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지 못하는 당신에게

[하행상행 / 쿠다노보] 나를 알지 못하는 당신에게 1

우리, 친구가 되자!

  • 동명의 소설이 있으나, 본 소설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 쓰고 싶은 걸 썼습니다. 적폐 글이라 느낄 수 있습니다.

  • 인간하행 인외상행 AU입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 혈연이 아닙니다.


너는 검은 여우에 대해 알고 있어? 음, 그러니까, 조로아크처럼 생겼는데 조로아크는 아니야. 하지만 조로아크처럼 인간으로 변할 수 있어. 인간이 아닐 때는 엄청 커다란 여우 모습. 풍성한 꼬리가 여러 개 달려 있고, 회색 눈은 날카롭고 형형하게 빛나.

나는 봤어. 숲에서 나를 노려보는 검은 여우를.

-

6살 때, 하행은 다리 건너에 있는 숲으로는 절대 가지 말라던 어른들의 신신당부를 까맣게 잊고 ―사실, 잊었다기보단 흥미가 없어 듣지도 않았다가 맞지만― 겁 없이 숲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숲은 스산하고, 조용했다. 이곳에서 뭐가 나온다고 그렇게들 떠는지. 하여튼 사람들은 겁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한적한 숲속을 거니는 것도 질려가 슬슬 돌아가자고 생각할 때 즈음 길을 잃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전부 나무밖에 없어 처음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여기서 소리라도 지르면 누가 와줄까. 그런 고민을 하던 찰나 멀리서 인영이 보였다. 상당히 커서 한참을 올려다보아야 하는, 저와 똑같은 얼굴을 한 성인 남성. 하행은 다가가 바로 손을 뻗었다.

-

인간은 백해무익하여 영 싫었다. 숲의 나무를 베고, 생명을 해쳤다. 그래서 검은 여우는 인간이 숲에 들어오면 일부러 길을 잃게 만들어 숲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하곤 했다. 그러면 얼마 안 가 마을에서 소문이 퍼질 것이다. ‘또’ 그 숲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그렇게 숲에 인간의 발길이 끊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저 꼬마는 뭐란 말입니까.’

어떤 생명이든 간에 작고 어리면 더 마음이 쓰이기 마련이었다. 몇백 년을 살아온 저에 비해 태어난 지 10년도 안 된 어린아이가 숲을 발발 돌아다니고 있으니, 제아무리 싫어하는 종족이라도 어린아이까지 해치기엔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몇 번이고 저런 인간의 아이 따위 알 게 뭡니까, 라고 생각하고 시선을 떼보려 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꼬마의 모습은 숲속에서도 눈에 띄어 다른 생명체에게 위협을 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숲에 어린아이의 시체가 있으면 찝찝해서 그런 것뿐입니다.’

검은 여우는 그런 자기 합리화를 마치고 저 어린아이를 숲 밖으로 유인하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어린 생명체들은 낯선 곳에 혼자 놓여 있을 때, 같은 종족을 보면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지금 검은 여우가 변해야 하는 건 인간의 모습이었다. 썩 내키진 않았지만, 숲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선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면, 인간들이 숲에 오지 않은 지 워낙 오래되다 보니 검은 여우의 기억 속엔 인간의 얼굴이 없었다. 검은 여우는 고민하다 지금 제 눈앞에 있는 하행의 얼굴을 따라 하기로 마음먹었다. 오히려 이편이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더 빨리 숲 밖으로 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검은 여우는 하행이 자신을 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숲의 입구로 아이를 이끌었다. 그러나 검은 여우가 간과한 점이 있다면, 검은 여우는 하행이 얼마나 작은 줄 몰랐고, 숲의 풀숲은 생각보다 높게 자라있다는 점이었다.

‘…잘 보이지 않는군요.’

