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For Thought 생각할 거리
13. 계란 던지기*
원제: Food For Thought
저자: BlueberryPaincake
이번만큼은 알래스터가 제 행동으로 인한 결과를 감당하게 된다.
알래스터는 즉시 펜셔스를 어깨에 들쳐업고, 의식이 없는 애완동물과 함께 방으로 순간이동했다. 침대에 펜셔스를 퉁 던져넣으며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확실히 근육으로만 이루어져 있군……
“그래, 그리고 문을 처닫았어!”
알래스터의 어깨가 짜증으로 푹 꺼졌다. 하필 이런 때에?
“후.”
알래스터는 촉수를 쏘아내 하나 남은 마지막 경첩에서 문을 완전히 뜯어내 문틀에 쑤셔 박았다.
“젠장, 장난해, 알래스터?”
그녀의 목소리에 서린 분노가 알래스터의 얼굴에 아름다운 미소를 안기고, 텅 빈 심장에 만족을 채워 넣었다. 일단은 얼마간 유지가 되리라.
문이 쾅쾅대는 것을 귓등으로 흘리며, 라디오 악마는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핸드타월을 찬물에 적시며 그는 관리 가이드북의 지시 사항을 훑었다.
시원한 곳으로 옮기시오? 했고.
습도를 높이시오? 알래스터는 개수대 아래를 뒤졌으나 필요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낙담이 어려 속이 끓었다. 젠장.
알래스터같은 이에게 실패란 있을 수 없음이다.
캐비닛을 거칠게 닫으며 그는 스프레이 병을 실체화시켜 찬물을 채웠다. 마침내 알래스터는 뱀의 침대 곁에 돌아가 그를 굴려 바로 눕히고, 이마 위에 차가운 물수건을 철썩 얹으며 비늘 위로 물을 뿌렸다.
찌푸린 붉은 시선이 덜컹거리는 문에서, 펜셔스의 가슴에 들러붙은 젖은 셔츠로, 책자로, 그리고 다시 떨리는 그의 애완뱀에게로 빠르게 옮겨갔다.
하나 기르려고요. 그가 말했다. 재미있을 테죠. 그렇게 생각했다.
우지직.
쾅!
문짝이 바닥으로 떨어져 나가고, 셔츠 조각을 움켜쥔 알래스터가 보였다. 그리고 그의 밑에는 전혀 의식이 없고 굉장히 헐벗은—셔츠 주인—펜셔스가 있었다. 모두의 턱이 충격으로 벌어졌다.
“알래스터…… 이게 다 뭐야?”
오래도록 그녀의 재단적이고 화가 어린 목소리만을 들어왔기에, 배기의 고요한 불신은 그를 거의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알래스터였다. 라디오 악마. 그는 겁먹지 않는다.
“정정. 거기서 떨어져.”
엔젤 더스트가 방으로 뛰어들었을 때, 알래스터는 급하게 침대 시트를 당겨 제 애완동물의 벗은 몸, 더 정확하게는, 탈피를 앞둔 비늘을 가렸다.
“너 지금 뭔 짓거리를 하고 있었던 거야?”
그의 수많은 눈이 마지못해 제 애완동물에게서 손을 떼는 사슴을 노려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이 주인인 알래스터에게 제 애완동물을 어떻게 돌보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우스울 따름이었다.
유감스럽지만, 그는 합의를 이행하지 못하면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었다. 말인즉……
알래스터는 꾸민 웃음을 지었다.
“아하하하! 아무 짓도 안 했어요. 당신의 파충류 친구는 그냥 몸이 안 좋을 뿐이고, 기절한 거예요. 실은, 수의사에게 연락하려던 참이랍니다.”
허스크, 배기, 그리고 찰리가 모두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각양각색의 불신 어린 시선으로 알래스터를 보았다.
주변을 채운 잡음은 점차 커져갔다. 차분한 표정이었지만, 알래스터는 마지막으로 죽음을 맞닥뜨렸을 때 느꼈던 스트레스와 비슷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반응때문이 아니라(비록 그런 변태로 여겨지는 것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망할 뱀이 아직까지도 깨어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알래스터, 뭔가 다른 거…… 한 건 아니죠, 그렇죠?”
