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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대 따위의 고물상에나 있을 물건 주제에—”

“…나름 최신형 소리를 듣던 몸이었는데, 세월이 많이 흐르기는 했나보네.”

“할 텐가?”

“아니, 마음에 안 들어.”

새로 찾아온 고용주 ‘후보’. 어디까지나 그녀에겐 후보에 불과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력에 근거한 뛰어난 사냥개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자신을 전장에 내려보낼 주인을 고를 권리가 있었다. 그것을 위해 판매상에게 쥐여준 웃돈이다. 물론, 판매상은 언제든지 그녀를 등처먹고 폐기해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비싼 몸값을 매기고, 그녀의 이력에 대한 소문을 암암리에 흩어놓아 주인을 자처할 녀석들이 제 발로 찾아오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녀가 퇴짜를 놓아도 판매상으로서는 자신이 보유한 다른 강화 인간을 팔아치울 수 있기에 서로 나쁘지 않은 관계였다. 그녀가 깨어난 횟수는 약 7번 가량. 사실, 냉동 수면 장치 속에서 지낸 세월이 길어 기억이 잘 나지도 않는다. 어쩌면 비몽사몽 하느라 적절한 전장마저 흘려보냈을지도.

“C4-621, 일 할 시간이다.”

아마도, 8번째. 그녀의 일련번호를 부르는 목소리는 노인의 것이다. 강화인간을 사려는 사람들은 항상 고압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시작주터 주종관계를 정립하려는 것처럼.

“…다시 닫아.”

오랜 수면으로 근육이 빠져 힘조차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억지로 냉동 수면 장치의 덮개를 덮는 시늉을 하며, 그녀는 도로 누울 뿐이었다. 그러나 다시 닫히려는 관뚜껑이나 다름 없는 것을 손으로 잡아 막고서, 노인은 입을 열었다.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일만 하고 살 순 없는 법이다, 621. 나는 너를 고용했고,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네게도, 내게도.”

노인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불씨가 담긴 눈동자. 그녀는 그 눈을 잠시 바라보았다가 시선을 위아래로 훑는 듯 하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비척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하아… 좋아. 할 일에 대해선 확실하게 설명해야 할 거야.”

*

“…그래, 궁극적으론 코랄의 말소와 그로 인해 촉발될 루비콘-3의 멸망인가.”

“…”

노인은 말 없이 스스로의 품 속을 뒤진다. 이어지는 희미한 금속음. 아마 그녀가 거절할 때를 대비한 것이리라. 그다지 의미 없는 가정이란 사실은, 그녀로서는 설명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미 숱한 전장을 구르던 이에게 행성 정도야, 규모만 커졌을 뿐 희생양의 수에 연연할 단계는 지났으므로.

“뭐, 좋아. 당신이 날 찾은 걸 후회하지 않게 해 줄 자신은 있어.”

행성 단위의 테러라는 제시에도 흔쾌히 대답한 그녀. 그럼에도 그는 품 속에서 물건을 빼들길 멈추지 않았다. 탕—— 첫 발,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두 번을 더 일정하게 이어지는 총성.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의 귀를 매만졌다. 맨 귀로 총성에 노출되는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흘끔거리며 총구가 향했던 제 뒤편을 돌아보자, 닫힌 문의 아래쪽 틈새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판매상이 아마 저 뒤에서 대화를 엿듣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엿들은 것이 아니었어도 새 주인의 반응을 보면 입막음을 위해 죽였을 것이 뻔했지만,

“…죽였네.”

덕분에 이번 일이 끝난 이후에 또 강화 인간 시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믿고 자신을 맡길만한 판매자를 다시 찾아 돌아다녀야 할 것이라는 사실에 그녀는 낮게 투덜거리는 투로 중얼거렸다.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알아, 어차피 처리했을 거라는 것도.”

그녀는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수술대를 닮은 동면장치에 걸터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럼 호칭 정리든, 계약이든, 재활이든… 다른 세부 사항은 가면서 듣도록 할까.”

“…월터. 621, 네 새로운 핸들러다.”

맨 몸 위에 붕대만 미라처럼 간신히 동여맨 상태. 자리를 옮기자는 말을 하던 그녀의 상태를 보던 새 주인은 못내 자신의 코트를 벗어 어깨 위에 걸쳐주며 그리 말했다. 강화 인간의 핸들러로서 해야 하는 일인 양.

“…가야 할 길이 멀다, 621. 거동이 힘들면 보고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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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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