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4박 5일 후쿠오카/유후인 여행기(2)

낡고 지친 직장인의 여행기는 주말연재인 것이에요

나는 계획이 별로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준비를 안 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은 나보다는 준비가 좀 더 필요하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계획을 다 세워 온 사람 앞에서 아무것도 준비 안 한 자의 할 일이란 무엇인가? 답은 정해져 있었고 나는 그게 뭔지 잘 알았다. 조용히 가자는 대로 따라가기.

C양은 저녁을 일찍 먹고 쇼핑을 하러 가자고 했다. 나는 그냥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배가 엄청 고팠던 건 아니지만 그냥 C양이 그러자고 했으니까 그게 맞다. 그래서 우리는 PARCO로 갔다. 그게 뭐하는 덴진 묻지 말아 주시라. 내 기준에 거긴 뭐랄까 좀… 엄청 큰 쇼핑몰 같았고 우리의 목적지는 거기 지하였다. 뭐 정확히는 거기 가서야 그런 모든 걸 알게 됐고 당시에는 그냥 가자는 데로 따라 걸었다. C양은 지도를 열심히 바라보았고, 나는 왔던 길을 기억해 두려고 주위를 열심히 두리번거렸다.

근사한 다리를 건넜다. 나는 간만에 본 일본어와 한자의 향연에 약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는데, 끊임없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天神을 바라보며 - 다리 이름, 건물 이름, 길 이름 등등 온갖 곳에 다 써 있었다 - 아마 이 근처 동네 지명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와중에 텐진이 생각이 안 나서 텐가미… 인가…? 같은 생각을 했다. 텐가미바시… 어째 입에 착착 붙지 않는걸… 한참 가다 보니 커다란 도로 표지판에 일본어와 영어가 병기되어 있었다. 텐진… 그래 텐진… 텐가미를 입 밖에 안 내서 다행이란 생각이 아주 절실했다. 지금 여기다 쓰고 있긴 하지만.

그 외에도 택시 타고 오다 보았던 우와사 빌딩(소문빌딩이란 뜻 아니었나? 내 기억이 맞으면 그것도 약간 그 뜬소문 이런 느낌 아닌가? 일본에선 저런 말 어감을 괜찮게 보나? 저런 걸 굳이 건물 이름에다… 붙이나…?)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PARCO에 도착했다. 음 정말 쇼핑몰 같다… 와 저런 곳에 가방이… 아니 이런 곳에 스카프가… 헉 강아지 인형이다… 하는 동안 우리는 이리저리 돌아서 지하로 내려갔다. 어째 좀… 내려가자마자 줄을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줄 끝이 우리 목적지란다. 이 시간에 와서 사람이 적은 거라고 했다. 아무튼 C양 말이 다 맞을 것이다. 나로서는 이 푸드코트 같은 곳에 사람이 이렇게 줄을 선다는 게 좀체 믿어지지 않지만, 나 말고 다른 관광객들이나 현지 사람들은 맛집을 좀 더 열심히 찾아다니는 거겠지. 아이 뭐 앞에 사람 고작 4~5명 있는 것 같은데 뭐! 가게 주인분이 메뉴판을 주시며 메뉴를 골라 두라고 하셨다. 음? 왜 모퉁이 너머에서 나타나시는 것 같지? 다시 보니까 가게가 이 앞이 아니다. 다시 말해 줄이 ㄱ자로 꺾어져 서 있었다. 그래… 4~5명일 리가 없지…

(남들은 근사하게 스티커도 붙이고 그러던데 흠… 나한테 그런 거 기대하는 사람 없을 테니 넘어가자…)

