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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클리프 드림 커미션

10년 바주카

잠깐 by 션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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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 겉은 보기 좋아도 속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 항상 주의하라는 말은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말이구나. 세계가 달라져도 통용되는 인생이 담긴 조언이구나. 카노는 이마를 짚으려다가 벌벌 떨리는 손을 보고 그냥 눈만 감았다. 이게 왜 이렇게 됐더라?

아 맞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현자님! 귀엽고 명량한 목소리가 먼저 떠올랐다. 현자님! 마침 잘 됐다. 응 그게, 오늘 조금 특별한 티파티를 하거든. 현자님도 올래? 응응 무르랑 라스티카가 신기한 걸 발견했대. 뭔지 궁금하지 않아? 근데 아무리 물어봐도 안 알려주는 거야. 즐거움과 기대를 즐기라면서! 샤일록도 좋은 기회가 될 테니, 즐기라고만 하고 안 알려주는 거 있지! 모두가 비밀로 하는 티파티라니 설레! 클로에의 흥미로운 제안이 시발점이었다.

이 제안에 혹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지금은 영혼이 조각나 자유로운 고양이가 됐지만 무르는 모든 학문에 이름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고명한 학자고. 라스티카는 악기도 연주할 줄 알고, 천문학적인 재물을 가지고 있다 못해 나라도 움직일 수 있는 귀족이고. 샤일록도 서쪽 나라에서 오랫동안 바를 영업한 바텐더였다. 그들이 비밀로 하는 특별한 티파티라니. 흥미를 가지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걱정도 생각도 많은, 신중한 동쪽 마법사가 받아도 혹할 권유였으니. 카노가 저도 가도 괜찮아요? 진짜 가도 괜찮은 거면 갈래요! 따라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 맞았다. 변명처럼 들리지만 정말 그랬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안 갔을걸?

특별한 티파티라고 하더니, 막 엄청 달라진 건 없네. 마법관 안뜰이 평소보다 더 들떠 있긴 했지만, 마법관에 처음 온 날도 아니고. 마법사를 처음 본 날도 아니고. 서쪽 마법사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아니고. 서쪽 마법사들이 즐기는 다과회라고 하면 항상 이랬다. 어떨때는 바람과 햇살에 맞춰 사람과 공간이 춤을 추고. 또 어떨때는 들려오는 새 소리에 맞춰서 즉흥 연주를 시작하는 게 그들이니까.

오다가 만난 클로에가 갑작스럽게 초대했으니 자리가 한 사람 멋대로 늘어난 건데. 초대할 줄 알았다는 것처럼 샤일록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안내했다. 이 티파티의 뭐가 그렇게 특별할까. 뭐가 특별한지 생각하고 관찰하는 시간이 평소랑 달라. 뭐 그런 건가? 있을 법한 가정을 하며 카노는 안내받은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고민은 세상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야. 내가 모르는 미지가 하나, 있을지도 몰라. 그런 애매모호한 가능성 하나로 보이는 세상이 달라지고. 주의를 기울이는 게 달라지다니 멋지지 않아? 고양이치고는 이지적이고 학자치고는 장난스러운 태도로 이번 티파티의 목적을 설명하는 무르가 떠올라서 카노는 픽 웃고 찻잔을 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날도 특별하게, 특별할 것이 없어도 즐겁게. 서쪽 마법사의 방식을 알고 있으니까 웃음이 나왔다.

사진으로 밖에 본 적 없는 은은한 붉은 빛이 도는 차에서 식욕을 돋구는 향이 났다. 기본을 충실히 하는 게 가장 어려운 건데. 그 기본이 충실하다. 이 놀라움이 특별한 걸까? 티파티의 주최자도 손님도 알려주지 않는 특별함 찾기를 하면서 카노는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맛있다. 두 모금 마시고 카노는 찻잔을 테이블 위로……. 돌려두지 못했다. 홍차가 위에 스며드는 것과 동시에 손에서 힘이 빠져 찻잔이 수직으로 떨어졌으니까.

