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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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01
20XX. XX. XX.
이치가야 유이 21세 164cm, 42kg
비가 몹시 내리는 날 아침 9시경 다른 조문객들에 의해 발견됨. 현장 CCTV를 조회해 본 결과 새벽 2시부터 3시 사이에 도굴이 이루어졌다고 추정. 시신은 여전히 찾지 못함.
#CASE 02
20XX. XX. XX.
미야모토 아키라 54세 175cm, 64kg
사람의 발이 잘 닿지 않는 야산에 있던 무덤으로 시간이 많이 지나 흔적이 거의 남지 않음. 도굴의 흔적도 발견 당시 날짜보다 약 3주는 더 됐을 것으로 추정. 시신은 여전히 찾지 못함.
#CASE 03
20XX. XX. XX.
사토 카이 14세 158cm, 51kg
현장 중 유일하게 범인의 물건이 발견됨. 발견된 물품은 색이 바랜 노란 종이. (감식 결과 부적으로 판명.) 인근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중학생의 키 정도 되는 길이의 포댓자루를 수레에 싣고 내려가는 남자를 봤다고 함. 시신은 여전히 찾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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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CASE11개의 사건으로 모든 수법이 동일함. 약 5개월 동안 총 11개의 시신이 동일범에 의해 절도당한 것으로 보임.
01
안녕하세요, 선생님. 일주일만이네요. 그간 잘 지냈냐고요? 괜찮았어요. 기분도 썩 나쁘지는 않아요. 사실 처음에는 잘 못 느꼈는데 한 3주 정도 먹으니까, 효과가 있는 거 같아요. 일은 잘 돼 가냐고요? 음…. 사실 난항을 겪고 있어요. 제가 새로 발령을 받은 지 이번 달로 다섯 달이 되었어요. 네, 제가 가장 막내예요. 형사가 된진 올해로 딱 2년 차고. 아직 어린데 능력이 뛰어나다고요? 아이, 아니에요. 전부 인력난이죠. 인력난. 저도 처음엔 능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서 기뻤어요. 그런데 들어가 보니까…. 글쎄, 사람이 너무 부족했던 거예요. 저번에 제가 말씀드렸던 그 사건을 기억나시죠. 불특정 다수의 무덤이 공통적인 수법으로 파헤쳐진 사건. 이런 사건은 다들 기피하기 마련이거든요. 그러니까…. 자리 채우려고 제가 배정받은 거죠. 이쪽 업계라는 게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입김이 강해지는 거라서 눈 딱 감고 1년만 참자고 생각했죠. 들어가고 깜짝 놀랐어요. 사실 이게….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도굴이라는 게 생각보다 은근 자주 있는 사건이거든요. 사유도 정말 다양해요. 돈이 되어서 파는 경우도 있고 단순 원한 관계로 인해 파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 이번처럼 동일범이 면식도 없는 이의 무덤을 파헤치는 경우는 드물어요. 게다가 보통 시신을 가져가는 경우는 없거든요. 훼손이나 부장품을 절도해도 시신을 절도한다…? 이게 말이 안 되는 거라서요. 그래서 이 부분이 정말 이상했어요. 이것 때문에 어지간한 미친놈이 아닌 것 같다는 말도 저희 과에서 엄청나게 나왔고요. 한편으론 모두가 궁금해했죠. 범인이 어떤 사람인지. 아직 잡히진 않았어요. 그런 사람들이 저와 같은 도시에서 산다니 무서워요. 어쩔 땐 종종 불안하고요. 하지만 가장 무서운 일은 이 사건을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제 실적이 애매해진다는 점이에요. 얼른 끝내고 저도 강력범죄 쪽으로 넘어가고 싶어요.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요. 제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다음 주에 또 뵈어요. 약도 잘 챙겨 먹을게요.
02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네, 정말요. 글쎄 저번 만남으로부터 3주가 지났다니 시간이 정말 빠르지 않나요. 그동안 못 와서 죄송해요. 저도 오고 싶었는데 일 때문에 바빠서…. 무엇 때문에 바빴냐고요? 전에 말했던 그 범인 기억하시나요? 있잖아요. 그 막 남의 무덤 파헤쳐서 시신 훔쳐 가는 사람. 그 사람 잡았어요. 축하해줘서 고마워요. 사실 이번에 그 일이 해결되자마자 온 거예요. 그게 음….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종종 선배들이 말씀하는 게 있어요. 우리가 하는 일은 인간의 심연을 보는 일이다. 라고…. 하하, 네 굉장히 엄근하죠. 또 진지해 보이고. 이쪽 일이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아요. 돈 때문에 자기 부모 찌르는 자식이나 오랜 애인을 살해하는 경우나 죄 없는 동물들을 학대하고 그걸 또 전시하고…. 눈 뜨고도 보기 어려운 사건들이 참 많죠. 전 이 일 시작한 지 반년 만에 선생님과 만났잖아요. 제 선배들도 그래요. 죄다 저처럼 약 먹고 상담받고 그래요. 음, 이번엔 어떤 일이 있었냐면요….
