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우둔하게 사는 남자
고죠*유지 / 죽음요소
_ 죽음 요소
_ 연령 조작
_ 공미포 약 3000자
< 일생을 우둔하게 사는 남자 - 0
_ 고죠는 울지 않는다
“유지.”
“응.”
“그냥 하는 말인데.”
“마지막이니까…. 뭐, 하고 싶은 거라도 있나 해서.”
고죠가 그렇게 말했다. 의외였다. 선배는 항상 나에게만은 이런 말투를 쓰지 않았으니까. 안대, 아니 부적인가. 무튼 시야가 가려져서 그의 표정은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이타도리는 눈을 뜨는 대신 팔을 뻗었다. 다행히도, 고죠는 지근거리에 앉아있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고죠의 뺨을 손바닥으로 감싼다. 먼저 엄지손가락으로 밑 눈가를 훑었다. 의외로 선글라스를 쓰지 않아서, 처음으로 만져본 고죠의 눈가는 부드러웠다. …뜨거웠다. 울음을 참고 있는 건가. 왜?
“선배, 눈가가 뜨거워. 왜 이런 거야?”
….
고죠는 대답하지 않았다. 턱과 입 주변이 살짝 움직이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살짝 밑으로 떨군다. 대답하려고 하긴 했나 봐. 그게 또 기특하고 사랑스러워서, 미안했다. 또 한 번, 턱이 은근히 벌려지는 듯싶더니 ‘흐’ 하고 공기를 들이쉬는 소리가 났다.
“선배, 대답 안 해줄 거야? 나 삐진다.”
….
고죠는 이번에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숨을 골랐다. 몇분쯤 지났을까, 고죠의 뺨을 감싼 손 위로, 고죠의 것이 천천히 놓였다. 그리고 또 가만있나 싶더니 네 손가락을 이타도리의 검지와 엄지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러고 보니, 항상 서늘했던 손이 이제는 식은땀까지 나서 끈적끈적했다. 마치 가지 말라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잡은 손으로부터 느껴지는 악력이 말이 안 되게 강했다. …그리고 약했다.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유지, 정말로, 이대로….”
마침내 고죠가 말을 잇는다. 이타도리는 잠자코, 여전히 뺨에 손을 올린 채로 그 이야기를 듣고만 있기로 했다. 최강이라고 불리는 사람답지 않게, 지금 고죠의 목소리는 굉장히 불안정했다. 잡은 손만큼이나 떨리는 목소리도, 평소의 배로 줄은 목소리의 크기도, 술술 잘 말할 문장을 멈칫거리는 것도.
“…나는, 네가 제발, 살았으면 좋겠어.”
그게 고죠의 진심이었다. 매번 모진 말로 이타도리를 대하던 고죠의 진심. 굳이 진심이라고 확인받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이타도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는 목소리와 손을 느끼고 들으면서, 잠자코 고죠의 말을 들었다.
“미, 안 해. 마지막도… 기뻐해 주지 못해서.”
그렇게 말을 다 하곤, 고죠는 뺨에 놓인 이타도리의 손에 무게를 실어 비볐다.
…!
뜨거운 액체가 이타도리의 엄지에 스며든다. 고죠는 울고 있었다. 울기 시작했다. 의외였다. 고죠가 우는 건 흔한 일이 아니란 것을, 이타도리 자신도 알고 있었기에 더욱 고죠가 이해되지 않았다.
“선배, 왜 울어? 울지마.”
급한 대로 옷소매를 잡아끌어 고죠의 눈가를 톡톡 두드렸다. 괜찮다고. 나 없이도 잘 살 거라고. 그렇게 담아서.
“유지, 좋아, 해. 미안….”
아니야. 고죠는 미안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고백한 상황이 상황이 아니라서, 당황스럽긴 해도.
“왜 미안해, 고작 그런 거로.”
“….”
“나도 선배 좋아하는데. 통했었네, 우리. 그렇지?”
“…유지.”
고죠의 검지 위로는 이제 완벽한 구의 형태로 변한 무한이 있다. 오직 고죠만이 다룰 수 있는, 무한의 구. 고작 검지 한두 마디 정도 될 법한 이 구가, 단 몇초 뒤면 이타도리의 심장 중앙을 뚫는다. 오른손이 떨리고 있었다. 고죠는 절망했다. 이 힘으로 단 몇초 뒤에는 사랑하는 이를 죽이게 된다니.
“응…. 진짜, 마지막일까.”
이타도리는 여전히 침착했다. 그의 목소리에서도, 행동거지나 표정에서도, 후회나 미련은 한끝도 볼 수 없다. 이상하게도, 미련이 뚝뚝 흘러넘치는 것은 꼭 매일 같이 투덜대기만 하던 고죠였다.
이럴 거면, 주술사가 되지 않아야 했다.
