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건

[맹우조] 대지는 숨 쉬고 우리는 맥동한다

2023 7월 디페스타 배포본


여행길의 막간입니다. 트라이건 맥시멈 베이스로 스탬피드 애니의 세계관 에스떼딕을 섞었습니다. 이런저런 설정과 상황, 모브캐 날조가 심합니다. 작품의 중대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여행하는 이유와 밧슈의 정체 정도만 알면 대충 읽으실 수 있습니다. 해봤자 트라이건 본편 1, 2권 정도 스포일러네요(아마). 이게 맹우조인지 씨피인지 뭐.... 대충 알아서 착즙해 드시면 됩니다. 23년 7월 디페스타에 후기 포함 배포본 출품함.

 

 

 

 


 

 

 

 

 

사막의 열기는 아지랑이로 나타난다. 대기 그 자체를 뒤흔드는 움직임은 달구어져 올라가 위로 쫓겨나는 공기의 흔적이다. 세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도록, 숨쉬기 힘들도록 배척하는 행성의 흐름. 그래서 이곳의 땅은 인간을 부정한다.

‘웜즈 말곤 다 그 신세 짝이긴 해.’

생각하며 울프우드는 이미 감각을 잃은 구둣발을 한 걸음 더 내디뎠다. 모래는 두 사람과 대형 화기의 무게를 완전히 받아낼 만큼 단단하지 않았으므로 울프우드는 아래로 밀려나는 바닥을 쫓아 다리를 뻗으면서 움직여야 했다. 경사진 모래 둔덕 탓인지 유독 발밑이 미끄러워서 한 번 휘청였다. 어깨너머로 당겨 끌던 짐 끈에 매달리고 남은 손으로 바닥을 짚어서 간신히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머리카락 뿌리에서부터 스민 땀이 흘러 은근하게 휜 콧날을 따라 뚝뚝 떨어졌다. 다리 세 개에, 뒤로 길게 이어진 꼬리를 단 벌레처럼 나자빠진 꼴이다. 그래봤자 웜즈처럼 모래를 파고들어 헤엄치거나 날아올라 자유로워지진 못하겠지만.

“젠장.”

“여기만 넘어오면 금방이에요, 아저씨.”

앞에서 안내하던 아이가 걱정스레 말했다. 울프우드는 잠시만, 이라고 말하는 듯, 한 손을 들었다가 그대로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한 대 물었다. 폐부에 스며든 연기가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울프우드는 눈을 두어 번 깜박여 초점을 맞추고, 끄으응차― 이 악문 소리를 내며 자신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벨트의 무게에 의지해 몸을 일으켰다. 천과 끈으로 돌돌 말아 십자가에 묶어 둔 밧슈 더 스탬피드는 그 소란에도 곤히 기절해 있었다.

“저놈의 빗자루 털을 다 뽑아주고야 말테다.”

“털을요?”

“너한테 한 소리가 아냐.”

온 힘을 쥐어짜 내 둔덕을 오른 후 짐 덩이가 아래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갈무리하고서야 그 애의 시야를 이어받을 수 있었다. 이글거리며 지는 태양. 그 앞으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 사해沙海 속 외딴섬처럼 솟은 마을. 거대한 톱니바퀴의 뼈대 위로 필사적으로 덧붙은 은빛 발전판들이 비늘처럼 반짝이며 눈을 찔렀다. 울프우드는 눈을 찌푸린 채 퍼니셔의 옆을 신코로 툭툭 걷어찼다. 잠든 태풍이 팔자 좋게 흔들렸다.

“슬슬 일어나라고, 빗자루. 양동이에 거꾸로 담가서 적셔버리기 전에.”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깨어나질 않아서, 울프우드는 몇 시간 후 자기 말을 그대로 이행하게 된다.

 

노맨즈랜드와 인간 태풍의 팔자란 시너지가 대단한 거라. 사람 하나를 십자가와 한 세트처럼 포장해서 끌고 오는 무도한 결과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문제는 그 구구절절한 사연을 외부인에게 설명해야 할 때 생긴다. 울프우드는 담배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단 핑계로 옆에서 보호자에게 한바탕 말로 얻어터지는 은인을 애써 무시했다. 미안하지만 살다 보면 어째서, 라는 개연성 따윈 알지도 못한 채 핍박받을 일이 많을 거다. 갈굼의 출처가 사랑이라는 데서 만족하라고 친구. 해당 친구는 울먹이면서 울프우드를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마을을 수리할 일손이 부족하다고 한 건 렉스잖아요! 가져와 줬는데 왜 나한테만 그래!”

