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슬모쿠 / 체즈모쿠] Hello, hallow
Happy halloween
“나 왔어, 체슬리!”
마침 축제 날이라 그런지 유독 밝아 보이는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렸다. 체슬리는 문 앞에서 가만히 그 목소리를 듣다가 노크가 두 번 이어지자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인 건 회색의 머리칼. 시선을 조금만 아래로 두면 늘 그랬듯 빙글빙글 웃고 있는 낯의 모쿠마가 있었다.
“들어가도 돼?”
“언제부터 그런 허락을 받으셨다고.”
“헤헤, 그건 그렇지만.”
모쿠마는 말을 더 잇지 않고 빤히 체슬리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허락을 구하는 눈치였다. 기어이 제 입으로 인정받길 원하는 욕구란. 대체 누굴 닮았는지. 아마 저와 함께 있으며 그런 부분을 닮아갔을 거라는 걸 체슬리는 알면서도 모른 척 한숨을 쉬며 말했다.
“들어오세요.”
“고마워~”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모쿠마는 불쑥 체슬리의 집에 몸을 들였다. 어딘가 고풍스러우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가 오묘하게 체슬리와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았다. 특히나 문을 열면 보이는 ‘연어가 곰을 물고 있는 조각상’ 같은 건 체슬리라면 절대 두지 않을 장식이었다. 그러나 그걸 둔 이유는,
“아, 이거 아직 갖고 있었어? 나 없는 사이에 버렸을 줄 알았는데.”
“허락도 구하지 않고 마음대로 버리면 안 되니까요.”
“너는 이상하게 그런 쪽에서 꽉 막혔더라.”
“그런 의미에서 한 번 여쭙겠습니다만. 버려도 괜찮을까요?”
“에, 싫어. 웃기잖아. 계속 여기 두자.”
모쿠마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체슬리는 그럴 줄 알았다는 의미의 가벼운 한숨을 한 번 뱉고는 문을 닫았다.
열렸던 문 사이로 들어오던 은은한 조명이 완전히 차단 되자, 집 안에 빛이라곤 한 줄기도 없었다. 모쿠마는 잠깐 멈춰 서서 암적응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사이에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체슬리가 먼저 입을 열 것 같진 않았던지라, 모쿠마는 평소처럼 능글거리며 물었다.
“이야, 집에 빛이 하나도 없네.”
“뭐, 그렇죠.”
“반응은 그게 끝?”
“달리 더 반응해야 할까요?”
“뭔가… 다른 얘기를 할 줄 알았지. 이러고 있는 이유라던가, 이유라거나, 이유에 대해서.”
“별거 없습니다. 그냥 불을 켜고 싶지 않았어요.”
“드라큘라 백작이라도 된 거야?”
“훗, 오래오래 죽지 않고 살아남으라는 저주인가요?”
“그럴 리가. 내가 그런 끔찍한 말을 하겠어?”
시답잖은 이야기에 웃는 걸 보면 평소의 체슬리나 다름없었다. 모쿠마는 가볍게 흐흥, 하고 웃으며 재잘재잘 떠들었다.
“뭐, 이런 것도 좋지. 난 불 끄고 하는 게 좋더라.”
“하자는 말씀인가요?”
“그냥 분위기 풀려고 한 말이야. 그리고 너도 말이야. 지금은 별로 그럴 마음 없잖아.”
쿡. 모쿠마는 팔꿈치로 체슬리의 옆구리를 찔렀다. 체슬리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저 모쿠마를 응시할 뿐이었다. 표정, 보고 싶은데. 암적응이 되어도 체슬리의 표정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이 키 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가면 사기꾼이라 표정을 숨기는 데 능해서인지, 모쿠마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있잖아.”
“뭔가요, 모쿠마 씨.”
“집에 불 들어오는 거 맞지?”
“전기를 끊지 않았으니까요.”
“그럼 좀 켜는 게 어때? 네 잘생긴 얼굴이 보고 싶어.”
지그시 모쿠마를 바라보던 체슬리는 저벅저벅 몸을 옮겨 스위치를 눌렀다. 딸깍. 소리와 함께 빛이 들어왔다. 주황색의 은은한 조명이었지만, 갑작스럽게 밝아진 탓에 모쿠마는 다급히 눈을 감았다. …일순간 시선에 들어왔던 체슬리의 표정은, 무슨 감정이었더라. 모쿠마는 그 표정을 몇 번이고 되짚어보며 그의 진심을 파악하고자 했다.
시야가 가려져 소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모쿠마는 온 신경을 체슬리 쪽으로 기울였다. 어째서인지 아까보다 더 한숨이 깊어진 것 같았다. 그의 반응이 조금 걱정되던 모쿠마는 조심스레 눈을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 얼굴을 보니 확연히 알 것 같다. 체슬리는 지금 슬픈 거구나.
“아까부터 조금 긴가민가했는데 말이야. 너… 역시 조금 어른스러워졌어.”
