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For Thought 생각할 거리
16. 얼음 깨기*
원제: Food For Thought
저자: BlueberryPaincake
펜셔스는 마침내 허물을 벗고, 알래스터는 엿을 먹고, 복스는 욕구불만에 시달리며, 허스크와 엔젤은 무료 공연티켓을 얻는다.
펜셔스는 거칠게 헐떡이며 침대 위에서 버둥거렸다. 그의 움직임에 베개들이 밀쳐졌다. 그의 꼬리에서 벗겨진 껍질은 불투명한 흰색이었다. 그는 손을 쓰지 않고 매우 조심스럽게 껍질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왜냐하면, 빌어먹을, 어느 한 군데라도 당겼다가는 걸린 부분이 찢어질 테니까.
때문에 그는 시트를 붙들고 허물에서 하체가 미끄러져 나오도록 애쓰고 있었다. 무게를 지탱하느라 팔이 떨렸다. 그는 잠시 그대로 누워 눈가를 훔치며 숨을 돌렸다.
수 세기 동안 이 몸에 적응해 왔지만, 이 모든 시련은 너무나도 굴욕적이었다. 게다가 너무나 불공평했고! 눈물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끙 앓는 소리와 함께, 마침내 그는 꼬리의 가장 큰 부분을 껍질에서 빼내는 것에 성공했다. 펜셔스는 약간 앞으로 기어갔다.
이토록 좌절스러운 일에 시달리는 죄인들은 매우 드물었다. 물론 거미 역시 탈피를 하기는 했다. 주로 성장하는 중에만. 거지같이 매년 여섯 번씩이나 하는 게 아니라! 엔젤더스트는 운이 좋은 셈이었다. 사지를 잃는 대신 두 개를 더 얻었으니까!
게다가, 꼬리의 탈피는 최악이었다. 꼬리 허물은 허리 부근에서 갈라지는 통짜로, 다 벗어내기 전에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때로는 다른 날보다 쉬울 때도 있긴 했지만, 그의 가습기가 완전히 쓸모없었기 때문에,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지금은 (솔직히 너무 부끄러운) 넓은 엉덩이를 제 가는 허리의 허물에서 빼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꿈질거려야 했다.
똑똑똑!
“거기이— 다 끝났나요———?”
알래스터는 새 문짝의 작은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보려 애썼다. 호기심이 그의 속을 긁어댔다. 제 뱀의 탈피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을 참관하지 못하게 된 데서 비롯된, 해가 될 정도로 큼지막한 좌절감도 함께였다. 이는 전부 스테일메이트*로 끝나버린 비운의 대결 때문이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 애완동물이 체스 열다섯 게임 중 여덟 판을 먼저 이기고, 다음날은 비겼다. 그는 대부분의 경우 절대적으로 바보였다. 물론 그는 과학적 기계와 기타 등등을 만들 수 있기는 했지만, 알래스터 같은 플레이어를 상대로 체스 같은 것에서 이기는 데 필요한 전략적 사고를 한다? 만약 알래스터가 저 망할 뱀에게 한 게임을 체스판을 보지 않은 채 종이에다 행마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다면, 부정행위는 그의 첫 번째 추정이었을 것이다.
“아, 아직요! 아직 들어오지 마요!”
그 순간 펜셔스는 게임의 결과에 무척 감사했다. 그의 가슴이 크게 오르내렸다. 그는 무슨 멍청한 이유로 꼬리 끄트머리에 허물을 아직 붙인 채 나체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욕을 뇌까리며, 그는 잠시 제 꼬리의 새 비늘을 쓰다듬었다. 적어도 최악의 부분은 끝마쳤다.
“씨발 제일 쩌는 부분이 벌써 끝나?”
