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바스 화목 (하나미야X키요시)
모자람 없이, 과하지 않게. 천성이 이유없이 선한 이가 있으면 이유없이 악한 이도 있기 마련이다. 당연한 건데 하나미야 마코토를 중심으로 한 팀과 붙으면 다들 없는 이유를 찾아 나섰다. 학생이 감독을 맡고 있다니 특이하네. 작년에 갑자기 담당 코치도 감독도 그만뒀다고 하던데. 무슨 사정 있는 거 아니야? 문무겸비를 목표로 삼은 학교긴 하지만, 슈토쿠만큼 뛰어난 성적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키리사키가 속한 도쿄는 가장 치열한 지역이니까. 실적이 안 나와서 한 번 물갈이 된 거야. 그리고 그런 부당한 처사를 본 학생들이 항의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이겨도, 이렇게 해도 이기면 다냐고……. 양심 고백하려고 저러는 거 아니야?
그러고보니 하나미야랑 같은 중학교 였던 녀석이 그러던데. 일이년정도 감독 천하였대. 실력이고 연차고 뭐고 자기 손자인가 사촌인가. 걔랑 친한 녀석들만 시합에 내보냈다는 거야. 다른 애들은 들러리로 쓰였고 제대로 봐주지도 않았다가…… 어떤 계기로 감독이 은퇴해서 정상 궤도를 찾았다고 하던데. 그런 중학 시절을 보냈다가, 기대와 희망으로 고등학교 진학했더니 물갈이로 한순간에 물거품이 돼서, 완전히 비뚤어진 거지. 말 되네.
근데 저 세대가 딱 그때 아냐? 기적의 세대랑 동갑이면 묻히기라도 하지. 어중간하게 한 학년 차이 나서 화제 몰이로 묶인 세대. 고작 일년이지만 중고교 스포츠에서 일년은 거의 십년과 비슷해서, 온갖 비교 대상으로 쓰이곤 했다. 기적의 세대와 달리 같은 학교도 아니고. 포지션도 겹치고. 가끔 전국 대회에서, 아니면 간혹 연습 시합을 통해서 만난 게 다인 다섯 명을 순식간에 기적에게 밀린 2인자로 묶었다. 이름이 알려지는 건 좋은 일이고. 기대를 받는 것 또한 훌륭한 발판이 되지만. 앞으로가 기대 되는 유망주와 기적의 세대에 가려진 무관의 오장은 주는 느낌이 달랐다.
십년에 한 번 있을까말까한 기적의 세대처럼 강한 인상을 주면서, 그보다 뒤쳐졌다는 걸 티내기 위한 단어니가 다를 수밖에 없지. 저쪽은 천재고 여기는 그보다 살짝 모자란 수재랍니다. 이기지는 못하지만 좋은 상대는 될 수 있답니다. 그런 낙인을 찍었는데 기분이 좋겠어? 그래도 실력을 인정 받은 건 좋아. 기적의 세대라는 것에 맞춰 무관의 오장도 딱 다섯명을 골랐다.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건데. 괜찮지. 무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선수도 있고. 치솟는 짜증을 숨기고 발판으로 삼아 뜀박질 하려는 선수도 있고. 이름이 어떻고 호칭이 어떻게 변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고 항상심을 유지하는 선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무관의 오장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여 자포자기 심정으로 나서는 선수도 있을 법 했다.
그게 하나미야 마코토인 게 아닐까? 사회가 낳은 괴물. 그 비스무리인거지. 하나미야 마코토는 한결같이 심판이 확인할 수 없는 부분에서 적당히 상대를 찔러 이길 뿐인데. 그를 이해하려고 하는 수많은 소문이 붙었다. 응당 그랬어야하는 이유가 있을거라고, 눈물 겹고 동정할 만한 드라마를 만들어준다.
그러는편이 속 편하고 좋겠지. 무슨 이유가 있어서, 자기들이 부당하게 당했다고 믿고 싶은 거야. 그게 더 마음이 편하니까. 심판에게 항의해도 통하는 건 없고 시합 성적도 바닥 치고. 무성한 소문만큼 질이 나빠 실제로 피해가 나오는데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그런식으로 도피해서 마음이라도 편해지고 싶은 거지? 하나미야는 키리사키 고등학교를 보고, 자기 자신의 플레이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저절로 만들어내는 이유를 보고 웃었다. 남한테서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지 못하면 자기관리조차 할 수 없는 멍청이들이 넘실거리는 게 웃기니까.