“그런가요? 모쿠마 씨는 그대로네요.”
“음, 그거 좋은 건가?”
“더 늙지 않았다면 좋은 걸지도요.”
“뭐어… 그렇다고 해두자.”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체슬리는 왜 그것을 감추지 않았을까. 저도 모르게 비친 표정이라면 그건 그만큼 제게 익숙해졌다는 얘기라서 견딜 수 없을 만큼 기쁜 일이겠지만, 의도적으로 감추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모쿠마가 한참 피어오르는 찜찜함과 싸우고 있을 때쯤 체슬리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모쿠마 씨.”
“응?”
“어째서 오늘 오신 건가요.”
모쿠마는 그 질문으로 그가 슬픈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유독 어른스러워 보이는 것도, 그것을 가면으로 감추지 않고 내비치는 것도. 오늘이 무슨 날이었는지도.
체슬리는 그가 무언가를 깨달았음을 인지했지만,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전 당연히 내일 올 줄 알았는데.”
“…네 말을 잘 듣는 착한 사람은 아니었잖아, 내가.”
“웃기는 말이네요.”
“게다가, 하루라도 빨리 보면 좋지 않아?”
“하루 정도 기다린다고 죽지도 않는데요.”
“그러니까. 고작 하루잖아. 큰 차이도 아니란 말야.”
“기분이 나쁩니다. 오늘은.”
“언제부터 그런 걸 따졌다고. 괜찮아, 체슬리. 나 잘 지내.”
어깨를 한번 가볍게 으쓱거린 모쿠마는 제가 먼저 소파에 가 옆자리를 팡팡 두드렸다. 그렇게 뻔뻔하게 굴어도 체슬리는 모쿠마의 요구에 따라줄 수밖에 없었다. 제가 생각하기에 언제나 지는 쪽은 저였다. 특히나 오늘 같은 경우엔, 반박의 여지도 없이, 제가 질 수밖에 없었다.
째깍, 째깍, 째깍. 고요한 방안에 시계 초침 소리만 들렸다. 이따금 창문 너머로 보이는 그림자는 인간이 아닌 것으로 분장하여 제각각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런 날에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곁에 있는 것. 그것이 제일로 바라던 일이었다는 점을 깨닫자, 체슬리는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역시 너는 웃는 게 더 좋아.”
“누구 덕분에 이렇게 부드럽게 웃을 수도 있게 되었으니까요.”
“응. 오늘따라 듣기 좋은 말만 해주네.”
좋다. 이런 거. 모쿠마는 체슬리의 어깨에 고개를 툭 기대고는 손을 꿈질거려 체슬리의 손을 잡았다. 그리곤 가볍게 웃었다. 헤헤. 멍청하다고 할 수도 있을 만큼 실없는 웃음이었지만,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와 온기에 마음이 놓여 저도 따라 웃고 말았다. 후후.
틱, 틱, 틱. 시계가 멈춘 듯이 초침이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 장인에게 주문 제작 맡긴 시계는 딱 1년만 돌게 되어 있었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나. 시간은 제가 잡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실체라도 붙잡고 싶어서, 이렇게 얕은수를 썼음에도 모쿠마는 어김없이 운을 떼었다.
“체슬리.”
“…말하지 마세요.”
“해피 할로윈, 이만 가볼게.”
“…제가 그곳에 갈 때까지 부디, 지옥에서 견뎌주시겠습니까?”
“하하, 물론. 100년이 걸린대도 기다릴 거야.”
말도 안 되는 수치에 체슬리는 순간 실소가 터지고 말았다. 그를 놓치지 않은 모쿠마는 싱긋 웃은 채 소파에서 일어나 체슬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지내다가 와. 또 만나자.”
그를 붙잡고자 몇 번의 고민이 이어졌지만, 기어이 나온 말은 다른 말이었다.
“또 만납시다. 어디에서든지.”
달칵. 걸음 소리는 남지 않았고, 문이 열리는 소리만 들렸다.
글을 늘 검수해주시는 M님께 감사해서 드리는 체슬모쿠를 쓰려다가 콘티 짜던 중에 ‘헉, 이거 완전 할로윈에 꼭 써야하는 글 아냐?’라는 생각이 들어서 M님께 양해 구하고 이 글부터 마무리 지었습니다. (M님: 황당;)
할로윈! 할로윈 기념 글을 한 번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짧게나마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보았습니다.
근데 저는 진짜 ‘으휴… 내가 더 사랑하니까 져준다…’하고 서로 생각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체슬리도, 모쿠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결과적으론 이기는 쪽이 없음. 그래서 정말 재밌다고 생각해요.
설명이 필요한 글일 수록 잘 못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이번 글이… 남들한테 잘 읽히는 글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불명확하게 쓴 부분이 많아서 설명을 해야하나 싶기도 합니다. 제가 항상 명확하게 드러나는 글을 위주로 썼더니, 이런 글에 약합니다. 해석은 자유이니 편하게 읽어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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