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입 외

아카샤 도서관

[커미션]외관 서술 * 3

Library  Ākāśa

1

Maylilly Deadlywhite

메이릴리 데들리화이트

:: 우두머리 사서는 꼭 눈으로 만들어진 것만 같은 소녀였다. 건드리면 그대로 녹아내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하얗고 창백했다. 그녀가 살아 숨쉬는 존재임을 짐작할 근거는 천천히 깜박이는 눈의 움직임뿐이었다. 그러나 눈동자는 모든 들어오는 빛을 삼켜 버린 듯 검었다. 반짝이는 안광 한 줄기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시체 같다는 첫인상을 고치는 데에는 썩 도움이 되지 못했다.

:: 처진 눈과 무표정한 입매가 전반적으로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죽음을 노래하는 밴시, 라는 이름답게 눈밑은 늘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머리 오른쪽에 주르륵 튀어나온 세 개의 검은 가시는 꼭 생명을 앗아가는 사신의 손톱 같아서. 심약한 방문자들은 겪어 본 적 없는 죽음을 상상하며 부르르 몸을 떨곤 했다.

:: 겹겹이 쌓인 꽃잎을 닮은 하얀 원피스를 입었다. 소매와 치마 끝자락의 띠부터 얇은 속치마, 갈비뼈를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앞섶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장식까지 모두 검은색이었기 때문에, 초커 목걸이의 둥그스름한 붉은 보석만이 전신에서 유일하게 색이 있는 부분이었다. 전체적으로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몇 군데 존재했는데, 먼저는 앞서 설명한 오른 머리의 뿔이었고 다음은 양 발을 감싼 다른 색의 양말이었다. 왼쪽은 하양, 오른쪽은 검정.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는 그녀 자신조차도 그랬다. 아무도 죽지 않을 밤이면, 테라스에 나와 달을 바라보고 서서. 젖은 눈가를 매만지면서 혼자 추측해 보곤 했다. 이건 생과 사에 한 발씩 걸치고 있는 내 처지를 의미하는지도 몰라….

::   부드러운 움직임은 땅에 발이 붙어 있지 않은 걸까, 의심을 하게 만들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녀는 지상에서 2~3cm가량 떨어진 허공을 유영하면서 도서관을 관리하거나 방문객을 안내했다. 이동의 수직적 한계는 따로 없는 듯했지만, 방문객이 대체로 중력을 이용함을 감안하여 선정한 높이랬다. 그녀가 하늘거리며 도서관 복도를 미끄러져 갈 때면, 어떠한 색에도 오염되지 않은 순백의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은방울꽃 향기를 남겼다. 그녀는 방문객 앞에 모습을 보이는 일이 잘 없었으므로, 은은한 잔향을 가지고서만 그녀의 이동 경로를 추측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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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Lisianthius Blümchen

리시안셔스 블룸센

:: 일자로 단정하게 자른 앞머리에서부터 끝이 처진 분홍색 눈, 양갈래로 묶어 늘어뜨린 머리카락까지. 꼭 앙증맞은 소동물을 연상시키는 인상이었다. 길다란 귀를 닮은 머리 모양 탓에 토끼 혼혈이 아니냐는 소리도 종종 들었다. 돌돌 말린 끄트머리를 보여 주자면 머리카락인 줄을 깨닫고 다들 입을 다물었지만.

