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딘] 크리스마스 선물은 산타로

루크딘 현대 판타지 au

당신은 알고 있는가. '산타'라는 것은 사실 직업명이자 종족명이라는 것을.

뭐라고? 산타는 흰색 수염이 풍성한 할아버지 아니냐고?

그래,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우리 '산타 주식회사'의 초대 CEO, 산타 클로스이다. 초대 CEO이면서 동시에 얼굴마담이기도 해서 다들 '산타'하면 산타 클로스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산타'라고만 한다면 '산타 주식회사'에 소속된 모든 배달원들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는 '루돌프'가 있다. 만약 '빨간 코 루돌프'라고 하면 초대 루돌프를 가리키는 것이 되지만, 그냥 '루돌프'라고만 한다면 그건 '산타 썰매'의 선두에 서는 순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통 썰매를 리드하는 순록에게 존경의 의미를 담아...

아, 이런... 너무 옆으로 새어버렸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오늘은 산타 주식회사의 수많은 산타 중 한 명인 '딘 자린'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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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00년. 미국, 그 중에서도 USA-D-27번 구역을 담당하고 있는 산타인 딘 자린은 올해의 소원 리스트를 손에 들고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USA-D-27번 구역은 항상 만만치 않은 구역이긴 했지만, 올해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찰리는 이번에 드래곤을 달라고 요청하기는 했는데, 사실 이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드래곤이 집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염려한 찰리의 부모님과 합의하여 건전지로 움직이는 커다란 드래곤 로봇을 주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브라이언이 요청한 유니콘도 어렵지 않았다. 사실 브라이언이 원한 것은 유니콘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유니콘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오색빛깔로 반짝이는 유니콘 원피스를 선물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브라이언의 아버지는 남자아이에게 유니콘 원피스는 좀 아니지 않냐고 불평을 했지만 묵살했다. 중요한 건 아이가 뭘 원하느냐, 이니까.) 레아가 원한 '세계평화'도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산타 주식회사는 전세계 어린이의 행복을 위하여 내전을 포함한 모든 전쟁의 종식을 기원하고 있으며...' 로 시작하는 산타 주식회사 CEO가 직접 서명한 서한을 전달하면 되기 때문이다. (작년에 그렇게 합의했다.) 하지만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의외의 복병이 있었다. 바로 루크 스카이워커였다. 아니, '산타를 주세요.'라니. 도대체 뭘 원하는 거지...? 혹시 '산타에게, OO를 주세요.'를 적으려다가 실수한 건 아닐까? 딘 자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아 루크의 부모님에게 이메일을 보내 보았지만 전혀 모르겠다는 답만 돌아왔다. 이제 어떡한담... 아이에게 직접 접촉해서 물어보는 건 규정 위반인데...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딘 자린은 결국 답을 알아내지 못하고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날 밤, 다른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한 딘 자린은 마지막으로 아미달라 가의 굴뚝을 타고 내려갔다. 조그마한 드로이드(이름은 롤라이다.)를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내려놓은 딘 자린은 그 위에 레아를 위해 준비한 산타 주식회사 CEO의 공식서한을 올려두었다. 레아를 위한 선물을 내려놓은 딘 자린은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진저맨 쿠키를 한입 베어물었다. 후우-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며 쿠키를 우물거리고 있자 이내 거실 문가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산타..."

어린 루크 스카이워커가 파아란 눈을 반짝이며 서있었다.

"안녕, 루크. 오랜만이야."

짧게 인사를 건넨 딘 자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루크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내밀었다.

"이번에는 무슨 선물을 받고 싶은지 적지 않았더구나. 그래서 작년에 준 선물이랑 비슷한 걸 들고 왔어."

N-1 스타파이터 모형이란다. 딘 자린이 작게 덧붙였다. 루크는 딘 자린이 내민 선물을 받아들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저... 올해는 '산타'를 받고 싶다고 적었는 걸요."

...실수가 아니었어?

딘 자린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미안해, 잘못 적은 건 줄 알았어. ...그런데 산타를 받고 싶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니?"

딘 자린의 질문에 우물쭈물하던 루크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저는... 형이 좋아요. 형이랑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었어요."

딘 자린은 아까보다 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해, 루크. 나는 크리스마스 날 제일 바쁜 걸."

그의 말에 루크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건 어때? 올해 배달일은 다 끝냈으니 지금부터 같이 놀자. 동이 트기 전에만 돌아가면 되니까."

아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루크가 복슬복슬한 머리카락이 팔랑거릴 정도로 격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딘 자린은 그 귀여운 머리통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루크는 딘 자린이 최근 100년 간 본 아이 중에서 제일 사랑스럽고 착한 아이였다. 그러니 몇 시간 정도는 함께 보내줄 수 있지. 그래, 몇 시간 정도야...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세상일은 딘 자린의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그날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딘 자린과의 짧은 크리스마스를 즐긴 루크는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선물로 '산타'를 달라고 빌었기 때문이다. 딘 자린이 다른 소원을 빌어달라고 부탁해도 소용이 없었다. 루크는 12살이 되는 크리스마스에도 선물로 '산타'를 달라고 빌었다.

"...그래도 이제 이렇게 노는 것도 마지막이네."

