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치 (轉置)
* 코이토와 츠키시마의 인종과 젠더가 모두 바뀝니다.
* 모브가 등장합니다.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지만 츠키시마는 온화하다. 눈치가 빠른 남자를 잘 속여 왔다는 안도감과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동시에 내 머리를 짓누른다. 츠키시마는 경사스러운 일인데 왜 침울하냐며 놀리듯 녹차를 마셨다. 그날 이후 츠키시마가 병영 이외의 장소에서 '나'와 만나는 일은 없었다. 아내는 좋은 사람이자 영리한 인물이라 '내'가 그녀를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고도 혼인에 응하였다. 결혼 생활이라는 것은 제법 군 생활과 비슷한 면모가 있어 공동의 목적이 있다면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행히 '나'는 아내를 안을 수 있었고, 양가와 상사를 만족시킬 정도로 번영할 수 있었다. 츠키시마는 '내' 첫 번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쯤 지병의 악화를 사유로 퇴역하였다. 어차피 '내' 구멍은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아내에게 충실한 남편이 되었다. '나'는 그래도 아내에게 실망스러운 사람이었다. 결국 우리는 막내가 혼인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하였다. 당연히 아이들은 '나'의 집을 방문하지 않았다. 아이들이나 아내에게 유감을 가질 순 없었다. 그저 내가 물려준 코이토라는 이름이 내가 그들을 외롭게 한 만큼 그들의 삶을 편하게 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나'는 츠키시마가 있을법한 곳을 찾아봤지만, '내'가 닿는 곳 그 어디에도 츠키시마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의 기억이 돌아온 것은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또래 친구들은 이미 3-4년 전 전생 기억이 회복되었는데 나는 늦어지고 있어 학교에서 특별히 상담을 받기도 하였다. 상담 선생과 함께 태어나자마자 죽은 신생아가 환생한 게 아니겠느냐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 지 두어 달이 흘렀을 때였다. 계기는 없었다. 행렬의 전치라는 걸 배우고 있을 때 문득 '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행렬의 전치에 대한 건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행렬의 행과 열을 바꿔서 정보 값은 유지하지만, 축이 바뀐다는 것 같았다. 그것을 다시 뒤집으면, 원래의 행렬로 돌아간다는 것까지도 배웠지만 그때 뭘 배웠는지는 대입 시험을 치르고 다 잊어버렸다. 중요한 건 교사의 판서를 따라 노트에 필기를 하면서 네모반듯한 숫자들의 위에 T를 적을 때, '내 가족'들의 어두운 표정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제대로 기억이 돌아오고 있네."
상담 선생은 내가 말하는 것을 컴퓨터에 받아 적었다.
"정말 아주 드물게 예전에 네가 피해를 준 사람의 기억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전생 피해 복구 센터에 가야 하는 거 알지? 한국지부 번호는 잘 외우고 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전생에 여러 사람을 죽였으니까, 나에게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은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한국지부뿐만 아니라 UN 본부의 번호까지 달달 외웠다. 그렇지만 나는 내 전생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대학에 무사히 진학해 첫 미팅을 할 때 카라후토에서 울버린에게 등을 물린 전생 기억이 있다는 말을 하면 남자애들이 신기해했다. 내게 전생이란 그냥 그 정도, 안줏거리 정도의 의미가 있었다. 전생의 기억을 어린 나이부터 떠올린 사람들은 전생에 못다 한 일을 하거나 전생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태평양 전쟁의 전범 국가의 사단장이었다는 걸로 남들 앞에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뻔뻔하지도 않았고,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고 남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았던 남자의 삶을 긍정할 정도로 내 속이 넓지도 않았다. 그저 그 인간이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교환학생으로 프랑스에 지낼 때 까르푸에서 까르푸 로고가 붙어 있는 PB 상품만 사서 점원 앞에서 부끄러워질 때, 카르푸 PB 바게뜨를 종이처럼 얇게 썰어 카르푸 PB 버터에 발라 아껴 먹다 입천장이 까졌을 때 코이토 오토노신의 재력이 부러워졌다는 정도는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해군 장교 가문의 아드님이 아니니까 그렇게 학기 중에 돈을 아껴둬야 크리스마스 마켓 구경을 갈 수 있었다.
기차역에서 10분 거리라던 에어비엔비 숙소는 생각보다 골목 안쪽 깊이 있었다. 3개월 전 처음으로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도 느꼈지만 온통 돌이 박혀 있는 거리에 '나는 여행객이요.'라는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캐리어를 끌고 돌아다니는 것은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젠장, 택시를 탈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스트라스부르에서 여자 혼자 지낼만한 안전한 위치에서 숙소를 잡는 건 상당히 비용이 나가는 일이었다. 나는 160센치도 안 되는 키에 상응하는 짧은 다리로 열심히 돌길을 삼십 분 걷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3층까지 캐리어 끄는 소리를 쿵쿵 내며 겨우 체크인했다. 돌의 요철에 따라 캐리어가 덜덜거리는 덕분에 이불을 덮어쓰고 누운 뒤에도 손목이 계속 울렸다. 나는 엄마한테 연락하는 것도 잊은 채 바로 잠에 들었다가 쉼 없이 울리는 카톡 때문에 새벽에 깨고 말았다. 예의상 있는 창문 밖은 아직 어두웠다. 그만큼 거대한 트리의 장식이 선명하게 보였다.