사람 얼굴이 너무 많이 보여서 사진을 좀 잘랐는데 그래도 많이 보인다. 어쨌든 우리의 목적지는 저 키와미야였다. 무려 한글이다. 후쿠오카 함바그! 배가 별로 안 고파서 작은 사이즈를 시켰다. 그 와중에 와규 어쩌고 스테이크 저쩌고가 궁금해서 맛보기 몇 점 들어 있는 세트를 골랐다. 결코 내가 적게 먹은 것이 아니다. 소스를 7가지인가 17가지인가 중에 고르라길래 한참 고민하다 달걀 반숙 부어주는 소스를 골랐다. 그러고 나니까 하루 몇 명 한정으로만 판매한다는 무슨 최고 인기 세트가 되었다. 그렇다… 나는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하는 사람… 아무려면 어떠하리.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바로 옆집은 무슨 츠케멘을 파는 곳이었다. 상온 보관 가능한 츠케멘을 한국에도 선물로 가져가세요… 한글로 뭐 그런 식으로 적힌 광고문을 기다리는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데 가만 보니 츠케멘은 두 종류 있는 게 전부 품절이란다. 다시 자세히 보니까 그 옆에 무슨 다른 메뉴는 두 종류 있는 게 또 전부 리뉴얼 중이란다. 그리고 메뉴판에 걸린 메뉴라곤 그 네 가지뿐이다. 뭐임? 그럼 님들은 지금 도대체 뭘 파는 거임? 손님이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진심으로 궁금해서 머리를 내밀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설명해 줘도 못 알아들을 것 같고 줄이 조금씩 앞으로 가는 중이라 그냥 포기했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 알 일은 없을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이 여행기의 모든 사진은 C양 협찬이기에… 이 사진엔 달걀물이 없다…)

그리고 마침내 들어간 가게 안은… 도떼기시장 같았다. 내 엉덩이를 다 올릴 수 있나 약간 의심이 되는 작고 좁은 등받이 없는 의자가 빼곡히 놓여 있었고, 반찬과 물수건을 여유 있게 배치하려다 보면 앞사람의 그릇을 밀게 되며, 그 와중에도 열심히 고기를 굽다 보면 내 머리 위로 직원이 든 돌판이 지나간다. 엉덩이를 균형 맞춰 의자 위에 올린 후에 최대한 좁은 공간에 몸을 수납한 후, 돌판에 고기를 굽는 건지 나를 훈연하는 건지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그 와중에 다른 사람 메뉴랑 내 메뉴가 섞였다… 지연되는 사이 내 달걀 반숙은 돌판 열기에 다 타버렸다… 그게 아니라도 여기 특유의 달달한 소스가 내 입에 썩 안 맞는다. 다음에 갈 일이 있다면 소금이나 시킬 것 같다.

어쨌든 고기 질은 좋았다. 함바그도 스테이크도 입에서 살살 녹았다. 그런데 돌판 열기도 살살 녹았다. 거의 생고기로 나온 고기를 미처 다 굽지도 못 했는데 돌이 다 식어서 익을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다. 결국 육회를 먹는 기분으로 반쯤 익다 만 녀석을 우적우적 씹었다. 나오면서 보니까 자기네 고기는 신선하지만 생으로 먹는 거 아니란다. 아니 그럼… 돌판 좀 더 큰 거 주든가… 나중에 알고 보니 돌판은 원하면 갈아준다고 했다. 근데 이 도떼기시장에서 그런 서비스… 되겠냐고요… 옆사람 머리 위로 달군 돌이나 안 떨어지면 다행이겠다… 우리는 후식으로 준다는 아이스크림도 못 먹고 후닥닥 튀어나왔다. 이쯤 해서는 우리가 후쿠오카 함바그가 되어 있었다. 마치… 고기향 페브리즈 뿌린 사람처럼…

물론 우리가 사람이건 걸어다니는 고기건 간에 여행은 계속된다. C양은 문 닫기 전에 N모 브랜드의 신발을 사러 가야 한다고 했다. 음, 마침 저도 신발이 좀 사고 싶었어요. 왜냐면 제 동료가 일본 가면 신발 사라 그랬거든요. 나는 자아가 없는 사람답게 또 뒤를 따라 걸었다. 여기서 돌아서 길을 건너서 골목을 따라 올라가서… 저녁시간대가 되어서 그런지 나조차도 이름만 보면 알 법한 유명한 브랜드 가게들이 즐비한 골목치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C양의 목적지는 골목 끄트머리쯤에 있었다. 한국에서도 C양이 나한테 기회 되면 있는지 봐달라고 했던 그 990인가 뭔가를 마침내 볼 일이 있으려나 -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있었다. 밝은 회색에 남색에 검은색까지 세 켤레가 아주 나란히 있었다. 남색 위에는 ‘이건 인당 1켤레만 살 수 있다 알겠느냐 고객님아’ 같은 주의 문구까지 붙어 있었다. 우리는 한껏 고무되어 직원에게 그 신발 사이즈를 부르며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직원은 남색을 찾으러 사라졌고, 나는 가격표와 눈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앞자리가 3인데, 자릿수가 총 5자리고… 여기 일본이니까… 그럼 30만원이란 뜻인가?