이게 뭐야, 이게 뭔데? 카노는 분노와 배신감으로 덜덜 몸을……. 아니 이게 뭐야?! 몸이 덜덜 떨리는데 치가 떨려서 나오는 진동이 아니었다. 상황 파악이 안 되어 머릿속 가득 물음표가 피어나고, 피어난 물음표만큼 카노의 몸이 떨렸다. 진동을 최대로 맞추고 울리는 휴대폰처럼. 쉴 틈 없이 몸이 위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멀미가 날 정도로 흔들렸다. 어, 어어어?! 몸이 이렇게 흔들리니 시야도 제대로 초점이 안 맞아서. 사실 세계가 흔들리고 있나? 온 세상이 진동하고 있나? 혼란스러웠지만 클로에가 당황하고 있는 걸 보아하니, 세상은 멀쩡하고 클로에와 카노가 미친 듯이 떨고 있는 게 맞았다.

아하하 신기하지, 재밌지! 이거 부들부들 장미로 우린 차야! 이걸 먹으면 서로 껴안을 때까지 떨림이 안 멈춰!

그런게 어디있어! 카노는 억울함과 당혹스러움이 차올라 바로 눈을 떴다. 아니 특별하다고 한 게 안내가 아니라 경고였다니. 서쪽 마법사의 말은 뭐가 경고가 될지 모르니 당연히 조심했어야지 하는 마음 반, 이런 걸 어떻게 예상하냐는 마음 반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진동하니. 누군가가 카노를 꼭 껴안았다. 클로에였다. 무르의 설명을 듣자마자 꼬옥 안아주는 클로에도 카노만큼이나 당황스러워보여서 카노는 불평불만 대신 진동이 멈추기를 빌며 마주 안았다.

와 진짜 멈췄어! 신기해! 한 번 더 해도 돼?!

똑같이 당황과 억울함이 가득한 줄 알았는데. 두근거림으로 눈을 빛내는 클로에를 보고 카노는 다시금 되새겼다. 아름다운 장미에도 가시가 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 뭐든 무슨 일이라도, 일단 조심하고 보라는 말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이 세계는 마법사와 인간이 공존하는 기묘한 세계. 거대한 재앙이라고 불리는 달에게 사랑 받아 기이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세계였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고, 카노의 상식과 능력을 벗어난 일이 즐비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의할 것,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할 것! 몇 번 곱씹어도 모자랐다. 조심과 주의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렇게 주의하고 또 조심한 결과.

“파우스트!!!”

그래봤자 이 기이하고 기묘한 세계에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만 깨닫고. 아침 댓바람부터 시노랑 같이 파우스트 방으로 뛰었다.

초기에, 그러니까 갓 마법관 생활을 시작한 무렵 파우스트는 본인 말대로 음침하고 어두운 저주상이라서. 아침 식사도 제대로 챙기지 않았고 임무가 아니면 거의 안 돌아다니다보니. 방에는 무조건 있지만 찾아가긴 좀 그런 상대였다.

지금은 그때보다 파우스트가 훨씬 친숙해졌고, 파우스트도 나름대로 교류하며 돌아다녔지만. 동쪽 마법사기도 하고 같은 층을 서쪽 마법사랑 쓰고 있으니까. 파우스트가 선생님 역을 맡고 있기도 하니까. 방에 있을때가 많긴 한데 없을 때도 그만큼 많고, 뭐 하느라 바쁠 때가 대부분이라 미안해서 쉽게 찾아가지 못하는 상대였다.

그런데 이렇게 거침없이 계단을 뛰어올라 방 문을 두드릴 날이 오다니. 세상일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구나. 계단을 오르는 동안에도 당황과 흥분이 가시질 않아서, 심장이 미친듯이 뛴 탓에 카노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가쁜 숨을 내뱉었고. 옆에 있는 시노는 정반대로 새파란 얼굴로 파우스트, 파우스트. 엄미를 찾는 아기새처럼 파우스트를 부르면서 문을 두드렸다,

파우스트가 그럴리는 없지만, 지금까지 자고 있어도 일어날 수밖에 없는 간절함이 담겨있고. 오늘처럼 평온한 날에 그런 간절함이 있다는 건 명백한 이상 사태라 파우스트는 안경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로 방 문을 열었다. 둘 다 무슨 일이지?