“이봐 꼬마, 일손 같은 소린 처음 듣는데?”

“일손이 부족하대도 그렇지. 이런 수상한 사람들을 데리고 오면 어떡해? 강도 2인조를 마을에 끌어들인 거면 어쩌려고!”

“저기 주인장, 면전에서 수상한 강도 타령은……”

“수상했으면 내가 만났을 때 다 털어갔겠죠! 여기까지 얌전히 왔잖아요?”

“네가 조그매서 뜯어먹을 살도 없으니까 그렇지!”

“식인종이란 매도까지냐.”

“아무튼! 수리, 급하다며요! 다른 마을 어른들은 물자를 구하러 가서 없고, 모래폭풍은 곧 오는 거. 저도 이제 계산할 수 있는 나이거든요?”

“그래그래, 모래폭풍. 우리도 사막 한복판에서 폭풍 만나는 건 사양이라서,”

“봐라, 제니! 아무리 그래도 십자가에 사람을 묶어오는 변변찮은 남자가 도움이 될 거 같아?”

푸흡. 울프우드는 마시던 술을 뿜으며 기침하다가 벌떡 일어나서 여관 주인장에게 삿대질했다.

“방이 준비 안 되었다고 뺀 건 네놈이잖아!”

“그렇다고 쓰러진 사람을 십자가에 묶어다가 세워둬?”

퍼니셔의 붕대를 이런 데서 대놓고 풀 수는 없으며, 질질 끌고 오면서 구멍마다 깊이 새어든 모래를 빼려면 세워둬야 한다는 아주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설명 따위는 할 수 없었다. 울프우드는 벽에 기대어 둔 십자가에 묶인 채 거꾸로 세워둔 빗자루처럼 위태롭게 기절한 밧슈를 돌아보았다가 애써 시선을 피했다.

“그, 당신이 술부터 한잔하라면서,”

“신성모독에도 정도가 있지.”

“솔직히 엄청 이상했어요…….”

애석한 점은 그늘에서 물과 술을 마시고 정신을 차린 울프우드마저도 사막의 대격전 끝에 바이크와 일행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며칠째 괴물 같은 재생력에 의지해 살아남은 울프우드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목사라고 해도 아무도 안 믿겠군. 울프우드는 한숨을 내쉬며 말다툼하는 사이 필터까지 타들어 간 담배를 재떨이에 지져 껐다.

“됐으니까. 손님 안 받을 생각이면 빨리 말해줘. 그놈의 모래폭풍이 오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두고 싶으니까.”

 

다행히 열을 내던 이유가 손님을 받기 싫어서보다는 아이에게 수상한 사람을 향한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는지, 울프우드는 부피 큰 짐짝 둘을 나란히 눕히고도 남을 방을 얻을 수 있었다. 플랜트가 없거나 보유량이 부족해 보이는 마을이었다. 마실 물은 있지만 씻을 물은 그릇을 헹구는 데 사용한 구정물의 재활용인 여관. 아문 상처 위로 떡을 진 핏물은 사막의 밤공기에 차갑게 식은 모래로 문질러 털고, 수건에 묻힌 물로 찝찝한 구석만 대충 닦아내야 했다. 울프우드는 피로감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 퍼니셔 위에 대자로 누운 밧슈를 노려봤다. 분명, 다시 일어날 거라고 말했었는데.

문제는 아마 플랜트와의 동조 상태에 있을 거다. 사막을 떠돌던 무법자들의 오르카 급 샌드스팀, 거기에 탑재된 플랜트들의 폭주. 배를 제때 버리는 데 성공한 갱단원들은 살아남았고, 앞서 진정시키고 분리해낸 급수 플랜트 역시 아마 생존했을 거다. 문제는 산맥을 향해 질주하던 발열 플랜트와 샌드스팀 본체였다. 너무 늦었다. 그대로 시간이 멈춘 것처럼 플랜트에 붙어 있던 밧슈를 둘러메고 뛰어내리지 않았다면 큰일이 났을 거다. 구체적으로는, 인간 같지 않은 녀석이라도 거대한 충돌 앞에선 검지 아래의 작은 웜즈와 다를 바 없다는 증명이 강제적으로 이행되었겠지.