힘을 키우지 않아야 했다.
무하한을, 육안을 가지고 태어나지 말아야 했다.
주력을 조작하는 법을 깨닫지 않아야 했다.
… 유지를 만나지 말 걸 그랬다.
후회가 치민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못 하는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분노도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슬픔도, 다신 볼 수 없을 거라는 절망도, 어떻게든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희망도….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질림도. 고죠의 혈색은 일각을 다투며 붉어졌다가도, 허여멀건 해졌다가도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이타도리의 걱정을 품은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 혹시 또 이상한 생각 중일까 봐 이야기하는 건데.”
….
“난 정말로 선배 만난 거 후회 안 해.”
….
“선배도, 그렇지?”
이타도리는 바보 같았다. 여전히 바보였다. 여전히, 변함없이 어리석고 둔했다. 이 바보야. 너는 나를 왜 좋아해. 너만은 날 만난 걸 후회해야지. 하고 이타도리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목이 멘다. 고죠로서는 처음 겪는 느낌이었다. 그는 우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 울면서 말하는 법도 몰랐다.
그의 마지막 물음에 대답은 해주지 못했다. 대신 이타도리를 꽉 끌어안는 것으로 말을 대신했다. 무한이 이타도리의 가슴께를 뚫고 땅에 처박혔다. 구가 남긴 동그란 구멍은 삽시간에 이타도리의 순백 유카타를 붉게 물들었다. 이타도리의 상체는 저항 없이 고죠 쪽으로 무게를 실었다. 입으로 피를 쿨럭거리면서도 기어코 입을 열었다.
“선,배는, 오래, 살아야, 해.”
이타도리가 입꼬리를 바들바들 올리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꺼지기 직전 등불처럼, 작고 가녀렸다. 한 뼘의 바람이라도 불었다가는 듣지도 못할, 조그마한 목소리. 이타도리의 죽음이 코앞에 있다는 소리기도 했다.
“…. 너 진짜, 짜증 난다고….”
고죠는 어렸다. 채 20대가 되지 못한 나이의 그는, 아직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불완전하고, 미성숙했다. 고죠에게는 그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올바르게 살아간 그를 축복해 주는 편보다 자신을 두고 죽음을 선택한 그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편이 쉬웠다. 마음에도 없는 짜증을 굳이 굳이 만들어내면서, 꾸역꾸역 내뱉는다.
그리고 고죠의 슬픔 어린 목소리를 들은 이타도리는 코웃음을 치며 웃었다. 아니, 아마 평소의 그라면 호탕하고, 크게 웃었을 텐데. 지금은 그러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주제에 맞지 않게 얌전히 웃은 이타도리는 곧 마지막 말을 내뱉는다.
“선배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멋있,으니까.”
“…. ‘나 없이도 분명 잘 살겠지’ 하고, 멋대로, 기도,했어.”
“근데…. 이렇,게 보니까. 내 억측, 이였,더라고….”
꽉, 고죠는 이타도리의 어깨를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그가 당장 할 수 있는 거라곤, 가지 말라는 뜻으로 이타도리의 몸 곳곳을 꽉 붙잡는것 뿐이였다. 더 이상의 움직임은 허락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도, 이타도리의 가슴에서는 검붉은 피가 줄줄 새고 있으니까.
“미안, 선,배. 마지막에,서야…. 이야,기 해서….”
사랑해.
이타도리의 작은 울림에 뒤따르는 목소리는 없었다. 대신에, 이따금 들려오던 누군가의 흐느낌이 조금 커졌다.
-
이타도리를 이 손으로 죽였다. 이젠 자신이 죽을 만큼 미웠다. 아까와 같은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제일 큰 것은 분노였다. 빠르게, 그리고 확실하게 온도를 잃고 있는 시체를 품속에 꼭 껴안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주룩, 주룩, 하고 눈물샘을 비집고 나오는 액체가 선명한 푸른색 눈을 희뿌옇게 만든다. 안개가 낀 것처럼, 세상이 흐렸다. 닦을 생각은 나지 않았다. 이 몸에서 손을 떼기가 무서웠다. 만약 놓았다가, 이 희미한 온기가 더 빨리 닳아 없어질까 봐.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무력감. 고죠는 이타도리를 죽이고도 내리 4시간을 퀴퀴한 지하실에 널브러져 멍하니 시체를 바라봤다. 무심코 피붓결을 쓰다듬으면 느껴지는 건 전처럼 햇볕 같은 온기가 아니었다. 그저 며칠만 있으면 구더기가 꼬여갈 차가운 시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가슴께에 난 검지 두 마디 크기의 구멍에서는 이젠 피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검붉은 피는 얕게 묻은 곳부터 점점 갈색으로 말라갔고, 시도 때도 없이 바뀌던 얼굴빛은 이젠 창백해진 채로, 아무 색도 띠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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