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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화채님 비상 au 3차. 확인한 설정 기반으로 쓰긴 했으나 날조한 부분이 더 많은 글.
용 조와요 용... 드래곤, 용 주세요
보기만 해도 보드랍게 생긴 부슬비가 내리는 신새벽. 새벽 공기를 머금어 서늘한 것이 어둑한 붉은 틈새로 괴고, 옴폭한 틈에 모이고 모인 게 기어코 조그마한 시내를 만들더니 새빨간 언덕배기에서 떨어지는 게 꼭 흐르는 시냇물이 급경사를 만나 하찮게 떨어지듯 떨어질 때였다. 막 내리기 시작한 순간 멀리서부터 다급히 뛰느라 자박거리며 겨우내 치운 사람이 없어 수북하게 쌓이고 쌓인 눅눅한 낙엽 밟는 뭉툭한 소리. 라더야. 처음에는 흐리던 소리가 선명해질 무렵, 나무 그림자 새로 불쑥 나타난 하얀 손등이 붉은 것 사이로 고인 물방울을 그러모아 단번에 털어내기 시작했다. 급하게 뒤집어썼는지 벌어진 후드 틈으로 비져나온 갈색 머리가 이마에 붙어도 개의치 않는 인간, 잠자다 말고 깜짝 놀라 뛰쳐나온 잠뜰이 허름한 차림으로 미어터져라 이불 뭉치를 안고 달려 나온 거다. 습한 공기부터 차가운 바닥, 한참 코가 간지럽도록 느리게 흘러가던 물안개가 기어코 능선을 벗어나 구름이 되어 떠날 때까지 바위처럼 가만히 있던 붉은 덩어리는 그렇게 제 몸뚱이에 미지근한 손바닥이 닿고서야 옴찔거리고, 한 겹 덮은 그림자 사이에서 길쭉한 고개를 내민 채 가장 먼저 아가리 벌려 하품부터 하더라.
“아직 밖에서 자면 감기 걸린다니까. 저번에도 볼품없게 콧물 달고 다녀서 공룡이랑 말싸움도 하더니 정신 못 차렸지?”
“킁. 잠뜰, 나 추워.”
“이 제멋대로야. 그러게 누가 밖으로 나가래? 안에서 잘 수 있게 다 꾸며놨구만 뭐가 불만이어서……. 하여간 내가 못 산다 진짜.”
빼꼼 나온 머리부터 커다란 천으로 감싸고 벅벅 닦기 시작한 한 명과 칭얼거리며 은근슬쩍 날개로 거먼 정수리를 누르는 용 한 마리. 똑같이 어린 것끼리 하는 말만 보면 영락없는 누나와 동생 같다. 진짜아, 말을 왜 그렇게 하냐. 못 살지는 말구. 툴툴대며 볼멘소리하는 라더의 뿔 끄트머리에 걸어둔 눅눅한 천이 떨어지지 않게 묶으면서 들리는 불만은 전부 못 들은 척 태연하게 이만 가자고 두툼하고 벌건 뺨 언저리를 두드린 그가 바로 앞에서 끔뻑거리는 커다란 눈을 가만히 바라본다. 파란 눈동자와 파란 문신이 파고든 회색 눈이 깜빡이고, 이젠 입김조차 나오지 않는 봄날에 김처럼 희뿌연 숨이 문신에 닿았다. 괜찮아. 그럴 때마다 그는 늘 그렇게 말한다. 집으로 가자.
라더가 수현의 돌봄 아래 폴짝거리던, 다 컸다고 하기엔 어리지만 그렇다고 마냥 어리다고 하기엔 얼마 가지 않아 자립해도 괜찮을 조그만 용 시절부터 둘은 종족이 다른 것치고 각별한 사이였다. 강아지처럼 온 동네를 뛰어다니다 땅거미 깔릴 무렵 꾀죄죄한 몰골로 돌아오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웅덩이에 발부터 담가 서로에게 물을 튀기면서, 배고프다고 밥을 뺏어 먹다가도 하나만 남았다던 간식은 나누고, 그러다 문득 춥고 외로운 날이 찾아오면 남몰래 울 수 있게 최소한 얼굴이라도 자기 몸으로 가려주는 친구 말이다. 둘과 비슷하게 붙어 놀던 동네 애들 대부분이 자라는 중간중간 미적지근한 사이로 돌아간 걸 생각하면 정말 몇 없는 단짝이긴 했다. 신뢰가 깊은 건 또 다른 이유지만.
