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째 결정

with. 사라트 A. 페르테나

가야할 길을 알았다. 선택에 더 이상 후회는 없도록 하겠다. 실패를 밑거름 삼아 앞으로 나아가겠다.

그렇게 다짐했음에도 여전히 미련은 남아있었으니 지난 4년 간의 노력을 쉽게 흩어버릴 수는 없었다.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난다면 자연스레 사라질 감정이긴 했으나 당장 제 앞길을 정해야했고,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열심히 미련을 떨쳐내보았으나, 생각보다 자신에게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미련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깨달음을 얻고 눈물을 쏟아낸 그 이후부터 그는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대련 수업이 있는 당일, 그는 어렵게 결심을 했다. 

분명 주변에서 걱정할 것은 알았으나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자신이 정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없을지. 지금껏 부작용이 두려웠고 제 한계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고통스러워 피하고 있던 것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모든걸 쏟아낸다면 후련해질 수 있을지. 

대련 상대는 사라트 A. 페르테나. 마지막을 장식할 상대로서 걸맞는 이였다. 자신의 과오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이였고, 서로를 한계까지 몰아붙히면서도 언제나 그 아슬아슬한 선 위에 멈춰서서 서로를 견제해주던 공모자이자 중재자. 살살 해달라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으나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이란걸 알았기에 기뻤으며 처음부터 가장 강력한 공격을 준비했다. 활을 사용하는 것처럼 공격한 이유는, 별거 없었다. 중등부때부터 뿌리깊게 박혀있던 제 미련을 뽑아내고 싶어 기억을 더듬어 가는 과정에 가까웠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조바심이 들거나 성공시켜야한다는 부담감이 없었다. 그래서 웃었다. 대련이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있던가, 떠올리면. 없었다. 단번에 몸을 혹사시켰으니 목구멍이 찢어지는 듯 하고 머리를 드릴로 후벼파내는 것 같은 고통이 몰려와도 웃을 수 있었다. 사라트에게 결정을 쏘아내자마자 구멍에서 죄 흘러나오는 피를 대충 닦아내고 최대한 버텼다. 한계까지 소비했으니, 이제는 한계를 뛰어넘을 차례였다. 

"즐거워 보이네, 빌."

네게도 그렇게 보였다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당신의 진심을 다한 이 공격을 피할 수 없어 비틀거리는 다리를 애써 세우고 총을 겨누었다. 물이 온 몸을 후려침에도 이대로 쓰러진다면 당신에게도 예의가 아니니 더욱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즐거워, 그 어느때보다도. 그러니 너도 전력을 다해."

그래도 방아쇠를 당겼고, 마지막 총알이 사라트의 팔에 박히는 것을 보았다. 당신 또한 전력으로 공격하는 것을 보고 제 몸에 화살같은 물이 쏟아지는 것 까지 보았다. 성공했다는 생각보다 사라트의 팔이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곧 머릿속에 퓨즈가 끊기듯 빌은 그대로 쓰러졌다. 

다만, 마지막이 성공했으니 그는 이제야 마지막 남은 미련도 털어낼 수 있었다. 아니, 성공하지 못했어도, 후련했을 것이다. 결국 제 길이 아님을 인정하고 마음을 접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는 실로 오랜만에 마음이 안정됨을 느꼈다.

결국, 이거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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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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