딘 자린의 말에 코코아를 홀짝이던 루크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12살이 된 루크의 얼굴에서는 이제 '어린아이'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그게 무슨 의미이에요?"

"너 이제 12살이잖아. 크리스마스 선물은 12살까지밖에 못 받으니까."

"네에?!!"

루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를 질렀다. 딘 자린도 덩달아 놀라며 물었다.

"몰랐어?? 이번이 마지막 '선물'이야."

"갑자기 이러는 게 어딨어요!"

"아니... 아는 줄 알았지... 미국의 어린이는 12살까지만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정해져 있으니까..."

참고로 한국은 한국나이로 7살까지야. 이건 정부와 산타 주식회사가 어떻게 계약하느냐에 따라 다르거든.

딘 자린이 작게 덧붙였다. 루크는 전혀 듣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벽난로의 빛이 비친 얼굴이 불꽃처럼 작게 일렁이고 있었다.

"...루크."

딘 자린은 루크의 턱을 부드럽게 감싸며 얼굴을 약간 들어올렸다. 루크의 맑은 푸른색 눈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속에는 이 사실을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에 대한 약간 원망과, 그 약간의 원망으로는 차마 다 가릴 수 없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작게 한숨을 쉰 딘 자린은 내내 말할까 말까 고민하던 말을 내뱉었다.

"루크, 나 이제 20년 뒤면 은퇴해."

루크의 눈에 작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2023년 크리스마스가 내 마지막 크리스마스이거든. 네가 만약..."

딘 자린은 잠깐 입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네가 만약 그때까지 나를 잊지 않는다면, 나를 마중나와줘."

널 만나러 갈게. 딘 자린의 말은 모닥불이 타는 소리에도 묻힐 것처럼 작게 흘러나왔다. 루크는 용케 그 말을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그리고 시간을 흐르고 흘러, 현재, 2023년 크리스마스가 된다. 딘 자린은 마지막 선물을 굴뚝으로 흘려보내고는 다시 썰매에 올라탔다. 이제 갈 곳은 한 곳밖에 남지 않았다. 딘 자린은 썰매를 몰아 익숙한 집으로 향했다. 지난 20년간 한번도 방문하지 않았지만,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는 그 집으로. 딘 자린은 인간들에게 20년이 얼마나 긴 세월인지 알았다. 과연 루크는 그 긴 세월이 지나고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잊어버리진 않았을까? '산타'인 그로서는 난생 처음 느껴보았던 그 온기를... 루크도 그리워하고 있을까? 확신이 없었다. '산타'는 계약에 의하지 않으면 인간의 집에 들어갈 수 없다. 인간을 깨워서도 안 된다. 그러니 루크가 마중나와주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그리고 오늘이 아니면, 더이상 만날 기회도 만들 수 없다. '산타'란 그런 존재이니까.

딘 자린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썰매는 열심히 달려 루크의 집에 도착했다. 집앞에는 낯설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밖에 없는 사람이 서있었다.

"루크."

"자린 씨."

못 본 사이 청년이 되어버린 루크가 어렸을 때와 똑같은 웃음을 지었다.

"마중나와줬구나."

"당연하죠."

"...날 기억하고 있었어?"

"단 한순간도 잊은 적 없어요."

딘 자린의 얼굴에도 웃음이 퍼졌다. 딘 자린은 잠시 스스로를 살폈다. 이제 그에게는 딱 하나의 소원을 이루어줄 만큼의 마법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딘 자린은 루크에게 물었다.

"이제 정말 마지막 선물이야.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뭘 가지고 싶어?"

루크는 환하게 웃으며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딘 자린. 딘 자린을 주세요."

딘 자린은 자기도 모르게 푸스스 웃어버리고 말았다. 정말 한결같은 아이야.

"그래, 나를 선물로 줄게."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딘 자린은 그의 안에서 무언가 깨어지는 것을 느꼈다. 계약이라는 이름 하에 그의 행동을 제약하고 있던 무언가가. 딘 자린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산타'로 일하던 수백년 간 그의 곁을 지켜주었던 썰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왜 그래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자유를 얻었다는 것만을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루크의 것이다.

딘 자린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다시 앞을 본 딘 자린은 웃으며 작게 속삭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루크."

루크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끝

아래는 설정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것 같아 적어본 해설입니다.

그러니까... '산타'라는 것은 직업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를 가리키기도 한다는 설정입니다. 계약에 매여서 몇 백년씩이나 인간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인 거죠. 이 산타는 자신이 가진 마법의 힘을 전부 소진하면 산타 일을 그만두고 '은퇴'하여서 북극에 있는 산타 실버타운에서 살아가게 되는데, 자린이는 은퇴하기 전 남은 마지막 마법의 힘을 루크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데에 쓰기로 한 겁니다. 그러니 원래대로라면 루크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주고 북극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야만 하겠죠. 이것도 계약 내용이기 때문에 벗어날 수 없어요. 하지만 루크가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로 '딘 자린'을 원했기 때문에 평생 루크 곁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는... 그런 설정이에요!

그리고 하나 더! 루크는 어째서 산타를 달라는 소원을 빌게 되었을까요? 바로 그 전 크리스마스 때 자다가 깨서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선물을 배달하는 산타 딘 자린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귀엽죠.

이상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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