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ood For Thought

Food For Thought 생각할 거리

15. 당밀보다 느리게*

원제: Food For Thought

저자: BlueberryPaincake


엔젤은 그의 친구를 확인하고, 펜셔스 경은 그가 문자의 달인임을 증명하며, 복스는 남의 일에 신경 끄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잠깐, 진심 걔네가 잔다고 생각 안 하는 거?”

허스크는 섞고 있던 카드에서 눈을 떼며 그의 긴 눈썹을 회의적으로 치켜떴다. 엔젤은 눈을 굴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낄래.”

받은 패를 살피며, 거미는 턱을 괴고 천장을 눈으로 훑었다. 확실히 둘 사이의 관계는 이상했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알래스터와 섹스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하긴, 찝쩍댈 때마다 거절만 돌아오긴 했었다. 하지만 그건 비단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무관심 같아 보였다. 어쩌면 섹스는 그가 선호하는 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게 알래스터가 복스의 선호인 이유일 것이고.

그 모든 내적 독백을 공유하는 대신, 거미는 아래쪽 손으로 패를 한 장 빼서 게임판에 던졌다.

“좋아. 판돈 없고, 그릇에 젤리만.”

새로 손질한 손톱이 그릇 가장자리를 톡톡 두드리자, 늘상 찡그려져 있던 허스크의 얼굴이 더 귀엽게 불퉁해졌다.

“젠장— 으, 좋아. 단 건 좋아하지도 않는데…….”

엔젤은 그를 보며 다 안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같이 이 바보 같은 구원 어쩌구 중이잖아.”라고 말하는 듯한. 허스크는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터졌다.

엔젤이 어깨를 으쓱하자, 어깨를 드러낸 그의 스웨터가 아래로 조금 흘러내렸다.

“딴 거 걸 수 있는 게 있어? 내가 빠듯하거든. 요새 좀 깨끗하게 살잖아. 알다시피.”

발은 그가 이사 나간 후 급여를 줄였다.

“여하튼, 그게 섹스는 아닐 거야. 생각해 봐. 걔들이 방에서 나올 때 숨이 차거나 엉망이거나 했던 적 있어? 무슨 소리가 들렸던 적은?”

허스크는 회의적으로 제 턱을 매만지며 카드 뭉치에서 패를 한 장 떴다.

“걔가 요즘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게 설명이 안 되잖아. 신혼이라고 고함을 질러대는 수준인데.”

“알은 걔를 말 그대로 애완동물이라고 불렀어. 페니는 온종일 방에 갇혀있고, 놈은 원할 때 언제든 걔를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일걸.”

허스크는 엔젤이 제 패를 살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얼굴근육의 미세한 떨림이나, 저도 모르게 흘리는 속내를 알아챌 수 있게 훈련된 눈이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엔 다른 생각이 들어차 있었고, 그들이 나누고 있던 대화 전반에 정신이 쏠렸다.

알래스터가 관계에 얽히는 유형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섹스파트너 따위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건 뭔가 이상했다.

애완동물을 갖고 싶다면서, 영혼으로 묶이지 않은 누군가를 선택해? 지랄, 허스크는 지난 수년간 애완동물 농지거리를 당해왔다. 섹스와 로맨스는 가장 수월한 선택지로 보였다. 분명히 그게 아니긴 할지라도.

“하! 주인이 집에 있으면 신이 나는 악마견 같군.”

허나 알래스터가 항상 원해오던 것은……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좋은 기분? 아마 엔젤이 맞을 것이다. 이는 흥미로운 새 장난감이었다. 몇 달 안에 사그라들. 상대의 관심이 식어서가 아니라면, 다가올 말살의 날에 끝날 관계.

암담하군.

젠장 이는 거의 귀여운 비유였다. 엔젤은 제 턴을 마칠 때 허스크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잘못된 예시이기는 했다. 여기서 페니는 분명히 바텀이었으니까. 섹스가 있든 없든. 서비스 돔*이라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아니, 알래스터는 그러기엔 너무 이기적이지.

흥얼거림이 들리고, 벽을 타고 오르는 듯한 그림자와 발소리가 뒤를 이었다.

“악마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그는 알래스터가 빈 그릇 두 개를 들고 공동구역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숨죽여 중얼거렸다.

