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제목 없음)

1 by 사막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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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타브는 전 속력으로 숲을 향해 달렸다. 

7년만에 맡은 외부의 냄새, 향긋한 숲 내음이 코를끝을 간지럽혔지만 그런 감상에 빠져있을 정신은 없었다.

7년, 아스타리온의 감금과 세뇌는 그녀를 지독하게 망가트렸고, 몸도 마음도 어느 하나 정상적인 곳이 없었다.

"헉허억..흐....흑흑..."

눈물과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타브의 얼굴에 푸석한 적갈색 머리카락이 자꾸만 들러붙어 시야를 가린다.

몸은 빛을 향해 달리는데 마음은 아직도 미련하게 어두운 자르성의 방 한 구석을 떠올린다. 그의 손에 죽을지라도 결코 그를 혼자두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쁜 숨이 턱 끝에 차오르자 온 몸에 빼곡히 세겨진 상처 때문인지 아니면 여전히 그를 염려하는 나약한 마음 때문인지 눈물이 자꾸만 앞을 흐린다.

"아스타리온..흑흐..."

그곳에 혼자 남은 남자는 내가 사라진 것을 알면 얼마나 분노할까. 

...그리고

얼마나 외로울까.

그 여파가 두려우면서도 발을 멈출수는 없었다. 타브는 마침내 울창한 숲 안에 숨겨진 거대한 돌문 앞에 멈췄다.

"하아 하아 드디어..."

타브는 과거 컴패니언들과 헤어질때 할신이 알려준 구호를 떠올렸다.

[ALKJDOJD]

구호를 대자 큰 문이 스르르 열리며 거대한 인영이 달려나오는 것이 보였다.

돌문 안에서 부터 그는 타브의 기척을 느낀것인지 서둘러 뛰쳐나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눈에도 당황한 그가 타브의 이름을 부르며 가까이 다가와 멈췄다.

“타브!”

“할신...”

타브는 그의 얼굴을 보자 안도감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버렸다.

흙바닥에 고꾸라지는 타브를 할신이 서둘러 부축했다.

애초에 이런 몸으로 스크롤을 스스로 만들어 타고 에메랄드 숲 부근으로 올수 있었던 것도 기적이었다.

"할신, 미안.. 정말 미안해. 여기 말고는 ..갈곳이 없었어."

타브는 아스타리온이 자신을 추격할 것을 알면서도 어쩔수 없이 여기로 왔다는 죄책감 깊은 고백을 내뱉고서야 할신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할신은 마치 유령이라도 본 듯한 얼굴로 타브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가쁜 숨과 땀, 눈물로 얼룩진 타브의 모습을 본 그는 할말을 잃고 천천히 허리를 숙여 타브를 부축하려 했다.

그의 손이 닿자 마치 중심을 잃은 헝겁인형처럼 고꾸라져 그의 품으로 쓰러졌다.

아득히 멀어져가는 정신속에 할신이 타브의 이름을 부르며 흔들어 대는 것이 느껴진다.

“세상에... 오크나무 아버지시여…”

할신은 자신의 품에 안긴 타브의 모습에 할말을 잃고 이마를 짚었다.

7년만에 나타난 타브의 모습은 적어도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할신이 알던 타브는 쾌활하고 사려깊은 인간 바드로 마지막 여정을 함께한 컴페니언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컴페니언들은 아스타리온을 위해 그녀가 한 마지막 선택을 비판했으나 그녀는 웃으며 아스타리온과 길을 떠났었다.

류트를 연주하며 맑고 또랑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그녀, 깔깔대며 넘치는 맥주를 들이키던 그녀, 
아름다운 적갈색 머리카락과 헤이즐 눈동자를 가진, 자연의 축복을 받은듯 밝고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뼈만 남았다는 것이 과하지 않을듯한 몸, 핏기 없는 얼굴.

온몸에 빼곡히 물린 자국과 붉은 멍울로 가득한 몸은 할신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부숴질듯 약해 보였다.

타브의 옷을 갈아입히고 몸을 닦아주던 네티가 그녀를 살피고는 할신에게 말했다.

"죽지 않은게 신기한 상태예요, 마스터. 살리기가 쉽지 않을거예요. 그리고...그.."

네티가 말끝을 흐린채 할신의 눈치를 보며 정신을 잃은 타브의 어깨 옷자락을 열어 그에게 보였다.

쇄골 아래 선명한 불낙인의 이름. 

[아스타리온 안쿠닌의 소유]

"아스타리온 이...이 미친자가..."

네티는 할신의 분노하는 모습에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의 제자로 곁에서 지낸지가 100년가까이 되지만 할신의 분노한 모습은 본적이 없었다.

꽉 쥔 그의 큰 주먹에 핏대가 서고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땅이 떨릴듯 분노한 그가 숨을 내쉬며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노력하며 오래된 기억을 더듬었다.

사실 이상한 구석은 한둘이 아니었다. 캠프 마지막 밤까지만 해도 둘은 아름다운 한쌍이었고 서로를 지독하게 사랑하는 것으로 보였다.