그러니까 잘한 거라고 자위하면서도 울프우드는 며칠째 눈을 뜨지 않는 그의 모습에 불안이 머리를 쳐드는 걸 내리누를 수 없었다. 살아있었다. 그건 확실했다. 죽었다면 자연의 섭리가 그의 시신을 집어삼켜 썩어들어가기 시작했을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그의 숨과 맥박은 희박해서 느껴지지 않았다. 생물이 아니라 땅에 흩어진 바위처럼 그 위를 지나가는 것들에게 영향 미치지 않고 그저 거기 존재했다. 아무 일도 일으키지 못하고,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고…… 이렇게 있으면 놈은 차라리 행복하다고 느낄까.

하지만 그 녀석의 이름을 입에 담을 때 떠오르는 표정을 알았다.

대신 생각해줄 여유 따위 없었다. 울프우드에겐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자기 머리에 찬물을 끼얹는 대신, 울프우드는 빗자루의 대가리를 들어 양동이에 처박았다. 비눗기가 덜 빠진 물이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밧슈는 그래도 깨어나지 않았다.

 

늦은 저녁을 먹으려 내려간 식당엔 손님이 없었다. 마을의 규모는 작아도 위치는 나쁘지 않아서 행상인이며 통행객들이 꽤 있을 법 하다고 생각했는데, 곧 온다는 모래폭풍이 사람들을 다른 곳에 묶어둔 모양이었다. 제법 길쭉한 바에 앉은 건 울프우드와 그 애가 다였다. 울프우드는 오트밀 죽 위에 대충 올라간 웜즈 구이를 깨작거리며 녀석을 곁눈질했다. 그 애는 철조망으로 대강 만든 우리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 안에서 특이하게 생긴 웜즈 하나가 네발로 기어 다녔다. 바닥에 들러붙은 상태에서 동그란 우리를 굴려 뒤집으면 웜즈도 어정어정 기어서 천장에서 바닥으로 내려왔다. 울프우드는 다시 제 밥상을 내려다보았다가, 애를 봤다.

“네가 이곳의 사냥감 공급책이냐?”

“네?”

“식탁에 고기를 올려두는 게 너냔 말이지.” 음식을 턱짓하자 그가 머쓱하게 웃었다.

“기껏 잡아 놓고 다시 풀어주는 건 아깝다고, 렉스가 그러거든요.”

“수상한 아저씨들도 뼈째로 발라먹어야겠다 이거지?”

“그……! 그런 게 아니라!”

“알아. 윈-윈 하자는 거지. 나야 밥과 머리 대고 누울 자리를 제공하면 돕지 않을 것도 없어. 폭풍에 발 묶이는 동안 뭐라도 하겠다고 렉스한테 전해주라고.”

“아저씨가 건실한 사람이라서 다행이네요.”

“이래 봬도 목사님이거든.”

“그건 수상한데…….”

“요 녀석이.”

울프우드는 깔깔대며 웃는 꼬마를 포크로 삿대질하다가, 남은 음식을 긁어먹는 데 매진했다. 무른 가공물을 씹는 소리와 웜즈 우리가 삐걱대는 소리만 한참 들렸다.

“렉스는 저보고 나쁜 버릇이 들었대요. 뭔지도 모르는 걸 계속 주워 온다고 혼내요. 먹을 수 있는 거, 어떻게 다룰 줄 아는 거만 주워도 충분하다고 그러면서.”

물을 탄 싸구려 술로 입을 축이고서야 답할 말을 찾을 수 있었다.

“아주머니 말 좀 들어라. 감당할 수 없는 걸 손에 쥐려다가 큰일 나는 수가 있어.”

“죄다 만만하던데.”

“어이.”

“궁금하단 말이에요. 처음 보는 걸 보면. 어떻게 움직이는지,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지.”