“아니, 그는 여기 없는걸요.”

감사하게도. 여기 있었다면 골칫거리였겠지. 다행히도, 지옥의 왕은 결손 아비였다. 두 남자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무시한 채 알래스터는 싱크대로 다가가 설거지를 시작했다.

제 얘기를 하고 있었을까? 그랬겠지.

엔젤은 허스크가 뒤로 돈 사이에 그릇에서 젤리를 한 개 슬쩍 집어먹었다.

“야, 알. 페니는 어때?”

알래스터는 그릇을 건조대에 걸치며 두 명을 돌아보았다.

“회복 중입니다.”

기회를 틈타 그는 당당하게 그들에게 걸어가 하트모양 발에 쥐어진 카드 패를 들여다보았다.

“한 번도 들여다본 적 없으면서 왜 물어보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친구라면서요?”

허스크는 패를 뒤집어 테이블에 엎고는, 이를 드러내며 그 악마를 노려보았다. 친구에 대해 뭐라도 아는 것처럼 굴기는. 여기 와서 그걸 여봐란듯이 던지질 않나.

“그치. 뭐, 페니도 그걸 우리한테 옮기고 싶진 않을 거거든. 무슨 병이든 간에.”

엔젤이 받아쳤다. 그는 갑작스러운 비난에 내심 놀랐다. 어쩌면 펜셔스에게 연락을 해봐야 할지도……

띠링.

휴대폰 화면이 켜졌다.

“안냥엔젤더스츠나아직아프지만네가친구드리앙하는팬드폰개잉하나하고시층ㄴ지묻규싶어서.”

맞춤법이 엉망인 메시지를 큰 소리로 읽다가, 이게 문제의 뱀에게서 온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젠장 진짜 연락해야겠네.

뱜🐍: ㅊ촤댜한ㅂㅂ발리답방해주ㅗㅓ — 펜셔스

펜셔스는 머리를 베개 밑에 파묻고서, 거절당할 가능성에 잔뜩 움츠렸다. 그들은 친구였지만, 답장을 기다리는 것은 여전히 꽤나 스트레스였다. 물론, 그는 문자의 전문가였으므로 상대는 분명 게임을 하고 싶어 하겠지만, 혹시라도 바쁘다면? 어쩌면 허스크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엔젤더스트: 쪼아 뭐 하실?

어깨 너머로 시선을 느끼고, 엔젤은 휴대폰을 아래로 덮고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찡그리며 사슴을 돌아보았다.

“사람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는 거 무례한 거라고 누가 안 가르쳐주디?”

알래스터는 무관심을 가장하며 다른 이의 손에 들린 카드 패로 시선을 돌렸다.

“어울리던 와중에 문자를 보내는 게 무례하다고 가르쳐 준 이는 없던가요? 특히 게임의 중요한 순간에 말입니다.”

허스크는 흥미가 돋았지만, 무심한듯 보이려 애썼다. 라디오 악마가 제 패를 봤다는 걸 알았으니까.

엔젤은 눈을 굴리며 제 패를 한 번 더 힐끔 보았다.

“뭐, 됐어. 여기,”

그는 패를 작은 더미로 모아 빨간 머리 자식에게 넘겼다.

“대신 해줘. 난 친구랑 좀 어울릴 테니까.”

허스크가 이전 게임에서 느꼈던 흥은, 알래스터가 스리슬쩍 빈자리를 차지하면서 사라져 버렸다. 알래스터와 했던 지난 게임에서 그는 영혼을 잃었지만, 이번에 걸린 것은 사탕뿐이었다. 어쩌면 더 잘 풀릴지도?

그래, 퍽이나 그렇겠다.

그들의 대화를 계속 지켜보고 싶었지만, 알래스터는 보란 듯 활짝 웃으며 새 패를 유심히 살폈다.

“야, 잠깐. 너 방금 내 카드 봤잖아!”

뱜🐍: 주로하는게무ㅕㄴ데?

펜셔스는 가능한 한 천천히 작은 글자 키를 누르는 데 집중하며 혀를 빼물었다. 사람들이 온전한 단어를 낱자로 줄여 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화면이 빌어먹게 작았다. 타자기를 배우는 것도 이것보다는 쉬웠는데!