평소대로의 신뢰를 갖고 찰리가 다가왔지만, 그녀의 어조로 보건대 찰리는 굉장히 어렵사리 신뢰를 쥐어짜내고 있는 듯 했다.
“물론 아니죠. 그저 도우려던 것뿐이에요.”
배기와 엔젤은 여전히 그를 불신 어린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더군다나 한 명은 다른 한 명보다 훨씬 더 분노에 차 있었다. 그가 한쪽 손을 들었다.
“왜 여러분이 저를 못 믿으시는지 모르겠네요. 여기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잘못한 적이 없는데요.”
엔젤이 비웃으며 그의 손을 내려쳤다.
“하! 어이없어서. 퍽이나.”
그는 라디오 악마를 밀치며 시트를 잡으려 했지만, 알래스터의 마이크가 그의 손을 쳐냈다.
알래스터의 노란 이빨이 빛났다. 그의 입은 꿰어져 있었으나, 흉곽에서 말이 울려 나왔다.
“지금은 아닙니다. 수의사에게 보여야 해요.”
지팡이를 손에서 밀어내며 거미가 코웃음 쳤다.
“그래. 하지만 그동안 넌 어디 딴 데 좀 처박혀있는 게 좋을걸.”
그의 눈가가 실룩였다.
“그러죠.”
언쟁이 오가는 동안 멀찍이 떨어져 있던 허스크는 슬며시 침대 옆으로 다가가 뱀의 얼굴에 얹혀있던 젖은 수건을 집어 들었다. 털을 쭈뼛거리게 만드는 잡음을 무시한 채, 그는 늘 홀짝이던 독한 술을 거기에 부어 뱀의 코 밑에 댔다.
마침내, 그의 애완동물이 꿈틀했다.
그 증명에 알래스터가 히쭉 웃었다.
“보셨죠? 그는 멀쩡해요.”
예의 그 증명은 신음하며 제 머리를 짚었지만, 우려스럽게도 눈을 뜨지는 못했다.
“좋아. 이제 나가.”
배기가 창끝을 알래스터에게 들이밀며 그를 문가로 몰아세웠다.
“수의사가 오기 전엔 안 된답니다아—.”
그가 노래했다.
“쯧.”
공주는 그녀의 끔찍한 휴대전화를 꺼내 들며 돌아섰다.
“음, 의사를 불러야 할 것 같네요.”
찰리는 말 그대로 토할 것 같았다. 사실—
찰리는 과호흡으로 쌕쌕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그녀는 쓰레기통에 대고 거의 헛구역질을 하는 중이었다. 그 순간이 지나자, 그녀는 다시 방을 서성였다.
“제발 죽으면 안 돼! 죽지 마요! 제바아아아아알!”
의사가 방에서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거의 제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자기야, 진정해.”
부드러운 손길이 그녀의 어깨를 덮었다. 찰리는 숨을 길게 내쉬며, 제 여자 친구의 말을 들으려 애썼다. 배기는 찰리를 의자로 이끌었다.
“아마 괜찮을 거야.”
찰리는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아. 그래. 난 그냥…… 잘 돼봐야 우리 유일한 고객이 겁을 먹는 거고, 최악의 경우엔 뇌손상이나 뭐 그런 게 생겼을까 봐!”
상황을 이성적으로 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공황에 빠졌다.
다행히도, 침실 문이 벌컥 열렸다. 다가오는 갈색곰 의사를 향해 몸을 날린 찰리는 그의 흰 코트의 옷깃을 쥐어 잡았다.
“선생님! 제발 괜찮다고 해주세요!”
사내는 목을 가다듬었다.
의사를 놓으며, 찰리는 조심스레 옷깃을 바로 해주고는 뒤로 물러섰다.
“헤헤, 죄송해요.”
서류 가방을 들며, 의사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머리를 부딪혀서 경미한 뇌진탕이 있었습니다. 휴식이 필요한 전부예요.”
찰리는 배기를 단단하게 감싸안고, 기쁨에 뛰어오를 준비를 했다.