이거 한 켤레에 36만원(정확하겐 기억이 안 나지만)이라고?

음, 아뇨, 그, 저는 안 되겠어요. 내가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데 직원이 나오더니 250이 없다고 했다. 255는요? 그것도 없다고 했다. 다른 색깔은요? C양이 검은색 255를 불렀다. 나는 적극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음, 이건 남색 250이 없기 때문이다. 결코 내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다행히 검은색 255는 있었고 C양은 꿈에 그리던 시착을 했다. 그리고 질렀다. 나는 그 신발을 조금 노려보다 그만두었다. 그래도 36만은 아니다. 시원한 신발 없냐고나 물어보자.

나 : (일본어로)저기… 여름을 맞아… 좀… 차가운 느낌이 드는 신발은 없습니까?

직원 : ? 차가운… 차가운… 시원한 느낌이요?

나 : 네 네네네네 그거요

어찌됐건 제도권 교육 받고 제2외국어 배우고 대학 가서도 일본어 강좌를 1년간 듣고 성적도 내내 좋은 편이었고 일본 관련 장르 덕질도 하고 일본 여행도 하고 하면서 그래도 손에서 많이 안 놓고 살았는데… すずしい가 왜 생각이 안 나냐고… 미치신… 도르신… 내가 속으로 무슨 욕을 주워섬기건 직원은 잠깐 고민을 하더니 하얀 신발을 하나 보여주었다. 요게 이 매장에서 제일 시원하단다. 색깔은 흰 거 검은 거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C양이 다른 모델을 궁금해 해서 직원은 그걸 찾으러 사라졌고, 나는 240이라 적힌 신발과 또 눈싸움을 했다. 표기 사이즈는 240이라는데… 이 크기가 참 눈에 익다. 마치… 밀어 넣으면 발이 들어갈 것처럼.

…이게 들어가네. 심지어 여유 있게. 거기다 시원하네? 사야겠다.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났다. 최근에 발 시원한 신발을 찾겠다고 운동화 매장을 돌았는데 결국 마음에 쏙 드는 걸 못 찾았더랬다. 하나 사가야지. 내가 250인데 240 신었으니까 어머니는 240 신으시니 230 사야 하는 건가? 직원한테 이걸로 230 240 하나씩 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보니 이것도 인당 하나밖에 못 사는 모델이다. 어… 그럼 어떡하죠? 저 못 사는 거 아닌가요? 간절한 얼굴로 직원을 바라보자 그는 슬쩍 웃으면서 나와 C양을 가리켜 보였다. 둘이니까 괜찮아요! 지금 생각하면 C양이 이거 나도 산다고 안 해서 가능한 구매였다. 다시 한 번 C양 계신 남쪽으로 절합시다. C멘.

나가려다 다시 불안해서 한 번만 더 신어본다고 했다. 검은색 운동화(나는 밝은 색깔 관리 잘 못 해서 짙은 색깔을 주로 산다)를 상자에서 꺼내서 발을 들이밀었다. 다시 봐도 들어간다. 아니 그러니까 240인데 왜 들어가냐고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지만 들어가서 여유가 있는 걸 부정할 수가 없으니 그냥 또 그런가보다 했다. 밝은 색 좋아하는 어머니께는 하얀 거 사다드릴 걸 하는 후회는 한국 와서 하게 되지만… 아이고 모르겠다. 생각해서 사다 드리는 거니까 그냥 드리는 대로 신으세요!(불속성 효녀)

3켤레 사면 할인해 준대서 한 번에 계산하기로 했다. 내가 현금이 좀 많아서 현금으로 값을 치렀다. 정산은 나중에 C양이 한국 돈으로 해 주기로 했다. 뭐… 나는 살 게 그리 많지도 않고, 적어 온 다섯 가지 목록 중에 제일 비싼 게 신발인데 이거 처리했으니 이제 뭐 돈 쓸 일이 있겠어?^0^

설마는 언제나 당신의 뒤통수를 노리기 마련이다… 나도 그걸 좀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C양의 다음 목적지는 U 브랜드 매장이었다. 거기 4층에는 커다란 로프트가 있다고 했다. 아, 그 양산 사는 데. 내 감상은 대충 그랬다. C양이 1층에서 U 브랜드를 터는 동안 나는 4층 가서 양산을 털기로 했다. 이 뒤에 텐진 지하상가도 가야 하고, 양쪽 다 닫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시간 절약을 위한 선택이었다. 신발 상자를 어깨에 걸머지고 U 브랜드와 로프트가 있는 건물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이따 1층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C양을 남긴 채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음, 어, 어라.

