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리지널 함량이 다소 높은 여꾸니(과거)
뭉개진 포드, 멀리서 들려오는 폭음, 그 사이로 가까스로 흔들리는 새빨갛게 물든 손. 그녀는 가장 위험한 전장에 나서는 이였고, 난전 속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이였으며, 언제나 지옥에서부터 살아돌아왔다.
그리고 그러한 ‘요행’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헬리콥터의 소음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강화 인간 수술을—”
“—른 방법은…”
“…외엔 생존 가능성이—”
“■■ 중사님, 생환을 축하드립——”
“——최신형 수술이었으니, 이정도—”
“그래도, 여전히 AC는 탈 수—”
“…”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말을 늘어놓아도, 크게 와닿지 않는다. 자신의 것이었을 이름은 낯설고, 친했던 사람임에도 전혀 모르는 이를 마주하는 것 같다. 그녀는 듣는 둥 마는 둥, 천천히 눈을 깜빡이다 그저 나른히 병상 위에 비스듬히 누워버리고서 흐릿한 기억들을 되새길 뿐이었다.
전장, 그리고 전장. 어딘가에 소속되어 끝없이 날아다녔던 기억들. ‘나는, 이런 것을 좋아했던가.’ 그렇게 속으로 생각할 때 즈음 누군가 조용히 손에 쇳조각을 쥐여줬다.
“당신의 것이었던 AC입니다.”
반쯤 부러졌다가 다시 붙였는지 선명한 용접선이 그어진 열쇠. 겉은 용접선 뿐만 아니라 이리저리 긁히고 닳은 흔적이 가득했고, 이름이 적힌 열쇠고리 또한 걸려있었다.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 이름이었으나,
“…내, AC.”
어느새 저마다의 목소리로 떠들던 소음들은 가라앉아 적막해진 공간에서, 그 말이 나직히 울렸다. 그것을 필두로 다시 다른 이들도 입을 열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확연히 줄어든 성량이었으나 그녀가 느끼기엔 여전히 소음에 불과했다.
“익숙한 일을 하시다 보면 그 몸에도 적응이 되실 겁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휠체어에 앉히고서 다른 곳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낯선 기분이 들게 하는 조종석. 그녀를 날아오르게 했던 무대. 익숙하고도 낯선 자리에 앉으니 시야에 들어온 화면은 차라리 영화를 보여주는 스크린 같았고, 어두운 조명이 선명한 화면과 대비되어 현실같지 않은 붕 뜬 감각만이 자리했다.
화면 너머는 바깥 공간을 투사하고 있었으나, 멈춰있기에 AC의 눈이라기보다 차라리 창문이라고 여기는 것이 나았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달칵,
“—윽,”
갑작스레 연결된 접속장치를 타고 신경을 따라 코랄이 붉게 번진다. 붉게 점멸되는 시야와 스파크가 튀듯 따끔거리면서도 간지러운 감각이 뒷덜미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지고 뇌를 간지럽히자, 그녀는 반사적으로 꿈틀거리며 손을 치켜들고서 제 목으로 가져다 대다가, 이내 옆에 선 이의 손에 의해 제지된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낮게 울리는 한숨 소리가 어지러운 감각 사이로 날카롭게 파고든다. 신경질적으로 뿌리치려고 해도, 잡힌 손만 움찔거리는 게 고작이었다.
“이거 놔,”
여전히 온 몸은 간지럽고, 시야는 온통 붉다. 잡힌 팔은 빠지지 않는다.
“강화 인간이라면 이런 건 으레 겪는 겁니다. 참으십시오.”
예의바름에도 불구하고 의도 없이 신경을 긁는 목소리에 짜증이 솟는다.
“놓으…라고…!”
덜컹, 온 힘을 다해 팔을 휘두르자, 팔이 아닌 다른 것이 움직였다. 코랄 디바이스를 타고 흐른 전기 신호가 그들이 탑승해 있던 AC를 구동시켰다.
매뉴얼 없이 작동한 기계는 천천히 앞으로 기울다 못해 쓰러졌고, 그에 따라 조종석 안은 자연스럽게 난장판이 되었다. 뒷덜미에 꽂혀있던 접속 단자는 잠시 그녀를 공중에 걸었다가 그대로 뽑혀 나갔고, 그녀를 이끌던 남자는 그녀를 보호하듯 감싸 안은 채 조종석 내부에서 이리저리 튕겨다녔다.
AC가 모로 눕고도 한참 뒤, 한 덩어리로 엉킨 채 쓰러진 두 사람 위에서 시스템 음성이 출력되었다.
[복귀를 환영합니다, ——‘레이븐’.]
험지에서 살아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어쩌면 원래 기억이 정말 되살아나기라도 해서. 강화 인간 수술 이전의 그녀를 알던 사람들은 현재의 모습을 두고 ‘이전과 같다’고 평했다. 닳다 못해 오히려 벼려진, 날카롭고도 손속이 없는 성질머리.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다행이었으리라.
그녀가 소속된 부대의 생환율은 낮았다. 가장 위험하고 급박한 전장에 우선적으로 투입되어, 퇴로도 없이 오로지 적의 섬멸만을 목적으로 하는 부대. 전쟁터가 그들을 찾았고, 그들 또한 전쟁이 벌어지는 곳을 찾았다. 그런 곳에서 그녀는 오랜 기간을 보냈고, 가장 위험한 전장에서도 가뿐히 살아 돌아오는 그녀와 그녀가 소속된 부대의 인원은 서로 사정이 달랐다.
하루가 다르게 신입이 들어오고, 교체되고, 은퇴하거나 죽는다. 더군다나 점차 대규모의 전쟁은 줄어들고, 차세대의 강화 인간 수술들이 개발됨에 따라 부대를 찾는 이도 줄기 시작했다. 처음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인원, 이제는 수술 이전의 그녀를 알던 사람도 거의 남지 않았다.
“저도 이제 그만 둘 겁니다.”
아니, 이제 없을 터다. 부대 내의 강화 인간들을 조정하고 재활시키던 의사.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의사였으나, 이전만 못한 수익에 자리를 뜨려는 것이겠지. 어쩌면 이대로 부대가 해체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부탁할 게 있어.”
그녀의 부탁은 암시장에 자신을 팔아 달라는 것. 부대에는 미래가 없고, 자신은 자유를 원하지 않는다. 아니, 전장에서만 살아왔기에 전장 이외의 선택지가 없다. 그랬기에, 자신을 필요로 하는 전장이 생겨날 때 까지 동면에 드는 것을 선택했다. 그녀의 말에 남자는 다소 학을 뗀 듯 보였으나,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에는 그녀가 내밀었던 계좌 속 크레딧의 액수도 한몫 했을 터였다. 믿을만한 거래상에게 관리비의 명목으로 돈을 쥐여주며 의사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레이븐, 이것으로 작별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처음과도 같이 긴 잠에 빠져들었다.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