으로 정리한 사 와야 할 물건은 다음과 같았다.

- WPC의 초경량 양산(기왕 사는 김에 언니 거 하나 J양 거 하나)

- 오페라글라스(쉽게 말해 망원경인데 출발 시점까지 모델이 확정되지 않았다)

- 주방용 가위

- 주방용 필러(그 감자껍질 같은 거 벗길 때 쓰는 그거)

- 뭐 좀 눈에 드는 거 있으면 신발이나 좀 사 볼까

음, 뭐 이 정도면 되겠지.

C양은 뭔가 좀 더 화려한… 계획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공유받은 일정표 길이가 어마무시한 데다 지도에 찍힌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음… 나는 그럼 여길 다 따라다닐 튼튼한 두 발과 체력을 준비하면 되는 거겠지…

출발 당일 우리는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난번 크루즈 갔을 때 잘 썼던 준비물 리스트를 이용해서 짐을 착착 꾸렸다. 아무래도 텀블러는 필요 없겠지… 계절을 고려하면 샌들도 필요 없겠고… 뭐, 거기까지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돼지코를 챙기지 않았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는. 어, 2만짜리 보조 배터리를 준비했으니까 일단은 괜찮으려나…? 혹시 모르니까 어딘가에서 돼지코를 사 보려고 시도했다. 공항 편의점에 그 비슷한 변압기 등등을 팔기는 한다. 이런 미친, 이걸 (최소) 8천원에 판다고? 더 싸게 파는 어딘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결국 구매를 포기했다. 결과적으로는 사지 못 했다. 무슨 통신사 어디서 빌려준다고는 하던데 그것도 못 찾았다. 어쨌든 어떻게든 괜찮긴 했다… 물론 나의 준비성이나 보조 배터리의 성능과는 썩 관계 없는 이유로…

이윽고 C양이 나타났다. 26인치(추정) 캐리어와 함께.

나 : ……? 고작 4박 5일인데 뭘 그렇게 많이 가져온 거야?

C양 : ???? 캐리어가 왜 그렇게 작아?

C양의 그 큼직한 캐리어는 가진 것을 나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질 것을 나르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약간 더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는 밥을 먼저 먹으려다 면세품을 찾으러 갔다. 무슨 말인가 하겠지만 식당 가는 길에 면세품 찾는 곳이 있었다. 이쯤 해서는 한국 어디에나 있는 듯한 거대한 키오스크가 있고, 거기다 뭘 입력하고 번호표를 받은 후에 자기 차례가 되면 면세품을 찾아오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산 것이 없었기 때문에 C양이 물건 찾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면세품 찾는 곳이 여러 군데 있는지 우리가 간 곳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음, 그런데도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드디어 C양 차례가 되었다. 그리고 창구로 갔는데…

나 : …면세품 3봉지요?

C양 : 좋은 쇼핑이었어

나 : 제 면세한도도 좀 드렸어야 했나요

C양 : 아냐 부피가 커서 그렇지 별로 비싸진 않았어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동안 C양은 솜씨 좋게 짐을 꾸려서 그것들을 두 봉지로 줄인 후 캐리어와 백팩에 나누어 담았다. 물론 26인치(추정) 캐리어는 기내에 따라갈 수 없으므로 그대로 수하물이 되었다. 우리는 면세점 구경을 드문드문 하면서 공항을 돌아다니다 카운터 앞에 가서 앉았다. C양이 물을 사 왔다. 100ml 넘는 액체는 기내에 못 갖고 들어간다 하면서 카운터 너머에서 300ml 물 같은 걸 파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공항에 올 때마다 의문이 들지만 아마 풀릴 일은 없지 않을까…

(크기를 줄인 건데도 사진이 엄청나게 크다…)

그러다 비행기를 탈 때가 되었다. 큰 비행기라 그런지 사람이 엄청 많았는데도 수속이 꽤 빨랐다. 우리도 금방 안으로 들어갔다. 전자기기 충전이 가능한 콘센트가 있어서 C양은 핸드폰을 잠시 충전했다. 더불어 썩 기대하지 않았는데 기내식이 나왔다. 밥때가 한참 지난 시간이라 정식 식사는 아니고 간식 같은 느낌이었다. 맛있는 만두와… 파인애플… 음료를 고르라고 해서 나는 오렌지 주스를 고르고 C양은 맥주를 골랐다.

