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마미아 if 현패러

거위가 울어서 (1)

빔이 라우더의 존재를 몰라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자란 제타크 형제. 페트라 시선

 

건물 외장을 덮는 외장재 중에서도 자연석은, 소재 가격이 비싼데다 그 불규칙성으로 인해 시공이 어렵고, 자체 무게로 건물에 가해지는 하중도 커서 보강이 엄청나게 필요한 덕분에 낮은 담장이나 외벽의 일부 포인트에나 사용되는 소재라고 한다.

 그러니까, 자연석으로 된 2~3m 높이의 담장이 차로 달리는 몇분째 끊기지도 않는 광경이란 그 사실을 아는 입장에서 보기에 기분이 굉장히 이상해진다는 거다.

 “곧 입구가 나올 거야.”

 뒤쪽에 나란히 앉은 우리에게 운전하고 있는 남자… 구엘 제타크 씨가 룸미러를 통해 푸른 시선을 던지며 미소지었다.

 “우리집에 온 걸 환영해.”

 픽션에서나 볼 법한 첫만남 이후 구엘 씨는, 결혼식 당일날도 겨우 전날 처음 만난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쁜 얼굴로 축하해주고는 조만간 또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어찌나 아쉬워하던지,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어 하루 한번 왕복하는 배를 떠나보내놓고는 몇시간 뒤 시작될 일정에 맞추기 위해 늦은 저녁에 전용 헬기를 타고 돌아가야 했다. 주민들이 자거나 쉬고 있을 시간에 시끄럽게 헬기를 띄워 미안하다는 의미로 산토리니 아시르티코 와인 두상자를 남기고, 상자가 실려있던 자리에 앉아 손을 흔들며 저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구엘 씨와는 우리의 신혼여행이 마무리되고도 한참동안 만나지 못했다.

 비록 만나지는 못해도 종종 연락은 했다. 내가 함께 있을 때도 있었고, 선배가 단둘이 통화하기도 했다. 라우더 선배는 구엘 씨와 통화하거나 그에게 메일을 받은 날이면 늘 묘하게 들떠 있어 알기 무척 쉬웠다. 정말이지, 선배는 이 구엘 씨가 엄청나게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버그처럼 보이는 행동이지만 구엘 씨를 잠깐이나마 직접 만나봤던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었다. 내가 봐도 정말 좋은 분이었으니. 처음 만났을 때의 호감도가 최저점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을 혹하게 하는 행동만을 골라서 했다.

 그가 파티에 합류하자마자 그의 얼굴을 알아본 누군가에 의해 이목을 끌자 그는 모든 관심에 품위있는 미소로 대응했다. 합류 직전에 미리 선배에게 물어봤던 대로, 이복형제 대신 연락이 뜸했던 친족이라고 소개하며 선배의 어깨를 감싸는 손길을 본 사람들은 그 뜬금없는 선언을 아무런 의심 없이 납득했다.

 그리고 그의 최고의 영웅담이라면 단연 문제의 ‘아버지 후보’를, 그에게 끈질긴 권유를 듣던 내 동기에게서 자연스럽게 떼어내 함께 섬을 속속들이 관광하는 데에 끌고다니더니 그를 태양과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보낸 업적 되시겠다. 어쩌면 선배에게서 가장 큰 점수를 번 일도 이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그날 밤 선배는 구엘 씨에게 그 인간을 처리해줘서(정말로 이렇게 말했다!) 고맙다고 했다. 구엘 씨는 늘상 짓던 여유롭고 포용적인 미소로 “익숙한 짓이라서.”하고 대답했다. 한편 나는 그 동기가 내게 그분을 소개시켜달라고 매달리는 통에 나도 겨우 알게 된 사람이라고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여하튼 구엘 씨와 또다시 만나는 날은 그로부터 1년 가까이 지나서였다. 가끔 있는 연락, 그리고 그보다 훨씬 그의 소식을 접하기 쉬운 기사로만 간신히 이어지던 인연이 뜬 환상처럼 느껴질 즈음 그에게서 메일이 왔다. 곧 있으면 한동안 업계가 비수기에 접어들어 상대적인 여유가 생길 예정이니 2주 정도 시간을 내어 자신의 집, 그러니까 제타크 사저에서 자고가지 않겠냐고 권유하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대답을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아, 라우더 선배의 어머니도 함께 초대되었지만 아쉽게도 오지 않겠다고 하셨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결혼식 때도 구엘 씨에게 알듯말듯 미묘한 거리를 두었던 것 같기도 해서 혹시 구엘 씨가 불편한 거냐, 우리도 괜히 어울리지 않는 편이 좋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그런 게 아니라고 손을 내젓더니 시선을 내리며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그이와… 많이 닮았단 말이지….”