“히스, 히스가…….”

현자인 카노 혼자서 오거나 시노 혼자서 온다면 용건을 예상하기 어렵지만. 둘이 같이 온다면, 역시나. 용건은 하나였다.

“히스가?”

저주나 다른 사기의 기색이 안 느껴진다는 걸 파악한 파우스트는 차분한 태도로 두 사람을 응시했다. 마법관에는 스노우와 화이트가 만든 결계가 있으니 파우스트가 파악하지 못하는 삿된 것이 들어올리 없고. 카노도 시노도 히스클리프 상대로는 과민반응하는 경향이 있으니 그렇게 큰일은 아닐 것이며. 무엇보다, 정말 큰일이라면. 진정하고 차분한 사람은 한 명쯤 있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 찾은 이성이었다.

스노우와 화이트가 만든 결계가 있으니 삿된 것이 들어올리 없다. 부정하고 좋지 않은 것이 들어갈 곳은 없겠지. 그러니 큰일이 아니다. 정말 큰일이라면 진정하고 차분한 사람은 한 명쯤 있어야 한다. 파우스트의 엇갈린 두 판단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러니까 그게, 히스가. 히스, 파우스트!

격양된 두 사람이 제대로 된 설명도 못하는 사이, 다급하게 계단을 올라오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뜨거운 화제가 된 히스클리프 본인이리라. 히스군. 합리적 추론으로도 기척으로도 누군지 눈치챈 파우스트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죄송해요 선생님 정말 별 일 아니었는데, 정말 죄송해요.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 대충 짐작 가는 건 있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히스클리프 관련으로 무슨 일이 있었고, 당사자가 뭐라 하기도 전에 두 사람에게 들켜서 일이 커졌군. 이렇게 아침부터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런 패턴 자체는 익숙했다.

적당히 둘을 달래고 히스클리프를 다독이면서 시작하는 하루라니 번잡하고 시끄럽고. ……나쁘지 않네. 파우스트는 작게 웃었고.

하?

“서, 선생님…….”

올라온 히스클리프를 보고 고함을 질렀다.

하아?!

아, 안녕하세요. 히스클리프 블랑쉐. …스, 스물여덟입니다.

자기를 스물여덟살 히스클리프 블랑쉐라고 소개한 마법사는 마른세수를 연거푸 반복하며 상황을 설명했다. 상황 설명이라기엔 빈약했지만 워낙 정보가 없다보니 뭐라도 다 정보가 되었다.

그러니까, 스물여덟살…… 10년 뒤의 히스클리프로 추정되는 마법사는 평소랑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냈다고 증언했다. 뭐 잘못 먹은 것도 없고 어디 잘못 간 곳도 없고. 지극히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잠들었다가 지금 나이엔 낯설고, 잘못 봤다기엔 몹시 익숙한 방에서 깼다고.

처음에는 누가 장난 친 줄 알았어요. 서프라이즈 파티라고 하던가요? 그런거구나, 조금 태평했죠. 외부인의 소행, 납치 범죄 그런 쪽은…… 그으 조심성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마법관처럼 꾸민 방을 외부에서 준비하는 게 불가능할 테니까요. 평소에는 스노우님과 화이트님의 결계로 쉽게 들어올 수도 없는 곳이고. 이 많은 방 중에서 제 방만을 확인하고, 절 납치해 그 방에 둔다.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우연의 일치라고 넘기기에는, 저어 엄청 쑥스러운데. ……그, 녹록지 않거든요 저. 일단 동쪽의 대영주 블랑쉐 가문의 가주니까. 북쪽 마법사가 상대라도 쉽게 당할 수 없어요.

부, 부끄러우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줘 시노. 박수 치지 말아주세요 아카, 현자님 제발…….

그런 이유로 히스클리프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을 열고 온 카노와 시노를 보고 아 역시 그런 서프라이즈가 맞구나. 오늘이 무슨 날이던가? 기념일은 아직 멀었고 특별한 날도 아닌데. 어쩌면 아카리만 알고 있는, 현자님 세계의 기념일일지도 몰라. 오히려 답지 않게 태평하게 두 사람을 맞이했다. 부스스 뜬 머리와 허물없는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러운 시절은 지났지만. 기념일인데 혼자 이러는 건 싫어서 시간을 조금 더 달라고 하고 문을 닫으려고 했는데…….