“대학에 갈만한 엘리트 납셨구먼. 공부는 좀 하고?”

“책보다 이야기가 재밌어요.” 애잖아. 울프우드는 이를 드러내고 웃다가 웜즈를 좋아하는 거냐고 말을 꺼냈다.

“땅 주인이 됨직하게 큰 웜즈도 본 적 있어?”

“폭풍이 끝나면 가끔 멀리서 지나가요.”

“그놈한테 잡아먹히고 살아 돌아오는 방법을 내가 알지.” 꼬마는 우리를 끌어안고 눈을 반짝이며 집중했다. 울프우드는 허풍과 과장같이 들리는 말투로 거들먹거렸다. “웜즈들도 숨을 쉬거든? 콧구멍으로 기어들어 가면 재채기하잖아. 그때 냉큼 나오면 탈출 완료다. 어때.”

“바보 같아. 먹어서 뱃속에 들어갔는데 어떻게 콧구멍으로 나와요?”

흉부에 총알이 박히면 핏물은 기도를 타고 입과 코로 쏟아져나온다. 울프우드는 느긋하게 담배를 피워 물고 깊이 빨아들였다. 코로 연기를 화악 쏟아내자 녀석이 아차 하고 이마를 쳤다. 울프우드는 필터를 씹으면서 웃었다.

“궁금한 게 많다며, 관찰력을 좀 더 길러야겠는데?”

“잠깐 헷갈린 거예요! 그리고 웜즈는 다를 수도 있잖아요.”

“작은 거랑 큰 게 다를 수도 있고.” 그러고 보면 호흡기는 있는 거 같은데, 심장도 뛰려나? 의문을 말로 표현하자 꼬마가 신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피도 있잖아요, 색깔이 다를 뿐이지 있대요. 심장도 분명 뛸 거예요. 두근두근하고.”

“큰 놈은 심장도 커야겠군. 온몸에 피가 돌려면.”

“그래서 그런 말도 있대요. 오래 사는 동물은 심장도 느리게 뛴대요, 그래서 오래 사는 거랑 빨리 죽는 거랑은 사는 동안 심장이 뛰는 수가 결국 똑같대요.”

“뭐야 그건. 그러면 사람 심박수를 세어보면 얼마나 오래 살지 예견할 수라도 있게?” 놀리자 녀석은 메롱―하고 혀를 내밀고는, 웜즈가 숨도 쉬는지 확인하려 가봐야겠다며 우리를 들고 뛰어갔다. 울프우드는 마저 남아서 필터의 끝을 봤다. 그리고 밧슈의 뛰지 않는 심장을 생각했다.

 

 

 

 


 

 

 

 

 

빛의 구체들이 지평선 끝에서 지평선 끝까지 움직였다. 눈이 아프도록 밝았다가 숨이 막히도록 어두웠고, 그 순서가 헷갈렸다. 구체들엔 분명히 이름과 의미가 있었는데 기억해낼 수 없었다. 주변은 너무나도 빠르게 달라지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몸이랄 것에 묶이지 않은 채로 넓게 넓게 펼쳐졌다. 그만큼 가벼워졌다. 모든 소리가 섞여서 하나의 일렁이는 숨결처럼 들렸다. 그에 맞춰서 심장이 뛰었다. 쿵― 쿵―

쿵쿵쿵.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깨어난 밧슈를 맞이했다. 그는 얼떨떨하게 천장을 바라보았다. 빠져나오기 힘든 꿈에 젖어있는 기분이었다. 그는 잠시만, 이나 들어오세요, 같은 말을 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요란하게 두들겨대는 소리를 계속 들었다. 한참 뒤늦게 깨달았다. 애초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몸에 힘이 없었다. 밧슈는 약하게 목을 돌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관방이었다. 침대는 하나뿐이고 밧슈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천과 벨트로 야무지게 묶인 퍼니셔가 그의 옆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울프우드는 여기 없었다.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면 의자에 늘어진 코트와 대충 던져진 장화도 찾을 수 있었다. 무언가를 두들겨대는 소리는 계속 들려오고 있었지만, 처음 생각하던 것보단 멀었다. 세상이 하나처럼 느껴질 때는 거리라곤 아무 상관이 없었다. 헷갈린 것도 이상하지 않지.