불행하게도, 이 행동 덕에 방 안의 역한 공기가 제대로 느껴졌다. 으, 모든 것 위에 계시는 루시퍼여, 누군가 이곳에 며칠 내내 처박혀있었던 것 같은 냄새가 나옵나이다.

“프랭크! 창문 열어! 방공기가 역겨워.”

프랭크는 휘청휘청 창문으로 건너가서, 근처의 상자와 선반을 딛고 창틀로 뛰어올라 걸쇠를 풀었다.

상쾌한 바깥 공기가 들쳐 그의 더운 몸을 식혔지만, 유감스럽게도 방의 습도 또한 낮춰버렸다. 이 대가는 나중 가서, 그의 변변찮은 가습기가 방의 습도를 다시 높이는 데에 하루가 꼬박 걸릴 때에야 치를 터였다. 아, 뭐, 탈피를 앞두고 늘 목욕을 하고는 했으니, 뭐.

으.

뱀은 그날이 얼마나 임박했는지를 깨닫고 몸을 떨었다. 탈피의 굴욕감에 비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한때 인간이었던 그의 모든 것이 벗겨지는 기분이었다.

띠링!

엔젤더스트의 전화입니다!

전화를 받으며 그는 욕을 뱉었다.

“에—엔젤더스트! 안녕하세요!”

거미는 귀에서 전화를 멀찍이 떼며 얼굴을 찌푸렸다.

“펜, 소리 안 질러도 돼. 잘 들려. 어떻게 지내?”

걱정어린 웃음을 지으며, 펜셔스는 일어나 쭈뼛쭈뼛 스피커를 감쌌다.

“그럼요, 미안, 음, 더디……게 되고 있어요.”

그는 말을 끌며 꼬리를 긁었다. 새로 돋은 비늘에 비해 오래된 것들이 할가워지고 있었다.

엔젤은 복스타그램을 열고, 둘이 할 게임을 정할 때까지 피드를 넘겨보기로 했다.

“그래? 아직 옮을 것 같아? 아님 좀 나아졌어?”

그는 꼬리를 휙 튕겼다.

“뭐, 요즘은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알래스터의 보살핌이 많이 도움이 됐어요.”

“정말? 너무 심하게 굴지는 않고?”

알은 상당히 고압적이면서, 모순적으로 남의 퍼스널 스페이스는 시종일관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상대의 이름이 찰리가 아닌 다음에야 도움을 주지도 않았다.

보송보송한 붉은 귀가 소리를 듣기 위해 소파 뒤에서 휙 튕겨 나왔다.

“쥐를 먹이려고 했던 걸 제외하면? 그가 함께 있어 주는 건 꽤 좋아요. 당신들과 함께 ‘어울리던’ 게 그립지만요.”

마침내 친구를 갖게 되었는데. 그들과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게 펜셔스의 가슴을 후볐다.

의심에 차 눈썹을 치켜뜨며, 엔젤은 문제의 사슴을 한 번 흘겼다. 벨벳의 게시글이 눈에 띄었다. 복스가 최근 새로운 것에 집착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편평한 얼굴의 사내의 스크린이 섬뜩하니 푸르게 빛나는 흐린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전혀 안 불길해. 그는 스크롤을 내렸다.

잠깐, 쥐?

“잠깐, 뭐?”

“아하하, 네. 제가 뱀처럼 먹는 줄 알았나 봐요.”

역겨운 시선으로 알을 쳐다보며, 엔젤은 소파에 기댔다.

“걔가 사슴을 날로 먹는 걸 본 적 있어서 그리 놀랍지는 않네.”

냄새가 완전 최악이었는데.

“어쨌든, 쓸쓸하면 말이야, 너 좀 나아지면 같이 놀러 나갈래?”

“잠깐, 남들 앞에 나가고 싶다고요? ……저랑?”

펜셔스는 깜짝 놀라 제 모자를 쳐다보았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밖에서 마주쳤다면 엔젤은 주저 없이 엿을 날리며 총 하나 아님 네 자루를 꺼내 갈겼을 텐데.

오 이런, 이 사내는 밖으로 내보내야 했다. 친구도 좀 더 필요하고.

“응, 안될 거 없잖아? 나랑 체리가 느긋할 때 가는 바 있거든. 너한테 맞을 것 같아서.”