:: 매우 옅은 분홍과 하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굳이 색이 짙은 부분을 꼽자면 눈동자인데, 그마저도 그렇게까지 선명한 발색은 아니었다. 거기에 마인드 엘리멘탈 특유의 흐릿한 존재감까지 더해져. 리시안셔스 블룸센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편안히 도서관 곳곳을 오갈 수 있었다. 그러다 가끔 예리한 방문자가 존재를 눈치챌 때면 허리를 가볍게 숙이며 인사했다. 한 손을 가슴 위에 올리고 먼지떨이를 든 반대편은 등 뒤로 숨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예절로. 그 자세의 리시안셔스는 더없이 친절하고 상냥한 미소를 했다. 그러나 표정 뒤에 알 수 없는 속내가 숨어 있음은, 정령의 움직임을 발견할 정도로 민감한 이라면 필히 알아차렸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예민한 만큼 현명했던 탓에, 소리 내어 지적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 오래된 책의 먼지를 털거나 방문객이 남긴 흔적을 치우는 등, 도서관의 전반적인 청결 관리가 리시안셔스의 업무였다. 도트 무늬의 치마가 더러워지지 않도록 하얀 앞치마를 허리에 꼭 묶고, 머리카락이 방해가 되는 일이 없도록 레이스가 달린 헤어밴드도 착용했다. 전체적으로 제 임무에 충실한 모습이었다. 머리카락에 여럿 달린 다양한 모양의 머리핀만 제외하고서는. 자그마한 악세사리류를 모으는 것이 리시안셔스의 유일한 — 청소만 빼면 — 낙이었다. 그녀는 특히 귀엽고 아기자기한 머리핀을 사랑했다. 방문자들이나 동료 사서 샤르트루즈에게 선물받은 것들을 한 개도 빠짐없이 달고 다녔다. 다들 정말 마음에 들어서 하나만 고르는 것이 오히려 괴롭다고 했다. 리시안셔스는 확실히, 선택에 별 재능은 없는 듯했다. 양말마저도 어떤 길이가 나을지를 정하지 못해서 오른쪽은 짧게, 왼쪽은 길게 신은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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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hartreuse Blanche

샤르트루즈 블랑슈

:: 가장 키가 컸고 체형도 어른스러워서 셋 중 최연장자로 보였다. 도서관의 사서가 모두 인간이 아닌 점을 고려하면, 외관으로 나이를 판단하는 것은 의미 없는 구분법이지만. 일단 겉보기에는 그랬다는 말이었다. 분위기 또한 나이를 추측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만물을 깨우친 현자인 것만 같다. 이상이 주변의 일반적인 평가였다.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면, 삶의 경험을 지겹도록 쌓은 이의 표정이 간혹 얼굴에 스쳐지나가곤 했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찰나였기에 발견한 이는 거의 없었다. 

:: 백색에 가깝도록 색이 옅은 금발을 가졌다. 양쪽으로 틀어올린 머리 뭉치는 어떤 마법을 부렸는지 장미 모양으로 화려하게 말려 있었다. 그 아래에는 선명한 진분홍 리본을 달아서 고정했다. 머리카락이 어찌나 길고 풍성한지 그러고도 한참은 아래까지 곱슬거리며 늘어졌다. 이쪽에는 제법 애정이 있는 모양이라, 관리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기름을 바르고 얇은 빗으로 꼼꼼히 빗어내리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자 외출 준비의 대부분이었다. 머무르는 곳이 제아무리 험하고 하루의 일정이 빼곡해도, 이것만큼은 절대 빼먹지 않는댔다.

:: 장미꽃에서 태어나 장미꽃을 닮았다. 어깨를 드러내는 디자인의 하얀 겉치마에 곱게 놓인 자수에서부터, 허리선을 잡은 리본 위, 이과 같은 색의 진분홍 속치마에 이르기까지 장미꽃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기본적인 체취에다 머리카락에 바른 장미 기름이 더해져, 늘 은은한 장미향을 풍기며 다녔다. 근처에 머무르는 이에게 장미꽃이 가득 피어난 다리 아래를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창백한 보라의 눈동자는 연약하고,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하여. 인생에 낭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던 차디찬 이성의 존재들도, 샤르트루즈와 함께 걷는 순간만큼은 심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 이 도서관의 수많은 장서가 다 어디서 왔는지 아는가. 샤르트루즈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수집하여 글로 정리하는 일을 담당했다. 때로는 존재하는 책을 가져오거나, 경험에 기반하여 아예 새로이 창작하기도 했다. 때문에 서고 깊은 곳 도서관 사무실, 샤르트루즈 블랑슈의 자리는 대체로 비어 있었다. 두꺼운 나무 밑창을 댄 가죽 재질의 갈색 엔지니어 부츠도 이와 관련된 옷차림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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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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