수많은 비난에도 그녀는 아스타리온의 눈물어린 애원에 그가 7천 스폰을 희생해 승천하는 것을 도왔다. 그녀의 성정으로 볼때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것이라 여기고 스스로를 비난할 거라 생각했지만 아스타리온이 그녀를 살뜰히 챙기는 모습을 보았기에  할신은 스스로의 그런 염려가 과한 참견이라 여겼다.

그들이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고있으리라 생각했던 할신은 스스로의 단순함과 긍정적인 성격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할신을 바라보던 네티가 고민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마스터, 그리고... 다른 드루이드들이 두려워하고 있어요"

할신은 그녀의 말을 이해한듯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타리온이 그녀를 찾으러 올테지."

카자도어가 염원하던 힘을 빼앗고 뱀파이어 로드이자 최초의 승천체가 되어버린 이상, 지금의 에메랄드 숲 드루이드들만으로 막을수 있을지는 알수 없었다. 그리고 타브만을 위해 벰파이어 승천체와 맞선다는 것은 다른 드루이드들에게는 타산이 맞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일것었다.

염려하는 네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할신은 그녀에게 말했다.

"부족들에게는 그녀를 발더스게이트의 의원으로 옴겼다고 해주게. 그리고, 나는 어제 잠시 이곳 성지에 들렀다가 다시 달숲으로 떠난 것으로 하지."

"그 뱀파이어 로드가 냄새를 맡고 오면요! 거짓이란걸 단번에 알텐데!"

네티가 두려움에 떨며 우려를 표했다.

"거짓을 말하는 것은 자네 하나여야 하네, 부족원들은 자네의 말을 믿을테니 그들의 말은 거짓이 아닐테지. 냄새는 내가 처리할 것이고 나는 그녀와 내 은신처로 가있겠네. 자네는 발더스 게이트의 의원에게 이동해서 길을 속이도록 해주게나.“

할신은 긴 한숨을 내쉰 후 네티의 어깨를 다시 한 번 툭툭 두드려 주었다.

“과한 부탁을 해서 미안하네 네티"

네티는 그의 결단력과 추진력에 감탄하는 한편 저 인간 여자를 위해 저렇게 까지 하는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네티역시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8년전 고블린 무리로 부터 이 성지를 구하고 감금된 마스터 할신을 구해온 여자.

조그마한 인간 여자에 불과하면서 꽤 그럴듯한 파티를 통솔하던 당찬 바드. 아무리 할신이 그녀로 부터 큰 은혜를 입었다 하더라도 지금 그가 보인 분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네티는 그가 말한 계획을 실행하려 서둘러 발걸음을 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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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킄킄킄 킥킥킥..흐하하하”

넓고 공허한 자르 궁전의 가장 화려한 방, 한때 카자도어의 마스터 룸이었고, 어제까지는 아스타리온과 타브의 신혼방으로 쓰인 방.

피투성이의 바닥에 주저앉아 정신나가게 웃어대던 긴 은발의 남자가 잔득 굽어있던 등을 한번에 일으키며 미소지었다.

"피로... 스크롤을 썼어..?"

그의 발치에는 구성에 실패한 마법 스크롤의 조각들이 널려있었다. 몇번이나 실패하고 또 시도한 것인지 구겨진 양피지들은 수백장에 이르렀다.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는것을 좋아하던 그녀가 어느샌가 그가 다가오면 서둘러 양피지들을 숨기는 것을 본 이후로 그는 모든 잉크와 화구, 악기들을 불태워 버렸다.

그런데..

"자기 피로 스크롤을 써내다니, 역시 굉장해. 내 반려는..."

루비처럼 붉은 두 눈이 반짝이나 싶더니 찢어진 스크롤에 말라붙은 피를 조용히 혀로 핧아 올렸다. 그리고비릿한 미소 입가에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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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망토로 둘둘말은 그녀를 어께에 들쳐 업은 할신이 숲을 질주한다. 성지에 남은 그녀의 냄새를 모두 없애고 최소한의 약재만 챙겨 달숲으로 향하는 포탈을 탔다.

에메랄드 숲보다 몇배이상 큰 달숲은 드루이드의 성지가 아니면서 고대의 식물로 우거진 정글이다. 아무리 뱀파이어 로드라고 할지라도 이런 숲에서는 당분간 그녀와 할신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타브는 순식간애 온몸이 따듯해지는 느낌과 함께 눈이 떠졌다.

눈앞의 인영은 흐릿하지만 한눈에 알아볼수 있다.크고 따듯한 남자, 항상 자애로운 미소로 타브를 대해주던 사람, 할신이었다.

"타브! 정신이 드시오?"

온기를 뿜어내는 따스한 샘물안에 천천히 그녀를 뉘여 뒀던 차에였다.

영원히 떠지지 않을것만 같던 그녀의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가는 것을 본 그가 퍼뜩 그녀를 다시 건저내려 스스로 샘물안으로 첨벙이며 들어왔다. 옷이 물에 젖는것은 개의치 않고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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