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For Thought 생각할 거리
14. 지켜보고 있으면 냄비는 절대 끓지 않는다
원제: Food For Thought
저자: BlueberryPaincake
알래스터는 그가 불렀던 수의사와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 혹시 모르니까.
파충류 회복일지 1일 차.
애완동물은 식욕이 증가한 징후를 보이지만, 여전히 식단에 대해 까다롭게 굴고 있습니다.
의사 소견: 강제로 먹이려 하지 말고 내버려두십시오. 필요하다면 공격성을 제거한 살아있는 먹이 또는 이전에 좋아했던 먹이를 급여하십시오. 탈피가 진행됨에 따라 섭식을 하지 않을 수 있음을 유념하십시오.
“좋————은 아침입니다!”
펜셔스 경은 요란한 인사에 신음했다. 눈을 뜨려 하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가까이 있던 베개를 집어 소란스러운 방향으로 곧장 던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빌어먹을 라디오 악마에 의해 말 그대로 죽을뻔한 지 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펜셔스는 알래스터의 존재가 전보다 더 편했다. 어쩌면 알래스터가 실제로 (잘못된) 도움을 주려고 했던 탓일 수도 있었다. 혹은 그 놀라운 사과 이후 다른 이가 자신을 챙겨준다는 생각에 펜셔스가 스스로를 속여넘긴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그는 그러한 생각을 곱씹기에 최적의 상태는 아니었다.
대신 그는 앓는 소리와 함께 꼬리를 말아 품에 안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손가락이 그의 볼을 찔렀다.
쿡.
쿡. 쿡.
쿡. 쿡. 쿡쿡쿡쿡쿡.
“뭔데요?”
그는 칭얼거리다시피하며, 여전히 제 볼을 쿡쿡 찌르고 있는 손가락을 쳐냈다.
“아침 먹을 시간이에요.”
알래스터의 목소리는 노래하는 듯했다. 펜셔스가 항복하기 전엔 절대 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듯한 노래. 한편, 그의 배 역시 같은 소리를 하며 꼬르륵댔다.
뱀은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세상이 빙빙 도는 것을 방지하고자, 그는 어둠 속에서 조심스레 움직였다.
“그래요…….”
눈을 떴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으스스하게 빛나는 알래스터의 미소 띤 얼굴이었다. 그는 어두운 방에서 식사 쟁반을 받쳐 들고 있었다.
“먹을 걸 갖다주셔서 고마워요. 원래는 바가타가 식사를 가져다주기로 했었는데, 그녀는 일찍 다녀갔나요?”
그렇게 말하며, 펜셔스는 침대 옆으로 몸을 뻗어 협탁에 있던 물병으로 가습기에 물을 보충하고는 그것을 켰다. 이 빌어먹을 것은 지난 몇 번의 탈피 동안 제대로 작동되는 꼴을 거의 못 봤다. 어쩌면 몇 주간 켜둔 탓일 수 있었다. 그는 꼬리 비늘을 긁었다. 수리가 필요했고, 그동안은 가습기 대신 목욕으로 탈피를 보조해야 했다.
그는 탈피를 위해 자기 가습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알래스터는 그가 식사 전달을 허락받기 위해 견뎌야 했던 5분 동안의 잔소리에 대한 기억으로 거의 눈을 굴리고 있었다. 그가 호텔 인원에게 대부분의 식사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있다는 점을 언급한 덕에 그 정도 선에서 끝났지만.
“아, 그렇지, 그녀는 제가 당신 식사를 갖다주는 것에 동의했어요. 정말 편하죠, 아닌가요?”
머리를 갸울이며, 펜셔스가 어깨를 들먹였다.
“그렇겠네요. 그녀는 처음 며칠 동안 제 아침식 사를 갖다줄 때 깨어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거든요. 아마 그녀에게도 더 편할 거예요.”
“저는 당신의 작은 비밀에 대해 얘기한 겁니다. 혹은 당신이 ‘병’이라고 부르는 것 말이지요.”
