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개인작
기억하니? 네가 울면서 찾아왔던 날. 경찰들이 이를 악물고 온 동네를 샅샅이 뒤지던 그날 말야.
나는 그때도 지금처럼 동네 꼭대기에 위치한 판잣집에 살았고, 너는 저 아래 동네 입구 집엘 살았었지. 아직도 봄만 되면 손에 봉숭아 물을 들여달라고 생글거리던 네가 눈에 선하다.
...그렇게 봉숭아 물이 들이고 싶었으면 혼자서 올 것이지. 꼭 온 동네 어린애란 어린애는 다 끌고 와서 종일 봉숭아 물만 들이게 만들었다니까.
여름이 되면 나는 달마저 열기를 쏘아대는 것처럼 무덥던 밤이 생각난다. 누가 집 문을 부술듯 두드려대길래 경찰이라도 온 줄 알았던 밤, 하얗게 질려 문을 열어보자 식은땀투성이로 발만 동동 구르던 네 탓에 그대로 바닥엘 주저앉았지.
얘, 나는 알고싶다. 특별히 못 살던 집 애도 아니고, 특별히 엇나가는 애도 아니던 네가, 대체 왜 그 시위 현장에 뛰어들었는지.
네 아버지가 끈질기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네 어머니가 한창 장을 보던 그 시간에 왜 너는 화염병을 던지고 있었냔 말야.
얼굴은 생채기투성이에 옷은 누더기가 다 되었고,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어 거지꼴이던 너.
나는 죽어도 그 꼴은 못 잊을거다. 왜, 억울하니? 너도 네 꼴을 한 번 봤어야 했어.
머리는 참 잘 썼지. 어디 달동네 애새끼들이 깔끔하게 씻고다니던 적이 있나. 네 꼴이 얼마나 엉망이었으면 그네들도 의심 한 번 안 하고 우리 집을 지나쳤겠니.
너는 경찰이 언덕을 넘어가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서는 자리에 주저앉았지.
그대로 혼절하듯 잠들고선, 다시 일어난 후에도 내게 입 한 번 뻥긋하지 않았어.
그게 어린 나이의 치기였는지, 되도 않는 의협심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길을 걷다 우연한 열기에 휘말렸던 건지, 친구인지 연인인지 모를 누군가를 따라갔던 건지도.
그냥 몇달 며칠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가물가물해질 즈음 술안줏거리로나 한 번 씹어보는거야.
쓴 맛이 나나, 짠 맛이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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