 그것도 얼굴을 붉히면서 말이다! 그쪽이었냐고요!!! 

 우리는 두번 물을 필요조차 없었다.

 CCTV가 지켜보는 가운데 창살로 된 정문을 통과하자 담벼락의 안쪽에는 끝을 알 수 없던 담장처럼 반대쪽 끝이 보이지 않는, 상당한 크기의 연못을 낀 너른 정원이 펼쳐졌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얼마간 올라가서 나온 차고에 차를 대고 내렸다. 널찍한 차고엔 우리가 타고 온 포드 브롱코 외에도 브랜드는 모르겠는데(나는 모터사이클 쪽에는 별 지식이 없다!) 붉은 포인트가 들어간 클래식한 디자인의 오토바이가 한 대와 벤츠 한 대가 서있었다. 벤츠 S클래스를 이렇게 가까이서는 처음 봐. 그런데 왠지 관리는 잘 된 듯하지만,

 “저 차는 거의 안타나 보네.”

 선배도 같은 걸 보고 있었는지 먼저 얘기를 꺼냈다. 구엘 씨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 차가 아니라서. 아버지 차였어. 나와 달리 운전을 즐기지 않았던지라 보통은 기사가 운전하는 회사 법인차로 출퇴근을 하셔서 아버지도 그리 자주 타지 않았지만.”

 “그럼 저 바이크는 형 거겠네.”

 “물론! 자취하던 대학시절 단짝이나 다름없었지. 잠시도 안 떨어지고 어디든 쏘다니곤 했거든.”

 구엘 씨가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듯 말하는 모습을, 선배는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었다.

 구엘 씨를 따라 차고 앞에서 저택까지 이어지는 타일 길을 걷자 연못에 가까워지면서 은은히 맴돌던 물비린내가 무거워졌다. 마당에 이만한 연못을 두면 이런 냄새 속에서 사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그 이상의 냄새가-미묘한 지린내가- 훅 끼쳤다. 심지어 점점 더 진해져. 선배도 느꼈는지 표정 관리에 애를 쓰는 듯한 모습인 반면에 구엘 씨는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졌다. 이내 우리 쪽으로 돌아보며 처음 보는 들뜬 얼굴로 입을 열었다.

 “새로 가족이 된 너희에게 제일 먼저 소개해주고 싶었어…. 내 원래 가족들을.”

 어라? 이런 전개는 조금 당황스러운데. 그러니까 내가 아는 한 구엘 씨의 어머니는 이혼 후 절연, 아버지는 사망, 다른 형제가 있다는 얘긴 없었고 분명 미혼이었다지 않았나? 상황을 납득하기도 전에 구엘 씨는 손을 모아 외치고 있었다.

 “얘들아! 루터! 딜라! 달리! 제테! 나 왔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연못을 가로질러 하얀 실루엣 두개가 빠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어디선가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빽빽한 수풀이 흔들리더니 무언가가 머리를 불쑥 내밀었다.

 “뭐야, 저건….”

 “거위?!”

 정말이다. 여기저기서 거위가 튀어나와 구엘 씨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고개를 앞으로 죽 내민 채 달려와 제일 먼저 도착한 한마리는 기합을 지르듯 크게 울더니 그대로 구엘 씨의 상반신에 달려들어, 지극히 안정적으로 품에 안기는 것이었다.

 “소개할게.”

 양팔로 그의 상반신만한 거위 한마리를 안고, 발치에는 마찬가지로 큰 거위를 무려 세마리나 호위대처럼 거느린 채 구엘 씨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반쪽이나 다름없는 녀석들이야. 이 녀석은 제테. 그리고 얘부터 시계방향으로 달리, 딜라, 루터. 친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그의 말과 달리 거위들은 환영과는 거리가 먼 자세로 우릴 노려보며 낮고 길게 짖었다.


  “이런 저택에서 거위를 키우고 있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키운다고 해야 하나, 지금 와서는 나한텐 반려니까. 내가 학교 다니느라 나가서 지내던 시기를 제외해도 벌써 15년 가까이를 같이 살고 있거든.”

 낯선 내방자를 경계하는 거위들을 뒤로 하고 저택 안으로 들어온 후 거실 소파에 앉아 구엘 씨가 내준 차로 목을 축였다. 푹신한 감촉과 따뜻한 온기에 몸을 맡기고서야 갑작스런 조우로 인한 동요가 겨우 가셨다. 한편 거위들에게 나보다 훨씬 많은 집중 경계를 받았던 선배는 아직 진정이 덜 된 듯 잔을 한번 더 채웠다.

 “거위는 생각보다 오래 사나 보네요?”

 “수명이 기본 10년에서 20년 정도라고 하니까. 저것도 나이를 많이 먹었으니 성격이 많이 죽은 거야. 한창 때는 웬만한 장정도 힘으로 내쫓을 정도로 공격적이고 힘이 넘쳤거든. 지금 와서는 제테 정도 빼고는 다들 적어도 내가 있을 땐 공격적이진 않아.”