제 연례적인 탈피가 언급되자 그의 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매우 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것 치고는 이상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는 모든 애완뱀들이 일종의 취약한 상태일 때 선호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적인 문제였고, 알래스터는 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 그것 말인데요. 비밀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야 당연하죠!”
내리깔렸던 알래스터의 눈꺼풀이 올라가고, 그의 목이 길게 뻗으며 홀린 듯 뒤틀렸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그의 애완동물이 그 모습에 몸을 움츠렸다.
“이건 우리와 의료 전문가 외에 다른 누구도 관심 가질 사안이 아니에요.”
펜셔스는 그의 애완동물이었다. 그의 책임. 그리고 알래스터는 제 일을 다른 누군가에게 넘기는 유형의 인간이 아니었다.
어쨌든, 그리하는 것은 오버로드에게는 꽤 위험한 게임이었다.
두려운 식사 배달은 차치하더라도, 사려 깊은 라디오 악마란 너무나도 이상했다. 펜셔스는 알래스터가 언제나 극진한 태도를 고수하는 것쯤은 알았지만, 이런 배려는 거의 이해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는 쟁반을 무릎 위에 놓고 반구형 은제 덮개의 손잡이를 잡았다.
“어쨌든, 맛있게 드세요!”
덮개가 열렸다.
알래스터는 상대의 기쁜 반응을 기다렸다.
“크흠…… 음…… 알래스터.”
펜셔스는 속에서 올라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굶주린 몸이 단 몇 초 만에 완전히 메슥거릴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감사합니다만, 아마도 바가타가 제 식사를 갖다줘야 할 것 같아요.”
알래스터의 눈이 다이얼로 바뀌고, 기괴한 라디오 잡음이 흘러나왔다.
“다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걸 어떻게 완곡하게 표현하지? 멋쩍은 미소와 함께, 그가 손뼉을 치고 접시를 가리켰다.
“최대한 정중하게 말하자면……”
주변의 조명이 깜빡였다.
“제 사후의 삶을 통틀어 이런 역겨운 걸 입에 댈 생각은 없어요.”
“그게 당신이 생각하는 ‘정중’인가요?”
펜셔스는 좌절감에 손을 들고, 접시를 상대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빌어먹을 이건 생 염통이잖아요, 알래스터! 여전히 펄떡대고 있다고요!”
알래스터는 그것을 낚아채고는, 상대가 그것을 잘 볼 수 있도록 뿌듯하게 집어 들었다.
“그래야 신선하단 걸 알죠!”
펄떡거리는 심장 아래에서 붉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힘줄과 근육이 뒤덮은 그것은 마치 저주받은 장식품 같아 보였다.
“이런 건 요리를 해와도 안 먹어요!”
알래스터의 안에서 낙담이 차올랐다. 우선 그 망할 천사가 그보다 더 제 일을 잘 해낼 것이라는 그따위 의견이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제 애완동물의 빌어먹을 까탈스러운 태도 때문이었다.
“당신은 뱀이잖아요. 뱀은 소동물이나 사슴 같은 생물을 통째로 삼켜요. 이런 최상급 장기는 미식으로 간주해야지요.”
알래스터는 심지어 그것을 잡아 식사 시간 직전까지 제 방에다가 살려두기까지 했다. 사실, 뱀들은 먹이를 통째로 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이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통째로 가져다드릴까요?”
“아니, 제 말은—”
펜셔스가 얼어붙었다. 아니…… 젠장 그럴 리가.
“연구실에 쥐를 두고 가던 게 당신이에요?”
“간식이었어요.”
좋아. 분명 여기에 풀어야만 하는 어떤 의사소통 오류가 있었다. 펜셔스는 로브 소매를 걷어 올렸다.
“알래스터. 당신 제가 짐승에 가까운 뭔가를 먹는 걸 본 적 있나요?”