복스는 사무실에 앉아서, 뱀—지난번 이 한심한 루저를 써먹으려 했을 때 그의 비서가 어떻게든 확보했던 정보에 따르면, 놈의 이름은 펜셔스였다—의 라이브 영상을 보고 있었다. 영상 속에서 뱀은 발가벗은 채 발정난 것처럼 시트 위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늦은 시간, 호기심이 복스를 드론으로 다시 이끌었고, 그는 알래스터가 패배한 것을 알고 미친 듯이 황홀해했다. (그 악마같이 자아가 비대한 자에게 있어 무승부란 기본적으로 패배나 마찬가지였다) 허나 그는 깨달은 것이다. 알래스터가 원하는, 그러나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자신은 보게 되었음을.
이 생각만으로도 바로 다음 날 여섯 시에 다시 일어나 영상을 보며 녹화를 뜨기에는 충분했다. 왜냐하면, 자신은 가질 수 있었으니까. 다 큰 도마뱀이 허물 벗는 것 따위를 그가 보통 신경 쓸까? 그럴 리가.
허나 그는 인정해야 했다. 몸부림치고 숨을 몰아쉬는 뱀을 보는 것은 놀랍게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절대로 섹시해서가 아니었다. 복스는 결코 그런 가치 없는 쓰레기에게 끌리지 않을 테니까. 허나 그가 모양을 갖추려 아등바등 몸부림치는 비참한 모습을 보는 것은 꽤 재미있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쇼는 갑자기 중단되었지만.
문을 부수는 대신, 알래스터는 문고리를 비틀어 뜯는 것을 택했다.
“들어갑니다!”
“뭐 하는 거예요!”
펜셔스는 침대로 몸을 던졌다. 시트를 당겨 몸을 가리며, 그는 쉿쉿거렸다. 방어적인 반응에서뿐 아니라,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그의 비늘에서 오래된 껍질이 뜯겨나간 탓이었다.
“거래했잖아요!”
그는 쳐들어온 악마에게 항의했다. 허나 놀랍게도 알래스터는 눈길도 주지 않고 침대를 지나쳤다.
그는 어제부터 줄곧 저를 괴롭히던 신호를 뒤쫓아 선반 앞으로 향했다. 뼈가 우두둑 꺾이는 소리와 함께 그의 등뼈가 서서히 자라났다. 반짝이는 검은 렌즈가 그의 머리를 주시하고 있던 선반 꼭대기를 볼 수 있을 만큼 높이.
“뜻밖의 관객이 있는 것 같군요! 안타깝지만 이 프로그램은 여기서 끝입니다.”
그는 손안에서 카메라를 바스러뜨리고, 그 빌어먹을 것을 바닥에 내던졌다. 금속과 전선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흡족했다.
복스는 책상에 주먹을 내리쳤다.
“씨발!”
그는 컨트롤러를 있는 힘껏 방에 패대기치며, 암전된 화면에 악을 썼다. 저 씹새끼가 어떻게 찾았지? 하루 종일 낌새도 못 챘었는데?
“어, 어, 어떻게 찾은 거예요?”
펜셔스는 침대 끄트머리에서 고철 더미를 건너보았다. 그것은 얼마 전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복스텍 드론과 무척 흡사했다.
“내 방에서 뭘 하고 있던 거죠?”
오, 루시퍼여, 그가…… 엿보이고 있었나이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는 이미 흐르는 코를 훔치며 후드 뒤로 얼굴을 숨겼다.
“보, 복스가 이런 제모습을 봤다고요?”
알래스터는 눈을 굴리며, 자신이 주파수의 근원을 혼동하게 만든 그 웃기지도 않은 휴대전화를 쥐고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그 말 뒤에 가려진 진의가 서서히 이해되자, 차가운 분노가 엄습해 왔다.
자신이 보지 못한, 제 애완동물의 탈피를, 복스가 보았다. 제 애완동물을.
그의 미소가 얼굴에 드리웠다. 그는 빙 돌아 뱀을 침대로 밀쳐넣었다.
“가장 취약한 때에 저를 쫓아내는 건 다시 생각해 봤어야죠. 그럼 저는 그 신호를 알아챘을 것이고 이따위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뱀의 위로 몸을 드리우며, 그는 뱀의 얼굴에서 그의 손을 홱 떼어냈다. 충격으로 눈물범벅이 된 뱀의 한심한 표정이 잘 보였다.
