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e you soon

White DAY

하니버스 by 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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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바람은 아직도 살을 에는 추위를 품는다. 그저 몸을 실어 불어오는 바람에도 우리의 살갗은 너무나 쉽게 추위에 쓸려간다. 낯선 아침이다, 어젯밤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잔 것이 문제였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임에 아직도 내 몸을 죄이는 졸음에 속으로 발버둥을 치며 침대를 벗어났다.

평소와는 다른 하루, 언제나의 아침을 즐기던 루디아에겐 이것이 그리 달갑게 와닿진 않는다. 일단은 여전히 자신의 피부를 쓰다듬는 바람에게서 몸을 지키기 위해 창문을 닫은 뒤 곧바로 커피를 내렸다. 조금 이르긴 하여도 행동에 변함은 없다, 시간이 어긋나도 해오던 행동마저 어긋날수는 없었으니까.

침대를 정리하고 세면을 한 뒤에 옷을 갈아입고 삐걱이는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즐겨 읽는 철학책 한장을 읽는다. 허나 아침이 문제였을까 치약은 다 떨어져 새로 꺼내야 했고 갈아입을 옷들은 하필 어제 세탁을 맡겨 늘 입던 옷이 아닌 다른 옷을 입어야 했으며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와중에 읽고 있던 책 위로 커피를 쏟았다.

“…”

멍하니 앉아 진갈색으로 물들여진 책과 자신의 옷을 바라보는 루디아의 표정에 그려진 감정을 정의할수는 없었다. 엉망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아침에도 묵묵히 새로 산 책을 꺼내고 새로운 커피를 내리며 또 다른 옷으로 갈아입기만 하면 되는 일이였으니까. 그럼에도 그가 이런 아침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은 다른 이유였다.

루디아가 돌아본 시선의 끝엔 그것이 있었다, 바구니라 불리는 그것은 와인과 치즈 그리고 다수의 디저트를 품고 있다. 루디아는 그것들 중에서 와인을 들어올렸다,언제인지는 몰라도 유명한 와인 소믈리에라 불리는 이가 이러한 말을 한적이 있었다. 와인은 작은 몸을 어머니의 자궁삼아 시간을 품고 그 풍미와 맛을 녹여내는 하나의 예술이라고 나쁘지 않은 비유에 그 때의 루디아는 자신이 어떠한 표정을 지었는지 드물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 웃고있었을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코미디를 들은것처럼 하하하 하고 소리를 내어 웃는 그에게 온갖 눈총이 날아옴에도 자신은 박수를 치면서 정말 훌륭한 평가라며 생각하지도 않은 말을 했었다. 찰랑이는 와인에 비추어 그의 황금색 눈동자가 녹아든다, 자신이 이런 아침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바구니의 옆엔 나온지 얼마 안된 잡지가 그 잡지엔 루디아, 그와 함게 찍힌 한나의 뒷모습이 있었다.

집을 나서는 길가엔 묘한 기시감이 있었다, 루디아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겨울이 오기 직전 얇게 얼어붙은 호수. 살얼음이 미세하게 끼어 조금만 잘못 밟으면 거미줄같은 금이 퍼져 그 아래로 빠질것만 같은 이미지 왜 그러한 생각이 들었는지는 자신조차 몰랐다.

루디아는 본인이 이기적임을 알고 있다, 이타적이라는 말과 완전히 대립되는 사람이라는걸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있다. 자신이 하려는 행동 또한 이에 기반이 되는 행동임에도 왜 자꾸만 이것이 달갑지 않은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게의 앞에서 루디아의 발걸음이 멈췄다. 이는 자연스러우나 본인에겐 그다지 이해가 될 행동이 아니었다, 변함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 뻔뻔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부담스러워함에도 애써 모른척 친근하게 굴면서 전해주면 끝나는 일이다. 그러나 왜일까 루디아는 멈춰선 본인의 발을 내려다보며 의문에 휩싸였다.