알래스터가 멈췄다. 그는 생각에 잠겨 손가락으로 입술을 누르고 있었다.
“음, 있었—”
“토끼 모양 쿠키였죠. 토끼도, 고기도 들어있지 않은.”
“음, 그럼, 어……”
라디오 악마는 지난 두 달간의 기억을 파헤치려 애썼다. 처음 두 주쯤 동안 그는 뱀을 실질적으로 무시했기 때문에, 이는 확실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이제 애완동물에게 먹일 음식을 사냥할 수 없었으니, 애완동물을 기르는 즐거움은 조금 줄어들었다. 젠장.
펜셔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요. 마음은 감사하지만, 전 그런 것들은 먹지 않고, 날고기도 마찬가지예요.”
알래스터는 어깨를 펴며 나중에 쓸 요량으로 심장을 냉장고로 이동시켰다. 신선할 때 즐길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
“뭐, 그럼, 당신은 뭘 드십니까?”
“다른 악마들이 먹는 것들이요. 저는 영국식 아침 식사를 좋아해요. 계란과 소시지, 크로켓, 민스파이, 구운 고기…….”
맛있는 것들을 생각하며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헤아리고 있자니 빅토리아 시대 사내의 입에 침이 고였다.
“아! 멕시칸 쿠에-사-디쟈*는 드셔본 적 있나요? 정말 맛있어 보이던데! 그리고—”
그래, 이쯤이면 충분해……. 눈썹을 치켜뜨며, 알래스터는 제 애완동물의 머리를 마이크로 톡 쳤다.
“네, 네, 알겠어요. 상투적인 입맛을 가지셨군요.”
눈을 굴리며, 알래스터의 상체는 문을 향했다. 그동안에도 머리는 펜셔스를 향하고 있었다.
“상투적?”
화를 내야 하나? 그 어조는 펜셔스가 화를 내는 것이 옳게끔 들렸다.
“우리 모두가 당신처럼 덜 정제되고 자연적인 입맛을 가질 수 없어서 유감이네요.”
그는 팔짱을 끼고 위협적으로 보이고자 했으나, 그의 말 중간중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끼어든 탓에 얼굴을 찡그렸다.
알래스터는 흥얼거리며 방을 나섰다.
“그렇죠. 다녀오겠습니다.”
펜셔스는 텅 빈 문가를 응시했다.
“알래스터, 망할 문짝 좀 고쳐요!”
파충류 회복일지 3일 차+탈피 보고서
애완동물의 탈피가 늦어지고 있으며, 함께 있어 주며 오락을 제공함에도 무기력하고 의기소침한 태도를 보입니다.
의사 소견: 뱀은 항상 고독한 동물이 아닙니다. 당신의 뱀이 더 대담한 성질을 가졌다면, 무언가로 관심을 끌어주는 것이 좋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들은 탈피 기간 동안 움직임을 줄입니다. 탈피 문제에 대해서는, 사육장에 가습기 또는 얕은 웅덩이를 설치하는 것을 고려해 보십시오.
알래스터는 방송을 마치고 호텔에 들어서며 만족스럽게 흥얼거렸다. 매 걸음마다 바닥을 딛는 발굽이 또각거렸다.
아직 동은 트지 않았다. 평소와는 다른 비정상적 일정에, 그는 서서히 적응하고 있었다.
무리의 공동 식사에 참여하는 대신, 그는 주방으로 향했다. 때로, 그는 요리에 몰두하는 것이 좋았다. 요리란 좋은 음식에 쏟는 정성을 온전히 감상하는 훌륭한 방식이었다. 물론 그것이 유일한 감상법은 아니었다. 적절한 사냥도 그만큼 효과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흥얼거리며, 소스팬에 물과 코코넛 밀크를 천천히 가열하며 시나몬을 던져넣었다. 제 애완동물의 취향은 아니겠지만. 몇 가지 간단한 재료만으로 만들어진 그 맛있는 냄새는 벌써부터 알래스터의 입맛을 돋우고 있었다. 향수(鄕愁)는 그가 평소 취향과는 다른 음식을 갈망하게 했다.
