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7

축제 이후, 끔찍했던 그 날 이후. 그는 종종 무엇인지도 모를 괴생명체와 주변에 쓰러진 동기들과 민간인, 그리고 그 가운데에 홀로 서 있는 것을 깨달으며 꿈에서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나곤 했다. 걱정끼치고 싶지 않았기에, 그는 룸메이트인 밀러는 물론, 가까이 알고 지내던 그 누구에게도 이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흔한 PTSD 증상이었고 그 사건의 중심에 있더라면 누구나 겪었을 정신적인 질병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는 희미해져 더 이상 꿈에 나오지 않았다. 가끔, 컨디션이 나쁘거나 피곤할 때 종종 튀어나오긴 했으나 나이가 들며 이마저도 줄어들었으니 괜찮아졌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일은 빌을 옭아매고 있었으니 무의식에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모두가 쓰러졌을 때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펜리르인 자신은 어떻게 행동하는 게 옳을까, 어떻게 앞장서 크리처를 막아낼 것인가, 크리처를 없애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생각나는 방법이라곤 죽기 전에 저 저주받은 생명체를 죽이는 것이었으니 '크리처웨이브'는 그의 모든 생각을 조종하고 있었고 이성적인 사고를 막아버리고 급기야 자신을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는 가질 수 없는 것을 위해 부던히 노력했다. 

피가 흐르고, 쓰러지고, 피를 토하고, 전신이 근육통에 비명을 지르고, 눈이 충혈되고 실핏줄이 터지도록 노력했었다. 그러나 전혀 성장하지 못했다. 자신의 한계를 저주하고 바닥을 긁으며 어째서 다른 이들처럼 될 수 없나 절망했다. 그러나 아무리 갖은 노력도 체질을 바꿀 수는 없었다. 치유의 펜리르로 각성해 치유사가 될 운명이었으니 길이 나 있지 않은 곳을 아무리 걸어도 그 끝은 낭떠러지일 수 밖에 없었다.

아이와의 지속적인 충돌 이후, 그는 운명을 논하는 아이의 말에 더욱 거세게 반발했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진 아이에게 분노했고 사람을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은 그를 더욱 분노에 휘감기 충분했다. 빌이 아이에게 가진 것은 열등감이었으니 그렇기에 그는 판도라의 일기에 더욱 동요할 수 밖에 없었다. 부정적인 감정에 휘감겨 달라진 제 모습이, 기괴하게 변했던 흑점교 교주와, 그렇게 돼버렸을지도 모를 판도라의 모습이 닮아있어서 그는 잔뜩 겁을 집어먹고 웅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밤


똑같은 상황, 똑같은 위험, 공포. 그는 또 다시 악몽을 꾸었다. 그리고 공포는 그를 옭아맸고 내색하지 않았어도 눈을 감았다 뜨면 꿈이 현실이 되어있을까 봐 계속 불안함을 안고 있었다. 짐이 될 수 없었기에, 물빛처럼 투명한 권총은 인벤토리에 넣어두었으나, 지난번과 같은 결과가 나올까 계속해서 두려워했다. 

이브가 쓰러지고 공포는 현실이 되어 다가오니 헛숨을 들이키고 떨리는 몸을 애써 가다듬으며 치료를 계속 이어나갔다. 거품이 더 이상 모이지 못하고 물이 되어 허공으로 흩어질 때까지 계속 계속.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전투는 구원처럼 내려오는 빛줄기에 끝이 나고, 빛 아래 보이는 동기들의 모습에 그는 복받쳐 눈물을 흘렸다.

안도했다. 모두가 무사한 것에 대해.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이 원했던 건, 

크리처를 없애는 것이 아닌 모두를 지킬 수 있고, 다치지 않도록 살피는 일이었다는걸. 

과거는 되풀이되지 않았고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니 그는 그제서야 과거를 놓아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자신의 길을 향해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미련은 남아 뒤돌아볼지언정, 그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두려워 가만히 있다면, 아무것도 변할 수 없었다. 설령 그 길이 잘못 된 길이라 해도, 그 선택이 최선이었다고 믿기로 했다. 그러니 그는 4년 간의 노력도 헛된 시간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올바른 길로 가기 위해 돌아가는 시간이었으니 그 시간까지도 자신의 밑거름이 되었다 여겼다.  


이제야 그는, 14살의 어린 자신을 달래주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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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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