펜셔스는 갑자기 변하는 공기에 몸을 움츠렸다. 그는 빛나는 붉은 눈을 올려다보며, 눈을 깜빡여 눈물을 떨어냈다. 이게 어째서 제 잘못인가?
“부, 부당해요! 여태 저를 엿보려던 사람은 없었어요. 저 드론이 여기 있던 건 당신 때문이겠죠!”
뼈를 부러뜨릴 만큼 손아귀가 강해졌다. 이 하찮은 뱀이 자신을 상대로 전략을 쓰고 있었다.
“그따위 역겨운 것들과는 엮이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더 맞죠.”
“하나도 못 샀잖아요. 아마 복스는 당신을 따라온 걸 거예요!”
젠장. 이는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침대 아래에서 촉수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시트를 뜯어내고 펜셔스를 넘어뜨려 그 자리에 얽맸다. 그가 알래스터를 알지 못했다면 폭행을 당하리라 생각했을 터이나, 그 대신 아마 그저 수치스러워지리라. 적어도 그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좋아요. 제 잘못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거래를 했고, 이제는 제가 당신의 탈피를 돌볼 겁니다.”
복스는 알래스터가 원하던 것을 봤을 수는 있지만, 실제로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 생각이 치솟던 그의 분노를 사그라뜨렸다. 그는 제 애완동물의 배로 손을 뻗었다.
“아니, 잠깐만요, 누구 잘못도 아니잖아요, 복스 잘못이지!”
그는 반사적으로 배를 집어넣었다. 알래스터의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손길에서 멀어지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할가워진 비늘을 집고 느리게 벗겨냈다. 펜셔스가 움츠렸다. 다행히도, 이는 제 상체를 관리하는 올바른 방법이었다. 덕분에 그는 상대를 교정하기 위해 목숨과 사지를 걸 필요가 없었다.
알래스터는 완전히 몰두한 채, 천천히 허물을 작은 조각으로 벗겨내기 시작했다. 그는 이 새로운 경험에 철저히 즐거워했고, 만족했다. 이 기회를 기다리는 동안, 호기심은 하루하루 그를 좀먹었다. 이제 그것을 얻었으므로, 그는 분노를 나중으로 미뤄두기로 했다.
“그래요.”
그 악마는 그저 펜셔스를 달래기 위해 수긍했을 뿐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뱀은 신음하며 제 묶인 팔을 끌어당겼다.
“이제 좀 풀어주실 수 있을까요?”
한쪽 눈이 그를 향해 입 다물라는 시선을 보냈다.
이후 이십분간 어색한 침묵만이 가득했다. 알래스터는 펜셔스의 몸 전면을 주의 깊게 살폈고, 펜셔스는 일련의 접촉에 몸을 꿈지럭거리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이러한 접촉을 한 적이 없었다. 하물며 방금 전에 제 손목을 부수려 했던 자에게서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알래스터는 정말로 제 행위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마침내 알래스터는 제 애완동물의 목까지 도달했다. 그는 펜셔스를 붙들었던 촉수를 풀어주기로 했다. 그의 태도가 충분히 마음에 들었고, 알래스터는 펜셔스의 얼굴에 닿기 위해 그의 위에 올라타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므로.
“일어날 시간이에요.”
펜셔스는 그의 요구대로 했다. 최악의 부분은 이미 끝냈고,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랬지만, 알래스터가 너무 가까이 다가왔고, 그는 패닉에 빠졌다.
“자, 잠깐만요! 얼굴은 제가 할 수 있어요. 혹시…… 음, 제 후드를 해주실 수 있나요? 뒤에는 손이 안 닿거든요.”
“흠. 그러죠.”
그는 빙 돌아 박피를 마저 이어갔다. 그 이상한 머리털 같은 물질은 알래스터의 발톱이 가까워지자 멀어졌다. 그는 다시 손을 뻗었다. 또였다.
“그만.”