그런 둘이서 새끼손가락 걸고 하는 단순한 약속이 아닌 누구도 시키지 않은, 알았더라면 안 사람이 되려 끝까지 뜯어말렸을 계약으로 어린것이 왼쪽 눈에 문양을 새긴 건 14살이던 여름의 어드메였다. 어떤 어른이 물어도 둥글게 몸을 말고서 저에게 안겨 유일하게 내민 앞발로 옷자락을 움킨 라더를 어깨로 가린 채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입술을 감쳐물던 아이는 멀리서 지팡이가 끌릴 정도로 급하게, 반쯤 젖혀진 모자를 아예 넘기면서 달리다시피 걸어온 수현이 저를 안아줄 때야 이제껏 숙이던 고개를 들었고, 엉거주춤 아이의 얼굴을 응시하던 어린 용의 보호자이자 어린아이의 선생은 겨울날 고인 이슬 웅덩이처럼 파란 오른쪽 눈 반대편에 색이 바랜 회색 위아래 두 갈래로 새겨진 시퍼런 문양을 보자마자 수면으로 올라와 터지는 포말 같은 탄식과 턱턱 끊기던 숨을 티 나지 않게 날숨에 섞어 겨우 내쉬었더란다. 선생님, 제가…… 이상해요. 빨간 몸체를 간절히 끌어안느라 하얗게 질린 짤똥한 손끝은 갈퀴처럼 몇 번이고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다 네 번째에 겨우 펑퍼짐한 소매 끄트머리를 잡고서 버들거렸다. 버겁게 잡았음이 느껴지지만 놓지 않는 손, 연신 감각의 이상을 호소하며 뭔가 잘못된 게 아니냐 우는 와중에도 다른 어른이 다가오면 작은 야생동물처럼 품의 용을 바투 안는 가는 팔, 비정상적으로 떨리는 몸과 붉게 물든 흰자위, 사라진 초점에 코 아래로 검붉은 것이 떨어지는 걸 보자마자 아까부터 요구했던 천을 빨리 달라며 채근한 수현이 도움을 죄 뿌리치고 얻어낸 이불보로 아이와 용을 싸매고서 홀로 빈 헛간을 찾아 헤매던 그날.
물론 이런저런 사정으로 마을의 파수꾼이자 전달자인 드래곤 라이더로서 활동한 건 14살이 아닌 16살 돌아온 둘의 생일 무렵이지만, 누구도 그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하거나 서두를 먼저 꺼내진 않았다. 산짐승이 자주 나타나는 산등성 자리에 만든 마을도 아니오, 그렇다고 사람 그득 모인 자리에서 엉엉 울며 버거워하는 아이 하나를 닦달할 정도로 궁핍하거나 메마른 곳도 아니었고, 탐탁잖게 여기는 사람이 있어도 마을 안에서 한 번도 없던 사례라며 수현이 거듭 평소처럼 해주는 게 좋다고 잠잠해질 때까지 하나씩 붙잡아 호소한 덕이다. 덕분에 모난 것 없이, 달라진 점 하나 없는 듯 모든 게 평소처럼 보였으나 유독 한여름의 장마 때처럼 새카만 먹구름으로 하늘이 꽉 막힌 날이면 잠뜰은 제 파트너 곁에서 서성거리며 존재가 거기에 있음을 확인하며 혼자 안도하길 반복했다. 걸어둔 마법만 푼다면 언제든 느낄 수 있는데 그러지 않고 직접 피부로 느끼는 이유를, 매번 그러니 성가실 텐데도 슬렁슬렁 꼬리만 움직이다 발목 한 번 툭 건드리고 마는 용을 이해하는 건 아무도 없으리라. 심지어 수현마저도. 그야 14살부터 지금까지 이유를 물을 때마다 대답 없이 웃거나 답지 않게 주제를 바꿨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오늘 점심은 뭐야?”
“구운 치킨에 토마토 스튜. 앞집 참나무네 아저씨가 간식으로 먹으라고 토끼 육포도 챙겨주셨어.”
“아싸아~ 나 육포 먼저 먹을래.”