「트리 넘 예뻐.」
예의상 있는 창문으로 보이는 트리의 꼭대기를 찍어 가족 단톡방에 보냈다.
「너무 조그맣다. 다른 숙소는 없었니?」
「언니, 나 기념품 좀 사다 줘.」
가족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여기 완전 환상의 나라야.」
어제까지 불평불만을 쏟아냈던 게 부끄러울 정도로 나는 스트라스부르의 거리를 만끽하였다. 눈을 돌리면 온통 빨간 색과 초록색이었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유튜브에서 본 걸 모두 따라 했다. 새벽에 얼핏 꼭대기만 본 크리스마스트리를 가까이서 감상하고 내 주먹만 한 장식들에 깜짝 놀랐다. 대성당의 전면을 전부 카메라로 담기 위해 뒷걸음질을 치다 다른 관광객과 부딪혀 열심히 사과도 하였다. 불어 교과서에서만 보던 '뱅 쇼'를 마시기도 하고, 파리 지역과는 전혀 다른, 독일풍이 가미된 알자스 지방의 과자를 종류별로 먹어보았다. 꿈만 같았다. 그냥 그 공간에서의 모든 시간이 사실 꿈일지도 모른다.
트리가 점등되는 걸 기다려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흑인 가족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돌아봤을 때, 키가 매우 큰 여성이 "꼬이또"라고 숨을 내뱉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를 보자마자 내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나를 '꼬이또'라고 부른 여성의 아들이 나에게 카메라를 주려다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츠키시마가 날 내려다보며 쓰게 웃었다.
아마 그들은 막 점등된 트리 앞에서 가족 사진을 부탁하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소매로 눈물을 닦고 닦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아 당혹스러웠다.
"데죨레. 쥬 (크흥) 쒸 브레멍 데죨레."
"Non, non, eh..."
나를 달래려 츠키시마가 나를 부르자 겨우 멈추던 눈물이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알던 내 몸이 아닌 것 같았다. 츠키시마의 남편은 얼른 손수건을 꺼내 내게 쥐여주었고, 나는 괜찮다고 손을 허우적거렸다. 츠키시마가 남편의 손수건을 빼앗아 내 눈과 코를 닦아내고 엄격하게 나를 붙들었다.
"Regarde-moi."
츠키시마는 허리를 숙이고 나를 쳐다보았다. 초콜렛처럼 짙은 피부에 거리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조명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녀와 아들은 모두 동그랗고 예쁜 이마를 갖고 있었다. 그녀의 다정한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나는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내가 진정되자 츠키시마는 남편과 아이에게 뭔가를 속삭이고 나를 잡아끌었다. 모르는 장소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이지만 아주 깊은 곳에서 나는 이 사람을 따라가도 안전하다는 강한 신뢰를 느꼈다. 그건 이 사람이 그토록 '내'가 찾아 헤매던 츠키시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트리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으로 들어섰다. 아름다운 꿈과 환상의 크리스마스 도시에서 가장 우중충하고 못생긴 골목이었다. 그래서 조용하고 인적이 없었다. 츠키시마는 내 손목을 놓았다. 그래도 우린 멀어지지 않고 한동안 나란히 서서 정적을 음미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그렇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그리고 감히 그런 권리가 있는지 몰랐다. 발끝의 감각이 사라질 때쯤 나는 입을 열었다.
"츠키시마."
츠키시마가 날 쳐다봤다.
"이프 유 해드 애니 이슈스 위드 미 인 더 패스트, 콜 지로지로지로"
"Non, Koito. Non."
츠키시마는 내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
이후의 기억은 처음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을 때 배웠던 행렬의 전치처럼 희미하다. 츠키시마가 내 입술에 키스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내 입술에 묻은 자신의 립스틱을 지웠던 것 같기도 하다. 츠키시마가 장갑을 꼈었는지, 맨손이었는지, 향수를 뿌렸었는지, 온통 기억이 뒤죽박죽이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키가 큰, 붉은 코트를 입은 아름다운 흑인 여성은 부츠 굽 소리를 내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이게 츠키시마와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가끔 내가 츠키시마의 환생을 만났는지조차 믿을 수가 없다. 그날 어떻게 에어비엔비에 돌아갔는지도 모른다. 만약 수평이 맞지 않는 엉터리 방터리의 대성당 사진이 없었다면 나는 내가 스트라스부르에 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꿈이라 하여도 나와 '나'는 앞으로 괜찮을 것이었다. 마치 전치된 행렬에 T를 붙이면 다시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가듯, 모든 게 올바른 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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