검은 여우는 제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하행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일부러 하행을 잘 보기 위해 시야를 높여 다 자란 성인 남성으로 변했음에도 하행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제 손을 답싹 잡았다. 깜짝 놀란 검은 여우는 황급히 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까지 제가 찾고 있던, 하얀 꼬마 아이였다. 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검은 여우를 바라보다가, 검은 여우의 등 뒤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검은 여우의 손을 놓더니, 이내 검은 여우의 등 뒤에 있는 무언가를 덥썩 잡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척추를 타고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마치, 지나가다 꼬리가 나뭇가지에 걸렸을 때의 느낌이었다. 설마. 검은 여우는 제 손을 엉덩이 부근으로 가져갔다. 폭신한 무언가가 손에 닿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살랑이는 꼬리가 저를 반겨주었다. 그제야 지금 제 귀와 꼬리가 튀어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지금 그 꼬리를 하행이 움켜쥐고 있다는 것도. 아마 하행이 손을 잡았을 때 너무 놀라 변신이 조금 풀렸던 모양이다. 검은 여우는 엉겁결에 하행을 들쳐 안고, 정신없이 달렸다. 숲에서 나고 자랐던지라 숲의 지리에는 빠삭했다. 검은 여우는 숲의 입구에 하행을 내려놓은 후 변신을 풀고 숲 깊숙한 곳으로 도망쳤다. 하행은 검은 여우가 도망간 자리를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다리를 건너, 마을로 돌아갔다.

하행이 돌아오니 마을은 하행의 실종으로 발칵 뒤집혀 있었다. 하행의 부모님은 하행이 무사히 돌아오자 하행을 와락 껴안았다.

“엄마아빠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아니! 도대체 어디 갔었던 거야?”

하행은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그래서 제가 숲에 갔다는 걸 말하면 모두의 이목이 제게 쏠릴 거란 것도 알았고, 다시는 숲에 가지 못하도록 다리를 철거해버리거나, 길을 막아버릴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하행의 부모님은 어딜 갔는지 솔직히 말하라며 타일러도 보고, 달래도 보았지만, 하행은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결국 싸움에서 승리한 건 하행이었다.

-

다음 날 아침, 하행은 어른들 몰래 숲으로 향했다. 숲의 입구에 발을 들이자마자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한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마주한 것이다. 숲에서 저를 노려보는 검은 여우를. 그 검은 여우는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하행을 바라보았다. 적의를 품은 걸까? 하지만 적의를 품었더라면 저를 그렇게 쉽게 마을로 돌려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만난 직후 바로 죽였겠지. 즉, 이건 위협이다. 다시는 숲에 발을 들이지 말라는 위협.

그러나 하행은 겁이 없는 편이었다. 형형하게 빛나는 회색 눈은 오히려 하행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행은 제게 위협을 가하는 존재와 눈을 맞춘 채 망설임 없이 숲속으로 나아갔다. 검은 여우는 더 다가오지 말라고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더 크게 내보았지만, 소용이 없자 그냥 자신이 물러서기로 했다. 하행으로부터 등을 돌려 숲 깊숙한 곳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하행이 말을 걸었다.

“저기, 어제는 고마웠어. 우리 엄마, 아빠 엄청 걱정. 하지만 무사히 돌아와서 기뻤대.”

혹여나 소리를 크게 내면 다리 건너에 있는 마을까지 들릴까 싶어 검은 여우에게 들릴 만큼만 또박또박 말하는 하행의 모습에 검은 여우는 답을 하는 성의는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사 인사는 되었습니다. 다만, 앞으로 이곳에 오지 말아주십시오.”

검은 여우가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하행은 다급히 검은 여우를 불렀다.

“저기! 나, 너 마음에 들어. 우리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전 인간이 싫습니다.”

“그럼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해?”

“한 200년쯤 지나면 마음이 변할지도 모르죠.”

하행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10분도 기다리기 어려운데 200년을 기다리라니.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나 기다리는 거 잘 못 해.”

어린아이다운 대답이었다. 상식적으로 인간이 200년이나 살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하행은 평범한 인간이 200년 동안 기다릴 수 있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냥 자신이 기다리는 걸 어려워한다는 듯이.

“그러니까, 내가 찾으러 갈게!”

검은 여우는 아이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검은 여우는 고개를 돌려 하행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가소롭다는 듯 말하곤 숲으로 돌아갔다.

“…마음대로 하세요. 찾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숨바꼭질은 검은 여우에게 훨씬 유리했다. 숲의 숨겨진 구석구석을 다 알고 있었고, 여차하면 다른 포켓몬으로 변신하면 되는 일이었다. 아이는 아마 저를 찾다가 지치면 포기할 것이다.

그러나 하행은 포기하지 않았다. 검은 여우가 사라진 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발자국을 찾았다. 그러다 개울에서 뚝 끊긴 발자국에 난감한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차라리 저번처럼 길을 잃어버릴까. 그러면 걱정해서라도 또 나와주지 않으려나? 하행은 개울가에서 물을 찰박거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닌지라 숲의 길은 몇 번 헤매다 보면 외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모르는 척하는 게 좀 더 빨리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음, 아무래도 그게 좋겠다. 하행은 영악한 생각을 마치고 손을 털었다.