그 빌어먹을 것을 세게 움켜쥐고, 그는 머리채로 상대방을 가까이 끌어당겨 제 일을 마저 했다. 밑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화들짝 놀란 펜셔스는 탈피 중이던 제 망할 눈을 거의 찌를 뻔하고는 쉿쉿거렸다.
“부드럽게요! 거기도 눈이 있다고요!”
알래스터는 가볍게 무시했다. 그는 펜셔스의 후드 비늘이 아주 약한 당김만으로도 쉽게 벗겨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참 간단하군……
껍질 벗겨지는 소리에 라디오 악마의 머릿속에서는 흡족한 도파민이 터져 나왔다. 그는 상대의 등을 따라 내려갔다. 그러다 그는 알아차렸다. 저들이 모든 비늘을 다 벗겨내었음을. 실망스러웠다. 그렇지만 쇼의 진짜 주인공은 바닥에서 얌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은 허물은 가죽 같았다. 그는 그것을 들고 벽에 대보았다. 이걸 자르면 얼마나 크게 펼칠 수 있을까? 어디 두면 잘 어울릴까? 벽난로 위? 아니면 악어 뼈 아래? 너무 많은 선택사항이 있었고, 시간은 너무 적었다.
“그, 그냥 간 거야?”
그는 마지막 남은 눈꺼풀의 비늘을 벗기다 말고, 입을 떡 벌린 채 방금까지 알래스터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충격은 곧 사라지고, 그의 가슴에는 불편하고 무거운 감정만이 남았다. 분명 알고 있었다. 라디오 악마는 그저 제 흥미 본위로 저를 돕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이불을 당겨 몸을 감싸고, 침대에 점점이 떨어진 껍질 조각들을 쓸어냈다.
“처음엔 복스, 이젠 이…….”
뱀은 또다시 울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용당하고, 훼손되고, 훔쳐보이고, 그리고, 그 모든 것 뒤에는, 홀로 남겨졌다. 마치 생전처럼. 그리고 더 나쁘게도, 그 평면 텔레비전이 저를 일컫는 것처럼. 그는 코를 훌쩍이며 이불을 머리 위로 덮었다.
어쩌면 사후관리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제 알들은 어디에 있지?
“일단 이 정도면 되겠군요.”
그가 슬쩍한 허물은 각양각색의 문양이 새겨진 작업대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는 나중에 자를 것이다. 지금 알래스터에게는 해야 할 다른 일이 있었다.
알들은 분주하게 침대 주위를 돌아다녔다. 한 녀석은 마사지 오일병을 들고, 다른 알들은 탈피 후에 남은 잔여물들을 쓸었다. 그동안 찰스는 제 보스의 머리를 위로하듯 다독거렸다. 비록 크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펜셔스가 몸을 이끌고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대게 할 만큼의 위로는 되었다. 마사지는 스트레스를 받은 후에는 항상 도움이 되었다.
“고작 몇 분 자리를 비웠는데 그새 이렇게 된 건가요.”
솔직히, 제 애완동물이 자기 없이 어디에 있을 수 있을까? 알래스터가 돌아왔을 때 그의 뱀은 또다시 울고 있었다. 어느 정도는 자업자득이었다. 결국에 그가 제 말을 들었더라면……
양양히 웃는 악마를 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치솟기에는 충분했다.
“이젠 또 뭘 원하는데요?”
코 막힌 소리 탓에 그가 바라던 날섬이 부족했지만, 어차피 마찬가지…… 알래스터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터였다.
“저요? 오, 더는 없어요.”
뒤뚱뒤뚱 다가오던 알에게서 병을 낚아채며, 그는 문을 가리켰다.
“훠이.”
알들을 쫓아내고, 그는 물 한 잔을 따라 상대에게 밀어주었다.
“하지만 탈피 후에 수분을 보충하는 건 중요하지요.”
그의 뱀은 등지고 누워 이불을 몸 위로 더 끌어당겼다.