“그밖에는, 제 생각엔 뱀 열사병의 위험이 있는 것 같군요. 일반적으로 포유류는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을 겪지만 파충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시원하게 유지하고 수분을 충분히 공급하세요.”
배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요. 그리 나쁘지는 않네.”
거의 의자에 녹아내리다시피해서는, 찰리는 머릿속 생각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뱀 쪽 부분도 괜찮은 건 확실한가요?”
의사는 어깨를 들먹이며 손을 내밀었다. 지옥의 공주는 그에 응하여 현금 한 움큼을 쥐여주었다.
“보통 비늘 달린 놈들은 취급 안 합니다. 이용에 감사드립니다.”
그의 거대한 몸이 어기적어기적 홀을 지나 호텔을 나섰다.
훌륭해! 안도감조차 보장되지 않았어!
“제가 그랬잖아요…….”
잡음 가득한 목소리가 그녀를 맞이했다. 찰리의 발아래에서 그림자가 뻗어 나와 그녀가 기다리던 이의 형상을 빚었다. 알래스터는 한쪽의 은근한 짜증과 다른 쪽의 명백한 좌절을 무시하며 우쭐우쭐 거닐었다.
코웃음을 치며 배기가 제 콧등을 집었다.
“그래, 네가 분명 그랬지.”
양손을 파닥거려 천사 날개를 흉내 내는 그녀의 어조에는 비꼬는 듯한 날선 소리가 섞여 있었다.
“정말이지, 가볍게 다친 걸로 끝나서 굉장히 잘됐지 뭐야. 고맙네!”
찰리는 남에게 화를 내는 것이 정말로 싫었다. 화를 내면 다른 이와 친해지는 것도, 생산적인 대화를 하는 것도 더 어려워지니까. 그렇긴 하지만, 그녀는 배기가 지금 같은 때에 그 역할을 맡아줘서 정말로 좋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알래스터에게 정말정말 화가 났으니까.
“알래스터, 지금은 ‘제가 그랬잖아요’라고 할 적절한 때가 아니에요.”
그는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이 아니에요, 바보 아가씨. 수의사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했을 거라는 얘기죠. 다행히도……”
그는 구해온 작은 수첩을 꺼내며 목을 가다듬고 단안경을 바로 했다.
“나름대로 찾아가 봤습니다.”
쫓겨난 후에.
알래스터는 그가 앞서 부숴놨던 문을 걷어차면서 또박또박 읽었다. 결국에, 제 애완동물의 건강은 자신의 책임이었다.
“의사가 맞는 말을 했어요. 한증막은 변온동물에게는 너무 뜨겁다더군요. 하지만 그가 열기에 노출된 시간은 고작 십 분 정도였어요.”
배기와 찰리는 알래스터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방 한가운데는 둥근 침대가 있었다. 그 위에 천으로 덮인 크고 봉긋한 덩어리가 눈에 띄었다. 그들은 침대 앞에 멈춰 섰다.
“요점만 말해.”
제 공연을 방해하는 따분하고 건조한 목소리에 알래스터의 눈가가 경련했다.
“그는 기껏해야 더위로 인해 조금 아픈 거고, 우리가 해야 할 건—”
“왜 여기 있는 거죠?”
알래스터가 돌아보자, 그의 애완동물이 이불 밑에서 머리를 빼꼼 내민 모습이 보였다. (굴 파는 습성. 그가 되새겼다) 펜셔스는 볼메고 형형한 표정으로 제 후드를 치세운 채 알래스터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알래스터가 활짝 웃었다.
목소리에 담긴 분노에, 찰리가 움찔했다.
“우린 당신이 괜찮은지 확인하려던 거예요!”
그녀의 미소는 울상에 가까웠고, 아마 그렇게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가 코웃음 쳤다.
“알아요. 고마워요.”
비꼬는 걸까, 진심인 걸까?
“저 사람에게 하는 말이에요.”