다음 몇 가지 재료를 부드럽게 섞어 저어주다가 잠시 뜸이 들도록 놔둔 채 그는 손톱으로 연유 캔을 땄다. 뜨겁게 끓는 것을 그릇에 담아내면……
“언제나처럼 완벽하군요!”
“최고의 아침 되세요**, 우리 뱀 친구!”
그는 문간에 다가서기 한참 전부터 부러 지독하고 고상한 악센트를 연기하며, 문가에 기댄 문짝을 걷어찼다. 문짝은 바닥에 널브러졌고, 요란하게 모습을 드러낸…… 빈 침대?
“흐으으음. 어디로 숨어들었을까요?”
뜨거운 쟁반을 매트리스 위에 두고, 알래스터는 사냥에 대한 기대감에 방을 서성였다. 잠이 덜 깬 채 방구석에 올망졸망 모여있는 알들을 무시한 채, 그는 눈을 내리깔았다. 침대 시트가 정갈하게 개어진 것으로 보아, 뱀은 급하게 자리를 뜬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자리를 비운 것 같았다.
“뭐, 멀리 갈 수는 없었겠지요.”
방을 돌던 알래스터는 모자걸이 앞에 멈춰 섰다. 잠든 채 눈을 감고 있는 것을 알래스터는 두어 번 톡톡 두드렸다. 깜빡깜빡.
“좋은 아침, 국수 고명***!”
모자의 눈이 커졌다. 직접 불린 것에 적잖이 놀란 듯, 그것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이를 드러냈다.
“네 머리가 방을 나가는 데에 그리 열성은 아니었던 모양이구나?”
바짝 긴장한 그 하찮은 웃음은 펜셔스를 떠올리게 했다. 유감스러울 만치 사랑스러웠다.
“씻으러 갔니?”
붉은 눈이 긍정의 뜻으로 화장실을 향해 휙 튀었다.
“착하구나.”
그는 가볍게 모자를 토닥여주고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몇 번 문을 두드렸다.
“서—펀트 씨! 15초 내에 대답하지 않으면, 이 문도 부수겠습니다!”
요란하게 첨벙거리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들렸다.
“가요! 갈게— 악—젠장!”
최소한 제 기능을 하는 문 하나 정도는 남기고 싶었던 그는 욕조에서 서둘러 몸을 일으키다가 손이 미끄러졌다. 물이 넘치고, 그 순간 펜셔스는 머리를 붙들었다. 심한 흔들림 탓에 머리가 달갑지 않게 욱신거렸다.
억지로 힘겹게 몸을 일으켰으나, 몸을 지지하던 팔에 힘이 풀렸다.
“으악!”
두 번째 비명에 한숨을 쉬며, 알래스터는 제 그림자에게 일 처리를 맡기며 고개를 까딱했다. 비명 후에 침묵이 뒤이었다.
“오, 감사합니……다?”
펜셔스가 예상했던 것들 중에 이상한 무정형 그림자 같은 것에 붙들리는 것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최악의 경우 심각한 두부외상을 입고 깨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 두통이 가장 나은 결과였을 것이고. 그 대신 펜셔스는 욕실 매트 위에 부드럽게 놓였다. 그림자는 장난스레 손을 흔들며 문틈 아래로 미끄러져, 보나 마나 라디오 악마가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돌아갔다.
그것이 실제로 알래스터인지 혹은 소환된 존재인지 곱씹어보는 대신, 뱀은 가까이 있던 목욕가운을 집고 수건을 바닥에 던져 쏟아진 물을 닦아내는 것을 택했다.
마침내 문이 열렸다.
“알래스터! 정말 죄송합니다. 부디 용서하세요.”
알래스터는 거대한 물웅덩이를 쳐다보며, 문가에서 나오는 이를 힐끔 곁눈질했다.