“이제는 제 몸 건강에 관심이 생긴 건가요? 저기요, 원하던 건 다 얻었잖아요. 그러니까 날 좀—”
말을 마치기 전에, 그의 머리까지 덮여있던 이불이 젖혀졌다. 알래스터는 다시 한번 무섭도록 커져 있었다. 그의 몸은 전신이 기워져 모든 것을 힘겹에 이어 붙여놓고 있는 것 같았다.
“저는 그 어떤 것도 대충 하는 법이 없습니다. 마셔요.”
펜셔스는 잔을 낚아채 오 초 만에 물을 들이켜고, 알래스터에게 다시 떠안겼다.
“만족해요?”
목소리에 밴 태도에, 알래스터의 목이 꺾였다. 커다란 손으로 상대의 허리를 사실상 움켜쥐고는, 그는 펜셔스를 들고 그림자가 이미 준비를 마쳐둔 욕조가 있는 욕실로 끌고 갔다.
“아뇨. 자, 당신 그런 태도는 버리는 게 좋을 겁니다. 남 앞에 보일만하게 매무시할 때까지 이 방에서 못 나가게 할 거거든요.”
그의 문장은 물 튀는 소리로 끝났다.
“그럽시다. 근데 제가 알아서 씻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샤워 타월을 쥐고 펜셔스는 곧장 일을 시작했다. 더는 알래스터와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그를 빨리 내보내고만 싶었다.
만족한 알래스터는 방을 나가 제 애완동물이 새 비늘로 재데뷔를 할 때 입을 옷을 고르기로 했다.
“흠, 끔찍한 선택지가 너무 많군…….”
그는 콧노래를 불렀다. 아마도 샤르트뢰즈를 찾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솔직히 이 시점에서는 뱀의 저런 태도도 식상해지고 있었다.
젠장. 알래스터가 떠나자, 문질러 닦던 손이 느려졌다. 과장이 아니라, 그런 거친 움직임이 그의 새 비늘을 타는 듯 고통스럽게 한 탓이었다.
“당신이 입을 옷은 침대 위에 뒀습니다. 저녁 식사 때 뵙지요! 그럼 이마안—!”
문이 쾅 닫혔다. 알래스터는 제 최신 전시품 작업에 열중하러 떠났고, 펜셔스는 홀로 투덜거렸다.
식당에 잡음이 가득 울렸다. 물론, 라디오 악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였다. 다행히도 허스크는 이에 대해 묻지 않을 정도의 상식은 있었다. 대신 공동 냄비에서 접시 가득 잠발라야를 가득 퍼담는 데에 집중했다. 게다가, 그가 왜 기분이 나쁜지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펜셔스는 아래층으로 내려오자마자 소파에서 제 두 친구를 거의 덮치듯이 껴안았다. 고양이가 짜증스럽게도.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활기가 넘쳐 보였고, 그의 비늘은 더욱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가 입고 내려온 긴 스웨터 아래에서조차. 마치 무엇이 두 주간 뱀을 방에서 꼼짝 못 하게 만들었는지를 알기엔 모두가 너무 멍청한 것처럼. 하!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돌아와서 좋았다.
“아, 샬럿, 물병 좀 건네줄래요?”
펜셔스는 이미 두 번째 그릇의 절반을 먹고 있었다. 마치 일주일 치의 허기가 한 번에 몰려든 것 같았다. 포옹 후에 곧장 식탁으로 달려—아니 기어갔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그가 그 모든 음식 중간중간 계속 목을 축여줘야 함을 의미했다. 실제로 아주 많은 양의 물로.
모두가 저들 잔을 채울 때쯤 그는 세 번째 잔을 마시고 있었다.
“아, 물론이에요! 나아져서 기뻐요, 펜셔스 경.”
찰리의 손은 붉은 발톱 달린 손에 제지당했다. 알래스터의 표정은 매우 명백하게 껄끄러웠다. 그는 뻣뻣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
“물이 마침 떨어졌네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아니, 아니, 일어나지 마세요. 제가 하겠습니다.”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었다.