응, 어어?

마법사는 일정 나이가 되면 성장을 멈춘다. 이 기준이 균일하면 참 좋을텐데 이것도 개인 차이가 있어서.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시간과 함께 늙은 마법사도 있고. 막 걸음마를 뗀 어린아이로 성장을 겪지 않지 않고 남는 경우도 있다. 청년이라는 말에 걸맞는 외형으로 남기도 하고. 소년 소녀란 수식어가 어울리는 외형으로 남기도 하고.

리케와 미틸이 시노의 키를 언제부터 앞질렀더라? 시노는 어린 마법사 중에서도 가장 먼저 성장이 멈춰 혼자 소년으로 남았다. 그래도 쌓은 경험은 어마어마한지라 관록이 느껴지는 노련한 마법사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도 겉모습에 좌우되는 게 많아서, 토벌 의뢰를 도우러 갔더니 애송이 취급을 받고. 호위하러 파티에 나섰더니 아직 어린아이가 들어올 곳이 아니라고 막히고.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많았다. 난 왜 이때 멈춘 건데? 작은 키와 앳된 외모. 그리고 그 특성을 깔보는 이들을 시노는 틈만 나면 한탄하고 욕을 했는데.

눈앞에 있는 시노는 그보다 더 앳되어보였다. 원래도 눈이 큰데. 놀라서 눈이 둥글어져서 더 어리게 느껴지는 걸까? 아니 시노가 왜 놀라? 히스클리프를 보고 시노가 놀란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란 소리인데. 서프라이즈를 준비한 시노가 아무것도 안 한 히스클리프를 보고 왜 놀라는데? 블랑쉐 가 주인이 머리가 뜬 상태로 있어서? 늦잠을 자서? 히스클리프가 알고 있는 시노 셔우드라면 ‘잠자는 공주님이 다 됐군, 깨워주는 게 작은 마님이 아니라 나라서 유감이야.’ ‘지금 작은 마님 방에 가서 키스를 조르고 와.’ 능글맞게 대꾸하거나 놀리지, 놀라지 않는다.

어, 어어? 그리고 무엇보다 마법사는 성장이 멈추기라도 하지만…….

히스클리프는 눈을 깜박이고 놀란 시노 옆에 딱딱하게 굳은 사람을 응시했다. 분명 아카리가 맞는데. 다른 세계에서 이 세계로 온 현자님이 맞을텐데. 아카리라는 이름 보다는.

“……현자님?”

이렇게 불러야 할 것 같은 앳된 사람이.

시노와 카노 둘 중에서 누가 더 진정했냐를 비교하면 도토리 키재기지만. 수시로 히스클리프(아마)를 힐끗거리면서 파우스트의 팔을 붙잡고 있는 시노보다는 흥분으로 가득 찬 카노가 말을 더 잘했으므로. 히스클리프(아마)의 증언을 다 들은 파우스트는 카노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게, 아니. 그게. 그게랑 아니가 없으면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굴더니 카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평범하게 증언했다. 그냥 히스가 안 보이길래. 어디 아픈가 하고 방에 찾아가니 문 앞에 시노가 있었다. 현자 마침 잘 왔어. 좋은 걸 보여주지. 히스가 들었으면 나는 구경거리도 아니고 장난감도 아니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그만둬달라고 할 말을 뱉고 시노는 손가락을 까닥였다. 또 늦잠 자는 거야. 잠든 히스는 인형처럼 예쁘고, 막 깨서 비몽사몽한 모습도 귀여우니까. 너에게만 특별히 보여줄게.

어제 늦게까지 방에 불이 켜있더니, 무슨 일 있어서 늦게 잤나 보네요. 히스 그만 놀리고 좀 더 자게 둬요. 아픈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현자’라면 그렇게 담백하게 대꾸하고 말았어야 했지만. 카노는 유혹을 참지 못했다. 자고 있는 히스는 인형처럼 예쁘구나. 그냥도 예쁘니까 당연한 건데, 보고 싶다. 비몽사몽한 모습도 귀엽구나. 원래도 귀여우니까 당연한 건데 보고 싶다. ……그래서 부정한 마음으로 시노와 함께 문을 열었고.