사레가 들려 콜록거리며 펜셔스는 벌떡 일어났다.

“오, 어, 그녀도 거기 있지는 않겠죠?”

다른 이들과의 소통을 지레 과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알래스터는 때때로 헷갈리게 굴었지만, 체리는 여전히 저를 싫어했다. 그는 그 밤에 둘 앞에서 창피해지고 싶지 않았다. 잠깐, 왜 알래스터가 함께 갈 거라고 생각했지?

왜 하고많은 이들 중에 알래스터 앞에서 창피해질 것을 신경 썼지? 알래스터 앞에서 창피를 당하는 건 숨 쉬듯 당연한 일이었는데.

엔젤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걘 여전히 널 싫어해. 있잖아, 남자들끼리만 놀 수도 있잖아. 우리끼리만. 어때?”

오, 정말 안심이었다.

“친구들이랑 한잔하고 싶어요!”

아,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건배도 하고, 술 게임도 해볼 수 있겠지!

“좋아, 나갈 수 있을만큼 괜찮아지면 말해줘.”

“흥미진진하군요, 기대되네요!”

그들이 방금 짠 계획에 알래스터가 끼어드는 소리에, 엔젤은 펄쩍 뛰며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그는 제 자리에 구부정하니 앉아, 알래스터에게 또 져서 명백히 성이 난 허스크를 쳐다보았다. 그 알래스터는 빙긋 웃으며 여전히 가득 찬 젤리 그릇을 손에 든 채였고. 그 역시 단 것은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두 분 다 배우신 바가 없어 기쁘네요.”

엔젤은 투덜대며 몸을 낮춰 제 폰이 어디로 갔는지 쿠션을 뒤졌다.

“여보세요? 엔젤?”

알래스터의 손톱에 붙들린 그의 폰에서 새된 외침이 울렸다.

알래스터는 삿된 미소를 지었다. 제 애완동물을 감독 없이 놀게 두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다. 하지만 방에 오래도록 처박혀있던 뱀에게 재충전이 다소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알래스터는 제 애완동물이 취하면 어떻게 굴지 궁금했다.

제 먹잇감이 경계를 풀면 얼마나 더 재미있을까?

엔젤은 그의 핸드폰을 낚아챘다.

“좋아, 펜, 무슨 게임 하고 싶은지 보낼게. 내 에서. 혼자 조용히 있을 수 있을 때.”

참견하기 좋아하는 놈이란.

자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펜셔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음, 안녕?”

엔젤은 방을 나서며 알래스터에게 엿을 날렸다.

“안녕.”


새벽 여섯 시는 일어나기엔 너무 힘겨운 시간이었다. 다행히도, 복스는 잠들 필요가 없는 이였다.

발과 뉴스 인터뷰를 처리하는 중간에, 무슨 거지 같은 이유에선지 그의 쇼 주파수가 전부 꼬여버린 이유로 지난 몇 시간 동안 진화 작업 중이었다.

그리고 아마 그 이유는, 알래스터 탓일 거라고 복스는 100% 확신했다.

사무실로 몸을 질질 끌고 가 그는 의자에 풀썩 쓰러졌다.

“젠장, 앞으로 네 시간은 날 방해할 새끼가 없는 게 좋을 거다.”

그는 낮게 툴툴거리며 머리 위의 모니터를 켰고, 순간 그의 모니터가 다운되고 갑작스러운 충격에 몸이 의자로 크게 떠밀렸다.

“미친!”

숨을 헐떡이며 그는 머리 위의 수많은 화면을 노려보았다. 특히 그중 하나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미친 맙소사!”

펄쩍 뛰며 그는 거의 머리를 화면에 붙일 듯 들여다보았다. 스크린에는 며칠 동안 굳게 닫혀있다 마침내 열린 창문이 비치고 있었다.

카메라 화상은 뱀의 방 내부를 확대했다.

침대 옆에는 책들이 쌓여있고, 가습기와 잡스러운 부품들이 방에 널려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한동안 칩거한 듯한 모양새였다. 그 누군가로 말하자면, 그 빌어먹을 뱀(펜터프? 펜티스?)은 시트 아래 편히 자리 잡고 팔다리가 달린 계란 같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존나 이상해.