물병이 펜셔스의 바로 옆에 놓였다. 그는 상대를 쳐다보지 않은 채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헌데,”
그 말투에 허스크의 귀가 가라앉았다. ‘무슨 이유로 나를 열받게 만들었는지 설명하는 게 좋을 거다’라는 의미를 담은 톤이었다. 그들은 곧 팝콘을 씹게 될 것이다.
“당신이 입은 스웨터가 정말 눈길을 사로잡네요. 그걸 고른 이유가 있나요?”
달걀이 그려진 노란 스웨터가 대체 뭐라고 이런 끔찍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단 말인가?
뱀은 억지로 웃으며 제 옷의 목 언저리를 초조하게 잡아당겼다.
“아, 이 낡은 거요? 음, 오늘은 좀 편한 걸 입어야—아니, 입고 싶었거든요! 다른 것들은 너무 갑갑했어요. ……안타깝지만.”
행간을 읽자 하니……
아니. 허스크는 저 스웨터에 뭔 문제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는 비슷한 혼란을 느끼고 있을 엔젤을 쳐다보았지만, 이 장면을 빌어먹을 연속극 시청하듯이 관람 중인 거미의 옆얼굴만을 보았을 뿐이다. 그렇겠지.
“놀랍군요. 입을 게 그렇게나 없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네요.”
알래스터는 마침내 제자리로 돌아갔고, 펜셔스는 치를 떨며 쉿쉿거렸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씨발…… 허스크는 긴장을 깨는 역할을 맡는 게 정말 싫었다. 두 고래*를 건드리는 대신, 그는 엔젤을 향해 말했다.
“그래서, 가자던 바가 어디라고? 어딘지 말 안 해줬잖아.”
거미가 대답하기 전에 찰리가 숨을 헉 들이켰다.
“놀러 가? 재밌겠다! 그냥 묻는 건데,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데, 왜 우리는 초대받지 못한 거야?”
그녀는 끼지 못한 슬픔을 최선을 다해 감추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야 남자들만의 밤이니까.”
엔젤은 말하면서 포크를 흔들었다.
“페니가 나아지면 주말에 데리고 나가자고 했거든.”
거미는 허스크를 바라보았다.
“그 바는…… 있지, 실은 클럽이야. 펜, 네 스타일일지는 모르지만, 아니면 좀 더 찾아보고—”
목이 막혀 말이 안 나오자 펜셔스는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아니, 아뇨! 걱정 마요, 따라갈 수 있을 거예요! 무슨 클럽이었죠?”
자신 있는 척 웃는 그의 왼쪽 눈가가 파들파들 떨렸다.
“음, 저기,”
찰리는 걱정스레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바가 좀 더 낫지 않을까? 그게, 구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 좀 더…… 음, 적절한 다른 곳을…… 어—”
배기는 한숨을 쉬며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찰리 말은, 이 시점에 클럽은 너무 과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거야.”
허스크는 어깨를 으쓱하며 엔젤과 펜셔스의 반발을 무시했다. 저들이 어디로 갈지는 정말로 상관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미소가 서서히 커지며 갑작스레 왼쪽으로 고개를 꺾는 시뻘건 탐폰 새끼가 그의 눈에 띄었다.
“자, 이번에는 두 분이 훌륭한 지적을 했군요! 누군가가 인솔자로 함께 가야겠네요.”
“좋은 생각이에요, 알래스터! 호—옥시—이 당신이 가줄 수 있을까요? 어쨌든 당신도 남자니까, 낄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찰리는 미끼를 덥썩 물었고.
펜셔스가 그의 옆에서 쉿쉿거렸다. 하지만 허스크가 눈썹을 치켜뜨는 반응을 보이자 곧바로 제 그릇에 얼굴을 파묻었다. 하지만 엔젤은 싸우지 않고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찰리, 우리는 애가 아니야. 우리끼리 갈 수 있어. 게다가 허스크도 함께 갈 거고, 그는 호텔 직원이잖아.”
알래스터는 가슴에 손을 얹고 상처받은 시늉을 했다.