로프트는… 뭐, 다들 알겠지만… 내 기준에선 거대한… 다X소와 모XXX스를 합쳐놓은 것 같은 매장이었다. 정말 없는 게 없이 다 있었는데… 심지어 건물 한 층을 다 쓰는 여기는 무슨 백화점처럼 넓었다. 도대체 양산이 어디 붙어 있담? 양산 찾는 동안 C양이 쇼핑을 다 끝낼 것만 같았다. 그런데 누구한테 물어보려 해도 직원이 보이지 않았고, 직원이 있다 한들 뭐라고 물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왜냐면 나는 양산을 일본어로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히(태양)와 카사(우산)만 고장난 녹음기처럼 반복해야 하나? 그냥 히카사라고 말하면 의외로 정답이 되나? 지금 찾아보니 히가사가 정답이긴 한데, 음. 그땐 몰랐거니와 다시 말하지만 직원이 없었기에 알아서 해결할 생각으로 일단 성큼성큼 매장을 가로질렀다.

중간에 인형 코너가 있었다. 그 앞을 지나치던 도중 저 곰과 눈이 마주쳤다. 너무 귀엽다… 잠시 걸음을 늦추고 곰돌이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저렇게 혼자만 색깔도 다르고. 이게 바로 군계일학인가? 아니, 다 곰이니까 군웅일웅… 뭔 소리여. 너무 귀엽다. 너무 귀엽지만… 나는 양산을 사러 온 사람이지 곰돌이를 찾으러 온 사람이 아니다. 애초에 쟬 내가 데려가서 뭘 어쩐단 말인가. 가방에 들어갈 곳도 없고. 있다 해도 쟬 구겨 박으면 쟤가 또 어떻게 되겠냐고요. 가자 가.

양산은 세상에서 가장 먼 곳에 있었다.(매장 반대편 끝이었다는 뜻이다) 일단 손으로 하나씩 들어 가며 가장 가벼운 양산을 물색한 후, 그 중에서도 가장 가벼운 걸 찾고 보니 검은색이 없었다. 무난한 까만색으로 사오라는 미션을 받았는데? 방법이 없어서 문자를 보냈다. 60센티가 좋니 50센티가 좋니. 그게 뭐냐는 답이 돌아왔다. 실로 당연한 반문이긴 한데 1층에서 기다릴 C양을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져서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양산 길이. 50센티가 가볍지만 검정이 없다고 덧붙이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고, 다른 색깔도 찍어서 보내고, 옆에 60센티짜리를 비교샷으로 올려서 또 찍어서 보내고. 그냥 봐서는 감이 안 온다길래 내 손으로 뼘은 사진을 또 찍어서 보낸다. 여기까지 도합 4분 걸렸는데 한 40분은 걸린 느낌이다. 언니는 민트를 골랐다. 민트 하나와 연회색 하나를 들고 돌아서는데 문자가 또 온다. 둘 다 사줘. 계산대 앞까지 갔다가 다시 양산 코너로 돌아가서 60센티 하나를 추가로 집어 들었다.

그러고 났더니… 택스 리펀 카운터에 줄이 기다랗다. 거의 아무리 기다려도 줄어들지 않을 것처럼. 그러다 결국 내 차례가 왔는데, 저쪽 가서 기다리면 리펀된 현금과 물건을 준다고 했는데 무슨 래핑을 어떻게 하는 건지 여기도 아무리 기다려도 물건을 주지 않는다. 그 사이 C양에게서 아직도 로프트에 있냐고 연락이 왔다. 그럴 만도 하다… 나는 로프트에서 무슨 30분쯤을 보냈다… 고작 양산 세 개 고르는 데… 다행히도 그 연락 받은 직후에 양산이 나와서(래핑은 하나도 안 했다) 덜렁 들고 튀었다. 내려갈 때는 에스컬레이터로 우다다 내려갔다. 4층까지 연결 안 된 건 줄 알았는데 안 되는 게 어딨냐 다 되지.

그리고 우리는 텐진 지하상가(텐치카)에 입성했다.

그리고 여기서 뭘 했냐 하면… 그것은 또 다음 이 시간에(…) 과연 여름이 오기 전에 이 여행기를 끝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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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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