그의 빨간 손가락이 가리키는 끝에선 오늘 사건의 핵심 인물이 태연하게 제 손톱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알래스터는 여태껏 가짜 연극과 겁에 질린 순종의 대상일 뿐이었기에, 이번 일에 분명하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수의사에 따르면, 열사병이나 뇌손상의 징후를 보이지 않았으므로, 과열 후 이러한 공격성은 정상이었다.
“누구, 저 말인가요?”
펜셔스가 제 손을 쳐올렸다.
“네!”
정말 거침이 없었다. 악마들이 이토록 당돌하게 대드는 일은 정말로 드물었기에, 알래스터는 이 상황이 꽤 재미있었다. 지금처럼 성질내고, 그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아차리는 걸 보는 것도, 그 혼란 속에서 공짜 식사*를 얻는 것도.
잠시 후, 뱀은 방에 있던 다른 두 명을 향해 애써 예의를 갖추었다.
“의사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이런 때에는 남들 앞에 보이고 싶지 않네요.”
배기는 반박하려 했지만, 며칠 전 그의 요청을 떠올리고는 그만두었다. 그래, 뱀에 대한 거.
“알았어. 하지만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해.”
목멘 소리로 찰리는 더듬거렸다.
“그, 그치만 우린—”
배기가 그녀의 팔꿈치를 부드럽게 얼렀다.
“알았어요…… 당신이 무사해서 기뻐요, 펜셔스 경.”
찰리의 진심 어린 말에 펜셔스의 분노가 누그러졌다. 그는 작게 미소했다.
“감사합니다.”
그들이 떠나자마자, 알래스터는 제 덩굴손으로 문짝을 세게 닫았다. 펜셔스는 매섭게 고개를 홱 젖혔다. (불행하게도 이때문에 그는 다시 어지러워졌다) 앞서 사그라들었던 분노가 다시 끝까지 치솟았다. 그는 알래스터를 노려보았다. 진심으로, 주변에 있지 않길 바라는 유일한 상대가 여기 있었다.
“잘 됐죠?”
다각, 다각, 다각. 발굽이 나무 딛는 소리와 함께 알래스터가 뱀의 침대 위로 올랐다. 뱀은 팔짱을 낀 채 혀를 빼물고 짜증에 차 쉿쉿거렸다.
“제 말은,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었어요.”
“당신은 혼자예요. 저와 여기 혼자 있지요.”
상대방이 끼어들기 전에, 그는 시트의 담요를 홱 걷어냈다.
흠, 다행히도 그의 탈피는 작은 사고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아!”
제 비늘을 조사라도 하는듯한 붉은 시선 아래 덩그러니 놓여서, 펜셔스는 벌거벗은 기분이었다.
“그만 좀 할 수 없어요?”
펜셔스가 담요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 망할 악마는 멀뚱한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제 어깨 너머로 던져버렸다.
“알래스터!”
소리를 지르니 머리가 울려 지끈거렸다. 그는 통증에 몸을 움츠리며 똬리를 틀어 완전히 벌거벗은 몸을 숨겼다. 생식기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가? 전혀. 이따위 방식으로 보여지는 건 어쨌든 수치스러운 일이다!
“오 이런.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요.”
예의 사슴이 손을 튕겨 상대에게 로브를 입혔다. 그가 이해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품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였다. 품위로 말하자면……
“당신 옷은 어디 갔죠?”
펜셔스는 옷을 내려다보며 눈을 깜빡였다. 꽤 괜찮았다. 약간 비치는 붉은 새틴 소재에 깃털 장식이 있는 가운으로, 다행히도 그의 허리 아래를 충분히 가리고 있었다. 놀라운 배려에 화가 사그라들며, 뱀은 꼬리를 조금 풀었다.
“의사가 위아래의 차이를 보고 싶어 했거든요.”
적어도 의식 없는 이에게서 셔츠를 벗긴 사람은 없었다…….
“흠.”
그래서, 완전히 낯선 의사는 제 애완동물을 이런 식으로 볼 수 있었는데, 자신은 문제가 된다? 쩨쩨하군.
“당신 탈피는 잘 진행되는 것 같네요. 당신처럼 큰 뱀은 보통 2주 정도 걸리지요. 맞나요?”