저, 선생님. 선생님은…. 아끼는 사람을 위해서 어디까지 할 수 있어요? 상담하는 입장에서 이런 질문을 드려서 죄송해요. 제가 잡은 남자는요. 산 사람이 아니었어요. 아니, 살아있는 건 맞아요. 살아있는 건 맞는데…. 꼭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거 같다고 해야 하나. 나중에 알아보니까 어디 유명한 무당이래요. 듣기로는 갖고 있는 재산만…. 아파트를 다섯 채를 사고도 남는다는데. 네, 부럽죠. 우리나라 알짜배기 부자들은 죄다 범죄자라는데. 그 말이 사실인 거 같아요.
게다가 또 잡혀 오고 나서 인사는 어찌나 잘하는지 전 그렇게 멀쩡한 사람은 처음 봤어요. 보통 현장 검거당한 범죄자들은 화를 내거나 불안해하거나 끝까지 부인하려고 애를 쓰는데 그 사람은 순순히 자신의 죄를 인정했어요. 그것도 모자라 저와 제 수사관 선배님들의 눈도 똑바로 바라보고 얘기했어요. 상상이 되세요? 멀끔한 모습의 남자가 사람 좋게 웃으며 11개의 무덤을 자기가 팠다고 말하는 모습이? 아, 정말이지…. 전 평생 가도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친 3초를 잊을 수 없을 거예요. 그리고 이유도 잊을 수 없겠죠. 저는요, 살면서 신 하나도 믿어본 적 없는 사람이에요. 저희 어머니는 크리스천이지만 저는 완전 무교거든요. 고3 때 부모님이 제 입시 기도를 다닌다고 해서 아, 그렇구나! 했던 게 다예요. 저는 범죄자들에게 점심 사주는 거 진짜 돈 아까운 짓이라고 생각해요. 그 남자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면서 저희가 사 온 도시락을 함께 먹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했던 거 있죠. 괜한 사람을 잡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알아요, 범죄자들이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생겼다는 것을요. 그래도 들어보세요, 선생님.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자신의 수법에 대해서, 또 자신에 범행에 대해서 인정한 남자가요. 이유만큼은 끝까지 이야기 하지 않으려 했어요. 증거가 확실해도 이유는 들어야 하거든요. 다소 고리타분하지만, 현행법이 그래요.
결국 심문은 3일 내내 이어졌죠. 저희도, 그 남자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남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죠. 글쎄 그 남자가요. 죽은 사람을요, 살릴 수 있대요. 이게 말이 돼요? 그 무덤 11개를 판 이유가 전부 자기 애인을 살리기 위했단 거예요. 그 11개의 무덤 중에서 자기 애인이 묻혀있어서. 그걸 새벽 동안 판 거래요! 이게 말이 되냐고요. 아, 벌써 시간이…. 저 더 얘기해도 될까요? 상담을 연장하고 싶어요. 어디 가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제가 미쳐버릴 거 같거든요. 허락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희는 그 남자의 얘기를 계속 들었어요. 남자는 여태까지 입을 다물었던 것이 마치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끊임없이 얘기하기 시작했거든요. 그 얘길 할 땐 웃지도 않았어요. 그렇게 잘 웃던 남자가 흐느끼기 시작한 거죠. 자기는 애인과 만난 지 3년 정도 되었다,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정말 너무 좋아했는데 그렇게 죽어버려서 속상하다 따위의 두서없는 말이 녹음테이프에 줄줄 기록되었어요. 근데 어딘가 이상하지 않아요? 그렇게나 좋아하는 애인인데 묫자리마저 모른다니요. 그래서 11명의 신원을 조사해 보았어요. 근데 그 11명 중에서 그 누구도 남자의 애인인 사람이 없어요. 흔한 망상벽 환자의 증상이죠. 저희는 남자의 말을 더 들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정신착란으로 인한 범죄행위라고 음, 네. 그렇게 수사를 마무리하기로 했어요. 남자는 아마 다음 달 중으로 형을 선고받을 거 같아요. 네, 남은 피해자 유가족분들의 마음도 잘 추스를 수 있게 해야죠.
그런데 있잖아요, 선생님.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훔친 시신은 11구인데 집에서 발견된 시신은 10구라는 거예요. 하나의 시신은 결국 끝까지 못 찾았어요. 정말로 살아나기라도 한 걸까요? 하하하…. 죄송해요, 농담 좀 해본 거예요. 그 남자가 자긴 여기서 이러고 있음 안된다고, 지금부터 어딜 자꾸 가야 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요. 제 친구가 말해줬는데 XX현 XX구엔 엄청나게 큰 결혼식장이 있대요. 그걸 들은 뒤로부터 자꾸 생각이 나서…. 제가 했던 말은 그냥 잊어버리세요. 네, 그럼 다음 이 시간에 뵈어요. 이번엔 꼭 다음 주에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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