“…”

그가 말했다, 문에 비춰진 어린 루디아가 말했다. 짧은 말이였고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지만 그 말을 루디아는 이해했다.애초에 귀로 듣는 말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손잡이를 잡아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청소를 하고 있는 한나가 있었다.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짓는 그녀, 부담스러움에도 그녀는 꿋꿋히 미소를 지었다. 루디아 또한 미소로 화답하며 그녀에게 다가간다, 걸어가는 시간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진다 아! 이제서야 자신이 왜 그렇게 오늘이 달갑지 않은지 정확한 이유를 알아버렸다, 그녀에게 건내는 바구니 화이트 데이라며 챙겨온 그 바구니엔 와인이 없었다.

선물은 그 의미로서 기억된다, 상대방이 좋아할법한 선물을 하는것은 당연지사 그럼에도 굳이 선물에 와인과 치즈를 넣은것은 순전히 루디아 본인이 그것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구니엔 치즈는 있어도 와인은 들어있지 않았다. 술을 즐겨하지 않는걸로 보이는 한나를 생각해서 와인을 뺐었다. 만나던 여자들을 위해 배려하고 웃음을 짓던 루디아였으나 그에게 와인이란 무의식적인 이기심의 표방이다.

그것을 스스로 빼어 다른 과자들로 채운것은 소박하긴하나 이타적이다, 이제까지 거짓으로 꾸며낸 것이 아닌 순전히 루디아가 스스로 택한 행동. 그래서 그는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이타적은 행동을 포함하여 앞으로 꺼낼 말들이 자신의 본질과 너무나도 상반되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여기 오는건…아니 한나를 보는건 지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네요.”

눈을 마주볼수 없었다. 지금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이 진심인가 싶을 정도로 믿을수가 없기 때문에, 자신이 찾아온 것은 이러한 이유가 아님을 잡지에 찍힌 사진을 빌미삼아 주변에 자신과 한나의 관계를 오해하게 만들어 가까워질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게 뭘까, 이곳으로 오고 싶지 않았다. 잡지를 보고서 든 생각은 가까워질 빌미보단 다른 , 그러니까 걱정이었다.

말도 안돼, 신의 농담인가? 자신이 순간 미쳐버린건가 의심 할 정도로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기에 그것을 증명하고자 화이트 데이를 노려 한나를 찾아온 것이다. 웃기지도 않는 변명이다, 그렇게 가까워지고자 했었던 자신이 이기적이였던 자신이 그녀를 걱정하고 피해를 입을까 스스로 멀어짐을 택한다고? 이제껏 했던 모든 행동들을 나열하고 변호한다면 할수야 있다, 그러나 이건 변호할 거리도 아니다. 내가 지금 대체 무엇을 말하는거지?

“사진이 찍혔어요, 당신과 내가 있는 사진..아무래도 기자에게 찍힌것 같아서…하하 정말, 유명인의 삶은 피곤하네요~요즘 영화를 찍어서 그런가 관심이 더 커진것 같기도 하고?”

이러한 생각을 숨기기 위해 아무렇게나 말을 뱉는다, 횡설수설에 가까운..아니 그것조차 되지않는 조잡한 무언가가 언어의 형태로 나왔다.

“그러니까, 음…마지막이에요! 즐거웠어요 한나. 거의 저 혼자 떠들고 당신은 들어주기만 한것 같지만..”

차기도 했었고 차여보기도 했다, 물론 압도적으로 후자가 더 많았지만 애초에 루디아와 그녀는 사귀는 사이도 아니지 않은가? 헤어지고 말고 애초부터 그런 사이가 아니기에 이렇게까지 긴장..긴장 할 일이 아니다. 바구니를 주고 말을 전하며 즐거운 하루 되라며 짧막한 인사를 남기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된다. 그래 그저 그뿐이다.

“테디에겐 안부 전해주세요, 줄 간식은 없지만.”

전하는건 조금 커다란 치즈와 간식들, 그리고 인사뿐이다. 이런건 자신의 ‘사랑’이 아님에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표정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에 그것이 보일까 선글라스를 고쳐쓰며 조심스럽게 그녀를 바라볼 뿐.

달콤했을 하루는 전혀 달콤하지 않았다, 씁쓸하고도 먹기 싫은 지독한 가토 쇼콜라스러운..가증스러운 화이트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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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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