“안 된다. 밥 다 먹으면 줄 테니까 빨리 모습 바꿔. 오늘은 전부 받은 거라 식기 써서 먹어야 해.”
빨리 변하라며 밀치듯 툭툭 건드리는 손길에 진짜 귀찮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돌아온 다음부터 줄곧 제 옆구리에 있던 창백한 손이 떨어지길 가만히 기다린 라더는 점차 멀어지는 궤적을 시선으로 쫓더니 어느 정도 멀어진 다음에야 말리느라 이제껏 늘어뜨린 날개를 접고서 앓는 소리와 함께 점차 달라지는 제 몸을 세운다. 도와줄까? 됐어. 뭘 이런 거까지. 변하는 속도가 느려 노골적으로 보이는 골격 변화를 가리기 위해 펑퍼짐한 제 망토를 벗어 까치발 든 잠뜰은 대강 돌출한 어깨 비스름한 곳에 걸치듯 올리고서 가만히 옆에 섰다. 다 변하면 들어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 네 속셈 다 아니까 헛수고 마라. 나 혼자서는 상 안 차릴 거다. 아이씨, 이걸 들키네. 서로가 아닌 흐릿한 지평선 너머 어드메를 보면서도 바로 앞에 서서 눈을 보고 이야기하는 양 다양한 표정으로 투닥거리는 모습이 지극히도, 여상한 기다림이다.
독립한 이래 줄곧 둘이서 함께 산 마을 외곽 근처 집은 바깥 산맥에서 땅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 때문에 늘상 서슬 퍼런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이렇게 먹구름까지 끼어 다른 날보다 유독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잠뜰과 라더는 늑대가 달리는 시간이라 부르면서 행여 빨래나 바닥에 널어둔 물건 따위가 혹여 날아갈까 봐 집 마당 돌아다니기 바빴지만, 오늘은 미리서 준비를 끝냈는지 여유롭게 자기 옷만 손바닥으로 누를 뿐이다.
“누가 오늘 늑대 꽁지에 불붙였대?”
“난들 알겠니? 기압차였나 뭔가 하는 것 때문인 갑지. 흰소리 말고 들어가자. 사실 뭐라는지도 안 들려!”
그러면서도 혼자 들어갈 생각일랑 추호도 없다는 걸 뒤꿈치까지 모아 가지런히 서는 걸로 보여주며 바람 때문에 연신 얼굴 가리는 머리카락만 쓸어 넘기던 잠뜰은 한참 있다 어깨 위로 느지막이 손 하나가 올라오고서야 반듯하게 모은 자세를 비틀고서 곁눈질한다. 빛이 없어 진하기 그지없는 붉은 머리칼에 붉은 눈, 다른 손으로 붙잡아 누른 덕에 겨우 떨어지지 않은 망토가 깜빡이는 눈꺼풀 따라 볼품없게 펄럭이는 게 파란 시선으로 어둑하니 들어오고, 목소리가 바람에 묻히길 바라는 사람처럼 그래도 전보다 변하는 게 빨라졌다며 작게 중얼거린 잠뜰은 들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낯으로 대꾸 한번 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용의 시선에서 도망치는 대신 다부진 팔뚝을 무심하게 잡아 집으로 이끈다. 그걸 버틸 생각은 없는지 밀면 미는 대로, 당기면 당기는 대로 터덜거리며 안으로 맥없이 이끌리던 라더는 대신 할 말 있는 이처럼 몇 번이고 달싹댔으나 문간을 넘어간 순간부터 이제껏 벙긋거리던 입을 지그시 문 채 이제껏 짐처럼 말아쥔 망토를 훤히 드러난 친구의 목덜미에 둘러주기만 하더라. 작은 바람에도 쉽게 놀라는 사람이 드물게 놀라지 않고 자연스레 손길을 받아 매무새를 고칠 때, 바람에 떠밀려 양옆으로 덜컹거리던 문이 시끄러워 지그시 눌러 닫은 잠뜰은 그 순간 선명하게 꽂힌 천둥소리에 놀라 퍼뜩 고개 든 채 별일이라며 중얼거렸다. 옅은 탄내와 불 냄새, 습하게 물 먹은 목조 건물 특유의 퀴퀴한 나무 향과 비 내리는 날이면 온 틈새로 스멀스멀 넘어오는 진흙 내음을 손등으로 밀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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