“더 엉망이 됐네요. 그렇죠?”
“예? 욕조가요?”
알래스터는 낄낄거리며 침대를 향해 돌아섰다.
“신경 쓰지 마세요. 식사를 가져왔답니다.”
감미롭고 달콤한 향기가 방 안 가득했다. 펜셔스는 침대 위에 놓인 따뜻한 죽 두 그릇을 보며 군침을 흘렸다.
넋을 잃은 이를 보며, 라디오 악마는 그가 받아 마땅한 칭찬을 애타게 기다렸다. 다행히도 이는 뱀에게는 익숙해진 눈길이었고, 그는 알래스터의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펜셔스는 몇 번 길게 불어 식힌 뒤에, 김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죽을 한 입 먹었다. 질감과 맛은 익숙했던 것과 약간 달랐지만, 산뜻한 달콤함과 따뜻함은 그가 온종일 침대 위에 몸을 말고 자고 싶게 만들 정도였다.
“정말 맛있어요! 베이스가 뭔가요? 맛의 개요*를 잘 모르겠네요.”
알래스터는 기고만장해서는** 으스대며 다가와, 마침내 자리를 잡고 앉아 제 몫의 그릇을 집어 들었다.
“뭐—.”
향수에 빠져있던 알래스터는 한술 뜨기 위해 잠시 멎었다.
“제 어머니께서 가르쳐주신 레시피입니다. 옥수숫가루를 사용하는데, 고소한 맛과 부드러운 질감을 주죠.”
펜셔스는 만족스러운 소리를 내며, 고전적 식사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즐겼다.
“저, 앞으로 며칠간 하루에 한두 번 이걸 만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보통 탈피 기간에는 마지막 이틀 정도는 거의 안 먹거든요. 그전에는 비교적 가볍게 먹고.”
붓는 것은 탈피 시에 가장 피해야 할 것이었다. 허물 밑이 비늘에 들러붙는 느낌을 줘서, 결국 허물에서 벗어나기 더 힘들게 만드는 탓이었다.
빈 사기그릇을 입가로 들어 올려, 알래스터는 제 턱을 벌리고 그것을 안으로 던져넣었다. 뱀은 섬세한 도자기가 이빨에 조각나는 모습을 공포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원한다면요. 하지만 이건 다 드시는 게 좋을 거예요.”
이번엔 위협이 뱀에게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그는 그저 상대를 보며 눈썹을 치켜올릴 뿐이었다.
“제가 허물 벗다가 끼어버리길 바라시는 건가요?”
같잖다. 알래스터는 짜증스레 펜셔스의 볼을 꼬집었고, 얼굴이 홀쭉함에도 그의 볼은 약간 탄력이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빅토리아 시대와 산업혁명기의 상황을 고려할 때, 그는 생전에 분명 야위고 영양부족 상태였을 것이다. 아마 그것이 그가 여전히 멀쑥하고 야윈 죄인인 이유일 테고. 볼만 탄력이 있는 건 어쩌면 독샘 때문일까?
“누가 말대답해도 된다고 했죠? 흠?”
펜셔스는 한쪽 눈을 질끈 감고, 얼굴에 흘러내리는 독을 외면했다. 너무 경솔했을까? 전능하신 루시퍼여,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는 조금 어색하게 웃었고, 알래스터가 볼을 놓아주고서야 안도감에 웃음이 사그라들었다. 허나 그때 아래에서 꼬리가 홱 당겨졌고, 펜셔스는 비명을 질렀다.
“더뎌진 것 같네요…….”
사슴이 중얼거렸다. 그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비늘을 톡톡 건드렸다.
몸을 일으키며 뱀은 제 머리를 만졌다. 다칠 정도로 세게 당겨진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고, 그는 안도했다. 비록 넘어지긴 했지만.