(참고로 이 여행기의 모든 사진은 C양의 협찬입니다)

뭐 좀 먹고 났더니 비행이 끝났다. 후쿠오카까지는 1시간~1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아서 아주 빠른 느낌이다. 요즘은 무슨 입국신고서를 QR로도 작성을 한다는데 안 해 봐서 알 수가 없다. 우리는 펜을 빌려서 종이로 작성했다. 그 와중에 체류기간 적은 것 보고 뻘하게 터졌다…

나 : 5日

C양 : 5days

역시 영어 잘하시는 분은 다르시다… 나라면 영어로 적었어도 ‘5day’ 적고 끝이었을 것인데.

여담이지만 여행 전 C양은 나의 일본어 실력을 물었고, 나는 여행할 정도는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나만 믿고 가겠다고 했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으나(나는 누군가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을 만큼의 실력이 못 된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굳이 내가 없어도 될 만큼 C양은 일본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다행이지만, 좋은 일이지만… 미묘하게 사기당한 기분이야…

어쨌든 수속도 무사히 끝나고 우리는 공항 한복판에 던져졌다. 원래 C양은 우버 앱도 깔아 왔으나, 어쩐지 뭔가가 작동이 안 됐다. 그냥 택시 타자… 일본 택시가 비싸긴 하지만 그만큼 서비스도 좋은 편이라 딱히 나쁜 기억은 없었다. 더구나 여기는 공항. 나가면 택시가 줄지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즉시 한 기사가 우리를 맞았다. 나와서 짐도 대신 실어 주셨다. 호텔 주소를 전달하는 데 약간의 혼란이 있었으나(새로 생긴 호텔이라 이름만 듣고는 잘 모르시는 눈치였다) 그것도 어떻게든 되었다. 한참 차를 타고 가는데 C양이 창밖을 가리키며 물었다.

C양 : 저건 뭐야? 야요이…켄?

나 : 아 저거…

기사 : (영어로)레스토랑입니다.

C양 : (영어로)아 그래요? 맛있어요?

기사 : (침묵)

나 : 저거 아마 좀… 싼 델 걸…

기사 : (영어로)…지역 주민들이 가는 곳입니다.

요시노야 같은 곳이라고 설명하고 싶었는데 요시노야 말고 또 다른 체인 이름이 뭐였더라… 정작 요시노야는 안 가봤고 거긴 가봤는데 아직도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야요이켄은 정말 컸는데… 실제로 가 보진 않았다. 그렇게 택시는 달리고 달려서 우리를 호텔까지 데려다 주었다. 텐진 근처 골목이었는데, 첫인상은 꽤 구석으로 들어온다 싶었다. 얼마나 맛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에 초밥집, 모츠나베, 야키니쿠, 라멘이며 교자 등등 온갖 음식점들도 가득했다. 체크인은 키오스크 같은 걸로 하는 방식이었는데, 어쩐지 직원이 나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해 줬다… 아니 그럴 거면 키오스크 안 하고 그냥 하는 게 낫지 않나…

호텔방에 올라가 보니 예상치 못 한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일단은 침대. 트윈 룸이었는데 침대를 서로 바싹 붙여 놓았다. 사이에 끼인 이불을 빼기 어려울 만큼… 아니 왜 이렇게까지 붙여 두는 거지… 신혼부부만 묵는 것도 아닐 텐데… 그리고 두 번째는 콘센트. 외국인도 많이 올 거라고 생각해서였는지 국제 규격의 다양한 플러그를 사용 가능한 콘센트가 있었다. 돼지코 안 갖고 왔는데 살았다!

시간은 이미 네 시를 넘겼고, C양에게는 많은 계획이 있었으므로 우리는 짐만 두고 바로 나가기로 했다.

(호텔 근처 골목의 풍경)

좀 걷다 보니 일본술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그런데 창가에 좀 눈에 띄는 것이 전시되어 있었다.

어? 정대만 술?

C양은 큰 흥미를 보였으나… 우리는 갈 길이 멀었고(심지어 이때 길 잘못 들었다) 술병을 들고 어딜 돌아다니기엔 무거울 게 분명했기에 가게 내부를 둘러보는 것은 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아니 정대만이 후쿠오카 출신도 아닐 텐데… 오자마자 정대만 술이라니… 거 참 신기하네… 하고 가게를 힐끗거리며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그날 저녁부터의 일은… 쓰다가 제 기력이 떨어져서 이 다음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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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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