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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체스터 씨와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 앞에 서서 한 바퀴 빙글 돌아 골라낸 방은 과연 아침 햇살이 잘 드는 곳이었다. 잠에서 깨어났음에도 아직 감고 있는 눈꺼풀 너머의 세상이 얼마나 평소와 다를지는 진작부터 느껴지고 있었다. 제이는 계속해서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으며 팔이 늘어나도록 기지개를 켰다. 이제야 겨우 눈을 뜨고선 침대 맡에 올려둔 머리끈을 집어들고 창가로 향했다. 창문을 여니 고여있던 방 안의 공기가 순환되며 여름 목장의 아침 냄새를 몰고 왔다. 클라우디아가 노크하지 않았으니, 아마도 평화로웠던 지난 밤의 모습과도 어울리는 녹빛 풍경이었다. 제이는 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침 준비는 보육원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게 있다면 그건 준비 내내 옆에서 함께 수다를 떨어주던 룸메이트의 부재가 아닐까. 제이는 대신 콧노래를 불렀다. 성당에서 들어본 찬송가와 어릴 적 들어본 것도 같은 자장가 따위가 섞여있는 콧노래는 그 정확한 뿌리가 무엇인지 제이조차 알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부르고 있는 이의 들뜬 마음만큼은 제대로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목장에서의 봉사 활동이 결정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제이는 온갖 상상을 했었다. 플뢰레트와 마찬가지로 제이는 목장에서의 근무가 처음이었으니 오직 상상만으로 그곳에서 하는 일을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할 일의 목록을 살펴보던 제이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상상 속에선 큰 자리를 차지 하지 않았지만 안네트가 말했던 대로 ‘우유 짜기’가 한 자리 차지 하고 있는 걸 발견한 순간이었다.
뭘 하면 좋을까? 달걀 줍기는 분명 이른 아침에 잘 일어나는 아이들이 벌써 다녀왔을 거 같고, 나 같은 아이보단 얌전한 아이들이 가주는 게 닭들이 놀라지 않고 도움될 거 같아. 우유 짜기도 하고 싶다던 아이들이 많았으니까….
할 일이 깔끔하게 적혀있는 표지판 앞에서 제이는 고민했다. 제이 역시 우유 짜기에 흥미가 반짝였지만, 체험 학습이 아니라 봉사 활동으로 온 것인만큼 일손이 부족한 곳에 가야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그 흥미를 그림자지게 만들었다.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고민하던 제이는 겨우 걸음을 옮겼다. 고민은 시간만 늦출 뿐이고, 여름의 태양은 작은 인간을 배려해주지 않으니 해가 잠에서 깨어나 제대로 활동하기 전에 빨리 움직이는 것만이 살 길이었다. 목장에서의 첫 번째 할 일은 잡초 뽑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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