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도메라] W,
230209 만달로리안 S104
끝없는 눈으로 뒤덮인 어떤 행성. 새하얀 허허벌판에 발자국을 찍어내던 남자는 문득 자신이 책임져야 할 아이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문제없어 보이는군. 평소보다 뒤따라오는 게 늦는 것 같지만…. 제법 굵은 눈발이 헬멧을 부딪고 지나간다. 유독 들뜬 아이를 보며 그는 한숨을 한 번 내쉰다. 저 녀석은 겨울을 본 적이 없나? 겨울Winter. 겨울…. 무언가 비슷하게 떠오르는 게 있는데.
그래. 윈타Winta.
분명 그런 이름이었다. 소르간의 여자아이. 자연히 함께 기억 저편에서 딸려 나오는 한 사람이 있다. 남자는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려는 아이를 손으로 받쳐 든다. 이 꼬마 웜프 쥐 녀석, 조심해야지. 말을 알아듣기는 하는 건지…. 하여간 손이 많이 가는 놈이다.
소르간Sorgan. 우주선 항만 시설도 산업 시설도 없고 인구마저도 적은 촌구석. 질기게도 달라붙는 위협으로부터 아이를 숨겨 몇 달 머물기에는 안성맞춤이었을 곳이다. 그러나 그 안식처 역시 또 다른 혼란을 겪고 있었다. 기름값조차 되지 않는 돈을 들이밀며 도움을 청하던 농부들. 제국은 분명 몰락했을 텐데, 어째서 이곳저곳에서 그 잔재가 남아있는지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뭐 어찌 되었든 이제는 다시 평화롭겠지만. 남자는 생각한다. 만약 소르간에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 마을은 지금쯤 어땠을까. 윈타와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당신은 어떻게 됐을까.
남자는 부러 여자를 늦게 떠올린다. 여자는 조금 더 남는 건 어떠냐고 했으나 남자는 제 처지에 정착이라는 단어는 과분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골칫덩이 하나를 해치우고 난 다음에는 남자 자신이 소르간의 골치가 되어있었다. AT-ST와 치렀던 전투로부터 몇 주 지나지 않아 그새 다른 현상금 사냥꾼이 아이를 노리고 행성에 찾아온 것이다. 아이를 생각해도 마을 사람들을 생각해도 방법은 하나였다. 떠나야 했다. 막 도로 떼려던 그의 발이 멈추지만, 눈은 여전히 날린다.
그곳에도 겨울이 왔나요.
남자에게 신앙과 그 자신을 분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와치의 계율은 남자를 구성하는 요소 그 자체가 된 지 오래였으므로. 하지만 그는 이따금 자신이 절대로 겪지 못했을 일들을 상상하고는 했다. 가령 소르간의 겨울 같은. 레이저 크레스트가 처음 착륙했을 때 소르간은 한참 햇볕이 따스했던 행성이었다. 올리브색 나뭇잎들이 바람에 부드러이 나부끼고, 발치에는 억세지 않은 작은 풀들이 자리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소르간에는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다고 일러 주었었다. 다른 기억을 그러모아 만들어낸 소르간의 겨울 풍경이 남자의 머릿속에서만 여럿 지나간다. 얼어붙은 연못이나 초록빛을 조금 잃은 숲 같은. 그중에 어느 것이 진짜와 가까울지, 혹은 전부 완전히 틀려버렸을지 남자는 알지 못한다. 한기에 뻣뻣해진 손을 쥐었다 펴고 그가 다시 발을 뗀다. 정답은 은하 저편에 존재하지만, 확인할 수 없다.
아마도 소르간에 다시 가지는 않을 테니까.
여자는 바람에 가볍게 흩날리는 눈을 바라본다. 고운 모래를 닮은 눈은 쉬이 바닥에 내려앉지 않는다. 드디어 소르간에도 겨울이 왔다. 일평생을 이 행성에서만 살았으니 새로울 것 하나 없으련만, 이번에는 평소와 달리 떠오르는 게 하나. 아니. 한 사람이 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던 남자. 차마 이름도 묻지 못한 탓에 여자에게는 남자를 부를 방법조차 없다.
그에게 소르간의 겨울을 말한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그 떠돌이들이 오래 머물기를 바라 그런 말을 꺼냈는지도 모른다. 그가 묻지도 않았고, 아직 오지도 않은 계절이었는데. 크릴 양식을 잠시 쉴 수 있는 시기라는 설명을 덧붙였을 때 남자는 그렇군요, 정도로 대답했던 것 같다.
당신이 이곳의 겨울을 봤다면 어땠을까요. 말수라고는 통 없는 사람이었음을 알지만, 물어봤다면 좋네요, 라고는 해줬을지 모를 일이다. 남자는 질문하면 꼬박 답해주는 편이었으니까. 그러나 끝내 그는 겨울을 기다릴 틈도 없이 떠났다. 남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원망하지도 않는다. 대신에 여자는 감히 그의 헬멧에 손을 얹었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때 헬멧 너머로 비치던 남자의 눈. 말이라는 것이 반드시 언어의 형태만을 취하지는 않는 법이다. 그것을 상기하면 여자는 분명 남자가 소르간의 겨울을 궁금해했을 거라는 어떤 종류의 확신을 얻는다. 그러니까… 그것으로 충분하다. 설령 그가 다시 이곳을 들르지 않는다고 해도.
“엄마!”
윈타가 부른다. 여자는 이어지는 생각을 끊어내고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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