퍼니셔를 들고 갈 힘은 없어서, 밧슈는 제 차림만 돌보고 아래로 내려갔다. 청소하던 주인장이 이제 일어났냐며 그를 반겨주었다. 피곤한 미소를 지으며 고마움을 표하자 앞에 묽은 죽이 나타났다. 밧슈는 먹어야 사는 존재였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지만 바닥까지 싹싹 비우자 한 그릇이 더 복사되었다.

“복스럽게도 먹네. 이제 좀 괜찮아요?”

밧슈는 멋쩍게 웃으면서 여관 주인과 잡담했다. 공백은 별로 없어서 채우기 쉬웠다. 울프우드에겐 고맙다고 해야겠다고 마음에 새겨두며 빈 숟가락을 물었다.

“그럼 울프우드, 제 새까만 동행인이요, 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주인이 웃으며 밖을 가리켰다. 일어날 때부터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던 방향이었다. “수리를 도와주고 있었죠. 아, 밥값 대신이에요.”

사해를 건너다 강도단의 습격으로 탈탈 털린 입장이었다. 용케 아르바이트를 써주는 여관을 만난 게 다행이다. 밧슈는 설거지를 도와드릴까 하고 서성거리다가 밖으로 쫓겨난 그대로 털레털레 나아갔다. 여관 구석에 붙은 외양간에서 요란한 공사 음이 들려왔다. 밧슈는 고개를 들어 비스듬한 지붕 위에서 균형 잡고 슬레이트를 못질하는 울프우드를 바라보았다. 그는 탄환을 장전할 때 밧슈가 그러하듯 입에 못을 물고 있다가, 뒤늦게 밧슈를 발견하고 떨어트렸다. 밧슈는 으아악 소리 지르며 머리 위로 굴러떨어지는 못을 잡았다.

“빗자루!” 밧슈는 멋쩍게 웃으며 울프우드에게 못을 도로 던져주었다. 그가 긴장이 탁 풀린 어조로 투덜대며 도로 쭈그려 앉았다. “언제까지 네놈을 끌고 다녀야 할 셈인가 했지.”

“미안해, 미안해. 끌고 다녔다고?”

울프우드는 자연스럽게 질문을 무시했다. “버리고 가야 할까 고민까지 했다니까?”

“안 그래서 고마워.” 그렇게 했더래도 밧슈가 여정에서 탈선할 리 없다는 걸 둘 다 알았다. 하지만 외로운 건 싫었다. 밧슈는 외양간 안을 슬그머니 들여다봤다. 부드러운 모래와 빠진 깃털들, 넉넉한 크기의 구유가 있었다. 토마를 한 마리 키우고 있는 걸까? 안장과 짐가방이 없는 거로 보아, 외양간을 고치는 동안 타고 나간 모양이었다. 천장에 못질하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밧슈는 여유를 틈타 몸을 씻을 생각에 돌아섰다가, 퍼뜩 고개를 틀어 의혹에 찬 시선으로 울프우드를 봤다.

“내 머리에서 왜 걸레 빤 냄새가 나는지 알아?”

“자다가 빗자루에서 대걸레로 탈바꿈이라도 했어?”

못을 아직도 들고 있었다면 울프우드에게 던졌을 거다. 밧슈는 즐겁게 웃는 그를 뒤로하고 성난 체하며 떠났다. 지평선에서 기웃거리는 태풍이 도착하기 전에 할 일들을 마쳐둬야 했다.

 

“토마는?”

“흠?” 오랜만에 함께 마시는 술이었다. 아무리 국지적 재해로 규정되었대도 사람의 기준이라, 행성이 들이대는 폭풍을 넘어설 순 없었다. 바들대며 떠는 문틀 너머로 적이 쳐들어올 걱정을 내려놓고 마음껏 취할 수 있었다. 피곤한 몸이 알코올을 어색하게 받아들였다. 귓가가 뜨겁고 목덜미에서 뛰는 박동이 느껴졌다. 그 기분이 재미있어서 밧슈는 웃고 다시 물어봤다.