“아마 가습기 때문일 거예요. 이 형편없게 쓸모없는 대량생산품들로는 탈피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알래스터가 뭔가 말하려 입을 열었지만, 상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럴듯하네요. 하지만 제 지성과 천재성이라면 분명 더 나은 걸 만들 수 있겠죠! 헨리! 찰스!”
그와 동시에 둥지의 계란들은 깜짝 놀라 잠에서 깬 듯했다. 특히 그중 둘은 무리에서 굴러 나와 졸린 채로 주인 앞에 섰다.
“나머지 녀석들에게 작업실에서 도구를 가져오라고 해. 새 프로젝트다!”
흠, 그의 애완동물은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법을 찾은 것 같았다.
“멋지군요! 저도 오늘은 할 일이 많으니, 지금은 이만 안녕을 고하겠습니다.”
그는 뭔가에 대해 장황하게 주절대기 시작하면서, 딴 데 정신이 팔린 채 손을 흔들었다.
발꿈치로 몸을 돌리고, 알래스터는 시설 관리자로서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라졌다. 배관, 개수대, 깜빡이는 조명 등을 고치고, 물론 공주의 변덕에도 맞춰주는 긴 하루였다. 호텔은 정말로 손이 많이 가는 곳이었다.
저녁 식사 시간 무렵에서야 마침내 제 뱀을 들여다볼 짬이 났다. 그는 적당히 가볍게 식사를 준비했다. 비프 스톡과 냉장고에 있던 재료로 만든 간단한 수프였다. 그의 애완동물은 분명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돌아왔을 때 알래스터를 반긴 것은 굉장히 기분이 나쁜 채 역정을 내고 있는 작은 생물이었다.
“빌어먹을.”
시간이 지남에따라 움직임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관절부의 비늘은 가렵고 불편한 덩어리들끼리 으적대는 것 같았다. 그냥 누워서 축 늘어져 있고만 싶었다. 아침에 느꼈던 이전의 모든 흥분은 그의 작은 에그 보이즈의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갈수록 사라져갔다.
“에구, 어서요, 보스! 이 낡은 걸 작동하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프랭크는 그들이 작업하던 쓸모없는 쓰레기 더미를 옆으로 차며, 협탁에 놓인 고장 난 가습기를 가리켰다.
“맞아요, 보스! 간단할 거예요!”
헨리가 펜셔스의 소매를 당겼지만, 헛된 노력이었다.
펜셔스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 가서 작업실에 있는 예비 부품 뒤적거리면서 너희끼리 놀아. 응? 늘 좋아했잖아.”
계란들이 동시에 활기를 띠었다.
“정말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호!”
그렇게 그는 완전히 홀로 남겨졌다. 으으. 대개 외로움이란 그의 작은 보이즈가 곁에 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번 경우에는 그들의 해맑음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저 제 탓이 아님에도 제 몸이 안고 있는 끔찍한 상태를 상기시켰을 뿐이다.
이게 생리주기를 겪는 느낌인가? 가여운 인간 여성들…….
그의 시선이 침대를 가로질렀다. 마구잡이로 널린 부품 조각들은 그의 베개와 함께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는 몸을 지탱해 일으키려는 슬픈 시도를 계속 실패하고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늘어진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는 고개만 티끌만큼 돌렸다.
붉은 눈이 침대 가장자리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뭐예요, 알래스터?”
“누군가 언짢은—가 봐요—.”
치솟는 짜증이 상대에게서 고개를 돌릴 힘을 주었다.
그러나 알래스터는 도전을 대단히 좋아하는 이였다. 쩌적. 쩌적. 쩌적.
훌륭해. 상대의 얼굴은 뒤에 있었지만, 이번엔 길게 뒤틀린 목이었다.
“그냥 좀 피곤해요.”
입을 삐죽 내밀고서 사슴은 상대를 쿡쿡 찔렀지만 뱀은 팔을 저어 손을 물릴 뿐이었다.
“재미없게……. 혹시 이 네모난 통신 기기가 당신을 잠 못 들게 하는 건가요?”