엄청난 폭력과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뛰쳐나오고 만 것이다.

증언을 모아봤자 정보가 될 것도 없었다. 평범하게 지냈다가 봉변당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아무리 들어도 그게 다였으니까. 어린 마법사 중에서 일이위를 다투는 시노도 마법의 기색을 느끼지 못했고. 낌새나 기척에 예민한 히스클리프도 이상을 모르고. 파우스트가 봐도 모른다면……. 이건, 그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시간 마법의 일종 같은데. 그건 고도의, 아니 고도라고 이름을 붙여도 될지 모르겠군. 성공한 사례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고, 시도하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마력이 들어가니까. 하지만 거대한 재앙의 영향으로 유례없는 일 정도야 일어날 수 있지. 여기 본인도 있는 모양이고. 파우스트는 잠깐 고민했다. 다른 선생님 역과 의견을 나눌 때, 히스클리프(아마도)를 데려갈지 말지. 본인이 있는 편이 이상 상황 파악에 더 도움이 될 테지만……. 본인도 혼란스러워하는데. 그런 학생을 데리고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혼란을 넘어 혼돈 상태인 시노와 카노를 어떻게든 해결해야한다는 마음이 뒤섞였다.

사건 해결과 학생의 상태. 파우스트가 우선시해야할 건 무엇일까?

당연히 학생의 상태지. 저울에 걸자마자 바로 기울어, 파우스트는 세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일에 관해 상담하고 올 테니 너희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나오지 말고. 세 번째 서랍에 대단한 건 아니지만 입가심 할 게 있으니 먹을 거면 먹고. 아니 아니다. 파우스트는 작게 주문을 외우더니, 서랍에 있던 과자를 꺼내주고는 알아서 먹으라는 말과 함께 방을 나갔다.

지도자가 없는 방에는 정적만 남았다. 정확하게는 부산스러운 소리나, 산만한 행동은 있는데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저게 10년 후 히스클리프 블랑쉐라고? 믿기질 않아서 한 번,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두 번, 와 진짜 히스클리프라고? 세 번. 시노랑 카노는 부지런하게 눈도장을 찍고 다녔고. 히스클리프는 그런 눈도장이 간지럽고 또 부끄러워서 손가락만 꼼지락 거리면서 눈을 깔았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파우스트가 금방 돌아오지 못할 거고. 이 상황이 갑자기 해결 될 일도 없을 텐데.

그러면 쭉 이러고 있어야해? 신기하고 무섭고, 생경한데 낯익고. 쑥스러운데 또 기분 좋은 이상한 시선을 언제까지나 받아야해? 열여덟 히스클리프는 못 버티고 바로 일어날 분위기고, 스물여덟 히스클리프는 자기 손을 꽉 쥐고. 생각에 잠기다가…….

“내, 내가 너희가 알고 있는 히스클리프 블랑쉐가 맞다고 해도, 못 믿겠지. 응…….”

못 버티겠어서 입을 열었다. 그치만, 그, 증명이 필요하다면. 증명을……. 뭘 해야 증명할 수 있을까? 그게, 뭘 해야. 분위기를 못 버티겠어서 툭 내뱉은 거라 그런지. 두서없고 어색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걸, 그냥 가만히 있을 걸. 땅 파기 딱 좋을 엉망진창인 대화 내용이 정말. 카노와 시노는 서로 마주봤다.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히스네.

히스야.

히스클리프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봐 무서워서, 상반된 반응을 보였던 두 사람이 똑같이 침착해졌다. 여전히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히스클리프 블랑쉐는 무사했다. 다른 녀석과 바뀐 것도 아니고 무언가가 뒤섞인 것도 아니고. 조금 큰 본인이라면야……. 파우스트가 다른 선생님 역할에게 상담하러 간 것도 큰 몫을 가져갔다. 화이트 스노우 오즈 피가로 샤일록 파우스트. 이렇게 모여서 해결 안 될 문제가 과연 있을까? 물론 있어서 이 세계가 문제 덩어리인 거겠지만. 그건 뒤로 미루고.