“외양간을 고쳤잖아. 그땐 토마가 없었으니까.”

“아. 꼬맹이가 데리고 나갔다던데.” 해 질 녘과 함께 모래폭풍이 들이닥친 후, 그 꼬마를 다시 본 기억이 없었다. 밧슈는 걱정스레 이마를 찌푸렸다. 렉스가 그 애, 제니라고 했었지. 제니를 찾는 걸 보진 못했으니까 방으로 들어간 걸까.

“일손이…… 어라. 그러면 너 없었으면 안 고치려고 했던 거래?”

“손님도 없으니까 큰 새 한 마리 정도 여기 들여놓으려고 한 거 아냐?”

새 대신에 술 마시고 개 된 놈 둘이나 들여놓게 생겼다. 밧슈는 푸헤헤 웃으며 바에 엎드렸다. 팔에 볼을 괸 채 울프우드를 멍하니 쳐다보면 눈이 마주쳤다. 그가 인상을 찡그렸다.

“뭐하는데?”

“음. 꿈을 꿨어.”

“기절했을 때?”

“으흠.”

“꾸기라도 했네. 난 또 네 심장이 안 뛰어가지고.”

“죽은 줄 알았어?”

“불사신은 아니잖아.” 하지만 인간 같지 않은 것이었다. 밧슈는 태풍이 몰아치는 소리를 들었다. 꿈을 꾸고 있을 때는 들이쉬는 숨의 시작부처럼 느껴졌을 길고 긴 호흡이었다. 느리게 말했다.

“지금은 제대로 뛰고 있어. ……신경 쓰지 마?”

“잘도 안 쓰이겠다.” 담배 냄새가 훅 일었다. 밧슈는 흔들리며 위로 오르는 연기를 쫓아 눈을 굴렸다. 외풍이 조금 들어오고 있었다. 쌀쌀했다. 코트가 덥지 않을 정도로. “꼬마한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무슨?”

“오래 사는 동물은 심장도 느리게 뛴다고.” 밧슈는 눈을 깜박였다. 술기운에 아롱아롱한 램프의 빛이 속눈썹에 맺혔다. 해가 져서 선글라스를 쓰지도 않았는데 울프우드가 그런 말을 하는 표정을 읽기 어려웠다. 다 뭉개져서 선명하게 들리는 건 귓가에 울리는 심장 소리뿐이었다. 쿵― 쿵―

“그거 신기하네.” 밧슈는 자신의 뛰는 심장을 세어보다가, 숫자를 세 번째로 틀리고 나서야 포기했다. 볼멘소리로 말했다. “시계가 없어.”

“언제부터 타이밍 재는데 시계가 필요했다고 그래? 멍청이.”

“의학의 영역이잖아. 과학은 정확해야 한다고. 대충 생긴 목사라서 몰라?”

울프우드는 주먹을 들어 대충 흔들었다. 팔을 뻗어 한 대 치기도 귀찮다는 거다. 밧슈는 작게 웃곤, 그가 채워둔 잔을 들어 그의 주먹에 대고 건배했다. 독주가 흘러넘쳐 손가락을 축였다. 바에 내려두고 질질 끌고 와서 후루룩 마셨다. 두근거렸다. 술을 마시면 심장이 조금 더 빠르게 뛴다. 싸울 때처럼, 하지만 싸울 때처럼 슬프지 않게 뛴다. 둘 다 빠르게 죽어가는 방법이라서 그러는 걸까 하는 생각이 어지러운 머릿속을 지나갔다. 밧슈는 축 처진 한숨을 쉬었다.

“그것도 그건데.” 발견한 문제점을 말로 옮기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사람이랑 비교해야 하는데. 보통 얼마나 빨리 뛸까?”

정적이 흘렀다. 밧슈는 방금 자신처럼 괜히 심박수를 세어보는 울프우드를 상상하며 미소 지었다. 손으로 짚어보지 않아도 들리는 걸까. 울프우드는 셈의 결과를 말해주는 대신, 남은 걸 단숨에 들이키고 비틀비틀 일어났다. 화장실 좀 다녀와야겠단다. 밧슈는 내친김에 엎어져서 졸다가, 우당탕 되돌아오는 발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울프우드?”

