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던 길
아도스텔라 배경의 우주에서 일하고 있는 한 어시언 출신 노동자 시점의 이야기
연휴를 하루 앞에 두고 숙소로 돌아가는 퇴근시간, 동료가 작업복을 단체세탁을 위한 바구니에 던져넣으며 말을 걸었다.
“윌메르, 너는 이번에도 지구는 안 갈 생각이야?”
“응. 특별히 돌아갈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고향 정도는 있을 거 아니야. 아님 여기로 일하러 오기 전에 알던 사람들을 만나러 갈 수도 있고. 아무튼, 귀한 연휴에까지 직장에 머무르는 건 우울하잖냐. 가뜩이나 휴가에 인색한 회사인데.”
“별로. 거기서도 좋은 기억은 없었거든. 너야말로 겁도 없다. 고향 한번 간다고 내려갔다가 올라올 때 검문소에서 갑자기 막히면 어떡하려고. 요즘 반스페시언 범죄 단속한다고 검문이 훨씬 심해졌다던데. 재직증명서로도 안 받아준 경우까지 있다잖아.”
“그땐 팔자인가보다 하고 다른 일 알아봐야지. 아님 검문소에다 화염병을 던지던지.”
“오, 후자이길 물 떠놓고 빌게.”
“그전에 검문에 안걸리게 빌어줘라, 이 자식.”
“까먹지 않으면 생각해볼게. 잘 다녀와라.”
“그래, 너도 푹 쉬고.”
실없이 웃으며 동료를 보내고는 직원 숙소의 내 개인실로 들어왔다. 문을 닫자 실내에는 나와 침묵만이 남았다. 층별로 설치된 공용 세간살이를 제외한 최소한의 가구만 있는 작달막한 방을 가로질러, 침대에 천장을 보고 누웠다.
“고향, 이라….”
지구를 뜬 지는 벌써 6년이나 되었다. 돈을 벌기위해 고향을 떠나 지구에서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운좋게 우주에서도 상당히 큰 규모의 기업이 운영하는 공장에 채용되어 이 플랜트에 올라왔으니, 고향을 뜬 지는 그보다도 더 오래 되었다. 이곳에 이르기까지 나는 고향을 포함해 이전에 지난 곳은 결코 두번 다시 거치지 않았다. 내 삶의 궤적은 언제나 일방통행이었다. 내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은 건 언제나 ‘전보다 더 나은 곳으로만’ 이동해왔기 때문이다.
그립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부모는 내가 일하러 집을 나올 때 오히려 입이 준다는 생각에 안도하는 눈치였고, 고향에서 친했던 사람들도 대부분이 고향을 떠나 흩어져 행방을 전혀 모르게 된 지가 오래니까. 그 사이 거친 직장들도 거진 어떻게든 사람을 더 싼 값에 부려먹으려 혈안이었던 곳들 뿐이라 정을 붙인 곳도 없었다. 이곳이야말로 우주법인 소유이기는 해도 함께 일하는 대다수가 지구에서 일하러 올라온 어시언들이고, 스페시언이면서 주류에서 도태되어 공장생활을 한다는 열등감에 찌든 소수의 스페시언 패거리가 종종 행패를 부리고 감독관이 이를 은근히 방치하는 점만 빼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이다. 내가 여태 지나온 모든 곳들 중에 최종 목적지를 골라야 한다면 단연 이곳이었다. 더이상은 어디로도 떠날 생각이 없다.
이곳의 직원 숙소는 지구에서 살고 있을 땐 꿈도 꾸지 못한 수준의 삶의 질을 보장해준다. 1인 1실에 수도를 틀면 깨끗한 물이 나오고, 플랜트란 특성상 더위나 추위, 궂은 날씨도 없다. 기계세탁이 기본인 공용 빨래방도 있고, 식당에선 매일 다른 요리가 제공된다. 침구류는 매주 거두어서 단체로 세탁해주는 서비스까지 있다. 마침 어제 저녁에 세탁 후 새로 받아와 뽀송뽀송한 이불에 몸을 굴리다 시선 끝이 창문에 닿았다. 저녁의 붉은 하늘이었다. 현재 시각이 반영되어 자동으로 변환되는 인공적인 이미지다.
“날아다니는 새 정도도, 비춰주면 안되려나…”
나도 모르게 문득 중얼거렸다.
내 고향은 원래도 별볼일 없는 동네였지만 내가 태어나기도 20년인가 전에 한바탕 전쟁이 휩쓴 덕에, 아직까지도 웬만한 큰 나무도 자라지 못하고 물이란 물은 전부 중금속에 오염되어 그나마 자라는 풀도 뜯어먹어선 안될 정도로 황폐한 지역이었다. 야생이란 게 완전히 쓸려나간 듯한 그 땅에서 찾을 수 있는 살아있는 동물이라고는 여기저기서 흘러들어와 갈곳없는 목숨 질긴 인간들뿐이었다.
단 하나의 예외가 새였다. 매년 이맘때면 머리 위로 까마득한 높이에서 철새 무리가 북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치고 낙오되어 결국 추락해 죽는 개체를 제외하고는 말 그대로 내 고향 위를 날아서 지나갈 뿐 어느 하나 그곳에 들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들만이 어린 시절 내게 세상이 비참한 인간들이 모여사는 쓰레기장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시키는 존재였다.
그 녀석들은 여전히 있을까. 그 새들의 목적지가 내 고향에서 북쪽으로 45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습지였다는 것은 비교적 나중에 안 일이다. 그곳이 개발되거나 우주의 높으신 분들에 의해 분쟁지대로 지정되어 전쟁에 휩쓸리지 않았다면 아직 매년 그곳으로 날아가고 있을지도 모르지. 생각하면 할수록 무척 보고 싶어졌다. 시궁창 같은 내 고향에서 그 손에 닿지 않는 생물들의 날개짓을 보면서 별볼일없는 희망을 곱씹던 기분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정신 나간 생각이다. 나는 언제나 그 전보다 더 나은 곳으로 나아왔다. 그리고 여기가 최종 목적지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라는 건 제발로 내가 맨 처음 출발한 최악의 장소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것은 마치….
이곳에서의 꿈 같은 삶을 버리고 다시 낙오자들만 추락해오는 시궁창에서 그 꿈을 꾸러 가고 싶다.
더 나아갈 곳이 없다고, 이곳이 나의 목적지라고 느꼈을 때 뒤를 돌아보면 길이 있었다.
내가 왔으나, 가지는 않은 길.
뺨에 무언가가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내 직장에서 생산되는 기계부품들처럼 늘 똑같은 단조로운 섬유유연제 향이 나는 이불에 얼굴을 비볐다. 목매인 탄식이 새어나왔다.
언젠간 돌아가자, 지구로. 불합리하고, 황폐하고, 내 삶에 도움이 안되는 것들만 가득 쌓인 내 고향으로.
내년에 철새들이 지나가는 시기가 돌아오면 그때는 꼭 가자…….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