비늘이 일어난 부위는 약간 더 커졌을 뿐이다. 하지만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이고, 남은 날이 더 많았다.
그 말을 듣자 펜셔스는 애초에 기분이 더러워졌던 이유를 떠올렸다.
“당신 도움은 필요 없어요, 알래스터. 이전에도 수많은 탈피를 겪으며 살아남아 왔고…….”
말하지 않은 것—‘혼자서’—이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칼처럼 매달렸다. 다른 이들을 멀리하던 것이 그 이유에서는 아니었다. 하지만 라디오 악마의 논리가 자신의 ‘애완동물’이 무력하기에 일종의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면, 이는 그의 얼굴 앞에 들이밀기 충분한 이유였다.
특히 그의 최근 도움 탓에 뇌진탕을 입었다는 걸 생각하면.
알래스터는 그의 뱀을 응시했다. 뱀은 가까이 있던 베개를 가슴에 껴안고, 불만에 차 입술을 댓 발이나 내밀고 있었다. 낙담한 톤의 목소리에, 뱀은 다시 꼬리로 몸을 휘감았다.
왜 이런 한심한 존재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가? 결국, 그가 주인이다. 그가 가장 잘 알 것이다. 다만……
사실, 앞선 실수는 그가 내비친 것보다 라디오 악마의 자존심에 훨씬 더 큰 타격을 주었다. 주인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 장담한 후에, 제 연약한 먹잇감을 위험에 빠뜨린 것은 무척 낯부끄러운 일이었다. 알래스터가 자신의 어리석은 실수를 공유했다면, 엔젤 더스트는 분명 그를 비웃었을 것이다. 물론, 알래스터는 그러지 않을 것이고.
하지만 그 논리에 따르자면 그의 애완동물은 당연히 그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잃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신뢰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었다. 관리 가이드북에 의하면, 신뢰는 애완동물과 주인 간의 관계의 기본 토대였다. 아니면 최소한, 애완동물이 도망치려고 들지 않는 관계의 기본 말이다. 사실, 그건 꽤 재미있긴 하겠다만…….
어떤 노래가 떠올랐다.
젠장. 그는 이를 후회할 것이다.
“제가…….”
알래스터는 이를 악물고 다음 말을 쥐어짜냈다. 그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졌다.
“미안해요.”
펜셔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네?”
뇌진탕의 증상 중에 환각이 있나? 당장 다시 의사를 불러와야했다. 그는 지금 환각을 겪고 있었으니까. 라디오 악마가 진심으로 사과를 했을 리가 없는데.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알래스터는 뱀의 얼굴을 잡고 그의 볼을 꼬집었다.
“자, 이제 그건 됐고, 저는 당신의 회복과 성공적인 탈피를 위해 매일 들를 거예요.”
알래스터는 태연하게 펜셔스를 다시 침대에 밀어 넣으며 아까의 담요를 던져주었다.
“남은 허물을 챙길 생각에 안달이 나네요.”
그 말에 주의가 확 쏠렸다.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머리를 짚고 있던 펜셔스는, 알래스터가 만족스레 문으로 총총 걸어가는 동안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었다.
“잠깐만요, 뭘 어쩐다고요?”
너무 많은 신뢰는 안 된다. 그러면 지루해질 테니까.
알래스터는 젠체하며 문을 열었다. 아니, 이때까지 각종 충격에 시달려 완전히 벽에서 떨어져 나간 망할 것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가락을 촐랑촐랑 흔들며 가볍게 인사했다.
“그럼 안녕히!”
쾅!
* Egg On Your Face : ‘체면을 구기다, 얼굴에 먹칠하다’ 등 망신을 당한다는 의미의 관용구. 본인의 언행 때문에 스스로가 망신을 당한다는 의미를 가짐. (사실 직역하면 계란 던지기보다는 얼굴에 계란 맞기? 이런 식으로 적는게 알맞을 거 같은데 고민하다가 계란 던지기로 하엿읍니다👉🏻👈🏻)
* 공짜 식사: a free meal. 얻고자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얻어 걸린 효용 등을 일컬음.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