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페커미션 20.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의 변명
1차 - 바실x마리(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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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마리]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의 변명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도 이런 걸 원하지는 않았다. 보통의 선량한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으리라. 조국의 검이요 방패노릇을 하느라 몇 달 만에 귀가한 남편에게 언성을 높이는 일 같은 것 말이다. 기실 그리 목청을 돋워 들이받을 일도 아니었다. 마리야의 남편은 냉정하고 무뚝뚝했으며 생각의 회로가 복잡하지 않았다. 천상 군인인 그로서는 아들의 문제 또한 제 업무의 일환처럼 A+B=C라는 결론을 도출해냈을 뿐이다. 마리야는 그의 천성에 대해 모르고 싶을 만큼 알고 있었으며, 그리고 정확하게 ‘처럼’이라는 것에 불만이 많었다.
그는 분명 매일 밤을 눈물로 적시거나 홀로된 자신을 동정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감정에 휩쓸려 제 자식만을 받들어 모시거나 훈육의 이름으로 방치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박학다식하고 이성적인 타입이라고 한들 자식과 가정의 문제라면 응당 태도가 달라져야 하는 것이 옳다고도 믿었다. 애초에 군인과 결혼하면서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의 남편이 가정보다 국가를 우선시할 것임을 예상치 못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국가와 다른 모든 것들 사이에 자식만큼은 존재하기를 원하는 것이 그리도 큰 바람이었던가? 설령 아내는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자식은 다른 이야기이지 않은가? 그것이 마리야가 남편에게 바라는 최소한의 기대였다. 결혼 전의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는 얼마나 순진했는지!
분명 명예로운 결혼이었고 그의 남편은 평균 이상이었으며(일단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구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평균 이상이었다) 난산이긴 했으나 아들도 낳았다. 그러나 마리야는 이제 슬슬 이성적으로도 자신이 제 이름과 같은 동정녀이신 그 분과 무엇이 다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부부로서의 기쁨을 누린 게 언제인지도 까마득했고 아들은 이미 8살이며 아들을 키울 때의 기억에 남편이란 사진 구석 끝에 스쳐가는 그림자 자국 정도만의 존재감을 갖고 있었을 뿐이었으니. 그는 도무지 남편의 가치를 본인과 집안의 명예와 부를 유지하는 도구 이상으로 여길 수가 없었다. 아니, 여기는 게 아니라 실제로도 그러하지 않은가? 마리야의 생각은 점점 가파르게 깎여나가고 있었다.
오죽하면 알료샤마저 제 아비를 낯설어할까! 그의 남편은 알료샤 식의 소극적인 용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혹은 특유의 낯가리는 호의를 이해하였어도 용인하는 것은 군인으로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또박또박 올바르고 당당하게 말할 때까지 아이의 말을 들어주어서는 안 되며, 참된 훈육이 곧 애정이라는 식의 사고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이었다. 아이의 성격은 부모 둘 모두와 달랐으나 정확하게 제 친할머니를 닮았다. 남편은 제 자식을 외면하는 방식과 똑같은 행동으로 불효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영원히 깨닫지 못할 것이다. 남편이 돌아올 때마다 아버지는 자신을 싫어한다며 울먹이는 아들을 달래는 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이제는 지긋지긋했다.
아무리 선량한 자라고 한들 맞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여 방치된 것만 여덟 해가 넘는다면 불만이 없을 수 없으리라. 그것도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타인과 가족을 똑같이 취급하는 남편이라면 더욱이. 어머니로서 무조건적인 애정을 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으나 자식은 자식, 타인보다 편애하는 것이야말로 진실한 내리사랑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아이가 밖에서 친구와 싸우고 돌아왔을 때 친구와 화해를 시킬지언정 친구보다 자식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 풀어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남의 자식이야 어떤 아이로 자라든 내 자식 먼저 좋은 길을 선택하도록 애쓰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 아닌가? 정략결혼인 처지에 사랑을 바랄 생각은 없었으나 그렇다한들 영원한 겨울의 시베리아 동토를 살아가는 게 좋을 리 없었다. 그는 춥고 외로워 심장까지 얼어붙을 것 같았다.
따라서,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는 변명한다. 당신이 온 몸이 얼어 죽어가고 있을 때 봄바람을 맞이한다면 과연 거기에 기대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일부러 봄바람을 기대하고 움직인 게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주하고 말았다면. 의도라곤 없었다. 몇 번째인지 모를 관심구걸과 몇 번째인지 모를 아이 달래기에 지쳤을 즈음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사는 친척동생의 결혼식이 있었다. 남편에게 언성을 높인 다음날 그는 사죄의 편지와 축하선물을 보내는 대신 기차를 탔을 뿐이고, 그 김에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사는 친척들을 한 번씩 보고 오기로 했을 뿐이었다. 거기에는 어떠한 인간의 의지도 개입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말한다. 얼어붙은 채 신의 의지를 따르기에는 생존에의 본능이 너무나 강력했다고. 이것을 자신의 온전한 죄악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제게 그토록 강렬한 생존에의 본능을 심어주신 것이냐고. 신성한 부부와 가정을 먼저 얼린 것은 남편일진대 어찌하여 저 혼자 벌 받아야 하느냐고.
그러나 성난 민중은 그의 영혼이 동사하는지 익사하는지 알 수도 없었고 알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참으로 우습게도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는 자신의 죄악이 아닌 남보다도 멀었던 남편의 지위로 인해 심판받았다. 남편은 알 바 없이 아들과 함께 도망치던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는 영혼보다 몸이 먼저 얼어붙었다. 죽을 때까지 영혼이 그 온전한 빛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당사자에게 과연 축복이었을까, 아니면 저주였을까? 이미 죽은 자의 최후를 짐작하는 것은 무용한 일일 것이다. 오직 단 한명, 바실리 알렉산드로비치를 제외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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