“애 어디 갔어.” 제정신이 돌아오는 소리였다. 밧슈는 바로 일어나 앉았다.

“저녁 먹고 방에 들어간 거 아냐?”

분명 1층이었던 거 같은데. 방문을 지나쳤는데 인기척이 없었단다. 몰래 열어봤는데 침대에도 없었단 소리에 밧슈는 울프우드와 함께 여관의 빈방들을 전부 뒤집어놨다. 이곳이 남의 집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머리에 재입력된 건 부스스한 머리의 렉스가 안방에서 나왔을 때였다. 밧슈는 그때 코트만큼 빨간 얼굴을 하고 창고를 뒤져봐야 한다는 울프우드의 뒷덜미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놀라서 손을 놓자 그가 얼굴부터 복도에 처박았다.

“무슨 일이에요?” 의심스러워하는 표정의 렉스에게 양손을 마구 흔들었다.

“혹시 제니 봤어요?” 단숨에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그 애가 집에 없다면, 나갈 수 있던 시간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이전의 수십 분에 지나지 않았다. 제니가 집 안에 없단 걸 확인한 렉스는 초조하게 팔뚝을 문질렀다.

“가끔 외양간에서 포시와 함께 자거든요. 하지만 폭풍이 부는데…… 무슨 생각으로 간 건지.”

그래도 행방은 거의 확실하다. 벽에 기대어 몸을 일으킨 울프우드가 척 엄지로 문을 가리켰다.

“잡아 온다.”

 

무대뽀로 나가는 걸 간신히 따라잡았다. 모래가 몸에 부딪히는 소리가 매서웠다. 여관의 외벽에 손을 짚으며 나아가는 울프우드의 옆으로 가스등을 들었다. 불이 유리로 보호되고 있는데도 흔들리는 것 같았다. 대화는 불가능했다. 그들은 정적 아닌 침묵 속에서 외양간에 도달했다. 쪽문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울프우드가 바람의 저항에 맞서 문을 열고, 밧슈가 전등을 안으로 들이밀었다.

토마의 깃털에 파묻혀 있던 제니가 고개를 슬그머니 들었다.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밧슈를 울프우드가 걷어차 안으로 쑤셔 넣었다. 뒤로 문이 잽싸게 닫혔다. 건장한 남자가 기대자 문은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밧슈는 머리에서 모래를 털어내며 제니에게 다가갔다. “몰래 나오고 싶던 거니?”

“말하면 못 나가게 했을 거잖아요.”

“당연하지 인마.”

“나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어?” 밧슈는 모래 위에 푹 주저앉고 그 앞에 가스등을 꽂듯이 내려두었다. 조용히 타오르는 불꽃이 제니의 눈 속에서 반짝였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 울프우드의 짜증이 보호하려는 마음에서 오는 것처럼.

“포시랑 있고 싶었어요.”

“폭풍이 지나가고 나서는 안 돼?”

제니가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피하기보단 큰 새의 품에 얼굴을 묻고 뺨을 비비는 모양새였다. 눈을 감아도 속눈썹이 빛을 붙잡았다. 밧슈는 애틋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와 마음이 같기라도 한지, 포시가 길쭉한 목을 내려 제니를 감쌌다. 종이 달라도 포옹은 같다. 따뜻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폭풍이 지나가면 없어질 수도 있으니까.” 웅얼거리는 대답이 돌아왔다. 밧슈는 차안대의 자국을 따라 털이 빠진 토마의 얼굴을 봤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도 녀석의 깃털은 낡았고 듬성듬성했다. 큰 체격은 오래된 나이에서 왔다. 울프우드가 뒤에서 말했다. 그의 시선은 안장이 매달려 있어야 할 빈 걸쇠를 향해 있었다. 고치지 않은 외양간, 빈 걸쇠. 밧슈는 슬픈 날숨을 쉬었다.

“놓치기 싫었구나.”

밧슈는 제니의 옆으로 슬금슬금 궁둥이를 옮겨 앉았다. 그는 토마에게 기댄 자세를 바꾸지 않았지만, 밧슈를 밀어내거나 멀어지지도 않았다. 밧슈는 그를 따라 토마의 털에 오른손을 파묻어보았다. 느리게 들썩이는 호흡이 느껴졌다. 그 아래로 더 희미하고 느리게, 심장이 뛰었다.

