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오퍼레이터 도저 양

“블랙 북, 너의 협력을 요청한다.”

소의 두개골로 추정되는 엠블럼과 ‘샤르트뢰즈’라는 콜 사인, 회선의 암호화를 뚫고 강제로 연결된 통화 사이로 반갑지 않은 의뢰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브랜치? 너희는 이미 오퍼레이터가 있는 걸로 아는데.”

콜사인 ‘블랙 북’. 그녀는 어디까지나 ‘프리랜서’ 오퍼레이터인 몸. 이미 오퍼레이터가 있는 용병과 엮여 남의 밥그릇을 빼앗는 것도, 소속이 있는 녀석과 엮이는 것도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상대가 해킹을 통해 사회 변혁 따위의 ‘대의’를 추구하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암호화 프로그램을 몇 겹이고 더 추가하며 그녀는 통신을 끊어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명으로는 완전히 커버할 수 없을 것 같다’, 라고 우리 오퍼레이터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서 말이야… 행성 봉쇄 기구의 봉쇄망에 구멍을 낼 거다, 구미가 당기지 않나?”

그러나 그녀가 그들을 잘 알듯이, 그들 또한 그녀를 잘 알았다. 행성 봉쇄 기구, 루비콘 항성계와 외우주를 차단시킨 주범이자 루비콘 전역을 관리하고 있는 단체. 반란이나 다름 없는 일, 메말라가는 행성, 봉쇄망에 구멍을 만들어 내면 벌어질 일과 과정중에 얻을 수 있을 정보들… 보수를 주지 않는다고 해도 거절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제안이다.

“…좋아. 합류할게.”

일이 생긴건 얼마 가지 않아서. 봉쇄 기구의 보복은 빨리 찾아왔다. 브랜치는 용병 집단이니만큼 타개가 가능했겠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그녀 혼자. 은신처가 들킨다면 맨몸으로 벗어나기는 불가능했다. 그리드의 한 켠을 부숴 밀고들어온 카발리 기체에 속절없이 끌려간 그녀는 봉쇄 기구가 점령한 구역에 설치된 수용소에 감금되었다.

저항이 소용 없기에 순순히 끌려나와 갇힌 그녀는 개인실로 마련된 감옥 한구석에 앉았다. 조금의 동요도 없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도저였고, 동시에 기체 탑승이 전제되지 않은 강화인간이었다. 그 말의 뜻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떠올리지 않았을 짓거리들을 자신의 몸에 해놓았다는 뜻이었다.손가락에 내장된 드라이버를 꺼내 감옥 문에 붙은 전자기판을 뜯어냈다. “아, 내가 조금만 더 제정신이 아니었더라면 뇌에도 컴퓨터를 집어 넣어뒀을텐데!” 배선을 뜯고 다시 붙이면서 아쉬운 소리를 하자 메아리치듯 그녀의 목소리를 모방한, 그러나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가진 음성이 내면에서 울렸다.

“그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뇌에서부터 혈관을 타고 손가락을 거쳐 붉은 스파크가 한차례 튀고, 코랄의 조류를 타고서 다시금 정보가 뇌 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인간이 본디 받아들이던 것과는 다른 생경한 형태의 데이터, 그것을 처리하고 다시금 걸러내어 정답을 도출한다. 그야말로 ‘정보 도체’인 코랄만의 방식.

“…그래. 쓸만하네, 내 ‘양심’은.”

해킹 프로그램을 전부 뇌를 통해 구동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방식이지만, 이것 또한 신선한 경험이다. 그녀는 입꼬리를 당겨 미소지으며 전자기판에서 손을 떼고 일어섰다. 짧은 시간 동안의 정보 처리 과정만으로도 과부하에 걸린 뇌, 코 아래로 흐르는 피를 소매로 훔치며 열린 감옥의 문을 밀치고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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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댓글 1


  • 하냐냐 창작자

    사실 원래 콜사인은 버스터콜(ㅋㅋ)을 하고싶었는데요, 장르 내 고유명사라서 관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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