“참으로 가혹하군요! 저는 이미 제가 함께 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런데 여기서 초대를 무르려고 하시다니.”
“야, 잠깐만! 네가 간다고 한 거잖아, 그리고 지금도 또 그러고 있고.”
손을 내저으며, 그 악마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소한 건 됐고요. 어쨌든, 당신 정말로 주정뱅이가 당신들을 챙겨줄 거라고 믿는 건가요?”
개소리는 이걸로 충분했다. 큰 소리와 함께 허스크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설거지하러 간다. 어쩌든 상관없으니까, 언제 어디로 갈 건지만 말해줘.”
짜증스레 신음하며 엔젤은 손으로 머리를 받쳤다.
“젠장, 됐어, 그래! 어차피 그냥 편하게 놀려던 거니까.”
예민한 귀 덕분에 부엌에서도 여전히 대화를 들을 수 있었지만, 그는 물소리로 그걸 무시하기로 했다. 설거지가 끝났을 무렵엔 대화도 끝나있었지만, 저따위 멋진 환경으로 돌아가는 것은 정말 내키지 않았다. 대신 그는 바의 재고를 채워 넣는다는 구실로 팬트리에 숨어있기로 했다. 실제로 그는 아무 이유 없이 잡다한 깡통의 라벨을 읽으며, 저녁에 먹다 남은 맥주를 홀짝이면서 그저 앉아만 있었다.
선반 사이로 작은 빛줄기가 비칠 때까지.
“안녕, 거기 낯선 분. 이런 데서 만나니 반가워요.”
허스크는 제게 미묘한 웃음을 설핏 짓는 엔젤을 쳐다보았다.
“어. 새로운 클럽하우스에 온 걸 환영합니다. 들어올 때 문은 닫아주시고.”
건조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유머와 약간의 미소는 분명히 전해졌다. 그래서 엔젤도 함께 웃었다.
문이 조용히 닫혔다.
“괜찮아? 알이 비겁했지.”
아, 그렇지. 애초에 제 취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자식에게 알코올중독자로 불린 거. 전엔 더 나을 때도 있었지. 분명히.
“어, 난 괜찮아. 그냥 그……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야.”
그는 병을 들고 식당을 가리켰다.
“게다가 틀린 말도 아니고. 내가 알코올 쓰레기는 아니긴 하지만, 너희랑 놀러 나가서 보모 노릇 할 생각은 아니었거든.”
죄책감이 엔젤을 짓누르는 듯했다. 그의 어깨가 목까지 움츠러들었다. 그는 근처에 있던 콩 통조림 더미 위에 앉아, 옆의 벽에 기댔다.
“그건 정말 미안해. 난 그냥, 모두 참견 못 하게 하려다가.”
허스크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널 탓하는 게 아냐. 나도 놈이 주변에 얼쩡거리는 건 싫거든.”
엔젤이 여전히 그 일로 마음이 안 좋다는 것을 느끼고, 허스크는 팔꿈치로 그를 쿡 찔렀다.
“근데 저 둘은 뭐 어떻게 된 거야, 응? 스웨터 때문만은 아닌 거 같은데.”
엔젤은 빈정거리듯 웃었다.
“내 말이. 암호로 대화하는 거 같던데. 무슨 로맨틱 코미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허스크가 대답하기도 전에, 주방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둘은 문틈으로 펜셔스가 소매를 걷고 스펀지를 쥐는 모습을 엿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탈피 후에 뭔가가 확실히 달라 보였다. 불만에 차 보이는 것 말고도, 그의 얼굴이 뭔가 달랐다.
“아이섀도를 했나?”
허스크는 엔젤을 올려다보았다. 엔젤 역시 뱀을 자세히 살피고 있었고, 깨달은 것이다. 그의 눈꺼풀 비늘이 붉은색을 띠고 있는 것을. 낯설었다.
날카로운 발굽 소리가 주방에 새로운 악마의 등장을 알렸다. 펜셔스의 몸이 굳는 것을 보아하니, 알래스터임이 분명했다.