하행의 생각은 명답이었다. 길을 알고 있는지도 모를 어린아이가 제멋대로 숲을 뒤적이는 것을 보며 마음이 놓일 리가 없었다. 검은 여우는 하행에게 완전히 시선을 뗄 수 없어서 제 몸을 잘 숨겨가며 하행을 따라다녔다. 날은 점차 어두워지고 하행은 숲을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검은 여우는 고민 끝에 나무를 흔들어 열매를 툭 떨어뜨렸다.

열매가 떨어지는 소리에 하행은 뒤를 돌아보았다.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나무 열매가 떨어지다니. 하행은 잠시 의아하게 생각했다가, 씩 웃음을 지었다. 지켜보고 있었구나. 하행은 모른 척 열매를 주웠다. 그 여우가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진 않을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 저를 숲 밖으로 내보내려 할 테지. 지금처럼. 하행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8시 방향에서 풀숲이 흔들렸다. 하행은 흔들리는 풀숲을 향해 다가가자, 이번에는 5시 방향에서 소리가 났다. 하행은 그가 주는 힌트를 모르는 척 따라갔다. 그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니 어느덧 숲의 입구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숲 밖은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았다. 마을에 도착하면 아마 어두워지겠지만. 하행은 걸음을 서두르다 문득 멈춰서고 숲에 대고 말했다.

“내일 또 올게!”

이쯤 되면 그냥 아이의 앞에 나타나 친구가 되어주는 편이 훨씬 더 마음이 편하겠다. 검은 여우는 어쩐지 제가 길들여지고 있다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어린아이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순수하고 예측할 수가 없어 어렵다. 검은 여우는 멀어져가는 하행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숲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하행은 약속을 지키겠다는 듯 숲을 찾아왔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숲의 깊은 곳으로 무작정 걸었고, 온갖 것들을 관찰했다. 그러다 문득 수풀 사이에 주황색 털이 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제가 찾고 있는 건 검은 여우지만, 어린아이의 호기심은 저 털이 무엇인지 꼭 확인하고 싶어 했다. 하행은 살금살금 다가가 주황색 털을 답싹 잡았다. 깜짝 놀란 털의 주인은 하행의 손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을 쳤다.

“어라, 깜지곰이다.”

하행은 잡고 있던 깜지곰의 꼬리를 놓아주고 잠깐 생각했다. 깜지곰이 있다. 여기는 포켓몬이 사는 숲이다. 그렇다는 건… 어미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하자 하행은 소름이 돋았다. 하행은 황급히 이곳을 벗어나려다 나무뿌리에 걸려 크게 넘어졌다.

가까운 곳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진짜 큰일일지도. 하행은 덜덜 떨며 제게로 다가오는 거대한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깜지곰보다 훨씬 긴 발톱에, 짙은 갈색 털이 눈에 들어온다. 배에 보이는 동그란 무늬가 보인다. 날카롭고 흉악한 눈을 한 링곰과 눈이 마주쳤다.

사람은 극한의 공포에 달하면 소리조차 지를 수 없다. 소리를 질러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하행은 터져 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시야를 넓히려 애썼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그가 와서 도와줄 거라 믿었다. 지금은 그 믿음에 기대는 수밖에 없으니까.

무언가 달려와 하행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게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당장 자신을 향해 뛰어올 만큼 가까이에 있는, 자신을 신경 써주고 있는 존재라면 ‘그’밖에 없었다. 하행은 안도하여 더 크게 울었다. 하행의 울음소리에 링곰은 몇 번 으르렁거리다가 제 앞에 기품있게 서 있는 존재를 보고 그냥 등을 돌려 가버렸다.

여우는 방울방울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는 하행을 물끄러미 보다가, 인간으로 변해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흐린 시야가 맑아지며 서서히 보이는 저와 닮은 얼굴은 참으로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행은 그저 지금 자신을 지켜준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뻐서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검은 여우는 그대로 굳어 어정쩡하게 하행에게 안겨 있었다. 어깨가 축축해지는 감각이 영 싫었다. 이제 그만 떼어놓으려 하행의 어깨를 잡자, 하행이 훌쩍거리며 입을 뗐다.

“올 거라 믿었어.”

“…….”

“귀찮다는 듯해도 계속 보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내가 위험해지면 와줄 거라 믿었어.”

“죽게 내버려 둘 걸 그랬습니까?”

“아니! 내 말은, 음, 와줘서 고맙다고.”