기름을 보고 이건 왜 겉보기에는 물과 비슷한 액체인데. 미끄럽고 점성이 있지? 미끄럽고 끈끈해지고 싶은 이유가 따로 있던 거야. 기름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아 이렇게 변해야지. 다짐하게 된 계기가 생긴거지. 내 생각 어때? 이렇게 떠들어대면 웃기잖아? 기름과 물은 다를 수밖에 없고. 기름이 왜 그렇게 됐냐고 해도 원래 성질이 그런거니까 그런거지. 거창한 이유같은 게 있을리가 없는데.
하나미야는 스스로 위안을 얻겠다고 무슨 답을 알아야겠다고 이유를 만드는 행위를 이해하지 못했다. 지능이 부족하니까 그런거겠지. 머리도 딸리고 요령도 없으니까 멋대로 틀리는 거야. 문제가 풀리지 않으니 자기가 만든 어거지 공식으로 문제를 풀고 답을 만들어. 자기는 알 수 없는 과정을 인정하기 싫어서 우겨서 정답을 만들어. 비효율적이고 멍청해. 하나미야는 그런 이들을 비웃고는 선을 그었다. 자기와는 평생 연관이 없을테니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모자람 없이 과하지 않게. 천성이 악한 이가 있으면 이유없이 천성이 선한 이도 있기 마련이다. 키요시 텟페이가 그랬다. 선하다는 표현은 애매한 면이 있으니 수긍과 납득이 빠르다고 하는 게 좋을까. 부당한 처사를 당하면 화를 내고 마음에 안 드는 일은 담아두고. 솔직하게 남과 자신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확실한 걸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사람이 엉뚱맞고 맹하다. 사기 당하기 딱 좋아보이는 느슨함을 가지고 있는데, 흔들리지 않는 토대가 있다. 뭐든 허허 웃어 넘어갈 것처럼 굴면서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 확고하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뭘 실실 웃어, 어이가 없어지면 그 속에 관찰하기 어려운 깊은 골이 숨어있다. 문제가 어디에 있어도 그걸 한탄하기 보다는 전체를 파악하기 위해 온 힘을 다 한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걸까?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산다며. 원래 또래가 아니라 어르신들 사이에서 큰 아이는 다 저런 애늙은이가 돼. 평소에는 느긋하게 있는데 이상하게 책임감이 강하고 그러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일도 많고,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한 두개가 아니니까. 이상하게 초연한데 집착이 있는 불균형한 아이가 되는 거야.
중요한 시합에서 부상을 입고 그대로 입원했다며? 거의 자기가 꾸린 팀이라는데. 입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합도 지고. 경기도 못 나가고. 억울할만하지. 한이 쌓였는데 아직 어려서 제대로 표현하질 못한 거야. 한도 화도 쌓였는데 제대로 못 나가면 저런 허허 할아버지가 돼. 제대로 터져야하는데 터질 시기를 놓친 거지. 해탈한 거야. 아직 어린데 참……. 병원 생활을 오래 하면 다들 저런 느낌이더라.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보면 저러던데? 자기가 어떤 상황인지 잘 아니까. 부정하려고 괜찮은 척 하려고 저러는 거야.
키요시 텟페이의 지금이 그렇게 된 거라고. 키요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많은 일이 있었지만 항상심을 유지하는 선수였을뿐인데 많은 소문이 붙었다. 많은 일 사이에 있을 법한 사연이나 드라마를 타인이 구겨넣었다. 그 이야기를 들어도 키요시는 아무렇지 않았다. 물론 철심이라고 강조하면서 그러면, 퉁명스럽게 반응하겠지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건,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하는 성미기도 했고. 어떤 시선을 받아도 어떤 오해를 받아도 자기가 서있는 위치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아무렇지 않았다. 하나미야에 대한 것도 어떠한 드라마 없이, 어떤 사연없이 사실대로 받아들였다. 성격이 좀 귀찮게 꼬인 부분이 있지만 같은 학년에서 농구를 하는 한 선수로 생각했다. 기름이 이유도 없이 그냥 기름인것처럼 하나미야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하나미야 마코토인 걸 수긍했다.
하나미야는 어떻냐고 하면…….
뭐 잘못 된 거 아냐? 처음부터 머리에 나사가 하나 빠져서 나온거지. 아님 뭔데?