안정을 찾으니 미래의 히스클리프(아마도)가 눈에 들어왔다. 원래도 그랬지만 히스는 참…….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꽃봉오리가 한순간에 만개해도 히스클리프 쪽이 더 아름다웠다. 고민하고 마음고생하고 있는 걸 보면 바로 도와주고 싶은데, 앓는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궁리하는 모습을 더 구경하고 싶기도 하고. 사람을 갈등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나를 데려가는 건, 녹록치 않아. 그런 강단을 가지고 있으면서 수줍어하기까지?시선으로 온갖 감탄과 칭찬을 보내니 그, 그만, 아니이……. 부끄러워하기까지?

문을 열 때만 해도 숨이 넘어갈 만큼 위험한 상태였는데. 카노도 시노도 금방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히스는 저때까지 크는구나. 성장이 멈췄는지 물어보면 실례일까요? 난 미래의 내가 궁금해. 헉 그러면…….

그러면……?

카노는 말문이 막혔다. 시노가 10년 후 히스클리프에게 10년 뒤 내가 뭐하고 있는지, 자기는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 질문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카노 아카리가 10년 후에 뭘 할지를 히스클리프에게 왜 묻는데? 저번 현자님처럼 돌아가면 세계도 갈리는데. 그걸 히스클리프가 어떻게 알아? 타당한 추론보다 그냥 그랬으면 하는, 서로의 안부를 아는 게 당연했으면 하는 사심이 기어 올라오다니. 큰일날뻔 했네.

카노는 심호흡과 함께 사심을 삼키고 히스클리프를 응시했다. 다른 주제가 필요했다. 적당한, 다른…….

“히스, 그거 결혼반지인가요?”

다 삼킨 줄 알았는데. 아직 남아있었는지 어쩔 줄 몰라 하는 미래의 히스클리프보다, 미래의 히스클리프 손가락에서 빛나는 작은 반지가 더 눈에 들어왔다. 사심이 없었다면 “제가 시계탑 보고 무슨 말 했는지 기억해요?.” 나 “그러지 않아도 히스클리프인 거 잘 알아요.” 그런 말을 했을 텐데. 길고 고운 손가락 사이에 들어간 반지가 자꾸만 눈에 밟혀서,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입을 통해 말이 나왔다.

네? 어떻게 해야 믿어줄까, 어떻게 해야 시노랑 아카리에게 안심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히스클리프는 그 말에 우뚝 멈춰 서더니.

“아, 아아, 아니에요!!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이건 제가 만든, 그러니까 시험작인데요!”

누가 봐도 수상하게 변명하더니 그러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저 결혼, 그, 그런 게 아니니까요! 손을 휘휘 저으면서 격하게 부정했다.

“결혼했어? 누구랑?”

“아니라니까!”

“부정하면 아내분이 슬퍼해요 히스.”

“아, 아뇨 그게…….”

“부정한 결혼이야?”

“아니야!”

“언제 했어요?”

“그, 그런게 아니라. 이,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히스클리프는 억울했다. 억울한데 풀 수 없는 억울함이라 더 그랬다. 결혼했습니다. 당신과. 그런 소리를 할 수 없으니까! 현자님은, 카노 아카리는 히스클리프가 본인을 현자님이 아니라 ‘아카리’라고 부르려다가 고친 걸 못 들었을까? 서로 혼란스러웠으니 못 들었겠지. 그게 참 다행이고 분하고. 그랬다. 참 다행이야 그 선을 알았다면, 열여덟 히스클리프 블랑쉐가 이해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미련을 가졌던 두 살 차이 선이 벽이 됐을 테니까. 그치만 참 너무하고 야속하지. 당신과 사랑을 약속했습니다. 그 사실조차 말하면 안 된다니.

하지만 히스클리프가 감정에 애탈 시간은 없었다. 바로 오해를 잡지 않으면 선이 또 벽이 될 테니까. 대상이 누군지 말해도 벽이 되고. 사실을 말해도 벽이 된다니, 불공평해!

그치만 사랑은 원래 불공평한 거니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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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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