“포시는 꼬부랑 할머니예요. 여기저기 아프고. 제가 태어날 때부터 항상 여기 있었거든요.”

문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울프우드가 빛이 드리운 그림자처럼 가까이 서서 둘을 내려보다, 밧슈가 원래 있던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밧슈는 아이를 보는 그를 보았다.

“그래서 심장 소리를 세는 거냐?”

“응……”

추운 밤이었다. 위로 쫓겨났던 공기가 그 설움을 차갑게 담아 몰아치는 시간이었다. 시야만을 뒤흔들고 끝내지 않고 세상을 그 힘으로 뒤집어놓는 폭풍의 밤. 바닥에 고일 수밖에 없는 인간은 그 서슬 속에서 얼어붙어 더는 움직일 수 없다.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무력하다.

울프우드가 손을 뻗었다. 밧슈처럼 깃털에 손을 묻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그는 제니의 손을 잡아끌어 자기 손목에 올려두었다. 제니는 놀란 눈을 뜨고 울프우드를 바라보았다. 한참 작은 손가락이 두드러진 손목뼈에 꼭 감겼다.

“셀 수 있겠어?”

“빨라요.” 제니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 형이 몇 년쯤 살 거 같냐?”

“아저씬데.” 울프우드가 눈을 부라리자 제니는 쿡쿡 웃었다. “렉스만큼…… 사십 살 더?”

“그럼 심장이 더 느리게 뛰는 큰 새는 그보다 오래 살겠네.”

“뭐야 그게.” 바보 같다고 투덜대는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아까까지는 어둠 속에서 혼자 울음을 참던 눈이었는데. 밧슈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제니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래도 혼자 두면 외롭겠다. 같이 있어 주려는 거지.”

고개를 끄덕여서 덧붙였다. “나도 같이 있어도 될까?”

“으음. 이상한 십자가 아저씨는 약해 보이니까, 괜찮으려나.”

“어라, 이상한 십자가 아저씨는 저쪽 아냐?”

울프우드가 이유 모를 신음을 흘리며 홱 일어섰다.

“그럼 나는 주인장한테 말하러 간다.” 밧슈와 제니는 나란히 손을 흔들었다. 폭풍 소리가 더 커졌다가, 문이 닫히며 잦아들었다. 밧슈는 가스등을 발에 차이지 않을 곳에 멀리 두고, 외풍이 드는 쪽으로 자리를 옮겨 누웠다. 제니가 꾸물대며 밧슈의 손을 끌어다가, 울프우드에게 한 것처럼 맥을 짚어보았다. 왼손이었다. 밧슈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오른손을 바꿔 쥐여주었다.

“누가 더 오래 살 거 같아?”

“진짜 아니잖아요, 이런 거.”

“로스트 테크놀로지를 가진 사람들이 들으면 귀여워할 거 같긴 하다.” 하지만 제니는 아직도 밧슈의 맥박을 세어 보고 있었다. 그가 잠든 줄 알았을 정도로 오래 가만히 있었다.

“다른 사람 심장 뛰는 건, 렉스 말고는 처음 느껴보는 거 같아요.”

“의사도 아니고, 보통 안 그러잖아?”

“포시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으면, 제 심장도 느려져요.” 그렇게 잠들었겠지. 밧슈는 웅얼거리며 말을 잇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 같이 아주 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 같아서……”

밧슈는 잠결에 흘러나온 소망을 가슴 가까이 끌어안았다. 오랜 시간이라는 약속이 행복과 병치될 수 있는 순진한 희망을, 비록 자신이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사랑스럽게 여겼다.

문이 도로 열리며 찬 바람이 몰아닥쳤지만 밧슈의 뼈에 스며들진 못했다. 아직도 오른 손목에 얹혀있는 손아귀. 아이를 감싸 안고 조용히 숨 쉬는 털 짐승. 투덜대며 들고 온 모포를 털다가 잠든 제니를 보고 입을 다무는 울프우드. 그가 말없이 어깨에 덮어주는 담요.

모두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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