하나미야는 그런 키요시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요령도 머리도 좋은 하나미야는 웬만한 일은 금방 알았다. 시합에서 심판과 관중의 눈을 속여가며 상대 에이스를 망가트리는 방법. 색종이로 만들어진 왕관을 진짜 금이라고 착각해서 앞뒤 생각하지 않고 권력을 휘두르는 낙하산의 줄을 자르는 법. 얇은 실에 풀칠 하나 했다고 신뢰니 뭐니 떠드는 사람 앞에서 어떻게 실을 잘라야 두번 다시 그런 이야기를 못하게 되는지. 그런 걸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어떻게 해야 한 사람이 균형을 잃고 꼴사납게 구르는지. 어디를 어떻게 눌러야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추하게 넘어지는지. 그런 걸 정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키요시 텟페이는 하나미야의 그런 지식이 통하지 않는 유일한 상대였다. 통하지 않을 뿐더러 반응도 예측할 수 없었다. 사람 심리를 읽어 이어지는 패스를 잡아채는 것도. 그 다음 행동을 예측해 미리 손을 쓰는 것도 자랑스런 특기였는데. 아니…무릎을 아작 낸 상대가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고 하면 보통 화를 내지 않나? 울분을 토하거나. 뭐 그러지 않아? 네가 한 짓을 뭐라고 생각하냐고 욱하지 않냐고.
앞에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까. 주변 시선을 의식해서 참는 것도 아니고. 이겨서 생긴 여유로 허세 부리는 것도 아니고. 이기지도 못했으면서 말도 많다고 사람을 깔보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뭔데? 자기 무릎은 이미 한계까지 망가졌으니까 아무래도 좋다 이건가? 병원 생활하는 동안 후회는 다 했고 생각도 다 정리했으니 이제 됐다는 초연함인가? 그것도 아니면 지켜서 끝낸다는 숙원을 나름 이뤘으니 만족해서, 이젠 정말 아무래도 좋아. 개운하게 털어낸 건가? 아니면 다 무너져서 이제 더 바닥이 없는 건가? 여기서 끝이니까 후회할 게 없다고 나오는 자신감?
근데 바닥이 없어서 그러는 건 아니네? 전국 대회에서 키요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고 다시 일어섰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몇 번이나 일어설 용기를 주는 건지. 코트에 설 동기를 주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농구를 좋아하니까? 그 좋아하는 농구를 박살난 무릎으로 할 수는 있고? 농구를 좋아한다면 무릎 상태를 보고 더 못 일어나야지. 어떻게 코트로 돌아왔는데 또 집요하게 몸을 노려 못 쓰게 하려는 모습을 보고 화를 내고. 변함없는 태도에 절망을 느끼고 그래야지. 그렇게 덤덤하게 인사 하는 건…… 뭐야?
기름이 왜 그렇게 됐냐고 해도 원래 성질이 그런거니까 어쩔 수 없고. 하나미야 마코토는 성격이 왜 그렇게 나쁘냐고 물어도 원래 그런 성격이니까 그런 거야. 그런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듯이 키요시도 원래 그런 성격이니까 그래서 그런다는 게 정답일텐데. 하나미야는 자기가 비웃은 바보들처럼 이유를 찾고 안에 들어갈 그럴싸한 공식을 찾았다. 무엇이 들어가도 어떤 가정을 세워도 썩 만족스럽지 않은 과정을 이어갔다.
저 멍청한 녀석이 왜 미련하게 구는지 아냐고 물어보면 쉽게 답을 알 수 있을거라는 걸, 본인도 알고 있겠지. 세이린의 감독은 어이없다는 듯이 뭘 이런 걸 묻지? 시선으로 온갖 걸 말하면서 팔짱을 끼고. 텟페이는 원래 그래. 시원하게 단언하고 갈 테고. 세이린의 안경도 네가 무슨 낯짝으로 여길 오냐고 화를 내면서 걘 원래 그런 놈이라고 대답하고 말텐데. 하나미야는 계속 키요시의 사고를 추측했다. 답이 있을리가 없는데. 요령도 나쁘고 바보처럼 그러고 만다.
자기가 비웃은 바보가 된다는 걸 하나미야 본인이 알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미야한테 생긴 치명적인 오류가 키요시인 건 자명한 사실로. 이 치명적인 오류를 고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무슨 수단을 써야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해, 고생하겠지. 멋대로 틀리고 이해하기 위해서 어거지로 공식을 쓰고. 납득할만한 답을 찾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처음 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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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하는 비둘기
물과 기름의 비유도 아름답고 이제 답없는 감정에서 답을 찾기 위해 애쓰는 하나미야도 좋아요 정말 최고의 연성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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