 “거위들도 형을… 잘 따르나 보네.”

 라우더 선배가 마침내 입을 뗐다.

 “응. 내가 직접 부화도 시켰거든. 물론 어머니께서 준비는 거의 다 도와주셨지만. 그때가 이혼하시기 겨우 얼마 전이었어서 어머니는 녀석들이 태어나는 걸 안 보고 나가셨지 뭐야. 그래서 태어난 직후부터는 내가 전부 옆에서 지켜보고 먹이고 돌봤었어.”

 “어미나 다름없었구나.”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 각인효과 들어봤지? 말그대로 내가 어미로 각인되는 바람에 어딜가도 쫓아다녀서 성체 수준으로 자라기 전까지 엄청 고생하면서 키웠다고.”

 마치 스스로가 낳아 기른 자식을 이야기하듯 구엘 씨의 얼굴은 뿌듯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아, 정말로 구엘 씨에겐 가족 그 자체인 소중한 존재구나. 선배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다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를 별로 마음에 안 들어하는 거 같던데….”

 은근히 상처였나 보다.

 “후후, 미안. 그 녀석들은 낯선 사람은 본능적으로 일단 경계하는 것 뿐이야. 그래도 보기보다 똑똑한데다, 말했다시피 요즘은 성질이 죽어가지고, 나랑 우호적인 사람이란 걸 금방 배우고 얌전해질 걸. …아마도.”

 구엘 씨는 잠깐 뜸을 들이다 멋쩍은 미소로 말을 이었다.

 “이걸로 위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 녀석들이 경계를 풀고 말고는 사실 복불복이라, 십수년을 같이 산 아버지조차도 끝까지 경계하고 마음에 안 들어했거든. 그정도니까 녀석들의 태도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돼. 곤란할 정도라면 너희가 머무르는 동안은 축사를 닫아둘 테니까.”

 “아냐…. 반드시 친해져볼게. 그래도 형의 가족이니까.”

 라우더 선배는 결심한 듯 굳은 눈빛으로 말했다. 방금전 친부모인 빔 제타크 씨도 못 친해졌다는 말을 들었지 않나, 생각도 들었지만 남편을 응원하는 아내로서 초치지 않기로 했다. 구엘 씨도 기뻐하는 반응인걸.

 “아아, 그러고보니 둘다 많이 지쳐있을텐데 일단 짐부터 풀래? 오늘은 다시 나가기 피곤할테니 방에서 쉬고 있으면 식사 준비되고 불러줄게. 저녁은 해물이 들어간 토마토파스타로 괜찮을까? 알러지라던가….”

 “아, 저희 둘다 특별히 못먹는 건 없어요.”

 “우리가 뭐 하나라도 도울 일이 없을까?”

 “손님이 뭘 돕겠다고 그래. 자기 집처럼 발뻗고 쉬고있어!”

 방금 뭔가 서로 모순되는 말을 한거 같지만…? 우리는 구엘 씨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우리가 2주간 지낼 방으로 안내받았다. 

집 자체가 워낙 크다보니 이게 보통일지도 모르지만, 안방에 해당하는 걸로 보이는 널찍한 방에 나이트스탠드 하나를 사이에 둔 퀸 사이즈 침대 두 개가 들어있는 방이었다. 가구는 전부 원목 아니면 철제 프레임. 텅 빈 벽장에 짐을 밀어넣고는 먼저 한 침대를 차지하고 대자로 뻗은 선배와 같은 자세로 나머지 침대에 누웠다.

침대는 푹신하고, 공간도 깨끗하다. 두꺼운 이불은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웬만한 호텔방보다 더 쾌적할지도 몰라. 이런 델 공짜로 머무를 수 있다니…. 아무런 예고없이 젊고 잘생긴데다 성격도 좋은 백만장자가 인척으로 생겼다는 비현실이 새삼 현실로 다가왔다.

 그런데 뭐랄까, 이 등골을 간질이는 아주 약간의 위화감은 뭘까. 어떤 의미로도 거슬릴 정도는 아니지만 주위 감각에 집중하다보면 피부에 닿는 느낌이 있었다.

‘왠지 사람이 사는 곳 같지가 않네….’

이상할 것도 없겠지? 이 거대한 집에 구엘 씨 혼자 산지가 3년이고, 방 상태로 봐서는 이쪽은 그동안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던 걸로 보이니까. 사람 손길이 끊긴 지 시간이 많이 지난 방을 손님을 위해 한번 크게 뒤집어 청소를 했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까 오랜만에 사람이 들어와 지내려니 어색할 법도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며 무거운 눈꺼풀을 스르르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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