“음, 아무도 안 일어났으니까…….”

그는 개조 보지텍 드론의 컨트롤러를 쥐고 안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잡다한 기계 부품들이 한 구석에 쌓여있는 책상을 빼면, 형편없는 벽지와 낡은 가구가 있는 여느 호텔방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책상 위엔, 선명한 붉은색 머그잔이 있었다. 카메라가 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확대했다.

“씨발.”

그는 근처의 선반 맨 꼭대기에 기체를 숨기고, 아슬아슬한 순간에 시야에서 벗어났다.

바로 몇 초 뒤에, 문짝처럼 생긴 널빤지가 채여 넘어진 탓이었다. 그리고 그 잘빠진 개새끼가 거기에 있었다. 항상 못박혀있는 멍청한 미소와, 언제나 흠잡을 데 없이 딱 맞고 칼같이 다려진 수트, 그리고 사슴처럼 쫑긋거리는 귀와, 구린 보타이를 맨—

“알래스터, 문을 고칠 생각이 없다면 최소한 이런 이른 아침에는 조용히 들어오려고 노력이라도 해요. 내 알들이 놀라잖아요!”

뱀이 쉿쉿거리며 알들을 가리켰다. 그것들은 눈을 크게 뜨고 뱀의 꼬리를 꼭 붙들고 있었다.

불평을 처리하는 대신, 그 악마는 예의 알들을 옆으로 밀어내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죽그릇을 상대의 무릎 위에 놓았다.

“자, 그게 황송하게도 당신 아침 식사를 만들어온 이를 맞이하는 방법인가요?”

놈에게 요리를 해줘? 큰 충격이 복스의 스크린 전체에 끼쳤다. 고통이 몸을 조이고, 화면이 노이즈로 붉게 흐렸다. 놈들 사이에 일이 있는 거지?

복스 이상으로 자기밖에 모르는 사내, 라디오 악마 알래스터가, 따뜻한 홈메이드 아침 식사를, 목욕 가운만 걸치고 침대에 누운 다른 사내에게 가져다주고 있었다. 지옥이 얼어붙을 노릇이었다. 우주의 법칙이 완전히 좆된 게 아니라면, 이는 저 망할 놈의 짓거리 탓이리라.

시야가 선명해지고 복스가 다시 염탐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보았다. 알래스터가 뱀의 볼을 꼬집고, 그것의 갈라진 혀가 빼꼼 나오는 모습을. 안돼. 분노가 다시 치밀고 그의 손톱이 의자 팔걸이를 파고들었다.

“그 애기가 아이에여!”

“오, 그래요? 그럼 무슨 얘긴데요?”

저거 수작질이었어? 그는 화면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저 망할 어조를 분석하려 했다. 거의 애정 어린 것처럼 들렸지만, 알래스터가 결코 떼놓을 수 없을 특유의 자기만족적 톤이 있었다.

만일 그게 수작질이었다면, 그것은 뱀에게는 전혀 전달이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불퉁해져서는 알래스터의 손을 쳐냈다.

“애초에 문을 부순 게 당신이라는 얘기죠! 어휴.”

그는 한숨을 내쉬며 한술 가득 떠 작은 탄성과 함께 맛을 즐기고는, 상대를 가리켜 책하는 투로 말했다.

“계속 이러시면 이번 주말에 남자들끼리 놀러 나가는 거 재미 못 볼 줄 알아요.”

알래스터는 근처의 책상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는 김이 피어오르는 제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하! 어디 한 번 해보세요.”

붉은 눈이 도전적으로 가늘어졌다. 그는 제 코트 안으로 손을 넣었다.

이거지! 그의 자존심은 뱀의 저런 태도를 묵과하지 않을 터였다. 뱀은 이제 좆될 것이고, 이는 일종의 뒤틀린 절정감처럼 복스가 완전히 몰두하게 했다.

“그럼 체스로 끝을 볼까요?”

뭐? 이게 뭔 짓거리야?*

뱀이 짜증스레 신음을 흘리며 팔짱을 꼈다.

“또요? 어제 열다섯 판이나 뒀잖아요!”

