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우조] 한 닢 값 밤
트라이건 맥시멈 아무래도 시점
울프우드 시점 내용 무 단문입니다. 트맥 대충 시공.
그들은 차례대로 잠든다. 모래로 지은 망망대해는 단둘만의 고독을 보장할 만큼 넓으나 몰이꾼들이 지척이라면 또 다른 이야기다. 6억 더블달러에 비하면 싸구려에 지나지 않는 현상금이라도 손에 넣겠다며, 무의미한 복수라도 이뤄보겠다며, 혹은 달을 부순 자를 꺾었다는 명성을 얻겠다며 아우성치는 삼류 악역은 발에 채는 자갈만큼이나 흔했고 울프우드와 밧슈는 그로부터 내빼는 데 도가 텄다. 가짜 자취로 추적자들을 떨쳐내고 불 켜지 않은 밤 속에 숨죽여 보내는 며칠은 이제 일상이었다. 그럴 때면 그들은 추위를 몰아내기 위해 한데 뭉쳐서 하나는 잠 청하고 하나는 바람 따라 숨 쉬는 사구를 지켜보았다.
오늘 밤은 밝았다. 보름에 가까운 달이 셋이나 겹쳤다. 하늘은 분명 검은데도 쌍둥이 태양처럼 타오르는 것이 온갖 방향으로 도사렸다. 잠들기 어려운 밤이었다. 모래색 천을 뒤집어씌운 바이크 그림자에 숨었는데도 그랬다. 숨바꼭질의 술래들에게 지나치게 유리한 밤이었고, 그래서 날을 지새워 달렸어야 했을 텐데, 그들은 이미 이틀째 그러고 있었고 한나절째 아무도 보지 못했다. 밧슈가 먼저 쉬어야 한다고 우겼다. 꽤 화려한 동전 던지기 사기극의 접전 끝에 첫 번째 보초는 울프우드의 몫이 되었다. 밤은, 다행스럽게도, 고요했다.
울프우드는 이미 지워져 가는 바퀴 자국을 지켜보았다. 보름달들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별 무리처럼 흘러가는 비행성 웜즈 떼가 다가오고 다시 멀어지는 걸 보았다. 사이드미러 속에서 아주 먼 지평선이 도시의 빛으로 희미하게 피어오른 걸 보았다. 달을 피해 보겠다고 누워서까지도 선글라스를 쓴 밧슈의 자는 얼굴을 보았다. 그의 눈가에는 지난 피로의 흔적이 멍들듯 번져 있었고 그것이 자기 얼굴에도 마주 반사되어 있음을 울프우드도 알았다. 울프우드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고 달빛에 파묻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은하수의 각도를 헤아렸다. 교대까지 두 시간.
담배가 죽도록 고픈 타이밍이었다.
울프우드에게 무료하단 단어는 낯설었다. 어려선 저보다 어린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란이 일상을 가득 채웠다. 억지로 어른 된 그의 삶은 폭력과 죽음의 약속으로 비대해 가누기에 어려웠다. 흘러가는 삶을 다시 기껍게 여길 수 있던 건 채팰의 이름을 훔친 후부터였다. 그리고 밧슈를 만나고 나서부터. 그의 웃음과 태풍처럼 몰고 다니는 난장판 없인 그래, 심심했다. 울프우드는 피곤한데도 상대를 깨워 잡담하고 싶다는 충동을 낯설게 들여다보다가 옆으로 밀어 치웠다. 답지 않았다.
그러니까 역시 담배가 고파서 이러는 거겠지.
울프우드는 금단증상을 탓하며 손장난을 재개했다. 오늘의 쇼 주인공은 1 더블달러 짜리 동전이었다. 낡고 때 타서 무게 중심이 안 맞는단 걸 속임수의 근거로 우겼던 밧슈의 말이 우스워서 그가 잠든 후 한 시간 동안 아주 반질반질하게 광을 내었다. 테를 두른 톱니가 구겨진 곳을 총기 손질용 공구로 두드려 바로 세워보기도 하면서 예쁘게 다듬었더니 퍽 애착이 갔다. 달빛을 머금고 번쩍이는 것을 들고 기울여보다가, 위로 던졌다가 손등에 받았다. 밧슈의 말과는 달리 비결은 손으로 느끼는 감촉이었다. 이번엔 꼬리다.
또 정답. 울프우드는 만족하고 이번엔 손가락 위에서 동전을 굴리기 시작했다. 어릴 땐 5 세스센트 짜리 동전으로도 잘만 되었던 거 같은데, 손이 굵어진 후부턴 더 큰 동전으로도 어려웠다. 몸이 방법을 잊었다. 새로 익힌 것만큼이나 잃어버린 것이 많았다. 되찾으려면 애써야 했다. 손가락으로 동전 가장자리를 눌러 뒤집길 느긋하게 반복했다. 끝에 도달하면 엄지로 잡아서 도로 위로 올리면 된다. 탄창을 갈고 표적을 교체할 필요 없다. 무릎에 떨어트려도 주우면 된다. 동전은 꾸준하게 반짝이며 낯선 손 위를 굴러다녔다. 울프우드가 그걸 밧슈의 선글라스 위로 떨어트리기 전까지.
밧슈가 화들짝 놀라 흐어, 하는 바보 같은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울프우드는 고개를 쭉 빼고 저 먼 곳을 보고 있었다. 밧슈가 구시렁거렸다.
"뭐야?"
"뭔가 온다."
밧슈가 몸을 홱 일으켜서 울프우드와 같은 방향을 봤다. 그들이 떠나온 도시로부터 조금 빗겨나간 방향에서 사륜차 한 무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밧슈와 울프우드를 쫓아온 놈들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들은 적어도 이런 일에 대해서는 희망에 걸지 않았다.
위장포를 벗기고 침낭을 도로 말았다. 퍼니셔를 들어 올리고 바이크에 올라탔다. 낮에 선명한 신호기의 역할을 도맡는 건 밧슈의 붉은 코트였지만 밤의 봉화역을 하는 건 거대한 십자가의 실루엣이다. 지체할 새는 없다. 잠시도 눈 붙이지 못한 운전수가 담배를 입에 물고 시동을 걸었다. 밧슈가 라이터로 불을 붙여주며 더 늦게까지 쉬려던 잔꾀에 스스로 발 걸려 나자빠진 울프우드를 놀렸다. 울프우드는 사이드카의 승객에게-전혀 먹히지 않을-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 출발했다.
첫 번째 태양이 떠올라 미처 저물지 못한 달을 창백하게 쫓아보내고 나서야 울프우드는 깨달았다. 그 동전, 두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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