검은 여우는 하행을 떼어놓았다.

“자, 이제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셨죠. 이제 마을로 돌아가서 다시는,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 친구 아니야?”

“친구였던 적조차 없었습니다만.”

“그러면, 서로 소개하고 친구 하자! 난 하행이야. 너는?”

검은 여우는 말이 없었다.

“친구 하기 싫어?”

“싫은 건 둘째 치고…. 전 이름이 없습니다. 여우 신님, 하고 불렸죠.”

하행은 무덤덤해 보이는 검은 여우를 보고 눈을 빛냈다.

“그럼 내가 이름 지어줄래!”

“예?”

아, 어쩐지 제대로 말려들었다. 친구 하기 절대로 싫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아이의 저 울먹이는 눈을 보면 차마 거절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검은 여우는 언제 울었냐는 듯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이름을 정하고 있는 하행의 모습을 안절부절못한 채 바라보았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아이는 생긋 웃었다. 그 웃음이 목줄이 되어 제 목을 옥죄인다. 아이는 순진한 얼굴로 저를 사로잡은 것이다.

“정했다!”

하행의 큰 소리에 검은 여우는 몸을 흠칫 떨었다.

“네 이름, 상행 어때? 내가 하행이니까. 너는 상행.”

“무슨 그런….”

“역시 좋지? 앞으로 잘 부탁해, 상행!”

막무가내였다. 검은 여우, 아니, 상행은 얼떨떨하게 제 이름을 읊었다. 상행, 상행…. 인간을 마주하였을 때는 대부분이 경외에 차 우러러보며 저를 높여 부르곤 했다. 그러나 이 맹랑한 아이는 제게 이름까지 지어주며 뻔뻔스레 친구 하자고 말한다. 모든 인간의 아이가 이와 같을까. 상행은 제게 말을 건네는 하행의 머리를 손으로 꾹 눌렀다. 하행은 의아한 듯 상행을 바라보다가, 뭐가 그리 좋은지 시시대었다.

“상행은, 나보다 한참 나이 많지?”

“뭐, 그런 셈이죠.”

“그런데 왜 우리가 선생님한테 말하는 것처럼 말해?”

하행의 질문에 상행은 골똘히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는 건가? 하긴, 하행이 말할 때는 예전에 인간들이 제게 말할 때와 말투가 조금 달랐다.

“……인간들은 보통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나이가 어린 사람한테는 안 그러지?”

“그렇습니까. 저를 찾아온 인간들이 제게 말할 때 이런 식으로 말하기에 당연한 건 줄 알았습니다.”

상행은 숲을 다스리는 여우 신으로 살아왔다. 사람들이 제게 공물을 바치고, 간절히 바라는 것들을 들어주라 읊을 때는 존칭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상행이 그렇게 말하는 거 좋아. 나를 신경 써주는 거 같아.”

쓸데없는 생각을 끊어버린 건 하행의 말이었다. 제 말투가 좋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오랫동안 대화를 나눠본 건 너무 오랜만이라서 눈만 껌뻑거리자 하행은 우습다는 듯 깔깔 웃었다.

“아, 해지기 전에는 돌아가야 해.”

하행은 제 옷에 묻은 흙먼지를 대충 털어내고 상행에게 손을 내밀었다. 상행이 고개를 모로 기울이자, 하행이 먼저 상행의 손을 잡았다.

“길 아직 못 외웠으니까, 입구까지만 데려다줘.”

어린아이의 손은 살이 여려 이토록 말랑말랑하구나. 상행은 하행의 손을 잡고 걸었다. 상행의 얼굴은 하행의 얼굴과 똑같았으니, 누가 보면 부자지간이라고 오해하기 좋은 모습이었다. 이렇게 어린 인간과 친구라면, 어릴 때부터 학습시키면 되지 않을까. 해도 되는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아이에게 가르치면, 제가 싫어하는 인간의 모습은 하나도 갖지 않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이라면 한 명쯤은 친구로 삼아도 되지 않을까. 상행은 그런 생각을 하며 제 옆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저는 인외와 인간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콘티 짤 때까지만해도 인외가 하행이었는데, 저번은 하행이었으니까 이번엔 상행으로 노선을 틀어봤습니다.

쓰면서 제일 걱정했던 건 역시 ‘이거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였습니다. 근데 이번에도 제가 쓰고 싶은 걸 쓰자는 마음으로 1화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래도 역시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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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플랫폼에 업로드했던 글을 글리프에 재업로드하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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