씨발! 살면서 겪은 최악의 절정감이었다. 그래, 알래스터는 언제나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놈이었다. 놈이 졌을 때, 상대는 보통 그의 접시에 오르곤 했다.

알래스터의 미소가 뒤틀렸다. 그는 체스판을 상대의 앞에 두었다.

“그럼 거래를 더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앞으로 몸을 숙이며, 겹친 손에 턱을 괴고, 열기 어린, 거의 색정적이기까지 한 어조로 그가 말했다.

뱀이 입을 떡 벌렸다.

“체스게임에 제 영혼을 넘기진 않을 거예요!”

젠장, 홀랑 넘어갈 만큼 충분히 멍청한 놈 아니었나? 전엔 단순한 사탕발림에도 쉽게 넘어왔었는데. 미세한 노이즈의 충격이 복스의 손을 타고 흘렀다. 그는 의자를 더 세게 쥐었다.

“오, 절대 안 그럴 거예요! 당신이 이기면, 문을 고쳐드리도록 하지요.”

“제가 지면?”

붉은 시선이 느리게 왼쪽으로 향했다. 안돼, 놈들이 설마—

“내일 당신이 탈피할 때 옆에 있을 거예요.”

이거였구나.

당연히 알래스터가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선행을 베풀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복스와 같았다. 복스에게있어서 만인은 도구였고, 발에게는 장난감이었고, 벨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알에게는 상기한 그 모든 것이었다. 안도감이 넘쳐흘러 복스를 적셨다. 그는 자리에 편히 기대앉았다.

허나 그게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는 주먹에 제 모니터를 기대 몸을 구부리며 생각에 잠겼다. 알래스터같은 이를 이토록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게 뭐든 간에 주말이 관건이었다.

복스가 더 지켜보기 전에, 달콤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복시이—, 침대로 와아아—.”

의자 뒤에서 길고 나긋한 팔이 그의 늘씬한 어깨 위로 드리웠다. 젠장, 막 재미있어지던 참이었는데.

어젯밤이 충분치 않았던 것처럼, 발의 손이 지분거렸다. 늘 충분했던 적은 없었지만. 허나 복스는 그 뱀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을 보지 못해 잔뜩 억눌려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알래스터가 놈을 따먹을 거라고 잠시나마 생각했던 것 때문에라도.)

짜증스레 몸을 일으키며, 그는 제 남자 친구의 팔을 어깨에 걸고 그를 끌어당겼다.

“두 번 말 안 해도 돼.”

그는 너무 열이 올랐던 탓에, 그가 좀 전까지 바짝 붙어 앉아 있던 화면을 발이 힐긋 돌아보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네가 일찍 침대를 비웠으니까.”

“어차피 거기서 자지도 않는걸…….”

복스는 중얼거리며 그의 잠이 덜 깬 남자 친구를 그들의 방으로 이끌었다. 그의 손끝에서 작은 전류가 흘러 문을 잠갔다.

그의 바지는 이미 팽팽한 느낌이었다.


* Slower Than Molasses : 설탕 녹인 것처럼 끈끈한 것이 느리게 흐르는 것에서, ‘매우 느림’의 의미.

** preferred poison : 직역하면 선호하는 독(혹은 술). 향유자에게 해롭거나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습관 등을 일컬음.

* service dominent : BDSM 용어로, 상대방을 충족시키는 것에 중점을 둔 지배성향자.

** Speak of the devil :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 원문은 ‘Speak of the devil.’이며, ‘Speak of the devil, and he is sure to appear.’가 본 문장임. 악마를 입에 담으면 악마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뜻으로, 알래스터는 이 말에 대해 ‘루시퍼(악마의 대명사)는 여기 없다’고 대꾸하고 있음.

* tease : 성관계를 할 의사가 없으면서, 상대방에게 성적 자극을 주는 행위. 원문은 ‘Was this some sort of tease?’ 알래스터가 펜셔스를 때려잡을 것처럼 굴다가 체스판을 꺼내 맥빠지게 구는 것에 대한 못마땅한 표현.

+ 원문에서, 펜셔스가 메시지를 보낼 때의 오타는 저정도로 심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국어로 옮기면서 오타를 살짝 섞으려다보니 오타가 아니라 그냥 맞춤법을 모르는 것처럼 보여서ㅠ 부득이하게 오타를 과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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