그는 이 넌더리 나는 물건을 펜셔스의 머리 위로 달랑 집어 들었다. 펜셔스는 이를 낚아채려 했지만, 알래스터의 팔이 기괴하게 길어지고 팔꿈치가 뚝뚝 꺾여 제 공격을 잽싸게 피하자 좌절감에 그르렁거렸다. 이 빌어먹을 악마는 제 심기를 건드리는 방법을 정확히 아는 것 같았다. 몇 달 전만 해도 알래스터가 자신을 거의 알지 못했다는 걸 생각하면 우쭐해지고도 남을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열이 받을 뿐이었다.
“내놔요! 별로 쓰지도 않았다고요! 어차피 연락하는 사람 하나 없는데!”
아하! 이 작은 존재가 소외감을 느끼는구나.
제 애완동물이 아등바등 애쓰는 걸 구경하던 알래스터는 그것을 펜셔스의 무릎 위로 떨어뜨렸다.
“오 저런, 제가 함께 있어 주는 걸로는 부족한가요?”
그의 존재가 몸이 멀쩡한 날에도 상당히 스트레스를 준다는 점을 고려하면? 펜셔스는 한숨을 쉬며 휴대전화를 치웠다.
“그런 의미는 아니었어요. 저는— 저는 그냥 좀 쉬고 싶은 거예요. 알겠어요?”
분명 이 작은 것은 제대로 쉬지 못했다. 또한 외로웠다. 오 가엾고 딱한 작은 것. 알래스터는 그의 머리를 정확히 두 번 도닥였다.
“착하지.”
말도 안 돼.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옛날이야기라도 읽어드릴까요?”
그 말에 뱀은 짜증이 난 게 아니라 기운을 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담요를 여며 꼬리를 고치처럼 감쌌다. 온종일 누워만 있던 게 그를 짜증스럽고 불안하게 만들었으니, 아마도 잠이 답이리라. 한 번 초기화하는 것이 탈피를 겪는 중인 그의 가련한 몸에는 도움이 될 것이었다.
펜셔스는 복슬복슬한 보라색 베개에 기대어 알래스터가 이야기를 시작하길 얌전히 기다렸다. 알래스터는 싱긋 웃으며, 고전으로 시작하기로 정하고는 근처에 있던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옛날에, 도시와 시골에 멋진 집을 가진……”***
그의 목소리는 완벽했다. 약간의 치직거리는 잡음이 섞여, 듣는 이를 평온케했다. 그 목소리에 진정한 펜셔스는 몇 분 만에 잠에 빠져들었다.
물론, 알래스터는 일을 남겨둔 채 자리를 뜨는 유형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런고로, 그는 이것저것 살피며 조용히 방에 어질러진 잡동사니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짜증 난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러고는 손목을 휙 털어 방의 조명을 껐다.
확실히, 그는 쉴 틈이 없었다.
* 케사디아(Quesadilla) : 원문은 ‘kay-so-dillas’. (작중 펜셔스는 비영어권 어휘의 발음을 어려워함.)
** ‘Top of the morning’ : (고전적) 영국식 인사로, 알래스터는 과장된 구식 영국 악센트를 흉내내며 19세기 출신 펜셔스를 놀리고 있음.
*** ‘noodle-topper’ : 펜셔스의 모자를 ‘토핑’과 ‘탑햇’ 중의적인 의미를 담아 호칭함.
* ‘flavor profile’ : 음식의 주요한 맛의 구성, 조합, 복잡성 등 풍미 전반 사항을 개요화한 것.(같은데 명확한 대치어를 모르겠고 그렇다고 외래어 그대로 적는 것도 내키지 않아서 맛의 개요라고 번역해두었습니다.)
** balloon head: 지나치게 거만한 사람을 일컬음.(경멸적) 원문은 ‘Alastor’s head practically ballooned in size’
*** ‘There was once a man who had fine houses, both in town and country…’ :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의 도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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