그래. 그는 뱀의 바로 옆에 자리 잡았다. 명백한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둘은 조용히 일만 했다. 마치 라디오 악마가 압박감에 무너지는 펜셔스의 모습을 보고 싶기라도 한 것처럼.
하지만 그 대신 이 남자는 완전한 침묵 속에서 제 접시의 물기를 닦아내기까지 했다. 그래서 오버로드는 어쩔 수 없이 행동에 나섰다.
“제가 고른 걸 입지 않았더군요.”
비난이었다.
미친. 허스크는 지금 당장 저들의 등짝이 아니라 얼굴을 보고 싶었다.
비늘 덮인 팔이 멈췄다.
“비늘에 너무 자극이 되어서요. 갓 돋았는데.”
그리고 다시 물기를 닦기 시작했다.
허나 그가 떠나기 전에, 알래스터는 자신이 닦던 접시를 그에게 넘겼다.
“그렇군요. 그럼 제가 클럽에 함께 가는 건?”
알래스터의 왼쪽 귀가 쫑긋거렸다.
“만약 당신이 온다면, 분명 제가 당신 말을 들었어야 한다고 말하러 오는 거겠죠.”
젠장, 쟤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처음에야 다 같이 앉은 자리에서 언쟁을 했다지만, 펜셔스같이 소심한 녀석이 지금 망할 오버로드를 상대로 말대꾸를 하고 있어?
“물론이죠. 어쨌든 당신은 그리해야 하니까.”
벽장 안의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깊은 한숨과 함께 펜셔스의 어깨가 오르내렸다.
“제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당신은 저보다 제 몸에 대해 더 잘 안다고 설치다가 제게 뇌진탕을 안겨줬잖아요. 당신이 늘 옳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
펜셔스는 두 번째 접시를 건조대에 올리고 돌아서려 했다. 하지만 알래스터는 그의 손목을 붙잡고 젖은 잔을 손안에 쥐여주었다.
알래스터는 잠시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가 대답할 말을 정할 때까지, 그들이 선 공간은 전파 감도가 떨어지는 것처럼 지직거리며 뒤틀렸다.
“약하니까요.”
알겠어. 바텐더가 예상했던 방향이 아니었다.
“뭐라고요?”
“당신은 약합니다. 삼킬 수 있는 것보다 더 크게 물어요. 바보처럼 자신만만하면서 사회에선 완전히 쓸모없습니다. 항상 당신과 무관한 싸움에 휘말리고, 갓 태어난 망아지 새끼처럼 허우적거려요.”
그는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멈춘 듯 보였다.
“그런데도 체스에서 당신을 여덟 번 이겼죠.”
알래스터의 손에 들렸던 유리잔이 산산조각 났다.
“으악!”
알래스터가 키 큰 사내를 제 쪽으로 돌리기 위해 팔을 잡아당겼고, 마침내 허스크는 그들의 옆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르렁거리며 웃는 아가리가 충격받은 펜셔스의 얼굴에서 고작 몇 인치 떨어져 있었다.
“당신이 그렇게 약하지 않았다면 뇌진탕을 일으키지 않았을 겁니다. 그토록 쉽게 엿보이지도 않았을 테지요. 하지만 그랬습니다. 약하니까.”
그는 손안의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싱크대로 털어냈다. 단추를 채우며, 알래스터는 펜셔스의 스웨터에 튄 핏방울을 닦아내려 했다. 하지만 더 많은 피가 번졌을 뿐이었다. 펜셔스는 공포에 질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 강한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제 팔을 당겼다.
“저는 강해요.”
그는 놓지 않았다.
“그러니 제게 익숙해지세요.”
* 서먹한 분위기를 풀다. 긴장을 풀고 친밀감을 형성함
* 스테일메이트 : 체스에서, 모든 수가 막혀 더이상 기물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 체스 규칙으로 킹은 자살할 수 없으므로, 자신이 행마했을 때 왕이 죽게 만드는 수는 둘 수 없다. 스테일메이트가 되었을 때 승패는 무승부로 함.
* 원문은 두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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